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창출은 인류의 역사에서 언어의 사용, 인쇄술의 발명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 이상의 수준으로 우리의 생활에서, 특히 교육부문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 예상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반드시 긍정적인 평가만이 아니라 몇가지 측면에서 부정적 평가의 변화도 수반한다고 짐작된다.

 

인공지능과 학교교육의 향방 (2)

이돈희 (서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인공지능의 충격

현재 인공지능의 특징을 지닌 정보매체로서 ChatGPT가 선두로 발명되어 이미 세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현대인의 삶에 충격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현대인의 삶, 오히려 미래인의 삶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소통의 매체가 새롭게 나타났다는 사실 그 자체로서 하나의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지식-정보는 이미 현대인과 미래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로 교육을 통하여 일구어 가는 생활세계의 모든 장에서 가장 필수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도구로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지식-정보를 생산하고 전달하고 교환하고 가공하고 확산하는 데 작용할 수 있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화려한 기대만이 아니라, 온갖 우려의 반응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기능을 전체적으로 평가하지 못한 상태이기도 하여, 세계의 교육계는 쉽게 반기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보기로 ChatGPT를 비롯한 인공지능의 매체가 가져다주는 영향은 우리의 생활 전면, 특히 교육부문에 “불가항력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 예측된다.

내가 보기로, 인공지능의 창출은 인류의 역사에서 언어의 사용, 인쇄술의 발명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 이상의 수준으로 우리의 생활에서, 특히 교육부문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반드시 긍정적인 평가만이 아니라 몇가지 측면에서 부정적 평가도 수반한다고 짐작된다.

얼핏 생각해 봐도 거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총체적으로 생각해 볼 때,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결과가 과연 교육적으로 긍정적일지 아니면 부정적일지를 짐작하거나 판단하기도 매우 어려울 것으로 비춰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이 가져다줄 교육적 영향을 그냥 체념상태에서 수용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여기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검토해야 할 몇가지 문제와 과제를 중심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1) 소통의 수단과 소통의 방법, (2) 인간적 지능과 기계적 지능의 차이, (3) 지식과 정보의 학습적-교육적 차이, (4) 인공지능의 매체적 효용성과 한계성 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한 가지 미리 부연해 두고자 한다. 논자인 나는 물리학, 수리학, 전자공학, 정보학, 미래학 등의 범주에 속하는 과학적 전문가가 아니며, 오직 교육학적 시각에서 급변하는 인공지능의 영향과 가치를 평가하는데 일차적 관심을 둔다는 것을 밝혀 둔다.

소통수단의 발달과 학습제도의 변화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언어를 사용하는 독특한 생활양식을 취하고 있었다. 즉, 오래 오래전에 인류는 언어라는 의사소통의 도구를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인류는 또한 언어와 함께 그림, 조각, 조형물을 만들어 문화적 족적(足跡)을 남기며, 문자를 비롯한 상징적 소통의 도구를 발명하면서, 온갖 형태의 문명적 변화를 성취해 왔다. 문자의 발명과 사용은 학교라는 학습의 제도를 가능하게 하였고, 인쇄술의 발달은 지식-정보의 양적-질적 생산체제, 보존수단, 확산방식, 분석과 평가의 작업 등을 가능하게 하였다.

오늘의 현대사회에서 공유하는 이지적 자산은 원천적으로 언어를 비롯한 소통의 매체가 발달하면서 이룩하게 된 결과이다. 언어와 함께 발명되고 사용된 소통의 매체는 문명사에서 핵심적인 동인으로 작용해 왔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 세계의 문명사는 바로 소통의 매체가 가져온 변화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다.

언어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아마도,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객관화된 매체나 상징적 수단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주로 구체적 사물, 자연스런 감정, 내면적 생각의 내용을 행동으로 직접 나타내고자 했을 뿐이다. 객관적 매체가 없이 그냥 임의적인 수단으로 소통한 것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였던 미이드(George H. Mead)는 그러한 원초적이고 불특정한 매체적 수단은 “몸짓(gesture)”이라고 하였다. 몸짓은 신체적 동작 이외에도 소리에 의한 신호(제스쳐)까지를 포함하면, 애초에 사용한 소통의 수단중에는 “음성적 제스처”(vocal gesture)가 가장 자주 사용되고 편리했을 것이며, 이것이 바로 언어를 형성하는 소재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는 인간은 야생 동물을 사냥하고 가축을 기르고 작물을 재배하고 도구를 발명하는 활동에서 소통의 매체인 언어를 사용한 것이 문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의 변화와 인간의 행동을 표현하는 원초적인 소통의 매체인 언어는 새로운 삶의 양식, 즉 인간으로 하여금 공동체적 생활양식을 가능하게 하였다. 오늘의 경우처럼 급격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소통의 매체로 인한 인간생활의 변화는 놀라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는 음성적 제스처로만 머문 것이 아니라, 이를 다시 표상하는 문자가 제작되고 발달함으로써 인간의 이지적, 감성적, 동작적 특성은 객관화되고 체계화되었다. 또한 문자의 발명으로 인하여 필요에 따라 사유와 감정과 행적을 기록하는 수단을 마련한 것이 된다. 이러한 언어적 기호로써 소박한 수준이지만, 지식의 생산, 보존, 확산의 도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왕실과 사원을 비롯하여 경영의 규칙과 경전의 보급을 위하여 개발된 지식의 생산과 전수에 종사하는 문사적 요원들이 일종의 직종으로 생겨나고 그 수가 증가함에 따라서 이들을 양성하는 학교제도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고 개발하는 데 요구되는 능력을 학습하는 전문적인 제도로서, 특정의 교훈, 교의, 학설, 사상 등을 체계적으로 전수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교양적 지식과 전문적 자질을 기르는 곳이었다. 이러한 기능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 온 것이 소통의 또 다른 수단인 인쇄술, 교통과 통신기기의 발달이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에 지식의 수업은 주로 교사가 준비한 교재를 읽어주고 학생은 받아쓰기를 하거나, 선대의 학자가 개발한 교재를 암기하거나 모방하여 글을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인쇄술이 발달한 이후에는 학생들이 인쇄된 교재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형식의 학습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지식을 원거리에까지 전달하고 확산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되었다. 또한, 먼 후의 일이었지만, 시청각적 장비와 대중매체의 발달로 인하여 지식의 전달과 확산이 전례 없이 증가하였다. 가히 폭발적인 지식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현대, 특히 20세기의 후반에 이르러 전자정보적 체제가 발달하면서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가 예고되었다. 전통적인 학교에서는 인쇄술의 발명 이후에 다소 변화가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지식의 전달을 위주로 하는 교육이 20세기 후반까지도 그 대세를 이루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경고하게 지식의 전달과 암기의 수준에 머문 것은 아니지만, 학교교육의 대중화 내지 보편화가 진행된 상태에서도 교육의 내용은 여전히 전통적인 주지적 교과의 지식이 그 대종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21세기로 전환하는 무렵에 이르러 학교교육을 비롯한 제도적 구조와 기능은 자체의 경직된 관성에도 불구하고 소위 4차 산업중심적 지식정보체제의 개편과 함께 진행되는 시대적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야만 했다. 새로운 세기적 압력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학습의 내용은 문자로써 전달되는 지식(주로 명제적 지식)이 그 중심을 이루기는 하지만, 지식은 암기를 위주로 문자에 의존하는 명제적 지식에만 머물지 않고, 영상과 음향, 동영상, 그리고 입체인쇄까지를 전달하는 시청각적 매체가 발달하였다. 전자공학의 발달이 선도한 정보체제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이다. 교육의 내용은 이론적-인지적인 것만이 아니라, 감각적-질성적인 것을 포괄하기에 이른다.

학교교육은 문자로써 표현되는 어문주의(verbalism)가 추구하는 문자적 지식의 획득과 학습에 머물 수가 없었다. 사물의 속성과 감각적-감성적-작동적 내용을 포함하는 비문자적(나는 이것을 “질성적”이라고 함) 경험의 범주를 교육과 학습의 내용으로 광범하게 활용하게 되었다. 문자매체에 의존하던 전통적인 지식과 경험의 영계를 넘어 동영상까지를 포함하는 시청각적 매체의 발달은 전문적 교육기관의 틀에서 다소 제약을 받기는 하였다. 그러나 특히 평생교육의 개념이 등장하자 비형식적 교육의 틀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학습의 내용은 질적으로 다양하고 양적으로 크게 확장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그만큼 인간의 지능(지력)을 연마하고 성장시키는 학습의 장이 넓혀지고 인간 세계의 전문적-기술적 활동의 대상과 내용도 확충된 것이다. 인문학과 이론과학의 영역은 상대적으로 다소 정체감을 보였지만, 비문자적(흔히 일컫는 비주지적 교과의 내용에서 새로운 전문영역들이 정교하게 개발되고, 이에 따라 인간의 다양한 지력을 활성화하는 교육적 경험의 장이 폭넓게 확장되고 새로운 활력을 지니기 시작하였다.

이미 전통적 교육영역의 주류에 속해 있었던 공학계, 의약계, 농학계, 예체능계 뿐만 아니라, 각종의 스포츠 활동과 대중적 부문인 대중음악, 디자인, 영화, 연극, 공연, 조리, 미용 등을 포함한 대중문화의 영역이 광범한 파노라마를 이루게 되었다. 인간사회의 생산적-예술적 지력의 장을 새롭게 형성하고, 활발한 대중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장이 가히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인간의 탁월한 지력은 더 이상 전통적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인문과학, 기초과학, 응용과학, 전문과학, 실용과학 등으로 구분하던 경계 자체가 별로 큰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전문영역들이 미세하게 분화되고 재구성되는 추세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학술적-탐구적 영역의 분화와 재구성 현상은 탈근대(post-modern) 혹은 초근대의 현상이라고 지칭한 것으로 20세기의 말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왜 “인공지능”인가?

지금까지 소통수단의 체제는 언어, 문자 혹은 기호, 정보의 재생(인쇄), 원격전달, 시청각적 장비, 통신기기, 전산장치 등에 의한 정보의 전달 혹은 확산의 형태로 발달한 것이었다. 이러한 발달은 정보의 생산과 평가와 활용과 가공을 가능하게 하고, 기계적 전달, 교환, 재생산, 보급, 확산의 형태를 취한 것이다. 원천적으로 인간의 지능이 창조하고 재구성한 정보를 간단한 상징체제적 모형, 아니면 다소 복잡한 기계적 장치가 전달하고 전파하는 구조로 소통의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관심사인 인공지능에 속한 것도 일종의 기계적 장치와 작동을 의미하지만, 비록 원천적인 정보의 생산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재구성의 과정을 담당한다는 뜻에서 그만큼의 이차적인(즉 재창조적) 정보의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미 만들어진 정보들을 사용하고 재구성한다는 의미의 생산능력을 가진 "새로운 소통의 기제적 장치"(new mechanistic communication infrastructure)"에 “지능”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말을 적용하고 있다. 그 지능은 원천적으로 인간 지능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그 산물이 인간(의 지능)을 대신하여 새로운 정보들을 생산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셈이다.

“지능” 그 자체로서의 본연적 의미는 “인간적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억하고, 조작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자율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다. 인공지능은 다른 기기와는 달리 적어도 독특하게 그 자체로서 인간의 지능을 부분적으로 대신하여 정보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를 경외하고 감탄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즉, 사람이 해야 하는 조작을 기계적 특성 자체가 정서나 신체의 방애를 받지 않고 물리적으로 유리하게 감당하는 작동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 인공지능이 지닌 특징을, 즉 그 자체의 역량과 한계를 검토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정보”와 “지식”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분별하여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 “인공지능과 교육의 변화(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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