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상 교수는 교사, 교감, 교장으로서 학교현장교육경험과, 교육청, 교육지원청, 교육연수원에서 교육전문직으로 근무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칼럼은 본인이 학생, 교직원, 학부모들과 함께 했던 수많은 경험의 에피소드 중 우리 모두 함께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그려나가는 공간입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고 우리교육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윤호상 교수의 교육칼럼] ‘학교 다녀왔습니다’(2)

“민성아, 너 머리 너무 긴 거 아니니?”

윤호상 (한양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앗! 이것을 건드리다니...

초임교사로 첫 번째 중간고사 시험감독 시간에 한 학생에게 한 말이다. 중학교에서 초임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일 년에 네 번의 중간, 기말고사 시험감독을 한 기억이 나는데 아마 4월 말 정도인 것 같다.

남학생 반이었는데 유독 한 학생이 머리가 장발이었다. 학생들과 평소 친근감이 있었기에 그날도 시험감독으로 들어가 예비 종소리를 기다리고 있던 사이에 민성이(가명)에게 다가가 “민성아, 너 머리 너무 긴 거 아니니?” 하고 긴 머리를 양손으로 살짝 휘감았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 움찔했다. 장발 속에 감추어져 있는 귀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아마 크게 다친 것 같았다. 민성이도 순간 깜짝 놀라 머리를 뒤로 제치려고 했다.

예비 종이 울리고 중간고사는 예정대로 진행이 되었다. 그날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내내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파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시험감독 시간에 있었던 그 순간들에 자책감이 들었다. 너무 미안했다. 왜, 내가 그 학생의 머릿결을 손으로 만지며 그런 말을 했을까, 그 학생은 얼마나 마음이 편치 않았을까, 보이지 않고 싶은 귀를 감싸려 머리를 길렀는데 왜 선생님은 그 머리카락을 만지며 들추려고까지 했는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민성이를 생각하니 나의 언행에 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 넘길 일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와 결심 그리고 나 자신과의 약속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약 40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나의 말과 행동으로 학생들에게 조그마한 상처라도 주지 않겠다’, 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을 해오고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역린(逆鱗)이 있다. 학생에게도 역린이 있다. 우리는 흔히 역린을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이라는 뜻으로 왕의 분노 또는 왕이 분개할 만한 그의 약점’이라고 알고 있다. 《한비자(韓非子)》의 〈세난(說難)〉편에서 유래하는 이 말은 오늘날 단지 왕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감추고 싶어 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드러나면 자존심이 극도로 상하는 것 들이 있다. 외모, 성적, 학력, 가정 형편, 결혼, 취직 등과 관련된 언행으로 상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건드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학생들에게는 더욱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교육자의 말과 행동이 학생들에게 오랫동안 자존감을 해치고 평생 상처가 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평소 말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강조해오던 나에게 대학시절 배웠던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의 시 ‘화살과 노래’가 떠올랐다. 어느 날 화살 하나를 무심히 공중에 쏘았는데 그것이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데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었다는 내용으로 시작이 된다. 그런데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숲속을 거니는데 예전에 쏘았던 화살이 나무에 박혀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내용이다.내가

난 화살 하나를 공중에 쏘았네

어디론가 날아갔지만 난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네

너무 빨리 날아가 내 눈으로 화살을 따라잡을 수 없었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난 한 참나무에서

난 여전히 부러지지 않은 화살이 나무에 박혀있는 것을 찾아냈네

한편 어느 날 내가 부른 노래가 허공에 흘러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고 그 노래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훗날 알아보니 그 노래 모두가 친구의 가슴속에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부른 노래가 흘러 흘러 친구에게 다가가 친구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부른 노래는 공중으로 흘러가버렸네

그 노래 어디론가 가버렸지만 난 어디로 갔는지 몰랐네

아무리 날카롭고 강한 눈이라도 날아가는 노래를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내가 불렀던 그 노래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나의 한 친구의 가슴속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아냈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며 자기도 모르게 무심코 자기중심의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런 언행이 상대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가 있다. 상대의 역린을 건드린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는 것인가. 특히 교육자가 학생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독화살이 되어 학생들의 자존감을 해치고 자신감을 떨어뜨리며 좌절하게 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

내가 무심코 한 언행이 학생들의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 그들이 상처 난 마음을 평생 보듬고 살아갈 것을 생각해 보라. 반면 내가 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꽃과 노래처럼 남아 자존감과 자신감을 키워주고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원천이 되게 한다면 얼마나 다행이고 보람된 일일까!

The Arrow and the Song

-- Henry Wadsworth Longfellow(1807-1882) --

​I shot an arrow into the air

It fell to earth, I Knew not where

For, so swiftly if flew, the sight

Could not follow it in its flight.

I breathed a song into the air

It fell to earth, I knew not where

For, who has sight so keen and strong

That it can follow the flight of a song?

Long, long afterward, in an oak

I found the arrow, still unbroke

And the song, from beginning to end,

I found again in the heart of a friend.

yoonpaul7240@naver.com

[에듀인뉴스(EduinNews) = 인터넷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