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사고(自私高)를 없애야 하는가?
[사설] 자사고(自私高)를 없애야 하는가?
  • 인터넷뉴스팀
  • 승인 2021.04.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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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설] 자사고(自私高)를 없애야 하는가?

오늘의 우리 교육계에는 자사고와 관련된 문제와 관심이 매우 고조된 상태에 있다. 바로 이 “자사고”라는 이름은 문민정부의 시기인 1995년에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한 이른바 “5·31 교육개혁방안“에 포함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의 약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2000년에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위원회”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의 출범을 학교제도 개혁방안의 우선순위에 둘 것으로 보고한 바 있고 이에 따라 정부는 그다음 해인 2001년에 6개의 시범 운영학교를 출범시켰다. 2009년에 이명박 정부는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하나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를 만들었고, 2011년에는 종래의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이에 통합하여 그 이후부터 통칭 “자사고”라는 명칭의 외연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 수는 2015년에 이르러 서울지역의 25개를 비롯하여 전국 49개의 학교로 확대되었다. 초기의 자사고는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할 수 있고, 후기의 자사고는 지역단위로 학생을 모집한다.

“자사고”라는 이름의 근원 : 특정 정권의 발명품이 아니다

문민정부가 1995년에 출범시킨 교육개혁위원회가 주도한 개혁의 분위기는, 초·중등학교의 학습경험을 위한 프로그램이 경직된 획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유연성과 다양성을 허용하는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폭을 넓히고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수준에서 개별학교와 학생의 선택이 가능한 교과의 설치를 허용하고자 했고, 고등학교의 수준에서는 학교의 유형을 다양화하여 종래의 특수목적 고등학교 이외에 특성화 고등학교를 두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교 평준화 정책과 사립학교의 자율성 문제도 개혁의 관심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고교 평준화의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교육개혁을 위한 토론의 장에서 빈번히 들리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평준화 자체가 지닌 긍정적 성과와 이를 압도하기 위한 부정적 평가는 서로의 설득력으로 맞서는 수준에서 사회적 논의의 계속적인 과제로만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고교 평준화의 강행은 사학을 존재케 하는 근거인 건학이념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문제가 논의와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한 마디로 평준화의 틀 속에서 개별 사학이 건학이념을 실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립 고등학교가 왜 존재해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특히 종교단체가 세운 학교들은 각기의 종교적 교육관에 터하여 학교를 설립하였지만 그러한 건학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박탈된 상태에 놓인다.

엄격히 보면 공립학교의 경우, 즉 국가의 공공재원으로 운영하는 학교 중에 소위 일류학교가 있고 그렇지 못한 학교가 존재한다는 것은 평등교육의 정신에 맞지가 않다. 다만 국가가 특별히 필요로 하는 특정한 분야의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한 사회적 투자로서 몇몇 분야에 영재교육기관을 둘 필요는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평준화의 정책이 사학의 영역에 까지 확대되어 모든 사립 고등학교를 그 틀 속에 둔다는 것은 적어도 중등교육 수준의 사학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모순된 정책에 해당한다. 정확히 말해서, 자립형 사립학교는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사학 본연의 모습이라고 봐야 하고, 본래의 의미로 말하면 사립학교에 자립형이 있고 자립형이 아닌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사립학교는 그 성격상 자립형일 뿐이다.

중등사학의 위기와 자사고의 발상

그렇다면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광복 후에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교육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특히 국민교육의 제도적 틀을 갖추는 시기에 세계적인 최빈국의 수준에 있었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초등학교 수준의 무상 의무교육조차도 실천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더욱이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은 민간의 육영사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국가의 감독이나 지원이 허술하여 부실한 사립 교육기관들이 수없이 출현하였다. 국가의 재정적 형편이 개선되면서 설립의 주체에 관계없이 국가는 교육의 질을 전체적 수준에서 균등하게 관리하기 시작하였고, 이미 존재한 사학들에 대해서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학사에도 관여하였다. 결과적으로 사학들의 존립 자체가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자체의 건학이념을 실현하는 의지도 희석되어 버리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엄격한 의미의 사학, 독특한 건학이념의 실현을 위한 사학은 사양일로에 놓이게 되었고, 평준화 등의 정책적 통제로 인하여 급기야는 사학 자체가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형국에 놓여 버렸다.

등록금의 자율적 책정이 상당한 수준으로 가능한 사립 대학은 그런대로 자립의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립 중등학교는 국가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런 한에서는 자체의 건학이념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제도적 규칙에 의해서 배정된 학생들에게 건학이념의 실현과 관련된 동의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 구체적인 사례가 바로 종교재단에서 세운 학교가 종교교육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제약을 받아야 한다. 이런 학교도 제도적으로 설립자가 있고 학교법인이 존재하지만 일반 공립학교와 다를 바가 없다. 사실상 본연의 사학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는 이러한 형편에 놓여 있는 사학이 그 본연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갖추어주기 위한 발상이었다. 가치관의 다원성이 있으면 그만큼 교육관의 다원성이 존재한다. 성장하는 젊은이들과 국민 모두는 자신의 개성과 잠재성과 소망에 따라서 학습의 장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직접 제공하지 못한다면, 형편에 따라서 자신의 부담으로 그러한 교육의 장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교육기관의 설립자는 자력으로 그러한 혜택을 입을 수 없는 계층의 자녀들을 위하여 어떤 형태로든지 장학지원의 체제를 갖출 필요도 있다. 또한 국가도 그러한 사립학교의 프로그램, 특히 공립학교에서 충족시킬 수 없는 독특한 학습의 장이 절실히 요구되지만 자력으로 그 충족이 불가능한 계층의 자녀들을 위하여 장학지원의 제도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애초 자사고의 입안시에 모든 사립학교를 일시에 그야말로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할 여지는 없었다. 부실한 학교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선 구상한 것은 자립이 가능한 학교들 중에서 스스로 청원하면 점차적으로 자립형 사립학교의 체제로 전환시킨다는 방안이었다.

논란의 원인과 해법의 조건

적어도 논란을 부른 두 가지의 요인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는 정부와 교육청의 정책적 실패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학교의 편협한 건학정신이다. 특히 2009년에 확대한 후기의 자사고(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의 경우에 건학이념을 비롯한 설립조건이 이완되어 개별학교들의 전체적인 방향은 대학진학의 성과로써 판정하는 명문고교를 지향하는 대세를 형성해 버렸다. 영국이나 미국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와 비슷한 것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교 평준화 정책을 종식시킬 가능성을 비추게 된다. 그러나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고교 평준화 정책의 기조에 대한 찬반의 대립이 잠복된 상태에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당위적으로 천명되어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성격에 따라 학교제도의 일관된 유지를 위협하는 정책방안이 불시에 거론되고 추진되기도 한다.

정부와 교육청은 자립형 사립학교의 설립 혹은 전환의 과정에서 설립자의 건학이념, 재정기반, 교육과정에 대하여 방만한 형식적 점검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건학이념의 형식적 진술의 여부만이 아니라, 그것의 교육목적론적 당위성과 사회문화적 타당성,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프로그램과 여건을 충분히 평가하였어야 했고, 학사 운영의 계획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근거로 사회적 공인의 근거를 확인했어야 했다. 그리고 정부의 지원이 없다는 조건만 제시하였을 뿐, 학교운영을 위한 설립자 측의 재원과 능력에 대하여 충분히 엄격한 검토를 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자사고 학교 측은 자연히 자체의 유지를 위하여 명문학교의 표상을 부각시켜 고소득층을 겨냥하게 되고 “귀족학교”의 이미지를 심었다. 뿐만 아니라 학력을 중심으로 선발하면서 사교육을 부추기는 학교로 인식되고 학생들은 실제로 사교육의 도움 없이 그런 학교에 입학하기가 어려운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애초에 초기의 자립형 사립학교를 검토하던 당시에 중요하게 의식했던 종교계 학교들은 예상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재정적 자립이 어려웠기 때문에 건학이념을 고집하지 않고 정부의 지원으로 존립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초기에 출범한 자사고들은 재정적 자립의 기반을 가진 설립자들이었고, 그들은 오히려 영재교육 혹은 명문학교를 지향하는 부류의 학교로 만들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자사고의 건학이념 중에는 영재교육기관을 만들고, 명문학교를 만든다는 것도 포함될 수는 있다. 그러나 영재의 개념은 옛날 맹자가 말한 “천하의 영재”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고전적 개념의 영재란 뛰어난 문사를 말하는 것이지만, 오늘의 개념은 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군사, 예술, 스포츠, 기술, 대중문화 등 수없이 많은 영재로 분류케 한다. 물론 한 영재학교가 그 모든 부류의 영재를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재교육의 프로그램이 전통적인 문사적 개념에 한정되면 그 교육기관은 자연히 전통적 개념의 명문학교로 평가될 수 있고, 소위 일류대학에 진학률을 높이는 전략으로 운영되게 마련이다. 거기에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영재교육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속칭 일류대학의 진학률을 높이는 것을 학교운영의 목표로 삼게 된다.

영재의 개념은 보편적 영재성, 즉 각자가 지닌 수월성 혹은 영재성을 계발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일류대학 혹은 명문대학의 진학에 매달리는 편협한 명문학교의 집념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자립형 사립학교의 설립 혹은 전환에 있어서 일반 고교의 교육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자체의 자립성과 독자성을 정당화하고자 한다면, 학생의 선발에서 주지적 학과의 우수한 성적을 묻는 것보다는 학교의 건학이념에 대한 자발적 동의와 이해를 물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그 수가 많으면 주지교과의 성적순으로 선발하기보다는 순수한 지원동기와 잠재성을 확인하고 평가하여 선발하는 것이 옳고, 그래도 분별이 어려우면 행운에 맡기는 것, 즉 추첨에 의하는 것도 그 학교의 학습기회를 분배정의의 개념으로 제공하는 방법이 된다.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의 대안적 교육기관이지만, 공립학교와 구별되는 것은 건학이념의 특수성 때문이지 주지적 학업성적의 우수성 때문은 아니다. 학업성적의 우수성에 초점을 두는 명문대학의 입학은 일반 공립학교의 교육으로도 충분히 실현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건학이념의 특수성, 즉 일반 공립학교에서 충족시킬 수 없는 교육이념적 특수성은 사립학교를 요청하는 근거가 된다. 종교계 학교가 그 대표적인 것이지만, 건학이념의 유형은 그 이외에도 얼마든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의 삶은 수없이 많은 선택의 삶이다. 그래서 인간적인 삶이다. 학교의 제도가 다양한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위하여 다원적 가치의 개별적 선택의 폭을 넓혀주면, 우리는 그만큼 경직된 삶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고, 국가의 인재도 골고루 양성된다.

교육제도의 운영에서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다. 완벽한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운영의 과정에서 부작용이나 역기능이 나타난다고 해서 제도 자체를 폐기한다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니다. 그 제도의 사회적-교육적 배경과 발생적 취지를 재검토하여 정책의 방향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정권마다 특정한 이념에 따라서 “개혁” 혹은 “혁신”의 이름으로 제도의 운영방식을 일시에 대폭 전환하면, 실제로 교육의 장에 혼란이 계속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적 경쟁력도 부실하게 되고, 성장세대의 삶의 질도 정치적 경직성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요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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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 2021-04-07 21:37:15
정권의 이념에 따라 교육적 제도의 운영방식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교육적 배경과 앞으로의 잠재성을 염두에 두고 보다 장기적으로 긴 안목으로 교육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자사고 존립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