검찰이 지난해 국회의원 출판기념회를 통한 ‘입법로비’ 수사에 나서면서 출판기념회를 빙자한 편법 정치자금 모금 행위를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음성적 정치자금 모금 통로로 변질됐다는 지적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출판기념회가 열리면 피감기관이나 관련 기업들은 앞 다퉈 돈 봉투를 들고 찾아가는 것이 관행이 되어버렸다. 일부 의원들은 피감기관에 전화를 걸어 참석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국정감사장에서 죄인 아닌 죄인이 돼야 하는 피감기관 입장에서는 해당 상임위원회 의원의 출판기념회를 모른 채 할 수 없을 것이다. 관련 법안이 계류돼 있는 이익단체나 협회의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로비자금을 갖다 바칠 멍석이 펴진 것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축하금 액수도 단순히 책 몇 권 사주는 정도의 인사치레가 아니라 몇 십 만원, 몇 백 만원이 기본이라고 한다.

힘 있는 여야 중진이나 상임위원장들은 한번 출판기념회를 하면 수 억 원에서 많게는 10억 원까지 모은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회의원이 쓴 책이라는 것도 대부분은 출판사가 인터뷰 몇 번 하고 나서 대필작가가 대필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니 이 정도면 땅 집고 헤엄치기 식 ‘눈먼 돈 잔치’라 아니할 수 없다.

문제는 엄연히 정치후원금 모금 통로가 돼버린 출판기념회에 대해 아무런 법적 규제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후원금의 경우는 내역을 공개하고 영수증을 발행해야 하며, 선관위에 신고해야할 의무가 있지만 출판기념회는 현금으로 돈을 받은 뒤 장부를 폐기해 버리면 그만이다.

결혼식 축의금과 형식은 비슷하지만 돈의 성격이 축하라기보다는 ‘보험 들기’, 또는 ‘뇌물’에 더 가깝다는 것이 차이다. 정치인들은 책을 매년 내는 것도 아니고 4년 임기 중 많아야 한두 번 정도 출판기념회를 할 뿐이고 현행 정치자금 모금 한도(연간 1억5000만 원·선거 있는 해는 3억 원)로는 사무실 운영도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또 중진이나 실세 의원들을 제외하면 1억 원 안팎을 모으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 돈으로는 출판비용과 기념회 비용 등을 충당하고 나면 별로 남는 것도 없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지난해 문제가 된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도 “출판기념회 축하금이 대가성 로비자금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이제까지 검찰에서 공식으로 수사한 바가 없기 때문에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법적 문제 제기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적법성 여부나 의원들의 항변과 관계없이 출판기념회를 통한 변칙적인 정치자금 모금은 차제에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여야 공히 정치개혁 얘기만 나오면 고해성사라도 하듯 출판기념회 개선대책을 내놓았던 과거의 행적만 봐도 그들 스스로 출판기념회의 문제점을 어느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2월 의원총회에서 출판기념회 횟수를 4년 임기 중 2회로 제한하고 국정감사, 정기국회, 선거기간 중 출판기념회 금지를 골자로 한 출판기념회 준칙안을 내놓은 바 있고, 새정치민주연합도 민주당 시절에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으로 도서 정가판매 및 수입과 지출 내역을 선관위에 신고하는 국회의원 윤리실천 특별법안을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그동안 논의는 모두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버렸다.

늘 그렇듯 정치권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안이나 규칙은 어영부영 뭉개고 유야무야 시켜버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만약 내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출판기념회의 투명성 제고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유권자들이 행동(行動)으로 직접 나설 수도 있다. 출판기념회에서 불투명한 돈을 받은 국회의원들에 대해 낙천, 낙선운동이라도 벌여야 정치권은 정신을 차릴 셈인가!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를 전면 금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남수(전 전라남도 강진군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