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결연119] 소근육에 힘이 생긴 아이..."선생님이랑 공부하는 게 좋아요"
[학습결연119] 소근육에 힘이 생긴 아이..."선생님이랑 공부하는 게 좋아요"
  • 이유미 좋은교사운동 회원(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21.01.0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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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좋은교사운동 공동 캠페인 '학습결연119'를 만나고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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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나에게 2019년 한 해는 ‘좌충우돌’, ‘진퇴양난’ … 뭐 이런 말로도 설명이 안 되는 정말 희한한(?) 한 해였다.

‘나 정도 되니까 버텼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병가를 쓰거나 나가떨어졌을 거야’ 이런 마음으로 스스로 위로하며 하루하루 버텨낸 한 해라고나 할까.

여기서 ‘나 정도’라고 함은, 사십 대 중반의 나이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유독 힘든 아이들을 많이 겪었던 경험과 맷집, 체력을 말한다.

1학년 담임은 복불복이라더니, 정말 그랬다. 스무 명밖에 안 되는 아이들 중에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적게 잡아도 여덟 명, 나름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얜 뭐지?’ 이런 생각이 드는 아이만 네 명이었으니 말이다.

1학기는 학부모 상담과 개입을 위한 설득으로 보냈던 것 같다. 말을 못하고 책상 밑에 들어가 자던 아이는 8월에 복지카드가 나와서 10월에 사랑반에 입급했고, 수시로 교실을 탈출하고 드러누워 울던 아이는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치료로 눈에 띄게 좋아졌다.

눈맞춤이 안 되고 열 번을 불러도 대답 없이 자기 세계에 빠져 살던 아이조차도 더디지만 조금씩 자신의 속도로 발달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땡땡이만큼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한 해가 저물었다.


A/S 하는 심정으로 맡은 두 번째 담임


2019년 땡땡이 어머니와의 상담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았다.

알겠다고 하고 미루고 또 미루고 하염없이 미루는 와중에 셋째를 임신했다 유산하고, 일하다 다치셔서 퇴직하는 등 아이 돌봄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까지 겹쳐서 2020년 다시 만난 땡땡이는 그나마 조금 알던 것도 다 까먹은 상태였다.

땡땡이는 어떻게 보면 각종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다. 학교 복지실을 통해 여러 가지 지원을 받기에는 부모님의 경제 사정이 그렇게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한부모 가정도, 다문화도, 장애아도 아니다. 1학년 때는 더 시급한 아이에게 밀려, 2학년 때는 기초부진이 많은 학교라 그런지 3학년에 밀려, 여러 프로그램에 열심히 신청했지만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학년이 되니 한글을 몰라 속상한 땡땡이가 운다. 백성을 보는 세종대왕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일단 한글부터 떼야겠다는 생각으로 땡땡이를 학교로 불러 매일 1시간 30분씩 공부를 시작했다.

작년에는 친구들이 보는 눈을 의식해서인지 아이를 남기지 않으려던 땡땡이 부모님도 작년(2020년)에는 흔쾌히 일대일 공부를 허락하셨다.

어쩌면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원격학습 기간이 땡땡이에게는 기회였고 선물이 된 셈이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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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한글이 안 늘지?


일단 찬찬한글로 차근차근 공부해보자, 마음먹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땡땡이도 잘 따라와 주었고, 열심히 해주었다.

책발자국 K-2 수준평정 그림책도 한 권씩 가져가서 부모님께 읽어드리고 칭찬도 받고, 선생님과 게임도 재미있게 하고….

나도 땡땡이가 갸륵하고 기특한 마음에 각종 교구며, 사랑반 선생님께 빌린 카드며, 한글 자석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정성을 들였다.

그런데 등교수업 기간이 지나고 나면 다 까먹고 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1학기에 시작한 한글 공부가 10월이 되도록 받침 없는 글자에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ㅗ, ㅜ, ㅓ 는 또 왜 그렇게 헷갈려 하는지….

만날 때마다 팔을 휘두르며 모음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 내 모습에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이런다고 될까?’ 슬슬 회의가 들고 지쳐가고 있었다.

‘받침 있는 글자는 고사하고 자음 모음 결합도 안 되는데, 복잡한 모음은 또 어떻게 가르치나. 이제 곧 3학년인데 어떡하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마침 학습결연119를 알게 되었고,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신청하고는 바로 학습결연119 단톡방에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전문가의 손길은 땡땡이만 필요한 게 아니었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해주시는 간식비도 좋지만, 땡땡이의 검사를 의뢰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마자 전문가 선생님들의 다양한 조언이 쏟아졌다.

정가희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풀배터리 검사가 가능한 방법을 찾는 동시에 김중훈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진단 도구에 따라 땡땡이를 관찰한 결과를 메일로 보내고 슈퍼비전을 받았다.

전문가의 손길은 땡땡이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교사인 내게 더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학습결연119 단톡방은 망망대해에서 갈피를 몰라 방황하는 돛단배 같은 나에게 나침반이자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김중훈 선생님의 답변 중 가슴을 울리는 한 구절이 있었는데, 그건 땡땡이에게는 나와의 공부가 유일한 유의미한 학습일 거라는 말씀이셨다.

너무 무거워서 멀리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당장 찬찬한글을 내려놓고, 읽기자신감으로 다시 시작했다.

확실히 땡땡이가 덜 헷갈리고 모음을 구분하고 익히기 시작하는 게 참 신기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했지만 입모양을 보여주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페이스 쉴드를 끼고 발음을 했다.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을 믿으며.

그렇게 공부를 새로운 방법으로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침활동 시간이었다.

‘아홉 살 마음사전’ 쓰기 활동을 하는데, 이전까지는 칠판에 적은 몇 글자도 베껴 쓰기(실은 베껴 그리기) 어려워하던 땡땡이가 “OO자 어떻게 써요?”라며 자꾸만 묻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고 싶어서 하루 종일 묻는 땡땡이에게 대답해주다 보면 수업을 할 수 없을 지경이라 맨 앞에 앉혀 놓고 수시로 가르쳐 주고 있다.

한글을 익힌다는 게 이렇게 큰 일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학습결연 119, 함께 돌봄


다시 읽기자신감으로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코로나19 확진자 증가로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되면서 모든 기초학력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라는 경기도교육청 지침이 내려왔다.

학습결연119에서 지원받은 지원금을 다 쓰지도 못했는데, 땡땡이를 학교로 부를 수 없는 상황이 2월까지 계속 된다니 땡땡이와의 대면 만남은 이제 끝이다.

게다가 어렵게 부모님의 동의를 받아 신청했던 특수학급 신규 배치는 기각되었다는 공문을 받았다. 담임인 나로서는 배치/기각 여부보다 그간 진행되었던 검사의 결과가 궁금한데 - 그걸 알아야 앞으로 잘 지도할 수 있을 것인데 – 의뢰한 담임교사에게조차도 그 정보를 비공개로 하는 까닭을 모르겠다.

교육청에서조차 학습장애는 특수교육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 관행이 있는 것인지, 사랑반 입급 학생 수가 적어 특수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학교 환경도 고려하지 않으니 말이다.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좋은교사운동에서 연락이 왔다. 좋은교사운동, 기아대책, 놀담이 함께 하는 <함께 돌봄> 프로젝트, 겨울방학에 대학생 멘토를 아이에게 보내 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당장 땡땡이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 신청하였고, 내일부터 서울교대 예비교사 선생님께서 땡땡이 집을 방문해 3시간씩 4주간 프로그램을 진행해주실 예정이다.

예비교사 선생님께서 지원받은 3만원에 내가 보내 드린 5만원을 보태면 땡땡이의 교재와 교구를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 위험과 추운 날씨에도 서울에서 수원까지 대중교통으로 땡땡이 집을 방문하실 선생님의 발걸음이 너무나 귀하다. 예비교사 선생님의 건강과 땡땡이와의 시간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선생님이랑 공부하는 게 좋아요


얼마 전, 큰 아이가 아파서 입원하는 바람에 결근을 하게 되었다. 우리 반 보결을 들어오신 선생님 중에 한 분이 『선생님은 몬스터』라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나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신 모양이다.

그 시간에 낯선 선생님께 땡땡이가 써 달라고 부탁한 말이 바로 ‘선생님이랑 한글 공부하는 게 좋아요’라며 땡땡이의 그림을 보여주셨다.

몸통과 사지가 분화되지 않은 그림을 그리던 땡땡이의 소근육에도 많은 힘이 생긴 모양인지 삐뚤빼뚤 그린 그림과 글을 보며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거 좀 가르쳐 준 게 뭐라고 이리 좋아하는 거야? 얼마 가르쳐 주지도 못했는데’ 싶은 부끄러움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교육 실천 이야기랍시고 꺼내 놓는 이유는, 생각만 하고 실천을 미루고 계신 분들도 분명히 어딘가에는 계실 것 같아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시작하면서 배워 가면 아이보다 교사인 내가 더 많이 성장하고 돌려받을 거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동역자들이 참 많다는 것도 알게 되실 거라고. 그 만남이 주님 주시는 복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글에 등장하신 선생님들을 비롯한 학습결연119를 섬기고 동참하는 선생님들께 지면을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땡땡이는 아직도 한글 공부가 받침 없는 글자에 머물러 있지만,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배워서 땡땡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쓰고 마음껏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날이 언젠가는 반드시 오리라 믿으며, 학습결연119 모든 선생님들을 응원한다. 정말 정말 감사하다. 학습결연119는 계속되어야 한다. 쭈욱~!

이유미 좋은교사운동 회원(초등학교 교사)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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