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있는 학업중단을 고민하는 다양한 학생에 대한 사회적 현상을 밝히고 이해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의 다양성을 알리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업중단 이야기>

그 많던 빌리는 어디로 갔을까?

정선영 교수 (서울사이버대학 대우교수)

  예술회관 광장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뮤지컬「빌리 엘리어트」를 보았다. 주인공 빌리는 어떤 구박에도 기죽지 않는 빛나는 존재였다. 보는 내내 어린 배우의 연기가 놀라웠고 마지막 장면에서 성장한 빌리가 백조의 호수와 함께 비상하는 모습은 소름 돋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누가 주목해 주지 않아도 발레를 포기하지 않는 의지에 대해 마음으로나마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학교에 있는 수많은 빌리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려고 할 때 결국에는 아낌없는 지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형구는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여기고 고등학교 진학조차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학교는 졸업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당부하는 부모님께 죄스러워 다니게 되었지만 늘 학교를 그만두고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중학교 때부터 책을 접하면서 자기 행복이 중요하게 생각되었고 학교에 있는 시간에도 책 읽기를 좋아해서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책을 더 가까이했다고 말했다. 글쓰기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으나 낮에는 등교하고 밤에 글을 쓰려다 보니 둘 다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최대 고민이었다.

  조용하고 조심스러우며 작은 체구를 가진 탓인지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을 막 대하는 친구들이 생겼다고 했다. 중학교 때와 똑같이 스트레스를 받는 교실에서의 시간을 버틸 생각에 앞이 깜깜하고 오늘은 어떻게 버티지!’ 이런 생각을 하면 더는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아 했다. 적응이 힘들어지자 자퇴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이미 마음을 굳혔고 자기 의지를 실행에 옮길 뿐만 아니라 잘 헤쳐 나갈 에너지도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고 싶은 일을 반대한다고 하려는 마음마저 사라지게 만들지 못하는 까닭에 나는 미리 사인을 받아 놔야 하는 거 아냐?”라며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그 말에 형구는 정말 사인이라도 해 줄 듯 시늉을 보이고는 자신을 응원하는 말이라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적성에 맞는,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고 말하는 얼굴에서 기쁨과 미래를 향한 결연한 의지가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형구에게서 빌리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우리 사회는 그 많은 빌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자신의 길을 갈 때, 자신을 이끄는 것은 적성이다. 어떤 일에 알맞은 소질이나 성격을 의미하는, 힘겨운 고난도 이겨 내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원하기 때문에 기꺼이 그 길을 가게 한다. 좋아하기 때문이란 이유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 그 안엔 실패도 포함되어 있다. 좋아했기 때문에 실패도 감수하고 다시 좋아하는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가는 길이 자기 삶이기 때문이다.

  적성이 중요한 이유는 무수히 많겠지만 나는 두 가지를 꼽고 싶다. 첫 번째는 오랜 기다림과 끈기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끈기가 필요하다. 적성은 힘든 시간을 견디며 끝까지 할 수 있게 하는 데 필수이다. 앤젤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의 저서 ≪GRIT(그릿)≫에서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그릿을 말하고 있다. 그릿은 성장(G), 회복력(R), 내적 동기(I), 끈기(T)의 줄임말로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투지를 의미한다. 책 내용에 의하면 능력도 중요하지만, 성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끈기 있게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생명력이다. 인생에는 연속적이지 않은 일도, 한 번에 끝나는 일 또한 없다. 한 번에 성공하기는 어려워도 실수나 실패는 수없이 많다. 그 속에서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도록 하는 힘인 생명력은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적성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이미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는 스스로 행로를 개척해야 하는 험난한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학교를 떠나 혼자만의 길을 가는 아이 대부분은 주변으로부터 지지와 지원을 받지 못해 모든 것이 힘겹다. 게다가 차별과 곱지 않은 시선이란 더 큰 짐을 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은 가족과 학교의 인정을 받지 못하며 자기 길을 가기 위해 주변의 반대와 싸워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하는 수심 어린 얼굴에서 마음의 무게를 충분히 짐작게 한다. 지지와 응원이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은 혼자서 짊어져야만 한다. 당면한 과제 앞에 어른들은 인생 경험을 내세우며 확인된 길을 가야 한다고 설득하거나 심지어 그들의 길을 가지 못하게 어른의 요구를 강요한다.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가 깊어져 결국 무기력의 늪에 빠지는 아이들도 여럿 경험했다.

  형구는 그 모든 것을 짊어지고 고등학교 1학년 때 학업을 중단했다. 인생은 자기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거라며 사는 게 어렵다고 하지만 자신이 좋아 하는 일을 하는데 못할 것도 없다는 말을 남기고 자신 있게 떠났다.

  자퇴한 지 1년이 지나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소설 공모전을 준비하는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생각도 바뀌어서 작가도 되고 대학도 가고 싶다며 앞으로 수시를 준비할 생각이라고 했다. 단체에서 청소년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처럼 왕따당하는 아이들에게 너는 잘못이 없다고 말해주겠다고도 했다. 견디기 힘들어서 자퇴를 생각하던 초기에는 복잡하고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지금은 왕성한 활동으로 바쁘게 지낸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그 당시 나는 "내 자녀라도 학업중단을 지지했을까?" 하며 생각을 검열했었다. 남의 일이라고 편하게 말한다는 핀잔에서도 자유로워야 학생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 필자는 전공을 내려놓고 다른 것을 선택해야 했던 힘든 시절을 겪었다. 간혹 학교에 가는 것이 효율적이긴 해도 유일한 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형구와 같은 아이가 있다.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가 어쩌면 더 빠르게 자기 길을 찾아갈지도 모른다. 이 경우 학업중단은 오히려 축복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성장 가능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을 때 응원하고 도와주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

  정선영 교수는 학업 중단은 개인의 차원이라기보다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한다. 박사 과정에서 학업 중단 관련 상담 모델을 개발하며 예방 연구에 발을 들여놓았다. 학교에서 만난 소외된 아이들 개개인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 있는 학업중단을 고민하는 다양한 학생에 대한 사회적 현상을 밝히고 이해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의 다양성을 알리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업중단 예방 공로로 교육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학업중단 예방을 위한 학습활동을 통해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며 일맥상통하게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문제 인식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에듀인뉴스(EduinNews) = 인터넷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