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상처 받은 아이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들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청소년 시기에는 사춘기를 통해서 육체적인 성장과 더불어 정신적 성숙의 기회가 주어진다. 부모를 떠나 권위 있는 교사의 말 한마디가 그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학교에 있는 교원들이 생각하는 교육 철학이 중요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믿는다.

<학업중단 이야기>

상처 받은 아이가 있을 뿐이다

                                               정선영 교수 (서울사이버대학 대우교수)
                                                    정선영 교수 (서울사이버대학 대우교수)

  상담실 전화벨이 여러 번 울렸다. 은우의 담임 교사였다. 학생이 가출해서 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걱정하고 계셨다. 어머니와 싸운 후 집을 나가서 친구 집에 머물고 있는데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어떤 말도 듣지 않는 상황이라 난감하다는 이야기였다. 담임 교사는 아이가 위탁 학교로 등교하고 있어서 딱히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교사 자신이 은우 어머니를 만나기는 불편하고, 고집부리며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담임 교사가 은우와 종종 통화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교사는 한 달에 한 번은 와야 하는데 학교에 오지 않아서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위탁 학교는 학생이 원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선택한 학교로서 등교는 위탁 학교로 하되 한 달에 한 번은 원적 고등학교로 등교하는게 기본이다. 담임이 학부모와 자녀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는 일이라며 곤란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무슨 방법이 있는지를 물었다. 곤란한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바라는 것으로 생각했다. 오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 하라는 건지 나 역시도 고민이었지만 먼저 아이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는 것과 상담실 전화번호를 어머님께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틀을 전화하고 나서야 은우와 통화가 되었다. 위탁 학교의 수업 시간이라 전화를 못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오고 싶지 않다는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 두 차례나 더 통화했다. 상담실에서 만나기를 권유하며 등교하는 날에 맞춰 일정을 잡았다. 막상 만난 은우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계획이 있는 아이였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자신감이 충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며칠 동안 몸이 아팠던 까닭에 집에 들어가 있는 상태라고도 했다. 계속 집에 있을지는 아직 고민 중인 것 같았다.

  한 시간 동안의 대화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하는 것 같고, 집에 들어가는 문제도 알아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솔직한 느낌을 전달했다.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이해받아서 그런지 은우의 표정은 대체로 밝게 느껴졌다. 어머니와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집에서 잘해 주시고 있고 자신도 다시 집을 나가지는 않을 거라고 그 자리에서 다짐했다. 가출의 이유에 어머니와의 갈등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은우만 그런 게 아니라 아이들은 집 나가는 것을 무기처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어서 나오는 행동이다. 마음에 입은 상처를 드러내는 행동이라는 것쯤은 알면서도 어른 입장에서는 화나고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출 상태가 오래가면 돈 없고 마땅히 잠잘 곳도 없어 먹고 살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돼 버린다. 이런 경우엔 학업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진하는 신학기인데 보름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교문을 들어올 때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긴장된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외모에 대해 비난받은 이후로 대인 기피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학교를 나와야 한다는 생각과는 달리 교실에는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하고 몇 번을 돌아섰다. 진하는 아이들의 눈초리가 두렵다고 했다. 친구들이 좋으면서 관심을 받는 것은 싫은 양가감정(Ambivalence)에 시달렸다. 양가감정은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오이겐 블로일러(Eugen Bleuler, 1857~1939)가 소개한 개념으로 두 가지의 상호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를 말한다. 진하는 대인 기피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지가 꽤 되었는데 회복 속도가 더디다고 했다. 학령기 초기의 발달 과정에서 또래 관계 문제로 적응이 느리다 보니 해당 시기에 이뤄야 할 신뢰감, 안정감, 주도성과 같은 과업 달성의 지연으로 학교 부적응이나 또래 거부 같은 문제로 나타나게 된 것 같았다.

  진하를 졸업시키기 위해 학업중단숙려제에서 허용할 수 있는 기간을 최대한 활용했지만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했다. 자퇴한 진하는 티 나지 않게 아픈 아이였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상처는 마음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몸이 아프면 당연하게 병원엘 가고 아픈 사람을 보면 걱정하는 마음으로 위로의 말을 전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마음에 생긴 상처는 혼자 해결해야 한다. 감당하지 못할 무게를 혼자 도맡는 것이다. 오히려 내면의 상처로 인해 표출되는 행동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병을 더 키우는 경우가 많다.

 

  학교가 상처받은 아이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들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청소년 시기에는 사춘기를 통해서 육체적인 성장과 더불어 정신적 성숙의 기회가 주어진다. 부모를 떠나 권위 있는 교사의 말 한마디가 그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학교에 있는 교원들이 생각하는 교육철학이 중요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믿는다.

  몸이 아플 때 위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마음의 상처가 있는 아이들을 아픈 아이로 인정해 주면 좋겠다. 난감한 대상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마음의 상처가 나을 때까지 걱정하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은 마음속 깊이 기억한다. 학창 시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선생님이 많을수록 행복한 성인으로 자라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선영 교수는 학업 중단은 개인의 차원이라기보다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한다.  박사 과정에서 학업 중단 관련 상담 모델을 개발하며 예방 연구에 발을 들여놓았다. 학교에서 만난 소외된 아이들 개개인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 있는 학업중단을 고민하는 다양한 학생에 대한 사회적 현상을 밝히고 이해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의 다양성을 알리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업중단 예방 공로로 교육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학업중단 예방을 위한 학습활동을 통해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며 일맥상통하게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문제 인식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숭실대학교 교육학 박사이며 서울사이버대학교 대우교수다.

 
 

[에듀인뉴스(EduinNews) = 인터넷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