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민족사관고등학교" 이런 학교를 버려도 좋은가?(9) : 민사고식 영어교육
[연재칼럼]"민족사관고등학교" 이런 학교를 버려도 좋은가?(9) : 민사고식 영어교육
  •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8.07 2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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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고에서는 영어로만 생활한다?"
-"국어와 국사"를 제외하고는 영어로 수업한다?"
-영어상용에 대한 기대와 우려와 고민
-다시, "영어를 왜 가르쳐야 하는가?"의 질문
-토론에 의한 영어학습
-일상생활을 통한 영어학습

 

'이돈희' 전,민사고 교장의 학교생활 보고서

 

민사고식 영어교육,
“민사고에서는 영어로만 생활한다?”

민족사관고등학교의 영어가 세상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이 학교의 설립 초기부터였다. 학교장 부임 훨씬 전인 1998년경 나는 어느 날 최명재 설립자로부터 “민사고는 국어와 국사를 제외하고는 영어로 수업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학생, 교사할 것 없이 영어를 상용토록 하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그 당시부터 이런 영어상용의 생활방침에 문제가 없겠는가를 생각하였다.

 

“국어와 국사를 제외하고는 영어로 수업한다?"

토론수업의 한 장면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언급되는 것은 외국인을 대할 때 영어로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과거에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6년 동안 영어를 배웠다. 그것도 다른 어느 교과목보다 많은 시간을 할당해서 배웠고, 영어는 국어와 수학과 더불어 학교에서 배우는 많은 교과들 중에 중심교과로서 그 무게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중학교나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을 졸업해도 외국인을 만나면 영어로 간단한 대화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영어를 공부한다고 보낸 시간들의 경제성 문제가 있게 된다.

영국이나 미국 등, 영어를 상용하는 국가에서 몇 년 동안 머물면서 박사학위를 하고 돌아온 학자들도 영어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발표하는 상황에서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자유스러워하는 경우도 흔히 있는 일이다. 우리말과 영어의 언어구조적 특성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는 영어를 사용에서, 그것도 현지의 생활경험 없이, 유창한 구사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어려움은 우리만이 겪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언어구조적 유사성을 지닌 일본인들도 거의 비슷하게 경험하는 일이다.

신기하게도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우리와는 문화적 교류도 별로 활발하지 못한 터키의 유학생들이 한국어를 상당히 편하게 학습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영어를 배우기 어려워하는 이면에는 분명히 언어구조상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이런 장벽을 제거하거나 낮게 하려면 가능한 한 어릴 때부터 영어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체질화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곳곳에 어린이들이 영어를 체질화할 수 있도록 ‘영어마을’이 생겨났고, 조기 유학 혹은 어린이 영어학습 프로그램 등이 폭발적으로 성행하고 있다.

민족사관고등학교도 일찍부터 이러한 영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하여 일반학교에서 하지 못하는 몇 가지의 노력을 과감하게 실천해 왔다. 수업에서나 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영어 구사력을 높여 해외대학에서 뿐만 아니라 장차의 국제적 활동 무대에서 의사소통의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학생의 선발단계에서부터 상당한 수준의 영어 능력을 요구했고 입학 후에도 심도 강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으며, 그 성과로 인하여 민사고는 “영어를 잘하는 학교“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이러한 평가 때문인지는 몰라도, 학교가 파스퇴르유업과 결별한 후에 재정 사정이 어렵다는 소문이 퍼지자, 학교를 돕는다는 뜻으로 영어 관련 학원이나 교재 개발을 하는 업체들이 찾아와서 민사고의 브랜드를 활용한 사업을 하자는 제의를 여러 번 해 왔다. 민사고의 이름을 함께 쓰면, 영어에 관한 한, 공신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발상인 것 같다. 그러나 학교는 이런 단체들과 협력함으로써 우리나라 학생들의 영어교육에 도움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자칫 상업주의적인 목적에 이용될 수 있는 위험 때문에 이런 제의들을 물리쳐 왔다.

민사고의 영어가 세상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이 학교의 설립 초기부터였다. 학교장 부임 훨씬 전인 1998년경 나는 어느 날 설립자 최명재 사장으로부터 “민사고는 국어와 국사를 제외하고는 영어로 수업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학생, 교사할 것 없이 영어를 상용토록 하고 있다고 하였다. 특별한 발상을 한 것으로 들렸다. 나는 혹시 학교의 초창기에 가시적 성과나 홍보적 효과를 노려 서두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교사나 학생들은 설립자의 방침에 눌려 그저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지 필경 적지 않게 무리가 있지 않을까 내심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어느 날 민사고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강당에 모여 학생들이 토론을 하고 있는 장면도 보았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였다. 학생들의 영어는 생각보다 그 수준이 높았다. 그리고 교사가 영어에 능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외국인 교사들로 하여금 동료 내국인 교사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하여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하였다. 내국인 교사들 간에는 영어의 구사능력에 있어서 개인차가 있으므로 수준에 따라서 몇 등급으로 나누어 연수를 하였다. 그리고 신규 교사를 채용할 때 영어로 수업할 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한 평가기준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즉 이 학교는 영어로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대하여 설립자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2003년 9월에 내가 이 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하였을 때, ‘영어상용방침’(EOP: English Only Policy)이라는 것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 방침에 따라 학생들은 수업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규칙이 지켜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어디서나 영어로 말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벌점을 받고 벌점이 누적되면 학생법정의 판정에 따라서 매를 맞기도 한다.

교사들의 회의도 영어로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일면 어색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모두들 영어로 말하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조회 때 교사나 학생이 전체 앞에서 연설할 때도 모두 영어로 했다. 교장인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학식, 졸업식, 그 밖의 학교행사도 영어로 진행했다.

이러한 영어상용은 우리의 정신적-문화적 전통을 마음으로 새기고 몸으로 익힌다는 정신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나, 세계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이 학교의 이념을 구현하는 데는 불가피하게 필요한 부분인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러한 영어상용방침의 강행에 따른 교육적 역기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안팎으로부터 많은 걱정과 비판의 소리가 들린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부정적 시각과 함께 학생들 스스로도 영어에 대한 가치와 태도를 잘못 가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학교는 ‘영어상용의 목적’을 따로 명문화하여 교훈과 함께 기회 있을 때마다 제창하게 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영어는 앞서간 선진 문명, 문화를 한국화하여 받아들여 한국을 최선진국으로 올리기 위한 수단이며 그 자체는 결코 학문의 목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영어상용에 대한 성과와 우려

그러나 나는 영어상용이라는 것에 대하여 애초부터 사실상 확신이 없었다. 부임 초기에 몇 가지의 매우 중요한 문제가 학교장인 나를 괴롭혔다.

첫째, 영어의 언어적 환경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영어를 상용한다고 하지만, 그 영어의 수준이라는 것이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야말로 어린 아이들의 영어에 불과한 수준일 뿐이리라. 어린 아이들끼리만 말을 배우면 그 수준 이상의 말을 하기는 어렵다. 그런 현상이 있지 않겠는가?

사용하는 어휘, 문법적 구조, 표현의 습관, 유창성의 정도 등에 있어서 필시 성숙한 성인의 영어가 아닌 ‘아기 언어(baby talk)’로 굳혀질 뿐만 아니라, 그런 영어마저도, 마치 싱가폴 사람들이 자신들의 영어를 우스개 삼아 ‘싱글리쉬’라고 하듯이, 원어민의 언어적 습관과는 매우 다른 별도의 ‘방언’을 형성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닌게 아니라 민사고에도 “밍글리쉬”라는 말이 있었다.

둘째, 국어능력의 퇴행현상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이 학교에서 우리말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원칙적으로 국어와 국사의 수업이나 외래 강사의 강의, 그리고 매주 일요일 하루에만 허용돼 있었다. 그 이외의 시간에는 언제 어디서나 영어를 사용해야 했다.

모국어를 잠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능력이 심하게 퇴행할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고등학생이라는 성장기의 특수성에서 생기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 연령의 시기에는 모국어의 구사력이 매우 고급화되는 시기이다. 사용하는 어휘나, 사고의 논리나, 감정의 표현 등에 있어서 사실상 성인의 수준으로 발달한다. 젊은이들이 성장과 함께 보여주는 성숙성은 신체적 변화에 못지않게 언어적 세련성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런 중요한 시기의 학생들에게 모국어 사용을 제한한다면 청년기의 언어적 성숙과정에 장애요인을 제공하는 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셋째,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개방적 대화의 단절이 염려스러웠다. 모국어가 아닌 서투른 영어를 사용하여 학생을 지도할 때, 대화의 양식과 분위기는 총체적 인격으로 접촉하지 못하고 단순 표현에 의한 의사의 전달과 교류만이 있을 뿐일 것이다. 교사의 칭찬이나, 충고나, 야단이나, 격려가 우리말을 사용했을 경우처럼 학생의 가슴에 제대로 와서 닿기 어려울 것이다.

교사와 학생은 이지적 관계로서만 만날 뿐이고, 감성적, 인격적 만남의 장을 형성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런 관계 속에서는 우리의 전통사회가 “사제간(師弟間)의 정(情)”이라고 해 왔던 인간관계의 독특한 가치를 공유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영어가 무엇이기에 우리가 전통적으로 소중히 여겨온 사제 간의 정을 희생해 가면서 억지로 학습해야 하는가? 민족의 정신적, 문화적 전통을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을 교육의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면, 학교는 모순의 길을 가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넷째, 그밖에도 영어상용의 집착으로 인해 발생하는 분위기, 특히 교사들의 공식적 회의에서 볼 수 있는 “침묵의 분위기”도 문제였다. 불편하고 힘드니까 매우 심각하게 논의해야 하는 문제를 두고도 회의 중에 발언하기를 주저하여 생기는 침묵이 실제로 지배하였다. 조직운영의 비효율성을 낳고 있었다. 서투른 영어는 하기도 힘들지만 듣기도 힘들다. 대화의 수준은 유치해지고 주고받는 정보나 메시지도 빈곤해진다. 언어적 한계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제도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미봉하기도 하였다.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위와 같은 회의(懷疑)의 실상을 바탕으로 하여 영어상용으로 인한 문제를 세밀하게 검토했다. 부분적으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덜 심각한 것도 있었지만 역시 문제가 분명히 있었다. 우선, 영어상용에 있어서 언어적 환경과 분위기의 문제는 학생들의 경우 교사들보다 덜 심각한 편이었다. 학생들에게는 수시로 대할 수 있는 원어민 교사가 몇 명이나 있었고, 해외에서 성장하거나 교육을 받아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내국인 교사들도 있었으며, 이미 해외에서 상당한 기간 살다가 온 학생들의 수가 국제반의 경우에 적지 않은 수에 이를 정도였다. 이런 학생들이 영어의 언어적 환경을 주도적으로 조성하여 환경적 빈곤은 상당히 해결되고 있었다. 염려했던 것보다는 상당히 좋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영어상용으로 인하여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적지 않으니 만큼, 경직된 방침을 약간 조정하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비효율성을 해소하고 손실을 보완하는 대안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우선, 교사회의는 우리말로 진행하게 했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 교사들에게는 영어교사들로 하여금 외국인 교사의 곁에서 회의 진행내용을 전달토록 했다. 학생들에게는 영어상용의 규칙을 종전대로 지키게 하되 교사가 학생을 개별 지도할 때, 그리고 조회시의 연설에서는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일요일에만 허용되던 우리말 사용을 토요일에도 허용하였다.

그리고 2007 학년도 신입생 선발부터는 표준화된 “국어능력시험”의 성적을 전형자료의 하나로써 제출하게 했다. 그러나 영어에 대한 긴장된 태도를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국인 교사들도 수업에서는 영어로 가르치도록 일관되게 권고하였다. 적어도 영어로 된 교재를 쓰도록 하고, 과제물, 시험, 토론 등은 영어로 하게 하였다.

이런 정도로 조정한다고 해서 본래 영어상용의 방침에서 겨냥한 영어 구사력의 향상을 기하기도 어렵고, 기대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영어의 수준 그 자체가 사실상 별로 큰 의미는 없다. 여기 쯤에서 학교장인 나는 영어를 왜 배우게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영어상용의 일상화

다시, “영어를 왜 가르쳐야 하는가?”의 질문

우리가 (민사고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마음껏 재잘거리는 영어, 편하게 노닥거리는 영어, 일상생활에서 외국인을 대할 때 의사소통이 충분히 가능한 수준의 영어를 하게 한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유창한 회화, 그것이 영어 공부의 최종적 목표가 아니다. 시장 바닥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마음껏 우리말을 하는 보통 사람들의 언어적 구사력을 일컬어 우리말을 잘하는 수준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영어를 배워서 나라의 안팎에서 외국인을 대할 때 자유자재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이상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준의 영어를 필요로 하는 계층은 사실상 별로 많지 않고 우리의 일상에서 그렇게 절실하지도 않다. 실제적 필요보다는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영어가 일상인들에게 강요되다시피 된 풍토는 충분히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실용적 목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라면 학교가 지금처럼 많은 시간과 높은 수준을 필요로 할 것 같지 않다. 중학교 3학년 교과서의 영어면 충분하다.

영어교육의 절실한 필요는 여기에 있다. 오히려 장차 수준 높은 학술적 연구에서나 국제적 관계의 상황, 혹은 세계무대에서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획득하거나 교환하고,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전개되는 국제적 소통의 장에서 요구되는 영어의 수준이다. 의사를 발표하고, 정보를 분석하고, 문제를 토론하고, 거래를 협약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등의 일들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초국가적 언어 소통의 도구로서 영어를 익히게 한다는 데 훨씬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이것이 적어도 민사고 영어교육의 목표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표를 위한 효율적인 학습 전략은 어떤 것일까? 일상적 대화에서의 영어상용이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이를 보충하기 위하여 나는 오히려 “토론학습”을 활성화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였다.

내가 민사고에 부임하여 처음으로 맞은 겨울 방학 때 학교는 중학생과 초등학생을 위한 영어캠프(GLPS : Global Leadership Program for Students)를 계획하였다. 어린 학생들을 위한 영어캠프는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지만 민사고는 좀 독특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영어로 하는 드라마와 토론을 프로그램에 포함하자고 제의했다. 준비를 맡은 교사들은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지만, 연구를 거듭하여 드라마와 토론을 캠프 중의 활동 내용으로 포함하였다. 대체적으로 영어 수준이 낮은 집단은 드라마를 하게 하고 높은 집단은 토론을 하도록 하였다.

캠프의 정규 일정이 끝나는 날이면, 학부모들이 관람하는 가운데 그 동안 학습한 성과들을 발표한다. 드라마와 토론도 발표되었다. 드라마를 통하여 영어를 배우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짧은 소극들을 발표하는 학생들은 재미를 만끽하였고 관람하는 부모들도 대견스러움에 흡족해 했다. 토론은 토너먼트 형식으로 경연하여 최후의 우승팀을 가리는 소규모의 대회로 운영되었다. 그 동안 학습된 토론의 수준은 놀라운 수준을 과시하였다. 물론 토론에 참여한 학생들은 영어 구사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학생들이지만 토론의 경험을 통하여 학생들은 많은 것을 배웠고, 학부모들도 놀랍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토론에 의한 영어학습

나는 학교에 부임하면서부터 토론을 수업과 학습의 방법으로 도입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몇몇 교사들로 하여금 관심을 가지고 연구토록 권장하고 영어 캠프에서 실제로 적용해 본 것이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고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이어서 운영이나 지도에 다소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교사들은 중요한 경험을 하였고 토론학습의 필요와 가치에 대한 인식을 확실히 하게 되었다.

민사고는 우리나라의 중학생들에게 토론학습을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들기 위하여 “전국 중학생 토론대회”를 계획하여 2004년 6월에 제1회를 개최한 이래 해마다 시행하여 내가 그 학교를 떠난 2007년까지 4회에 걸쳐 개최하였다. 제1회에서는 우리말 부문과 영어 부문을 동시에 개최하였으나, 제2회부터는 두 부문을 별개로 개최하였다. 대회 때마다 우리말 토론과 영어 토론, 양 부문을 합하여 400여명의 학생들이 예선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2004년부터 여름과 겨울의 방학 때 마다 초등과 중등학교의 교사들, 학부모, 직장인들이 참여하는 우리말 토론 연수를 계획하여 운영하기도 하였다.

토론학습은 일반 수업에서도 매우 생산적인 방법이지만 영어 학습을 위해서는 수준 여하에 관계없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영어의 구사력이 초보적인 단계에 있는 학생들이 영어로 토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어로 토론한다는 것을 영어로 말싸움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더욱 그렇다. 영어를 자유스럽게 사용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토론을 하라고 하면 침묵이 진행되거나, 아니면 되지도 않은 “broken English”로 교실만 시끄럽게 만들 수가 있다. 이런 수업은 영어의 학습에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토론 수업은 반드시 잘 준비된 수업이라야 한다. 물론 영어로 준비된 수업을 말한다. 토론할 주제가 미리 주어져 있고, 그 주제에 대한 관련 정보나 지식을 조사하여 의견을 발표할 사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토론자가 각기 구사할 수 있는 영어의 수준으로 준비하되 교사의 지도를 받아 문법과 표현의 습관에 맞는 영어로 작성된 원고를 읽는 형식으로 해도 좋다. 그것이 정확히 다듬어진 영어라면 토론자는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체질화할 때 그만큼 영어 구사력은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사용하는 어휘의 폭이나 정확성이 향상될 것이고 자신이 작성한 원고라면 그만큼 자신의 것으로 체질화될 것이다.

그리고 토론에는 긴장이 있다. 자신의 의견을 내쏟아 버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언제나 공격하고자 벼르는 상대가 있으므로 논박의 여지를 제공하지 않기 위한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하고, 논박을 받았을 때는 역으로 논박할 수 있는 근거와 논리를 준비해 있어야 한다. 영어의 구사력이 점차로 향상되면 준비된 원고에만 의존하는 경직된 상태를 벗어나서 즉석의 생각으로도 발언내용을 보충하거나 수정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면 오래지 않아 영어로 토론한다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로 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학습한 영어는 아무렇게나 거칠게 배운 영어보다는 훨씬 정확하게 다듬어지고 검토된 표현으로 구사된다.

 

일상 생활환경을 통한 영어 학습

그러나 비록 불완전하고 서투른 영어라도 습관적으로 익히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옛날 맹자도 재미있는 말을 한 것이 있다. 초(超) 나라의 대부가 그 아들로 하여금 제(齊) 나라의 말을 배우도록 하기 위하여 제 나라의 사람을 시켜서 그를 가르치게 한다고 해서 제대로 가르치겠는가? 제 나라 사람 혼자서 그를 가르치고 주변에 초 나라 사람들이 욱실거린다고 하면, 그를 매질해서 가르친다고 해도 제 나라 말을 제대로 하겠는가? 차라리 제 나라의 거리에 내버려 두면 매일 같이 그를 때려서 초 나라 말을 하게 하더라도 오히려 제 나라의 말을 할 것이다. 이처럼 맹자는 교육에 있어서 환경의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언어의 학습인 경우에 더욱이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민사고의 영어상용의 방침은 그런대로 성과가 있는 셈이다. 언어적 환경과 습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가 없다. 그러나 다시 우리는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영어를 익힐 필요는 있다.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  dhl9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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