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 서울대 명예교수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 서울대 명예교수(전 교육부장관)

[에듀인뉴스(EduinNews) = 국중길 기자]

근년에 이르러 교육부문에서 복지적 관심이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면밀히 검토해 보면, 이러한 관심은 크게 두 가지 서로 다른 차원에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교육의 기능적 성격 자체에 복지적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는 전제를 두고 언급되는 것이고, 이것을 일컬어 우리는 ‘본질적 교육복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특정한 소외계층의 교육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별도의 제도적 장치가 요청된다는 것이고, 이것을 일컬어 우리는 ‘제도적 교육복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두 가지는 엄격히 구분되지 않으나, 교육관련 복지정책의 일차적 관심을 어느 계층 혹은 집단에 둘 것인가를 설정하는 방식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교육을 국가적 제도로 구축하고자 한 사회적 동기는 적어도 세 가지 기능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교육을 통하여 국가의 기본적 체제와 특성의 유지가 가능하도록 하려는 ‘수호적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가 구성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데 봉사하려는 ‘복지적 기능’이며,

또 다른 하나는 국가의 기능과 발전을 지속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인력을 충원하려는 ‘투자적 기능’이다.

물론 이러한 세 가지 기능도 확연히 배타적으로 구별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기능적 특징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때로는 기능적 특징의 변별이 모호할 수도 있다.

위에 언급된 복지적 기능은 바로 본질적 교육복지의 근거가 된다. 국가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글을 가르치고, 기능을 길러주며, 필요한 지식을 획득하게 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게 하며, 집단 속에서 타인들과 더불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고, 여러 가지 상황에서 당면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게 하면서, 각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실현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기 위하여 국가가 교육을 계획하고 운영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복지적 기능은 투자적 기능과는 성격상 다소 차이를 보인다. 한 나라의 국민이라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교육의 대상에서 제외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복지적 동기에 의해서 창출되는 교육의 기회는 ‘평등주의적’ 원칙에 의해서 분배된다.

반면에 ‘투자적 기능’은 국가를 더욱 안전하고 성장가능한 나라로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인력을 개발하여 국가적 목적으로 충원하고자 하는 일종의 사회적 투자로서 교육을 계획하고 운영할 때 적용되는 말이다. 투자적 동기에 의해서 창출되는 교육의 기회는 투자의 효율성을 기대하거나 극대화할 수 있는 대상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져야 하는 것이므로 ‘능력주의적’ 원칙에 의해서 분배된다.

대체적으로 말해서, 학교제도에서 하급학교일수록 상급학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복지적 성격이 우선하고, 상급학교일수록 하급학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투자적 성격이 우선한다. 중등학교의 경우에 두 가지 성격의 어느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가는 나라마다의 이념적 성격과 국가적 역량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와 같이 중등학교가 보통교육의 범주에 속하면 복지적 성격이 우선하고 평등주의를 지향하며, 나라에 따라서 전문교육의 범주에 속하면 투자적 성격이 강하고 능력주의가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의무교육 혹은 보편교육의 수준에서 볼 수 있는 본질적 교육복지의 평등주의는 취학의 기회균등과 같은 형식적 교육기회의 일률적 분배로써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질적 교육기회, 즉 각자의 성장에 유의미한 학습의 장이 실질적으로 주어지는 기회의 분배일 것을 의미한다.

균등한 취학상태, 즉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해서 평등교육이 실현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형식적 교육기회의 획일성은 마치 체격이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규격의 제복을 입히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이와 같은 기회의 분배는 평등의 상태로서 큰 의미가 없다.

평균인의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평균적 학습장을 제공하면서 실질적 교육기회로 규격화하거나 획일화하면,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많은 소외 대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소외의 상태를 자력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때, ‘제도적 교육복지’의 개념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저소득층, 학습지진아, 장애인, 이민자, 낙후지역민 등이 그들의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한 별도의 제도적 장치가 요청된다.

이러한 제도적 복지의 개념은 능력주의를 적용하는 투자적 교육기회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능력주의에는 경쟁의 원칙이 적용될 수밖에 없지만, 경쟁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의 개선을 위한 장치도 제도적으로 요구된다. 아마도 국가나 독지가가 출연하는 각종의 장학제도나 교육시설이 이러한 장치의 사례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이든 제도적인 것이든, 교육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수준과 범위는 나라마다의 이념적 성격, 예컨대 자유민주적 국가 혹은 사회주의적 국가로 크게 나눌 수도 있지만, 그 특징이 어느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는가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교육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데 소요되는 재원을 동원하는 그 나라의 체제와 역량에 따라서도 크고 작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국가 간의 수평적 비교에서도 그렇지만 한 국가의 종단적 비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경우에 광복 직후의 1900년대의 중반과 후반, 그리고 2000년대의 국민교육을 운영할 국가적 형편에는 시기에 따라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우선 이념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의 강령적 선언에 대해서 시기마다 이해하고 지향하는 가치체제에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기도 하였다. 전란과 혼란으로 인하여 자유의 가치가 적지 않게 제한되거나 유보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라가 절대빈곤의 상태에 있었을 때는 국가적 역량으로 교육을 포함한 각 부문에서 평등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데 많은 제약이 존재했다.

그동안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둠으로써, 자유와 평등을 비롯한 민주적 가치의 실현을 선진국 수준으로 증진시키는 데 관심을 쏟을 여유를 가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교육부문에도 복지적 프로그램이 가시적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속적인 교육개혁의 추진으로 각급학교의 유형과 프로그램이 다양해짐으로써, 획일성과 경직성을 조금씩 벗게 되었다. 학습자 각자가 성장을 스스로 관리하는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종래에 크게 제약을 받아왔던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적 지원의 역량도 국가적 수준에서 점차로 향상되고 있는 것 또한 중요한 변화로 볼 수 있다.

교육복지의 경우에, 그 기회와 자원의 분배에 있어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진보적 성향의 의견과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 보수적 성향의 의견, 이러한 성향적 논쟁이 사안에 따라서 다소 조용하게, 혹은 다소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마도 모든 교육복지의 정책적 과제가 이원론적 양립의 어느 한쪽으로 결론지어야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안에 따라서 보편적-선택적 복지의 논리가 적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