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대적하고 위협하고 결사적으로 상대방에 대하여 공격적 대응을 하면서 지낸다면 거기에는 민주주의의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생활 민주주의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형성된 대립과 갈등을 해결하는 지혜, 규칙, 혹은 방법적 원리를 공유하면서 세련된 공존공영의 삶을 성숙시켜 가는 사회적-문화적 풍토를 뜻한다.

[생활 민주주의와 학습기반(5)]

 “공존공영"(共存共榮)의 화합이냐,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대결이냐?

이돈희 (서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공존공영(共存共榮)의 원리  vs.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대결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때 적용되는 개념이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한 개인이 비록 물리적으로 다른 사람과 모종의 관계를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간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면,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로도 성립할 수가 없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삶의 상황에서 요청되는 생활의 양식이고 또한 존재의 원리이다. 그리고 최소한이라도 다른 인격체와의 사회적 관계가 이루어진 상태에 있다면, 거기에서는 원초적 의미로 민주주의의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다.

예컨대 무인도에서 만난 소수의 사람들, 비록 두 사람의 사이라도, 서로 상대를 위협하지 말자든가, 필요한 도움을 요청한다든가, 아니면 함께 어떤 공동의 목적으로 활동을 계획한다면, 그들 사이에는 아주 단순하고 초보적인 민주적 규칙 혹은 원리를 설정할 정도가 되는 셈이다. 개체와 개체, 단지 두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소수의 사이라도 서로의 안전과 필요를 충족시켜야 하고 함께 생존하는 규칙을 설정해야 한다면, 그들은 매우 소박한 수준의 민주적 규칙을 함께 세우는 경험을 공유하는 셈이다. 이렇듯 "민주적 심성"(democratic mind)은 민주주의의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자 할 때 자연스럽게 요청되는 삶의 조건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사회적(정치적) 동물”이다. 인간이 사회적 삶을 산다는 것은 최소한으로 군집(群集)을 이루어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 군집을 “공동체”(koinônia, community)로 설명하고, 인간은 가족과 마을과 같이 한 장소를 정하여 자체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함께 삶을 유지한다는 사실에 역점을 두어 언급하였다. 그러나 듀이의 경우에는 그 군집을 다소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였다. 즉, 인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군집의 상태를 유지한다는 사실보다는 사람들이 함께 추구하는 필요(욕구 혹은 가치)의 충족을 위하여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방식으로 연합체(association)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로서의 군집은 가족과 마을의 생태적 상황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설명되지만, 듀이의 연합체는 인간이 추구하는 욕구, 가치 등과 같은 필요의 충족과 관련하여 집성되는 것이다.

군집의 삶이 공동체로 이해되든 연합체로 이해되든,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자신이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혹은 자신의 소유를 지키기 위하여, 함께 물리적 공간에 머물면서 서로 대적하고 위협하고 결사적으로 상대방에 대하여 공격적 대응을 하면서 지낸다면 거기에는 민주주의의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작은 군집도 와해되고 만다. 민주주의는 서로 “공존공영(共存共榮)”하는 삶의 원리이지 서로가 상대를 제거하기 위하여 대적하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삶의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느 규모의 군집이 형성되고 제각기 자유로운 삶을 지키고자 할 때, 서로 간에 의견의 차이, 이해관계의 대립, 혹은 우발적인 갈등이 개인들 사이에만 아니라, 구성원 중에서 집단적으로 서로 대립의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소 성숙한 민주적 사회는 크고 작은 문제, 사소하거나 심각한 문제로 인한 갈등이라도 협의, 협상, 화해 등의 방식으로써 해결하는 규칙 혹은 방법적 원리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경험한 문제해결의 방법, 습관, 관행, 전통을 축적하면서 더욱 안정된 관계와 평화로운 생활을 유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민주적 사회는 원천적으로 아무런 갈등도 문제도 없는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 우연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경험을 공유하면서 필요한 규칙을 함께 제정(입법)하고 또한 그 규칙을 준수(준법)함으로써 더욱 안정되고 함께 번영하는 사회가 된다. 이러한 사회적 경험이 그 사회의 문화적 바탕으로 자리 잡게 되면 구성원들은 건실한 민주적 심성이 형성되고 세대와 세대로 이어지는 공영과 성장의 삶을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개방적이고 유연한 민주주의에서는 시대적 삶의 여건이 변함에 따라서 그러한 규칙들도 재구성된다.

이러한 원시적 민주주의에는 신념구조가 단순하고, 생활방식이 유사하며, 감정과 정서의 폭에 서로가 익숙해 있고, 일정한 공간에서 친숙한 이웃으로 생활하며, 외부의 침공이나 내부의 갈등을 해결하는 관행적 방식이 비교적 잘 형성해 있다. 이런 사회의 경우에, 엔간한 합리적 사고와 생활의 질서가 갖추어지면, 세련된 사고와 행동의 규칙이 필요 없을 정도로 비교적 쉽게 민주주의는 소박한 수준의 제도적 체제로 정착될 수 있다. 여러 가지로 사회적 삶의 구체적 양식들이 전통으로 정착되면, 변화에 효율적으로 적응하기도 하거니와 자체의 체질을 개선해 가면서 삶의 조건인 자연적-사회적 환경을 능동적으로 관리하는 역동적 민주주의가 정착된다고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기대와 함께 연상되는 군집상황의 생활양식을 우리는 “생활 민주주의”라고 일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사회적 문제들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풍토나 관행이나 전통으로만 이해되는 수준의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서 민주주의의 심화된 수준의 학습상태라고 하기는 어렵다. 물론, 생활 민주주의는 일상적인 실천적 수준에서 당면한 문제와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기술적-습관적 생활양식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고답적인 원리의 이해만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되는 습관적 차원의 일상화가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습관적 기술이 경직되면 그 자체가 도그마로 작용하여 문제해결의 방법적 원리를 탐색하는 데 있어서 방해 혹은 장벽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흔히 “자유”는 방종과 같이 습관화되고 “평등”은 경직된 획일성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제도적 민주주의는 극한적 대립과 갈등을 포함한 혁명적, 때로는 폭력적 과정을 거쳐 쟁취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난세"의 경우에는 생활 민주주의적 의식구조는 쉽게 표면화되지 않고 잠복상태에 머물게 된다. 혁명의 시기나 직후에는 균형잡힌 민주적 심성의 소유자들이 당시의 상황적 특징으로 인하여 제대로의 영향력이 없거나, 그들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분위기에 매몰된 상태에 있기도 한다. 점차적으로 정치적-제도적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회복된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잠재적인 상태에 있던 생활 민주주의의 의식구조가 점진적인 활성화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도적 민주주의를 회복하거나 안착시키는 데 실패하거나 지연되는 사례들의 대부분은 생활 민주주의적 바탕이 형성되지 못하였거나 아니면 부실한 경우이다.

일상적 생활상황에서 민주주의는 무소부재(無所不在)의 규범이다

의미론적으로만 보면, “생활 민주주의”의 개념은 정치 민주주의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적 발생론으로 보면, 오히려 정치 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 선행하였고, 그 제도적 체제에 대한 반성적 진화현상과 함께 생활 민주주의의 개념이 점차적으로 유의미하게 검토되기에 이른 것이다.

생활 민주주의는, 다소 소박하기는 하였지만, 본래 정치 민주주의가 시작될 때부터 함께 있었던 일면이기도 하다. 국가 혹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제각기 구성원의 자격으로 정책의 결정에 있어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주장할 수 있었던 점, 그러므로 다원주의가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구성원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조직의 입법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투표에 의한 의결이 결론적인 단계에 이르기 전에 동료 구성원과 더불어 토론하고 협의하고 조정하고 협상하고 합의하는 등의 과정을 진행하게 되었던 셈이다. 이러한 풍토 혹은 관행은 단지 의회와 같은 입법행위 이외에도 생활 속에서 공식적으로 혹은 관행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었다.

우리의 일상생활중 어떤 상황에 그러한 생활 민주주의적 관행이나 습관이 적용될 수 있을까? 공동체적 삶의 어디에서도 생활 민주주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내 자신의 사적인 일로도, 예컨대 내가 마음속으로 어떤 문제를 두고 깊은 사고에 몰입하거나 어떤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내면의 사색 과정에서 민주주의적 절차가 진행되기도 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죠지 미이드(George H. Mead)의 언어로 말하여, 문제를 제기한 나의 자아(主我, "I")와 그것을 검토한 또 다른 나의 자아(客我, "me"), 그리고 그 사이에 주고 받는 검토, 대안, 비판, 합의, 결판의 과정, 즉 내심의 사고 행위는 그 자체로서 민주적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렇듯 생활 민주주의는 정치에 관해서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상황에서 진행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적 사고, 검토, 토론, 협의, 결단 등은 어디에서나 진행되고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생활 민주주의는 우리의 생활상황에서 “무소부재”(無所不在, ubiquity)의 작용이기도 하다.

가족생활에서도, 교우관계에서도, 직장생활에서도, 과학자들의 연구팀에서도, 스포츠활동에서도, 군대의 작전상황에서도, 종교단체의 행사에서도, 적어도 구성원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제시하는 의견과 발휘하는 능력을 존중해야 하는 상황에서라면 생활 민주주의는 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생활 민주주의적 사고, 정서, 습관을 세련되게 학습한 사람들일수록 정치 민주주의의 상황에서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신뢰성 높은) 가설을 설정해 볼 수 있다. 생활 민주주의로 개발된 심성은 갈등과 대립 등의 문제상황을 해결하는 요령과 방법적 원리의 활용에 적극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생활민주주의에의 세련된 적응은 창의성의 실현, 비판적 검토, 집단적 지력의 활용 등 개방적 사고에 익숙해 있고, 문제상황에 함께 관련된 사람들과의 논의과정에서 관용과 배려, 그리고 무사(無私)의 덕목을 유지하고자 하며, 평등, 공정, 정의 등의 도덕적 규범을 민감하게 의식하는 바탕을 적극적으로 형성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가설적 고려는 생활 민주주의의 심성적 특징을 경험과학적 자료로 검토한 결과라기보다는 다원주의적 맥락에서 규정된 문제상황의 논리적 요건에서 유추될 수 있는 내용이다.

[에듀인뉴스(EduinNews) = 인터넷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