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토론과 일상생활, 사회적 토론과 제도적 규칙, 학술적 토론과 윤리

학습을 위한 토론, 그리고 토론을 위한 학습 (I) 

이돈희 (서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대화와 토론, 그리고 학습 (1)

대화와 토론과 일상생활

일상생활에서 상대하는 가족, 친구, 친족, 동료, 이웃과의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반목하고, 적대하는 관계가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거칠고 무례한 표현이나 악의적 언사를 무책임하게 감정적으로 내뱉은 것이 결정적 원인이 된 결과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대화(혹은 토론)를 바르게 하지 못한 것이다. 옛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든가 “천양빚도 말로써 갚는다”는 말이 있다. 대개 대화와 토론에서 서로가 성의 있게 지켜야 하는 암묵적 규칙을 어기고 있으면, 언쟁이 시작되고 서로가 자제하지 않으면 주먹질까지 오가게 되는 불상사를 낳기도 한다. 

서로가 말로써 의사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 즉 일종의 암묵적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예상치 못하게 험악한 분위기를 만드는 경우가 흔히 있다. 물론 이러한 암묵적 규칙은 저절로 내면화되는 것이 아니다. 대개 교육이나 경험을 통하여 기회 있는 대로 명시적 규칙들을 체계적으로 잘 학습하여 습관화되면, 일상생활에서의 대화나 토론에서도 그 규칙들이 암묵적 수준에서 작용하여 논쟁이나 토론뿐만 아니라, 일상적 대화의 세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교육받은 사람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바로 대화와 토론을 세련되게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고대와 중세의 서양교육사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을 교육과정의 중심부에 두고 특별히 중요시한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이유는 당시의 시민계급(노예가 아닌)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토론의 기술을 제대로 익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문법을 바로 익혀서 말의 기본적인 규칙을 학습하게 하고, 논리학을 배워서 모순 없는 사고를 전개할 수 있도록 하며, 수사학을 익혀서 공공적 토론의 장에서 상대방과 대중을 설득하는 조리와 요령을 체질화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질은 당시에 교육받은 사람이면 구비해야 하는 기본적인 요소에 해당한다. 지금도 토론은 학생들에게 학습의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생활화하는 오늘의 교육받은 시민들에게는 학술적, 정치적, 상업적 목적으로 진지한 토론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자질이 요구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토론”과 “토의”라는 두 단어는 의미상 매우 유사하면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거의 모든 문맥에서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 보통이다. 구태여 꼭 구별해야 한다면 이런 정도를 밝혀 볼 수가 있다. 우선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을 “토의”라고 한다. 그리고 이야기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의견의 차이가 있고 서로 상대방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시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을 때, 이러한 분위기는 “토론”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별로 확연한 의견의 대립이 없는 이야기, 대화, 혹은 담론의 수준인 토의를 하다가도 서로가 다소간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의견의 대립을 보이는 토론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고, 격렬한 토론을 하다가도 조용한 토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어느 순간을 “토의”라고 하고 어느 순간을 “토론”이라고 할 것인가를 구별하기가 때로는 매우 어렵고, 이런 경우에 둘을 반드시 구별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토의는 약간 느슨한 토론이라면, 토론은 약간 긴장된 토의라고 할 수도 있다.

토론은 표면상으로 볼 때 “말의 잔치”인 것 같지만, 결코 말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말 자체의 논리, 말에 담겨져 있는 진실성, 말의 유창함, 말의 세련됨, 말의 즐거움, 말의 기교와 기지 등이 토론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말의 특성들은 그냥 말로써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지식과 교양과 인격, 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분위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습관, 말을 하는 사람들의 문화에 따라서 달라진다. 경험과 관점이 다르고 신념과 가치관이 다르면, 진실한 말이 오가더라도 생각과 의견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민주적 사회”란 실제로 중요하고 심각한 갈등적 문제들을 토론의 규칙에 맞게 해결해낼 수 있는 시민들이 주도하는 사회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훌륭한 토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말의 기교를 익혀 궤변가나 달변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비판(검토) 받으면서 확실한 근거에 기초하여 이치에 맞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구사하는 신념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민주시민의 기본적인 자질에 속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토의” 혹은 “토론”을 하면서 살아간다. 심각한 것이든지 사소한 것이든지 간에 이야기하는 주제가 있고,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있으며, 그 주제나 문제를 두고 다소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 있다면, 우리는 토의 혹은 토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때로는 조용한 어조로, 때로는 격렬한 어투로, 때로는 서로 협조적인 태도와 자세로, 때로는 서로 공격적인 표현과 몸짓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때로는 문제가 잘 해결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진행되어 더욱 복잡해지고 해결하기 어려운 경지로 빠지는 사례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싸움판으로 연결되는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연적으로 시작하게 되는 토론에서는 자주 감정대립, 인신공격, 폭력사태 등과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런 일은 왜 생기는가?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즉, 일상적 대화나 언쟁에서는 효율적인 토의나 토론을 하는 데 요구되는 “합의된(혹은 암묵적) 규칙”이 명확하게 없거나 이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토의나 토론의 과정에서 지켜야 하는 올바른 규칙이 없으면, 우기는 사람이나, 목소리 큰 사람이나, 힘센 사람의 주장으로 결론에 도달한다. 아니면 끝없는 언쟁, 때로는 끝없는 비난과 욕설을 하면서 서로 싸움을 하게 될 수가 있다. 이런 경우에 말리는 사람이 없으면 싸움은 끝없이 계속되고, 때로는 그것으로 인하여 평생토록 서로 원수가 되어 지내기도 한다.

물론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토론에서도 주제에 관한 생산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문제를 진지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면 서로가 공유하는 규칙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합리적인 문제해결을 할 수가 있는가? 이 경우는 비록 이야기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 공식적으로 약속하거나 명시적으로 확인된 규칙은 없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그들이 서로 성의를 다하여 노력하면서 지키려는 “암묵적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암묵적 규칙으로 우리는 이런 것들을 들 수 있다. 즉, 상대방의 인격, 가치관, 자존심, 지위, 권위 등을 모독하거나 손상하는 발언은 하지 않는다든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명료하게, 조리 있게, 불쾌하지 않게, 차근차근하게, 겸손하게, 신뢰를 보이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자 한다든가, 상대방의 발언을 방해하지 않고 인내를 다하여 끝까지 듣고자 하는 성의가 있어야 한다든가, 발언을 독점하여 중언부언(重言復言)하면서 장황하게 말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 등이다. 

우리는 수시로 크고 작은 토론을 하면서 살아간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부부 사이에도, 형제나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도, 때로는 모르는 사람과도 우연이 토론을 해야 할 일이 발생한다. 일상적 상황에서 토론을 효율적으로 하는 사람은 다른 상황, 예컨대 공공적 사업이나 학술적 연구에서도 좋은 토론자가 될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토론의 능력과 자질을 학습하여 잘 훈련된 사람은 어느 상황에서나 세련된 토론을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토론을 제대로 할 수 있고,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 되도록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협조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지니는 것은 사회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교양 있는 시민의 중요한 기본적 자질에 속한다. 적어도 사회적인 삶, 조직의 삶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토론에 수시로 임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회적 토론과 제도적 규칙

우리는 사회생활, 특히 제도적 조직의 생활에서 토론을 정식으로 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임하게 된다. 비근하게는 반상회, 동창회, 종교집회, 학회, 친목회, 그리고 각종의 동호회 등의 조직에서부터 학교, 회사, 정부, 국제기구 등에 이르기까지, 그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토론을 해야 하는 상황을 접하게 된다. 이러한 조직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지키는 암묵적 규칙 이외에 대개 정관, 회칙, 법령, 관습, 전통 등의 “제도적 규칙”이 있어서 토론이 필요한 경우에 이를 적용하면서 문제를 해결한다. 규칙이 없으면 토론은 진행될 수가 없다.
크고 작고 간에 제도적 조직은 규칙들로써 그 목적과 체제와 기능이 설명된다. 예를 들어 어느 학교의 동창회라는 것은 누구나 그 회원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모임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동창회의 목적, 회원, 조직, 사업 등에 관한 규정은 그 동창회가 존재하기 위한 기본적인 규칙이다. 그 규칙을 지키지 않고는 동창회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업을 계획하거나 예산을 세우거나 임원을 선출하거나 할 때, 어느 것이든지 그 조직에서 정한, 혹은 상식이나 관례에 따른 규칙에 의존하여 토론하고 의결한다. 토론의 과정에서 아무나 발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문제든지 거론해서 토론하는 것도 아니다. 총회에서 토론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간부회의에서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조직 속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의 목적을 실현하거나 문제의 해결을 위한 토론은 바로 그 제도적 규칙을 준수하는 범위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제도적 규칙은 일상생활의 상황에서 적용되는 암묵적 규칙과는 성격상 다르다. 물론 어떤 조직에서 우연적으로 혹은 정례적으로 이루어지는 토론이 반드시 제도적 규칙만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적 규칙들은 수없이 많은 암묵적 규칙들과 더불어 조직 속의 토론을 지배한다.

스포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야구가 진행되는 도중에 심판의 판정에 문제가 생겼다든가, 어느 쪽이 부정한 방법으로 경기를 했다든가, 경기의 도중에 소나기, 관중의 난동 등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하면, 그 상황에서 유리한 쪽과 불리한 쪽이 있게 되고 토론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때의 토론도 규칙을 언급하면서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한 가지 이상의 규칙이 적용되는 수가 있고, 그러면 어느 규칙이 우선하느냐의 시비가 있을 수 있다. 해결은 어디까지나 규칙의 적용에 의하지만 규칙의 권위적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에도 토론을 한다.

토론은 반드시 계획된 시간과 장소에서 정해진 주제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단체나 회사나 정부는 추구하는 가치, 수행코자 하는 과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등이 있는 한, 언제나 토론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조직의 장이 행사하는 독재적 통제와 명령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면, 사소한 혹은 심각한, 형식적 혹은 비형식적, 우연적 혹은 계획적 토론이 거의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학술적 토론과 윤리

과학에서나 철학에서나 간에 무엇을 연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토론의 장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이 어떤 연구의 상황에 임할 때, 검증하고자 하는 가설을 가지고 들어간다. 그 가설은 아무런 선행연구도 없는 진공 속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이론 혹은 법칙에서 유도된 새로운 발전적 가설이거나, 아니면 그것을 부정하려는 비판적 가설이거나이다. 이 가설을 내세우는 연구자는 기존의 이론 혹은 법칙과 연관시키면서 자신의 주장을 펴는 학술적 대화 속에 임하는 것이며 그 자체로서 토론의 시작을 의미한다. 가설의 검증(혹은 부정의 실패)은 타당성을 전제로 하는 근거나 논리로서 제시되며, 이 과정은 바로 기존의 이론 혹은 법칙을 상대로 하는 토론의 장에 있는 셈이다.

철학적 연구의 경우도 과학적 연구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은 없다. 다만 다루는 내용과 방법의 성격이 다를 뿐이다. 과학적 연구는 사실에 관한 이론 혹은 법칙을 세우려는 노력이며 검증 혹은 해석의 방법을 통하여 주장을 정당화한다. 이에 비하여, 철학적 연구는 의미나 논리에 관한 것이며 논증 혹은 이해의 방법을 통하여 주장을 정당화한다. 철학의 경우에도 그 연구가 진공 속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제기된 문제 혹은 주장된 이론에 대한 분석, 이해, 검토, 반론, 비판 등으로 제시되며 성격상 그 이론과의 대화 혹은 토론의 장을 만들게 된다.

과학자나 철학자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증거에 있어서 허위를 용납하거나 전개하는 논리의 과정에서 범하게 된 오류에 대하여 관용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동료나 이웃의 과오에 관해서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학술적 연구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학술적 연구자는 어떤 이론 혹은 연구에서 허위, 오류, 자체모순 등이 발견되면 그것을 지적하고 비판할 의무가 있다. 물론 이러한 학술적 비판은 상대방의 인격, 권위, 경험 등을 무시하는 어조가 섞인 비판이 아니라, 순수하게 증거와 논리와 방법을 중심으로 오류 혹은 오류의 가능성을 두고 토론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무는 연구자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암묵적 규칙으로서 이 규칙을 준수하는 것은 연구자의 기본적 윤리에 속한다. 이처럼 학술적 연구는 그 자체의 일차적 특징이 토론의 장에 있음을 뜻한다. 물론 연구자들이 임한 토론의 장은 반드시 얼굴을 서로 맞댄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아니지만, 다른 이론이나 의견과의 학술적 대화 혹은 토론의 장에서 검토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의미를 다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