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수빈 김포외국어고등학교 2학년 

[에듀인뉴스] 벚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충분히 봄을 만끽하고, 학교에선 한 달이 넘는 시간을 같이 지내며 제법 친해진 아이들과 선생님들 간의 웃음꽃이 피어야 할 시기지만, 현재 우리는 사상 초유 개학 연기와 온라인 개학이라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막연한 9월 학기제 도입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지난 3월 ‘9월 학기제 검토’를 제안한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 본격적으로 9월 학기를 새 학년도 시작으로 하는 교육개혁을 추진하고자 한다’라는 입장을 밝히며 공론화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재정 교육감이 9월 학기제 적극 추진 입장에서 사용한 표현(‘지금이 9월 학기제를 도입할 천재일우의 기회’) 그 자체만을 보면 두 가지 측면의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온라인 개학의 불안정성, 현재 고교 3학년 학생들의 불안감을 명분으로 당장 올해 9월 학기제를 도입, 현재의 문제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시기를 학제 개편에 관심을 모으는 계기로 삼아 향후 9월 학기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학제 개편은 교육현장과 그에 연동된 사회 구조를 바꾸는 정책이므로 꼼꼼한 검토를 거쳐 전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사안이다. 후자의 경우는 등교 개학이 가능할 정도로 코로나 사태가 안정되고 교육현장이 정상 궤도에 올랐을 때 충분한 담론을 해도 늦지 않다. 

(사진=이재정 교육감 페이스북 캡처)

이재정 교육감의 글은 ‘현재의 온라인 개학은 여전히 실험적인 과정이며 수업을 못한 7주간의 학습 손실, 대입에 절대적인 수행평가 운영의 어려움을 근거’로 하기에 전체적 맥락을 보면 그 논지는 분명 전자에 속한다. 

전자의 ‘올해 안에 9월 학기제 도입’을 전제로 ‘지금이야말로 9월 학기제를 도입할 시기’라는 의견에 대해 ‘지금이기에 9월 학기제가 도입되면 안 되는 시기’임을 밝히고자 한다.

첫재, 그동안 3월 학기제 보완으로의 결론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재정 교육감이 언급한 것처럼 9월 학기제 도입 주장은 여러 정권을 거쳤다. 문민정부, 참여정부 시절부터 논의되었고 가까이로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검토된 사안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 주제가 되기도 했지만 9월 학기제 도입이 아닌 3월 학기제 보완으로 결론이 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양적으로 따져도 해외교류에 다른 학기제를 운영함으로써 발생하는 3월 학기제 유지비용(대략 4조)에 비해 9월 학기제 도입 시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대략 8~10조, 혹은 그 이상)은 3월 학기제 유지비용보다 엄청나고, 그동안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 같은 학년에서 생활하며 굳어진 한국 사회 고유의 전통적, 관습적 문화에 의한 충돌도 감수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를 수습하기도 급급한 현시점에서 다시 새로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실험적인 과정’을 넘어 우리 교육계를 실험체로 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특수한 상황은 올해의 특수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 대책 마련 없이 갑작스러운 ‘본격 추진’을 외치며 고식지계(姑息之計)를 강행할 일은 전혀 아니다.

둘째, 불안감 해소의 책무와 우리 교육의 주도권을 스스로 사교육 시장에 넘겨줄 뿐이다.

9월 학기제 찬성 의견은 현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에 크게 힘을 얻는다. 학교가 휴업하고, 온라인 개학이라는 특수한 방법을 운영하는 중임에도 학원 휴원은 그저 권고 사항에 그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학원들이 많다. 

그동안 진보교육감 진영에서 외쳐온 ‘입시를 위한 교육이 아닌 자아실현을 위한 교육’의 정신에 비춰보면 신학기 시작 전까지의 시간 동안 입시 불안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학기 중에 할 수 없는 여러 활동들을 해보는 것이 의미가 있겠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로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요즘 과연 무슨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9월 학기제 도입 명분은 입시 불안감에서 기원하는데, 갑자기 공백이 확연히 늘어날 때 아이들이 과연 어디로 갈지 눈에 선하지 않은가? 

‘7주간의 학습 손실 대처’를 근거로 공교육 내실화를 희미하게 기대하며 9월 학기제를 내세우는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불안감 해소의 책무를 사교육 시장에 전이하며 동시에 우리 교육의 주도권을 스스로 사교육 시장에 넘겨주는 역설을 자행할 뿐이다. 

셋째, 졸속 행정의 전례를 이렇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백번 양보해 9월 학기제를 위한 법령 개정 과정에 착수했다고 가정해보자. 20대 국회 종료 전 법령 개정을 하려면 5월 중에는 결론이 나야 하는 것이니, 한 달 만에 교육현장을 뒤흔드는 법령 개정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수험생들의 혼란을 법령 개정의 근거로 이야기하겠지만, 국회에 안건이 상정되는 순간 수험생들은 다시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현실적으로 한 달 안에 법령을 개정하는 것이 말이 안 되니, 기간을 아주 조금 더 늘려 21대 국회에서 처리한다고 가정해보자. 

6월이 되어서는 상임위원회 배분으로도 정신이 없을 것이고 패스트 트랙에 올려 아주 빠르게 처리한다 해도 7월, 8월에 결론까지 도달하는 논의를 한다는 것은 무리다. 

기적적으로 통과가 되어 9월 학기제 도입을 앞둔다고 해도, 시행 한 달 전을 바로 앞둔 법령 개정이라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즉 우리 교육의 역사를 새로 써 목표하는 ‘올해 안의 9월 학기제’를 현실화한다면 지금으로부터 한 달 내의 졸속 행정 결과이거나 교육현장을 완전히 뒤흔드는 학제 개편이 무려 시행 한 달 전에 결론이 나는 것이니, 이리 해도 졸속 행정의 전례를 만드는 셈이다. 

급진적으로 추진하는 만큼 부작용의 대처도 미흡할 수밖에 없고, ‘졸속 행정’의 전례가 향후 우리 교육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두렵기도 하다. 

온라인 개학의 어려움이라는 당면 과제부터 제대로 해결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한다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임을 기억해야 한다. 

국제 기준에 부합, 인적 자원의 사회 진출, 긴 여름방학 기대 등 9월 학기제의 장점도 물론 이해하고 있다. 허나 유럽권에서 9월 학기제를 시행한 맥락이 우리와 다르고 오히려 유럽 학자들이 한국의 학제를 고찰하는 상황이며 해외 진출 유학생들의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국가고시 및 기업체 인력 채용 일정 조정, 엄청난 사회적 비용 감수, 적응에 대한 혼란 등의 측면에서도 분명 전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현장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지금, 학제 개편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9월 학기제로 더 큰 혼란을 감수할 것이 아니라 지금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교육현장에 안내하는 것이 진정으로 교육청에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온라인 개학이라는 사상 초유 사태에서 선생님들께서는 어떻게든 교육을 해보려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 개학이 계속 미뤄지며 그때마다 수업 준비와 평가 계획을 갈아엎으면서도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어떻게든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계신다.

시스템 불안정 속에서도 과제를 끝까지 해내는 학생들까지, 모두가 힘든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을 허공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독려하며 현재의 상황에서 안정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우리 교육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