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민족사관고등학교" 이런 학교를 버려도 좋은가?(3)
[연재칼럼] "민족사관고등학교" 이런 학교를 버려도 좋은가?(3)
  •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6.26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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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희 전 민사고 교장의 현장생활 보고서

"정부는 2019년 11월에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특목고)를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는 2025년 3월에 일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방침에 의하면,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는 초기의 자립형사립학교로 지정된 학교의 하나이지만, 자사고에 속하는 학교의 ‘일괄 일반고 전환’의 대상으로서 설립 29년이 되는 해에 본래의 건학이념을 포기하든가,아니면 학교를 폐쇄하든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존폐의 위기'에서 다시 출발한 민사고

새출발의 기동

“모든 것 학교장이 맡아서 하세요”

내가 민족사관고등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했던 때는 2003년 7월이었다. 그해는 30년 동안의 교수 생활을 마감하고 정년을 맞이하여 퇴임한 해였다. 어느날 민족사관고등학교의 설립자인 최명재 선생으로부터 학교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들었을 때, 나는 별로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를 수락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고등학교 교장을 맡은 것을 두고 요란스럽게 화제로 삼는 것 같았다. 그동안 걸어온 길에서 맡았던 일자리에 비하면 조화가 잘 안 맞는다는 소리인 것 같았다. 물론 내게도 다소 새로운 부담으로 느껴지기는 했지만, 세상이 예측하지 못한 이변이라고 인식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교육의 세계에 몸담고 살아 온 사람이고 그 속에서 한 역할을 새롭게 맡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과학자의 비유를 들어 대답하였다. 과학자의 실험실이 있듯이 학교의 현장은 교육학도의 일원인 나에게 실험실과 같다고 하였다.

그동안 나는 교육학을 거의 이론만 가지고 대학의 교단에 섰을 뿐인데 이제는 내 공부를 위해 현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교육학은 사변적 문제와 끝없이 씨름하는 철학이나 수학과 같은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실천 현장의 분석과 설명과 이해를 중심으로 개발된 이론의 학문이다.

그러나 내가 이런 기회를 구체적으로 기다리고 염원해 온 것은 아니다. 하기는 내가 이 학교와 이미 몇년 전부터 인연을 맺고 있었다. 내가 한국교육개발원의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인 1996년의 1월로 기억하는데, 파스퇴르 유업의 최명재 사장이 영재학교 학생선발과 교육과정 운영에 관한 연구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런 인연으로 최 사장과 나는 가끔 만나 학교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고, 이따금씩 학교를 방문하면서 학교의 상황을 듣기도 하며 관심을 가지고 학교를 지켜보아 왔다.

그동안 나는 교육개발원 원장의 임기도 끝났고 대학으로 복귀하였다. 얼마후에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위원회의 위원장과 교육부장관을 맡는 등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사고에 관해서는 간접적으로 소식만 듣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던 중, 1998년 외환위기 때 학교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던 파스퇴르유업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학교도 어려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문에 의하면 회사가 학교에 너무 많은 자금을 투입하여 어렵게 되었다는 말도 돌았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심지어는 교장으로 취임한 당시에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학교를 맡았던 셈이다.

내가 부임하였을 때, 학교의 사정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에 있음을 느꼈다. 설립자는 한때 학교의 경영권을 양도할 생각까지 하면서 학교를 기부할 테니 누군가가 맡아 주기를 호소하기도 하였다. 그런 상태에 놓인 학교는 이미 자리 잡은 학교가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학교와 같았다.

당시에 내가 처음으로 교무실에 들렸을 때, 교무부서에서 보직을 맡았던 한 여교사가 하던 말이 아직 기억난다. “교장 선생님, 학교에 제대로 정해진 학년별 수업시간표가 아직 없어요. 시간표부터 짜야 하겠어요”라고 하였다. 나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그러면 어떻게 수업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침마다 조회 시간에 그날의 일과를 발표한다고 하였다.

내가 부임하기 직전의 학교장은 바로 최명재 설립자였고, 사무의 인수인계도 설립자와 새교장 사이에 주고 받았다. 다시 만난 첫 자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 아무런 조건도 요구도 말하지 않았다. 이런 학교로 만들어 달라든가, 어떤 시설이 보완되어야 한다든가 등. 서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다만, 설립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학교와 교육에 관해서는 교장께서 나보다 생각이 앞선 분이시니 마음대로 소신껏 하세요”라는 말 밖에는 없었다. 독특한 교복으로 입고 있는 복장을 포함한 모든 차림과 학교생활의 모든 것, 있는 것 없애고 없는 것 새롭게 있게 하는 모든 것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 이외에 다른 부탁이나 기대도 말하지 않았다.

설립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교장이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교장도 설립자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안다고 생각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자리였다. 사실은 내가 이 학교에 교장으로 간다니까 주변에서 여러 사람이 염려의 소리를 들려 주기도 했다. 하나는 파스퇴르유업의 경영난을 들고 과거처럼 학교에 재정적 지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명재 설립자의 고집이 대단한 데 그분과 뜻을 맞추어 학교를 경영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첫 번째 우려는 했어도, 두 번째 우려인 소통상황은 나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설립자와는 학교 설립 당시부터 학교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나누어 온 사이이고, 비록 생각이 다르더라도 충분히 서로 설득하고 이해할 열린 사이였다.

 

“자사고”로 편 자리에  "민사고"는 뛰었다

입학식 축하공연

나는 이 학교가 민족적 영재의 교육을 중심적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과 당시의 새로운 관심사였던 자립형 사립고 시범학교 중의 하나라는 데 매력과 의욕을 느꼈다. 당시의 새로운 학교형태인 자립형 사립학교는 교육과정의 자율적 운영권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영재교육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의 실험적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 성과도 비교적 가시적인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물론 당시로서는 아직 그야말로 시작하는 단계 그 자체에 있었고, 학교의 재정과 시설 등의 내부적 한계상황이 존재했다. 물론 교육의 제도와 정책에 연계된 외부적 한계도 있기 때문에, 효율적 학교운영을 위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는 여의치 못한 부분이 수없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자립형 사립학교에 부여된 자율성만큼 교육운영의 성과를 위하여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하였다.

영재교육과 자사고의 기능적 만남

“자사고”라는 이름은 문민정부의 시기인 1995년에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한 이른바 “5·31 교육개혁방안“에 포함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의 약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2000년에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위원회”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의 출범을 학교제도 개혁방안의 우선순위에 둘 것으로 보고한 바 있고, 이에 따라 정부는 그 다음해인 2001년에 6개의 시범 운영학교를 출범시켰다. 여기까지는 내가 직접 교육개혁위원, 교육개발원장, 새교육공동체 위원장, 교육부 장관 등의 조직과 직책으로 인하여 관여했던 부분이다.

이명박 정부의 시기인 2009년에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하나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를 만들었고, 2011년에는 종래의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이에 통합하여 그 이후부터 통칭 “자사고”라는 명칭의 외연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 수는 2015년에 이르러 서울지역의 25개를 비롯하여 전국 49개의 학교로 확대되었다. 초기의 자사고는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할 수 있고, 후기의 자사고는 지역단위로 학생을 모집한다.

자립형 사립학교(약칭 자사고)는 흔히 국립 혹은 공립학교와는 물론 일반사립학교와도 다른 “별종의 학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성격상 새로운 유형의 학교, 별종 혹은 특종의 학교는 아니다. 우리의 교육제도상 존재하는 “사립학교”의 전형에 해당하는 것일 뿐이다. 법적으로 허용되고 공인되는 사립학교란 본래 그 원형에 있어서 자립형 사립학교이다.

내가 자립형 사립학교를 사학의 원형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원래 사립학교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자립형 사립학교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립학교에는 ‘자립형’이 있고 ‘자립형이 아닌 것’이 있는 그런 성격의 학교가 아니다. 사립학교라면 마땅히 자립형이어야 한다. 그 본래의 의미로는 자립형이 아닌 사립학교는 엄격한 의미에서 사립학교가 아니다. 자립을 허용하지 않으려면 국가의 교육제도 속에 사립학교라는 것 자체를 둘 이유가 없고, 자립형이 아니라면 개인이 사립학교를 세워 육영사업을 해야 할 이유도 없고 할 수도 없다.

우리의 전통사회에도 ‘서원’이나 ‘서당’과 같이 사학제도가 있었지만, 서구적 학교제도가 도입된 이후의 초기 사학은 주로 중등학교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구한국 말기에 서양의 선교사들이 세운 선교학교들과 주권을 잃은 시기의 전후에 민족주의자들이 세운 민족학교들이 그 중심을 이루었다.

그리고 해방 후에 중등사학과 고등사학이 여러 지역에서 생겨나고, 지금까지 사학은 특히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수준에서 수적으로 관학을 압도하는 위치에 있어 왔다. 해방 후에 국가의 재정 형편이 어려웠던 시기에 공립학교로써는 국민의 교육수요를 전적으로 충족시키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러므로, 육영사업에 뜻을 둔 사람들이 세운 사학에 국민교육의 많은 부분을 맡기지 않을 수가 없었고, 사립학교가 수없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실한 운영을 하는 사립학교들도 적지 않게 생기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일부의 사학에서는 구성원 간의 분규와 운영상의 부조리 등이 빈번히 발생하여 공신력을 잃게 된 경우도 많았다. 2006년에는 사학의 부조리를 제도적으로 감시하고 투명한 운영을 기하기 위하여 사립학교법을 개정함으로써, 사립학교의 자율성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는 현상을 빚기도 하였다. 급기야 2007년에는 사학법을 재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념적 수준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사립학교가 본격적인 수난기에 들어 간 것은 중등학교의 평준화 정책이 시행될 때였다. 1970년대의 초기는 군부가 주도하는 권위주의 정권이 지배하던 시기인지라, 평준화가 사학의 이념과 특성을 원천적으로 파괴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건학이념을 투철하게 표방하지 못한 사학들은 방어적 정당성이 취약했고, 실리적으로는 평준화로 인한 정부의 안정적 지원에 의존하는 타성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사학은 통제와 지원을 동시에 수용한 셈이다.

정부는 1969년에 이미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1960년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중학교 수준에서 학교의 위세에 있어서 등급의 차이가 있었다. 이로 인하여 소위 일류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과외수업과 사교육비의 지출이 10세 전후의 어린 학생들과 학부모의 부담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중학교의 무시험 진학제도에 이어 정부는 1974년에 대도시를 시작으로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을 단행하였다.

학교간의 교육격차에서 연유한 폐해, 특히 학생들이 경험하는 ‘입시지옥’과 사교육비의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후 교원의 급료와 학교운영경비 등 재정적으로는 모든 사학이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러지만, 평준화 정책은 운영의 건실 여부에 관계 없이 무차별적으로 모든 학교들에 적용하면서 사학의 원천적 이념과 특성은 사실상으로 위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평준화에 대한 찬반의 논의는 계속되었으나, 사학의 문제는 그 자체로서 별로 크게 거론되지 않았다. 단지 평준화의 경직성을 문제 삼는 근거로서 간헐적으로 언급될 정도에 불과하였다. 사학은 그 존재의 이유가 사라졌다고 할 정도로 본연의 형상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버렸다. 이런 상태에서 사학의 점진적 회생과 경직된 평준화의 수정을 위한 요구가 함께 작용한 결과로 “자립형 사립학교”의 개념이 출현하였다.

‘자립형 사립학교’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김영삼 정권의 문민정부 때 당시의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에서였다. 우리의 헌법이나 교육법에 의해서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사립학교로 하여금 그 본연의 형상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있었다. 이 안에 대하여 저항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만큼 귀족학교를 만든다거나 특종의 학교제도를 개발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학을 복원한다고 해서 재정적으로 자립하기 어렵고, 경영상으로 건실치 못한 모든 사립학교들을 평준화의 틀에서 제외하여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이 정책 프로그램은 자립과 자율이 가능한 학교들로부터 점차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이런 사립학교에 ‘자립형’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이 안이 “5.31 교육개혁방안” 속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초기에는 대학선발제도, 학교운영위원회, 교육정보화체제, 7차 교육과정 등의 큼직한 개혁안에 가려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는 못하였다. 교육부도 시행을 위한 준비를 미루고 있었고, 언론과 사회일반도 크게 눈에 띄게 거론하지 않았다. 단지 고교 평준화의 보완책으로 의미를 지닌 정도에 불과하였다.

김대중 정권의 ‘국민의 정부’에서 ‘새교육공동체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발족한 대통령 자문기구에서도 자립형 사립학교의 안은 한동안 묻혀 있었다. 당시(2000년)에 김덕중 위원장이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내가 그 후임을 맡게 되었다. 제1기 위원회의 임기가 끝나기 직전에 대통령에게 위원회의 활동을 결산하는 종합보고가 있었다. 보고는 교육개혁사업의 추진전략을 세운 것을 중심으로 그 내용이 구성되었고, 그 일환으로 자립형 사립학교의 안이 다시 주요 정책의 하나로 포함되었다.

그 해 8월에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나는 기자회견에서의 질문에 따라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의 추진 의지를 밝히게 되자 교육계의 새로운 관심사가 되기 시작하였다. 나는 시범 추진을 위한 정책연구를 위탁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고, 한완상 장관 때 그 시안이 완성되어 2001년 8월에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시범운영방안”이 발표되었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비롯하여 몇몇 시범학교의 출범이 있었다.

시범단계에 있는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의 운영 방안에서는 학교장의 자격을 완화하고,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에 자율권을 부여하며, 교과용 도서의 자율적 사용권을 보장하고 있다. 반면에 학교법인은 학생 납입금에 대비하여 일정비율(8:2) 이상의 전입금을 의무적으로 확보해야 하고, 학생 납입금은 당해 지역의 일반계 고등학교의 3배 이내로 책정해야 하며, 15% 이상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의무적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민사고의 과감한 변화

국제경시 수상자들

다시 말해서, 자립형 사립학교란 독자적인 건학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세워진 학교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재정적으로 자립하는 학교이며,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학생과 교사의 선발과 교육비 책정 등에 있어서도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학교이다. 이런 학교야 말로 ‘자립형’이란 수식어를 붙이기 전에 사립학교의 기본적 모습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미국의 사립학교들은 사실상 모두가 자립형이고 영국의 전통적 사립학교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 미국과 영국의 이런 학교들은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 대신 교육과정, 교사의 자격, 납입금의 징수 등에 있어 완전히 자율성을 지닌다. 물론 최근에 영국의 새로운 사립학교들 중에는 정부의 재정 교부를 부분적으로 받는 학교들이 있고, 이런 학교들은 교육운영에 있어서 국가 교육과정을 부분적으로 준수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학교가 사립학교의 전통도 대세도 아니다.

민족사관고등학교는 최명재 설립자가 영재를 선발하여 지도자로 육성한다는 데 일차적 목표를 두고 세운 학교이다. 이 학교는 이미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고 있었고, 국제 프로그램도 인가받은 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자립형 사립학교의 시범학교로 지정받음으로써 학생들이 해외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게 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일반학교보다는 훨씬 많은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초기의 학급당 학생수는 15명이고 교사와 학생의 비율은 4:1 정도였다. 후에 학생수가 증가하면서 7:1의 수준에 이르게 되었지만, 교사진의 경우 우리나라의 일반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명문 사립학교에 못지않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내가 그 학교에 있을 당시인 2007년까지 졸업생은 전부 560여명에 불과하지만, 330여명이 국내의 명문대학에, 220여명이 미국의 아이비 리그를 비롯한 해외 명문대학에 진학하였다. 이러한 진학통계 자체를 귀족학교의 모습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도 일종의 부작용처럼 따르는 문제점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취약점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추진해 왔다. (다음 기회에 논의함)

1998년 이래 내가 그 학교에서 퇴임한 2007년까지 각종 국제올림피아드에서 24개의 상(금 8, 은 9, 동 5, 장려 2)을 수상한 바 있다. 그리고 미국의 AP(Advanced Placement) 시험을 주관하는 대학협회(College Board)에서는 몇 개의 과목에서 세계 최우수 학교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2006년에 세계의 300-800명 규모의 고등학교 중에서 4개 교과(미시경제, 거시경제, 물리학, 미적분 수학)에서 최우수 학교로 평가하였으며, 2007년에는 미국 이외의 고등학교 중에서 7개 교과(통계학, 역학물리학, 화학 추가)에서 최우수 학교로 평가하였다.

민사고는 자립형 사립학교의 특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미국 대학이 교양과정 수준에서 인정하는 AP 교과를 비롯하여 광범한 선택과목을 개설할 수 있었다. 2006학년도부터 시행한 무학년 교육과정은 초기부터 실시해 온 조기졸업제도, 여름과 겨울의 방학을 이용한 계절학기의 운영, 일과 중의 일부를 할애하여 지정한 학습시간을 자율적으로 활용하게 하는 개별연구(IR: Individual Research) 등과 더불어 추진된 과감한 실험적 시도이다.

그리고 기숙사 학교의 이점을 살려 우리 민족의 전통적 정신과 문화를 몸과 마음으로 익힐 수 있도록 학교생활을 지도하고 있다. 전통 한복을 교복으로 정하여 평상적으로 입게 하고, 혼정신성(昏定晨省)을 지키게 하여 부모에 대한 공경심을 항상 지니게 하며, 태권도, 검도, 기체조 등으로 아침마다 체력 단련을 하고, 단소, 대금, 가야금 등의 전통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하며, 학교가 공식적인 사표(師表)로 받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다산 정약용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공부할 수 있도록 “임란(壬亂) 연구”와 “다산(茶山) 연구”를 교과목으로 설정하였다.

다양한 클럽활동을 즐길 수 있게 개방한 결과 거의 100여개가 넘는 클럽이 학생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국제적 의사소통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내의 영어상용, 지도자적 정직성을 실천하기 위한 무감독 고사, 학습향상을 위해 학생 간에 도움을 베푸는 “또래지도”(peer tutoring), 그리고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이 분립된 공화정 체제의 학생자치회, 학교 안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우리말 혹은 영어의 토론회, 학생들 스스로가 기획하여 발간하는 국문과 영문의 신문을 비롯한 간행물 등은 자립형 사립학교이며 기숙사 학교라는 제도적 조건으로 인하여 가능하게 된 독특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변화가 일부는 학교 설립 당시부터 시작된 것도 있고, 자사고 이후에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도 있다. 중요한 사실의 하나는, 이러한 변화가 학교장의 결심과 지시로 시작하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학교의 학습 분위기와 생활의 풍토 속에서 자연적으로 진행된 것이라는 점이다. 학생들 스스로 형성한 분위기와 교사들의 개방적인 관심과 지도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이것으로 완성된 학교는 아니다. 어느 프로그램에서나 부작용은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거나 최소화하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했고, 그것은 주로 학교장의 관찰과 조정의 책무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또 한가지.. 내가 그 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동안의 중요한 변화들은 주로 국제반 학생들의 활동에서 나타난 것이 사실이다. 다음에 논의하는 기회가 있겠지만, 그것은 국내 대학이 보이고 있는 경직된 선발체제로 인하여 고등학교 교육에서 운신의 폭이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 차회 (4)에서 계속)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  dhl9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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