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식 충남 삼성고 교장
박하식 충남 삼성고 교장

[에듀인뉴스(EduinNews) = 국중길 기자]

농업후진국! 내가 초등학교 때 사회 교과서에 실렸던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설명한 표현이었다. 그런 가난한 나라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은 그날 그날의 학교 생활에서도 늘 느끼며 살았기 때문에 그 표현이 이상하지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면 담임선생님께서 몇몇 아이들을 데리고 양호실 옆 창고로 가셔서 바구니에 원조로 받은 옥수수가루로 만든 빵을 가져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반 이상의 아이들을 나누어 주시는 일이 매일의 일상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여유가 있어 도시락을 싸온 아이는 그 옥수수빵이 먹고 싶어 도시락과 바꾸어도 먹기도 한 모습이 기억에 한 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다. 196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기도 하다. 이런 모습은 시골에서만이 아니라 수도인 서울에서도 똑같이 있었던 일이다.

번듯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없던 터이라 당연히 농업국가였고 국민들 전체가 세끼 끼니를 걱정하는 나라였기에 후진국도 당연한 것이었다. 무엇이든 만들어 수출해야만 우리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가발, 섬유등의 경공업을 일으키는 것으로 시작해서 경제개발의 기재개를 폈던 나라에서 나는 초등학교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경공업으로 시작하여 중공업에 도전하면서 고등학교쯤 되니 우리나라를 표현했던 후진국이라는 말은 쓰지 않고 개발도상국이라는 말로 우리나라를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를 가는 버스가 남대문을 늘 지났는데 남대문 옆에 자리했던 무역진흥공사(KOTRA) 건물위에는 매월 수출해서 번 외화의 숫자가 크게 게시되었다.

매일 등교를 하면서 게시된 달성한 수출 달러 액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뿌듯해 하면서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는 우리나라를 느끼기 시작했고, 우리나라가 이젠 중진국으로 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과 기대를 가졌던 때이기도 했다. 고도성장을 이루어낸 경제개발로 인한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민주화를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7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 그리고 젊은 시절까지 나에게는 그리고 그 시대를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경제적으로난 정치적으로 낙후된 ’결핍‘의 나라였다.

그 결핍의 기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지만 서양의 많은 나라들이 200년 이상의 기간동안 피와 땀의 역사의 굴곡속에 이룬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의 과정을 우린 3,40년동안 압축하여 겪어낸 것임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국민적 요구와 민주주의의 쟁취 등의 과정에서, 그리고 지역간의 갈등 세대간의 간등 사회 계층간의 심한 갈등 등이 있어서 위험해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큰 역사의 흐름은 우리나라를 이젠 선진국이라 불리는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

여전히 우리나라엔 해결해야할 갈등과 문제가 많이 있지만 이젠 명실공히 세계를 이끌어가는 상위 선진국 그룹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는 이미 십여년 전부터 달성해 온 것이고, 한류라고 하는 세계 문화의 새 길을 열어, 우리의 대중 문화는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 잡고 있으며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는 영화에 있어서도 우리의 감독과 배우가 세계 영화제를 석권하는 것은 우리 나라에 다가온 익숙한 모습들이다. 이런 현재의 대한민국은 내가 초등학교를 보낼 때 꿈꿀 수 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런 우리나라의 기적과도 같은 이런 변화와 발전의 원인은 무엇이라 해야할까? 이런 기적적인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낸 것은 어떤 영역의 사람들이 뛰어나서라기 보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이 갖고 있는 저력과 한국인이 가진 교육의 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동안의 훌륭한 정치지도자,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기업경영인, 학문과 예술 분야의 뛰어난 업적을 남긴 분들, 시민 정신을 뿌리내리게 한 사회단체의 리더들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던 많은 사람들이 기여한 바가 크긴 하지만 가난한 나라의 국민으로 남을 수 없다는 국민 전체의 공감대와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나라도 더 배우고 가르치려는 열정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초중고의 공교육은 학교라는 물리적 건물만을 갖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초중고생들을 위한 국가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이를 전국 초중고에 공급하여 전국에 어디에 있든지 균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고, 교사와 지역에 의한 차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교육방송인 EBS를 통하여도 전국 어디에서든 일정 수준의 교육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교육 인프라를 갖추어 가는 등의 국민 모두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 나라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가 우리 국가를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해 준 아주 중요한 요인이다.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대해서 만큼은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좋은 교육에 대한 정보 수집으로 나름대로의 교육관을 갖고 이를 행동으로 직접 옮기는 적극적 실행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지역의 부동산 시세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교육적 요건임으로도 이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른바 우리나라는 이른바 ‘교육’을 통하여 선진국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를 선진국이 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던 교육, 특히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의 안을 이젠 찬찬히 들여다 볼 때가 되었다. 국가 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우리 교육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 보면, 교육의 물리적 양의 확대가 지금까지 우리 교육 변화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나라는 1995년에 OECD 가입 신청을 내고 결국 OECD회원국이 되었다.

회원국 자격을 갖추기 위해 정부에서는 갑자기 갑자기 학급당 인원을 30명대로 급격하게 줄이는 정책을 강행했다. 학급 당 인원을 줄이는 문제는 수업의 방식의 변화를 동반해야하며, 바람직한 교실 수업을 하는데 교사가 불편함을 느끼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줄어든 학급 당 학생에 맞는 수업에 대한 변화없이 그저 학교를 많이 짓고 교실을 늘리고 교사를 충원하는 일이 먼저 시행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여전히 교육 개선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 많았지만, 선진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복지 차원에서 고교 무상 교육을 작년부턴 전국에 전면적으로 시행하였다.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어떠했나? 자녀에게 교육을 오랫동안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 생각하여, 어떻게든 대학엘 보내야 했고, 가능하면 대학원까지, 거기다가 해외 유학까지 보내려 한 것이 대한민국 부모의 마음이었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공부를 한 자녀에게 대입에서의 경쟁력을 갖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원으로 과외로 보낸 것이 바로 우리 나라 학부모 교육열의 정체이기도하다. 이렇게 교육의 양적인 확대, 그리고 교육받는 기간의 확대가 우리 교육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체제와 시스템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농업 후진국 시대, 개발 도상 국가 시절,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되기 위한 교육 체제로서, 상아탑으로 불리운 대학을 정점으로 초·중등 학교 교육의 특징이 정해지는 그런 형태의 교육 시스템을 지금까지 우린 유지해 오고 있다. ‘결핍’의 시대에 맞는 교육을 ‘풍요’의 시대에 적용하려 하니 외형적으로는 성장한 것 같은데, 교육 안에서 교육을 경험하고 실천하는 학생, 학부모, 교사는 마음과 내전인 ‘결피’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이런 학교 교육 체제는 더 이상 현재의 대한민국의 상황에 맞지 않으며 이런 교육시스템은 이젠 그 역할을 다했다고 이젠 분명히 선언해야한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해야하는 다음과 같은 명백한 사실들이 우리의 현실로 다가 왔기 때문이다.

첫째, 후진국, 개발도상국을 벗어나 선진국을 따라가야지 할 때 만들어진 인재상, 교육철학, 교육 시스템을 이젠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적 선진국에 걸맞는 교육 체제를 준비해야한다. 다시 말해 많이 받아들여야하고 모방해야 했던 FAST FOLLOWER를 길러내기 위해 만들었던 교육체제가 FIRST MOVER를 길러내는 창의적이고 학생 주도적인 교육이 가능한 교육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대입 준비를 하는 고3 학생과 재수생을 포함한 대입 응시생의 총합(약53만) 보다 우리나라 대학 모집 인원(약 55만)이 더 많아지는 일이 2021년에 현실로 다가왔다. 산술적으로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전국의 모든 입시생이 대학에 합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고, 현실적으로는 수도권의 선호대학을 제외하고는 성적과 경쟁으로 의한 대학입시라는 것의 의미가 상실된 상황이 도래했다. 기초적인 고교 성취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도 원하기만 하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어 고교 교육, 대학 교육의 부실이 명확하게 다가온 것이다.

셋째, 지금 50대 초반이 된 1971년에 태어난 신생아 수가 1,024,773명으로 100만명이 넘었는데 그 이후로 인구가 줄어 40년이 지난 2020년에 태어난 신생아가 272,400명으로 30만명의 벽이 허물어져 인구 감소는 우리나라의 너무나도 큰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2020년 생이 성인에 도달하게 될 2040년부터 우리나라의 생산인구의 심각한 감소가 예견되고 있다. 이 시기는 1971년생은 70대가 되는 시점이므로 27만명이 일해서 100만명을 부양해야하는 부담이 바로 벌어질 명확한 현실인 것이다.

이렇듯 몇 가지만 보더라도 우리 교육은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체제 변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 미래를 위한 교육을 생각할 때 4차산업혁명, AI, 유니버스등 첨단의 개념을 얘기하곤 한다. 그런 미래의 사회 변화를 적용하기에 앞서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방향, 근본적인 체제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잘 보이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를 국가의 교육 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는 모습은 참 안타깝다.

과연 이런 정책이 선진국에 들어선 우리나라가 G7 그리고 더 나아가 G3가 되는 중장기적 국민의 인적 자원 개발에 가장 필요한 일인지를 우린 다시 생각해 봐야한다. 에듀인 독자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무엇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나가야할 지를 함께 생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