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어 왔다. 사람마다의 “성격(性格),” “자아(自我),” “인격(人格),” “인성(人性)” 등으로 일컬어지는 개체의 정체적(正體的) 특성은 습관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습관의 형성이 인성교육의 기본적 조건이며 동시에 구체적 목표이기도 하다.

[에듀인뉴스(EduinNews) = 인터넷뉴스팀 ]

제2강 인성은 습관이다

이 돈 희 (서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만약에 습관이라는 것이 없다면

만약 우리에게 습관이라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면서 살고 있을까? 우선 쉽게 생각해서, 잠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을 것이고, 배가 고프다고 느낄 때 무엇을 먹어야 하며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도 정해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무엇을 입을 것이며 무엇을 신을 것인지도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선택할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행동과 해야 할 행동으로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 산다는 것은 그냥 그때그때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조금 심각하게 말해서, 만약 갑자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습관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본능만으로 적응하고 그 한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일정하게 사물을 보는 방식이 없으니 순간순간 모든 것은 새로운 것일 뿐이다. 매일 만나는 사람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이고 세상에는 익숙한 것이라고는 없다. 과거부터 해오던 습관이 없으니 내게는 현재만이 있을 뿐이고,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습관이 없으니 생각할 수 있는 미래도 없다. 치매 상태에 있는 노인이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가족을 식별해서 보던 습관의 틀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치매의 노인이 우리와 함께 말하고 함께 행동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공유하는 많은 습관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습관만큼 함께 생활하는 데에 불편이 있는 셈이다.

더욱 심각하게 말하면, 모든 습관이 일시에 상실되면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하여 소리를 내어 말을 해 보지만 함께 기억하여 사용하는 소리가 없으니 서로 알아듣지 못한다. 모든 손짓, 발짓, 몸짓은 일회적인 순간의 것일 뿐이고, 서로 간에 함께 지닌 습관이 없으므로 아무런 의미를 주고받을 수가 없다. 말이나 몸짓으로 다른 사람과 의사나 느낌을 표현하고 서로 교환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함께 소리와 몸짓을 사용하는 습관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같은 언어나 관습을 포함하여 상징적 수단을 함께 사용하는 문화적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상당한 수준의 공통된 습관적 형식과 내용을 공유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한 습관들의 공유 그 자체가 인간의 사회적 삶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또한 철학자였던 제임즈(William James, 1842-1910)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지닌 외관상의 특징을 보면 “수없이 많은 습관들의 뭉치”(bundles of habits)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동물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생존에 필요한 몇 가지 습관을 익히게 되지만, 인간과 같이 고등한 생명체는 오히려 기본적인 습관들을 익히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인간은 더디기는 하지만 성장하면서 자율적으로 혹은 타율적으로 수없이 많은 습관들을 형성하고 그 습관들을 계속해서 수정하면서 살아간다. 사물을 식별하고 소리를 구별하며 몸을 가누는 것과 같은 초보적인 습관에서부터, 말을 배우고 도움을 구하며 불편을 표현하는 것과 같이 필요한 습관들을 조금씩 익히고, 그다음에는 몸 운동을 하고 의사표시를 하며 주변 사람들을 익히는 습관을 만들어 간다.

그런 과정을 우리는 “발달” 혹은 “성장”이라고 한다. 인간은 습관을 형성하면서 순수하게 자연적 상태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모습, 즉 자아(自我)를 계발해 간다. 그러므로 습관의 개념은 인성을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인성의 교육은 일차적으로, 어쩌면 오히려 전체적으로 습관에 관한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습관을 형성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영아, 유아, 소년의 시기, 흔히 성장시기라고 말하는 세대의 인간에게만 성장과 습관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이에 관계없이 순간순간 크고 작은 습관을 새롭게 만들고 고치고 버리는 일을 계속하면서 성장하기도 하고 퇴행하기도 하며 때로는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지속적인 습관이라고 하면 흔히 신체적 습관을 쉽게 생각하지만, 생각하는 습관, 기억하는 습관, 감정을 표현하고 통제하는 습관, 통찰하고 추리하는 습관, 탐구하는 습관, 남들과 어울리는 습관 등 여러 가지의 형태가 있다.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고 노년에 이르러서도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이지적으로, 감성적으로 성장할 과제가 있고 습관의 형성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 322) 이후에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어 왔다. 사람마다의 “성격(性格),” “자아(自我),” “인격(人格),” “인성(人性)” 등으로 일컬어지는 개체의 정체적(正體的) 특성은 습관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습관의 형성이 인성교육의 기본적 조건이며 동시에 구체적 목표이기도 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습관을 가지고 사는가?

습관은 한번 만들어지면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습관은 때로는 더욱 경직되기도 하고, 유연해지기도 하고, 다른 습관과 결합되기도 한다, 때로는 변질되고, 퇴색되고, 분해되고, 소멸되기도 하며, 때로는 재생되고, 재구성되고, 다듬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언어로써 모두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습관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대충 구별할 수 있는 방식과 몇 가지 종류만을 열거해 보자.

첫째, 인식(認識)의 여하에 따라서 구분될 수 있다. 이러이러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식별하는 “의식적(意識的) 습관”도 있고, 자신의 습관이지만 그것을 지니고 있는지를 모르고 지내는 “무의식적(無意識的) 습관”도 있다. 어떤 행동을 왜 했느냐고 물으면 “습관적으로 그랬다”고 답하는 경우라면, 내게 그러한 습관이 있음을 알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해 왔던 것 같다”라도 한다면, 모르는 사이에 어떤 습관이 만들어져 있었던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습관의 지배, 즉 습관에 따라서, “습관적으로” 행동하고 생활한다. 습관에 지배되어 변통이 없을 경우도 있고, 정교한 기술을 발휘하는 경우와 같이 습관의 덕택으로 쉽게 어떤 것을 처리할 수도 있다.

습관의 총체 중에서 어느 부분의 것이 더 많으냐는 사실상 헤아릴 수도 없고 그럴 방법도 없다. 습관들 중에서는 좋은 습관에 속하는 것도 있고, 나쁜 습관에 속하는 것도 있으며, 같은 습관이면서 때로는 좋은 것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나쁜 것이 되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의식적 습관 중에도 자신의 의도적인 노력에 의해서 형성된 것도 있고, 모르는 사이에 어느 듯 형성되어 버린 습관도 있다.

둘째, 선천적 요소와 후천적 요소의 어느 편이 작용하여 형성된 것인가에 따라서, “생득적(生得的, 타고난) 조건에 따른 습관”과 “환경적(環境的, 후천적) 요소에 의한 습관”으로 구분될 수도 있다. 물론 습관 그 자체는 후천적인 것이다. “선천적 습관”이라는 말은 모순된 표현이다. 다만 타고난 유전적 조건, 심리적 기질, 신체적 특징 등이 원인이 되어 습관을 결정짓는 경우가 있고, 이와는 달리 생활조건, 성장지역, 자연환경, 교육배경 등이 습관의 형성에 적지 않게 작용하기도 한다. 정확히 말해서, 오히려 인간은 천성적 욕구나 잠재적인 능력, 그리고 개별적 의지 등이 자연적 혹은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알게 모르게 습관을 만들면서 살고 있다.

셋째, 습관의 내용에 따라서, 동작과 표정 등의 “신체적(身體的) 습관,” 정서와 감정을 표현하거나 통제하는 “정의적(情意的) 습관,” 그리고 기억, 신념, 판단 등의 “인지적(認知的) 습관” 등의 구별이 가능하다. 다소 유사하지만, 차원을 달리하는 “동태적(動態的) 습관,” “정태적(靜態的) 습관,” “내면적(內面的) 습관” 등으로 구별할 수도 있다. 습관의 가장 구체적인 것은 밥을 먹을 때나 운동을 할 때의 것처럼 반복되는 동태적 행동의 습관이다. 이에 비하여 정태적 습관은 성격이나 인품이나 취향을 언급할 때처럼 “과묵한 성격,” “보수적인 성향,” “낭만적인 취향”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 구체적 동작이나 행동보다는 생활의 어떤 양태(樣態), 스타일, 경향성, 모습 등이 다소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내면적 습관은 성찰하고, 묵상하고, 음미하는 인간의 내면적 의식의 형태에 관한 것이며, 개체의 생활, 혹은 생애의 전체를 지배하면서 독특한 삶의 모습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넷째, 변화가능성의 정도에 따라서 “경직(硬直)된 습관”과 “유연(柔軟)한 습관”으로 구분될 수도 있다. 좀처럼 사라지거나 바꾸어지지 않는 굳혀진 습관,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표현처럼 한번 형성되면 오랫동안 지속하는 평생의 습관 등과 같이 잘 변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그런가 하면, 어렵게 애를 써서 개발해 온 습관(기술)이 있지만 계속적으로 관리하지 못하여, 혹은 환경의 영향으로 흐트러지거나 잃어버린 습관이 있다. 어릴 때 외국에서 배운 말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어느새 거의 완전히 소멸해 버린 언어적 습관이 있다. 그리고 자전거 타기나 헤엄치기처럼 한동안 없어져 버렸지만 약간의 반복적 노력으로 쉽게 회복되기도 하는 습관도 있다.

인성은 습관들의 묶음, 그 자체로서 “하나의 습관”이다

우리가 “습관”이라고 하면 쉽게 구체적 행동이 반복되는 모양을 일컫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교육철학자인 듀이(John Dewey, 1859-1952)를 인용하여 다소 이론적으로 설명하면, 단순한 반복적인 형태가 습관의 본질적 특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유기체로서의 인간이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생활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다소 일정한 반응의 양상이 습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듀이의 설명을 다음과 같이 다시 설명해 볼 수 있다.

자연적 환경과의 관계를 두고 말한다면, 인간은 환경으로부터 예컨대 추위나 더위, 소란이나 적막과 같이 피동적으로 어떤 자극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인간은 자의적으로 환경에 어떤 변화를 가하기도 하고 그런 것들로 인하여 다시 환경으로부터 받게 되는 반사적 자극이 있다. 그러한 자극이 일정한 특징을 지니게 되면 거기에 일정하게 반응하는 방식이 생기게 된다. 찬 바람을 맞으면 움츠린다거나 뜨거운 물체가 가까이 다가오면 피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내가 가지고 있는 습관이라는 것은, 내가 어떤 상황 혹은 환경에 있게 되면, 어떤 방식의 행동을 하거나 태도를 취하거나 생각으로 대응하게 마련이다. 그 대응하는 방식이 다소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그렇게 유지되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일컬어 습관이라고 한다. 습관적으로 행동한다거나 습관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예컨대, 사람(유기체)이 배가 고플 때 무엇인가 먹을 음식이 있는 상태(환경)가 인식되면, 그것으로 배를 채우고자 하는 반응을 하게 되고, 그러한 반응방식이 일정하게 굳혀지면 음식을 먹는 습관이 형성된다. 축구 선수가 시합에서 발휘하는 개인기나 상황의 판단, 피아노의 연주자가 악보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건반에서 손을 움직이는 기술, 조리사가 음식 재료를 그 성질과 특성에 따라서 만지면서 발휘하는 조리의 솜씨, 대중을 상대로 웅변으로 소신을 주장하는 정치가의 감동적인 연설, 이런 것들이 모두 습관의 형태에 속한다.

몇 가지를 더 짚어보자. 곤경에 빠지면 거기서 해쳐서 나오기 위하여 덤비지 않고 차분히 상황을 살피고 거기를 모면하는 침착함이 있는 것은 사려 깊은 반응이며 그것도 일종의 습관이다. 그런가 하면, 관습이나 전통을 중시하고 새로운 풍조를 쉽게 수용하지 않는 보수적 성향, 불행한 이웃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도우고자 하는 동정심,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을 때 자신을 희생하면서 나서는 애국적 정열, 뉴톤(Newton)의 사과 이야기처럼 생활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도 그 이치를 알아보고자 하는 탐구심 등도 각기 모두 일종의 습관에 속한다.

습관에는 구체적 행동의 반복도 있지만, 한 개체 인간이 지니는 기술, 지식, 능력, 태도, 정서, 성향, 사상까지도 위에서 설명한 습관의 범주에 속한다. 개체 인간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습관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습관들은 각기 그냥 우리의 몸이나 마음속에 낱개의 물건들처럼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이 지닌 습관들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적 전체 속에서 얽혀져 융합된 상태에 있으며, 그러한 융합체(融合體) 자체도 다른 개인이 가진 것과는 구별되는 유일한 독특성이 있다. 융합체 그 자체로서 일종의 습관이며 “습관들의 습관”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습관의 재구성과 교육적 성장

교육은 인간의 성장에 관한 활동이다. 인간의 성장을 말하면 우리는 쉽게 신체적 성장만을 생각하지만, “성장”이라는 말은 인간의 여러 가지 특성에 적용된다. 성장의 개념은 지식, 기술, 판단력, 의지력 등의 능력에도 적용되고, 한 인간을 전체적으로 특징짓는 개성 혹은 인격에도 적용되며, 개체의 유지와 변화에 관계되는 신념, 욕구, 정서, 감정, 기질, 안목 등의 성품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성장은 증진 혹은 증대 등의 양적 개념으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안정, 순화, 균형, 세련, 조화, 통합 등의 질적 개념으로도 이해된다. 인간은 성장의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성장의 욕구가 쇠잔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언제나 교육을 필요로 한다.

교육에 의한 인간의 성장을 설명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로 있을 수 있다. 지식의 획득, 경험의 성장, 혹은 행동의 변화 등으로도 설명되지만, 적어도 인성교육과 관련하여 이해하고자 할 때는, 습관의 개념이 다른 어느 경우보다도 교육적 성장에 대하여 더욱 포괄적인 설명력을 지닌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교육적 성장은 자체가 지닌 수많은 습관들이 하나로 통합되고 융합된 체제로서 독특하게 계속적인 변화를 이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독특성에 관해서 말할 때, 우리는 맥락에 따라서 그 개인의 “개성,” “인격,” “인성” 등으로 표현한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말들은 한 개인을 다른 개인으로부터 구별되게 하는 특징을 언급하는 것이다.

특히 “인성”이라는 말은 대체로 두 가지의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 가지는 “도덕적” 개념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즉, “인성”은 “인격”의 경우와 같이 다소 도덕성의 개념을 내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도덕적으로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의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성의 개념은 인격의 개념보다 도덕적 의미에 있어서 다소 느슨한 편이다. “인성교육”은 한 사회의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나 인간관계의 규칙에 비추어 “호의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교육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인성”은 대체적으로 말해서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 혹은 “좋다”는 평가를 할 수 있는 인간의 특성에 관해서 언급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이때의 평가에는 타고난 성품이나 우연적으로 형성된 특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격”의 개념은 다소 다르다. 인성의 개념은 천성적(天性的)인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이지만, 인격의 개념은 자신의 천성을 스스로 다스리면서 그 노력으로 성취한 바를 평가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훌륭한 인격자”라고 할 때, 그 표현은 타고난 좋은 성품의 소유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람의 노력, 예를 들어 수양이나 극기나 단련으로 성취한 바를 더욱 칭찬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물론 인성교육이 인격의 개념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선악을 분별하고 선을 실천하는 사람임을 요구하는, 즉 인격의 개념에서 철저하게 요구되는 바를 다소 느슨하게 겨냥한다.

다른 한 가지는 인성의 개념이 “도덕외적” 의미, 즉 도덕적 가치의 반영을 반드시 요구하지 않는 개념으로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의 인성교육은 개체가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을 바로 세운 인간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인격”의 개념보다 “개성”의 개념에 더욱 충실한 편이다. 개성의 교육은 각자가 다른 개체와 구별되는 고유한 특징을 지닐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자아실현의 자질을 요구한다. 즉, 우선 지식을 획득하고, 사용하고, 가공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지니게 하고, 또한 감정과 정서의 순화, 관리, 세련을 기하는 자율적 통제력을 소유하게 하며, 나아가 당당한 사회적 관계의 세련된 기술, 태도, 의식을 구유함과 동시에 생존의 기본 조건인 건강한 심신의 유지와 증진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인성의 개념이 인격의 개념보다 도덕론적으로 느슨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천성적 요소까지를 포함하는 개성의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인성교육을 말할 때, 대개는 도덕교육적 맥락에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인성교육의 현실적 필요나 요구가 도덕적 위기감이나 불안감에서 연유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성교육의 범주를 전인교육적 개념으로 그 외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 우리는 위의 두 가지 이해방식을 외연적으로 분리시키는 것보다는 두 측면을 상보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더욱 유의미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말하는 인성교육은 아마도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아실현의 지속적 유지와 증진을 위하여 자신의 삶 자체를 스스로 관리하는 능력과 의지와 방법을 포괄하는 습관의 체제를 구축하고 그 성장을 도우는 사회적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인성교육을 개성적 성장과 인격적 성장의 두 측면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두 측면은 습관의 두 가지 요소, 즉 한편으로 유기체적 개체로서 인간의 특성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상호작용하는 대상인 환경과의 관계가 있다. 개성적 성장은 본래 개체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질, 즉 잠재된 가능성의 실현을 중심으로 이해되는 “자아실현”의 개념으로 설명되는 것이고, 인격적 성장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적-사회적 환경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가치의 내면화와 함께 설명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