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부모 뿐만 아니라 교사들조차 학교에 대해 성적을 위한 노력과 성장을 위한 배움으로 이끄는 일, 두 가지 모두를 바라고 있다. 수능 위주의 교육에서 나아가 학습과 배움이 더불어 존재하는 학교에서 성장하고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때 학교에 다니는 가치를 스스로 찾아내게 될 것이다. 

<학업중단 이야기>

학교 안에서 성장하고 싶다

정선영 교수 (서울사이버대학 대우교수)

  그 아이가 학교를 나오는 이유는 졸업장 때문이었다. 검정고시로 졸업하는 것 외에 어쩔 수 없이 정해진 대로 해야 하는 현실, 그것이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의 현주소다. 시험 위주의 틀에 박힌 수업을 진행하는 3학년 과정은 버티기 힘들었다. 실제로 수능시험을 보려는 학생은 정시 진학을 목적하거나 대학에서 수능 시험 과목 점수의 최저점이 있는 전형에 지원하는 이들이다. 그 아이는 수능 시험을 보지 않을 생각이라 학교에서의 공부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수업 시간에 다른 것을 할 수 있게 허락하는 것도 아니어서 매일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만큼 허비하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반복했다. 웹툰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굳이 대학엘 가지 않아도 작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지만 대입 준비 공부가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지내는 모든 시간 동안 책이나 공책에 만화를 그렸다. 수업 과목과 관계없이 그림 그리는 시간만 있는 것처럼 지냈다. 

  학교 성적은 선생님의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8등급으로 최하위 수준이다. 그래도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며 2년을 견뎠다. 하지만 수능 성적이 필요한 학생은 소수에 불과한데 학교에서는 문제 풀이 중심의 교육에 몰두한다는 불만을 품고 졸업을 몇 달 앞둔 찬란한 여름에 학교를 떠났다. 

  우리나라 평균 대학 진학률은 지난해 73.7%다. 많은 아이가 대학을 진학하는 가운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엘 가지 않을 아이들은 27%에 이른다. 엄밀히 말하면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은 73%의 아이들에게만 유의미하고 나머지 27%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소외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73%의 아이들이 모두 정시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극소수만 해당할 뿐 대부분은 수시로 대학에 들어간다. 지난해 수시와 정시 비율은 대략 3대 1 수준으로 4명 중 세 명은 수시를 통해 대학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서의 학습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주된 목적으로 대입을 준비하는 곳이 된 지 오래다. 수업 시간은 곧 시험공부를 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학교가 공부만 하는 곳으로 여겨지기 쉽다. 눈에 보이는 숫자의 상승 여부가 기준이 된다. 공부는 얼마나 했는지, 등급이 올랐는지 등이 중요하다. 대학엘 진학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시간엔 배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학교에서는 학습 이외에 또 다른 배움이 있어야 하지만 그러한 배움은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배움은 사람을 키우며 인격을 기르고 생명을 소중하게 만드는 힘이다. 타인에게 함부로 하지 않으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 한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스스로 치유하도록 자기를 연마하는 것이 배움이다. 우리 교육이 공부하지 못해도 학교에서 배움을 통해 가치를 얻게 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학령기 인생의 출발에서부터 공부 못하는 아이로 찍힌 심리적 기저에는 수치심이 먼저 자리를 잡는다. 상급 학교로 진학해서도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은 공부 시간에 잠을 자거나 모둠 활동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오는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누구도 이런 행동에 가려진 근본적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훈계하거나 혼내고 부모를 호출해서 아이의 문제를 확인시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공부하려는 마음이 있어도 수업 시간에 내용을 알아듣지 못해서 공부가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공부를 못하면 학교 가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학교를 공부만 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만의 탓이 아니라 다양성을 제공하지 못한 학교에도 원인이 있다. 무언가를 가르침이 일어나기 이전에 교사와 아이들의 라포 형성과 상호작용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학령기는 자신에게 유익한 어떤 것을 발견하는 시기이다. 관계 형성과 흥미로운 수업 경험은 호기심을 발동시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하지만 공부의 즐거움을 알아가게 하지 않는 학교라면, 다양한 학습과 배움이 어우러진 수업이 아니라면, 그래서 아이들의 시간을 낭비하는 곳이라 생각하게 한다면 아이들은 중요한 삶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상태로 학령기를 보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자인 선생님의 신념은 개인적 판단을 넘어 공익에 영향을 미친다.

  부모들은 자녀가 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될 때면 더욱 긴장하곤 한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챙겨 주는 것도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부모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선생님’이다. 특히 자녀가 소속된 반에 되도록 좋은 선생님이 오길 바란다. 선생님을 잘 만난다는 것은 그 해를 잘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마음 놓이는 일이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좋다’의 의미는 서로 다를지도 모른다. 자녀와 같은 성별인 교사일 수도 있고, 에너지가 많은 사람일 수도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선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선생님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만큼은 공통적이다. 가르침의 기저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의식에 깔린 것이다. 그런 선생님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학교에 머무는 것만으로 이롭다는 믿음은 여전하다. 학교엔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가 존재한다. 배움은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수업 시간뿐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는 경험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협동이 요구되는 학교는 학생들의 삶의 공간으로서 배움이 일어나기에 충분한 장소인 까닭이다. 교사도 성장하는 장소로 변화하려는 공동체의 움직임을 기꺼이 수용해야 가능한 일이다. 학생, 부모뿐만 아니라 교사들조차 학교에 대해 성적을 위한 노력과 성장을 위한 배움으로 이끄는 일, 두 가지 모두를 바라고 있다. 수능 위주의 교육에서 나아가 학습과 배움이 더불어 존재하는 학교에서 성장하고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때 학교에 다니는 가치를 스스로 찾아내게 될 것이다. 

 

  정선영 교수는 학업 중단은 개인의 차원이라기보다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한다. 박사 과정에서 학업 중단 관련 상담 모델을 개발하며 예방 연구에 발을 들여놓았다. 학교에서 만난 소외된 아이들 개개인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 있는 학업중단을 고민하는 다양한 학생에 대한 사회적 현상을 밝히고 이해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의 다양성을 알리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업중단 예방 공로로 교육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학업중단 예방을 위한 학습활동을 통해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며 일맥상통하게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문제 인식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에듀인뉴스(EduinNews) = 인터넷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