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추고 시선을 들어 멀리 보아라. 코앞에 있는 대학만이 아니라 시야를 좀 더 멀리했다면 어떤 일이든 신중하지 않은 결정은 안 했을지도 모른다. 싫은 일을 잘 끝낸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훨씬 더 많은 만족을 경험한다. 그것을 위해 지급했던 힘든 대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짧은 미래의 계획도 없이 학업중단을 생각하는 아이는 자신이 얻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해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필요가 있다. 인생이라는 큰 맥락에서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건지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까닭이다.

<학업중단 이야기>

 코앞만 보지 말고 멀리 보아라

                                               정선영 교수 (서울사이버대학 대우교수)
                                               정선영 교수 (서울사이버대학 대우교수)

  큰 그림은 사람을 물러서게 만든다. 비로소 그림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 까닭이다. 성취하고 싶은 일일수록 한발 물러서야 하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면 쥐고 있는 어떤 것을 놓아야 한다. 멀리 내다볼 때 눈앞의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지나가는 사건마다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을 수 있다.

  19세기 말 아르 누보 화가인 알폰스 무하. 나는 섬세한 곡선이 매혹적인 무하 스타일을 좋아한다. 전시회를 관람한 사람이라면 화려한 장식을 한 그림 속 여인들에게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현상의 모습이라기보다 여성성과 신비함이 강조된 환상적인 포스터. 그는 포스터 그림으로 예술의 도시 파리를 들썩이게 했던 작가다. 지난여름 그의 전시회에서 그림을 자세히 감상하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림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여성의 모습은 그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눈이 아플 만큼 뚫어지게 바라보는 관람 태도는 그림을 자세하게 보게 하는 데 그만이었다. 작가의 붓 터치마저 보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림을 보기 위해 서너 발짝 물러섰을 때, 가득 찼던 시야에 여유가 생겼다. 순간 눈앞에 가까이 보이는 것에만 몰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좀 더 뒤로 물러서자 벽면에 걸린 시리즈 그림의 흐름이 느껴졌다. 사계절, 문학, 보석 등 여인의 모습들로 의인화한 시리즈물을 보석의 원색에 맞춰 그렸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세밀함에 집착하다 전체적인 조화를 놓칠 뻔한 기억이 있다.

  지환이는 원격 학습을 경험한 후로 학교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인터넷 강의는 가격도 저렴하고 혼자서도 할 만하다고 여겼다. 공부할 채널도 많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잘 모르는 부분은 인터넷 강의로 채우고, 시험에 응시할 과목만 선별해서 공부하면 시간적인 여유를 벌 수 있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에는 학교에서 또래끼리 소통하고, 함께 공부하며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이 목표였기에 자퇴를 빨리하고 싶어 했다. 이공계라고 생각만 했지, 학과는 정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효율적인 공부를 원하는 지환이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해서 전공하려는 이유가 있을 법도 한데 오로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외에 하고 싶은 것과 계획이 없다는 말은 우려하게 했다.

  학업중단을 하고 안 하고를 결정하기 전에 ""를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뻗으면 쉽게 닿을 수 있는 이익에 집중할 때, 주변에 있는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스스로 상상하지 않은 것은 결코 이룰 수 없기에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제는 조급한 아이들은 참는 연습이 잘 안되는 점이다. 그래서 스스로 싫은 것을 견뎌 내는 게 어렵다고 판단한다. 뭘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 작은 성공마저도 경험하기 어렵다. 잘하는 아이들에게 치였던 기억으로 인해 안 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매번 같은 곳만 바라보면 다를 것이 없지만 같은 사물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새로운 세계가 될 수 있다. 잘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이미 열정과 능력을 발휘해왔다. 경기할 때, 실험할 때, 응원할 때, 자기가 좋으면 시키지 않아도 열성적으로 해내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아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고 있다.

  또 하나는 가려는 방향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점이다. 대학 진학 후에 학업을 중단하는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장기적인 인생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코앞에 있는 대학 입학만을 바라며, 합격을 위한 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들어갔을 뿐이다. 입학 후 대학에서 요구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못하고 적성이 아닌 것 같은 생각으로 학업 과정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결국 힘들게 들어간 대학을 포기한다. 대학만을 목표로 공부한 사람은 목표를 이루는 순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이유는 1년 후, 5년 후의 인생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작은 결실이 이어지면 큰 결과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일부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방향성 없이 만들어 낸 결실은 노력하는 에너지에 비해 위대한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먼저 만들 작품을 구상하고 연관성 있는 작은 승리의 경험을 쌓아 가는 것이 순서다.

 

  잠시 멈추고 시선을 들어 멀리 보아라. 코앞에 있는 대학만이 아니라 시야를 좀 더 멀리했다면 어떤 일이든 신중하지 않은 결정은 안 했을지도 모른다. 싫은 일을 잘 끝낸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훨씬 더 많은 만족을 경험한다. 그것을 위해 지급했던 힘든 대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짧은 미래의 계획도 없이 학업중단을 생각하는 아이는 자신이 얻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해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필요가 있다. 인생이라는 큰 맥락에서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건지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까닭이다.

 

정선영 교수는 학업 중단은 개인의 차원이라기보다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한다. 박사 과정에서 학업 중단 관련 상담 모델을 개발하며 예방 연구에 발을 들여놓았다. 학교에서 만난 소외된 아이들 개개인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 있는 학업중단을 고민하는 다양한 학생에 대한 사회적 현상을 밝히고 이해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의 다양성을 알리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업중단 예방 공로로 교육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학업중단 예방을 위한 학습활동을 통해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며 일맥상통하게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문제 인식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숭실대학교 교육학 박사이며 서울사이버대학교 대우교수다.

 

 

[에듀인뉴스(EduinNews) = 인터넷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