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이 경쟁과 조급함보다 타인과 다른 자신만의 빠르기로 한 단계씩 오르는 환경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꾸준히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동력을 멈추지 않게 하는 일, 그것이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최선이다.

<학업중단 이야기>

친구들을 보면 나만 못난 사람 같다

 

                                                    정선영 교수 (서울사이버대학 대우교수)
                                                    정선영 교수 (서울사이버대학 대우교수)

 

남이 나보다 잘한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 대부분은 부러움을 느낀다. 자신만 못하는 것 같아 위축되고 불편할 때가 있다. 잘하는 상대를 보면서 잘하는 게 있으면 못 하는 것도 있겠지, 생각하면서도 당장 인정하기 싫은 게 사람이다. 

학교는 시험이란 속성에 따라 순위 매기기와 서열화로 늘 경쟁의 연속이다. 아이들은 수치 경쟁에서 밀리는 것을 실패로 여기기도 한다. 성공뿐 아니라 실패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임에도 패배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자신은 괴롭다. 아무리 잘해도 등급이 있는 사회에선 일등이 있으면 꼴찌도 생기게 마련이다. 자부심이 떨어지면 이런 생각에 더욱 몰두하기 쉬워진다. 

 

고등학교 1학년 창의 융합 반 상엽이는 수학 수업을 거부했다. 유독 수학 시간에 실시하는 모둠 활동만큼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수학 교사는 생각지도 않게 학교를 그만두려는 이유가 되는 바람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학 시간은 모둠으로 이루어진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다. 모둠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개별적인 능력이 발휘될 때 활동의 결과가 좋았다. 

창의 융합 반은 학교에서 인재 육성 목표에 중점을 두고 운영되는 반이다. 여러 방면의 창의적 감각을 키우는 체험 학습과 아카데미 운영 등으로 진로와 연계되도록 운영하고 있어 관심 있는 아이들이 많다. 상엽이는 그런 창의 융합 반에 들어가고 싶었다. 자신도 그 반의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잘하는 아이는 너무 잘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정도였다. 반 아이들의 성적은 최상위권 소수와 중위권 다수로 구분되었다.  

상엽이는 다른 아이보다 공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향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려는 의지만큼은 충만한 것으로 보였다. 공부를 힘들어하면서도 하고자 하는 의욕 하나로 창의 융합 반에 지원했으나 잘하고 싶었던 마음과 달리 그러지 못했다. 공부하지 않아서 불안하고 능력이 되지 않는 자신에게 실망하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날이 많았다. 수행 평가에서도 조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자책했다. 이바지하기는커녕 자신에게 맡긴 소임을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과 실제로 팀 점수를 깎아내린 일로 인해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다며 자신을 조에서 제외해 달라고 떼를 썼다. 그게 안 되면 모둠 수업 방식을 바꿔 주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상엽이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수학을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고등학생 10명 중 7명(72%) 정도의 학생들은 여전히 수학을 힘들게 생각해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과 비교하면 수학은 교과서가 바뀌면서 내용도 많이 준 편이라고 한다. 학교에서는 단위 수를 줄여 수학을 가르치고 인문학에서는 수학 계열 세 과목인 기하, 미적분, 확률과 통계 중 한 가지만 선택해도 되도록 완화되었다. 천천히 배우고 쉬운 과정부터 어려움 없이 이어지게 하겠다는 취지다. 그럼에도 전과 비교해서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등급으로 평가되어 아이들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학교의 현실도 문제다. 세간에는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머리가 좋다거나 논리적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천재들은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학교 현실은 이것과 조금 다르다. 수준의 평가는 수학 문제를 짧은 시간 동안 정확하게 많이 푸는 것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고등학교 수학은 사고가 남다른 아이들보다 문항을 기계적으로 풀어내는 아이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간을 두고 풀거나 성취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문제 풀이에 집중하는 수업이 힘든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과목에 비해 의미가 크다는 생각으로 인해 아마도 학령기 과정이 끝날 때까지 신경 쓰이는 과목이 아닐까 한다.  

수학이 학생들을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닐 텐데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먼저 수학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학은 다른 과목에 비해 이전에 배운 내용들이 반복, 심화된 내용으로 이어진다. 이전의 개념을 알지 못하고 풀이 방법을 모르면 문제를 풀 수가 없다는 뜻이다. 개념에 대한 반복 학습과 정리를 잘해 두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모둠으로 진행하는 수업은 개인적 역량도 필요하지만, 거꾸로 방식이나 수행 과제에 필요한 정보를 미리 찾아보는 과정이 선행될 때 조원의 참여가 활발해진다. 이러한 기초 활동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하게 경쟁을 부추겨 조원들 사이에서 경합에 매몰되지 않게 해야 한다. 또한 학생의 수준에 맞는 수업이 중요하다. 일방적 수업, 일률적 참고서가 아닌 자기 성적에 맞는 수준별 지도와 능력에 따른 수준별 참고서를 통해 자신의 실력보다 타인과 비교하는 공부 방법은 지양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과 경쟁 심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스트레스를 완화에 도움이 된다. 자기보다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자신만 못났다는 생각을 자동적으로 사고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기여할 수 없을 때 차라리 제외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회피 성향이 높다. 남보다 많이 뒤처져 보이는 것은 자신이 의식하는 약점 때문이다. 부럽고 화가 나는 것은 자기 안에 그만한 에너지가 있어서인데 문제는 약점을 자기 내면에서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가운데서 찾는 것에 있다. 자기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것에 기초해 부족함을 메워갈 때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재미가 붙고 실력이 늘어나면 자신의 우월한 부분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세상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사소한 일에도 잘하는 아이들과 비교하면 좌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는 경험은 누구나 하지 않는가. 때로는 영원히 군림할 수 있는 왕좌가 없고 전성기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 위로되기도 한다. 장미는 5월에 찬란하고, 배롱나무는 8월 무더위가 한창일 때 가장 예쁘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 교육이 경쟁과 조급함보다 타인과 다른 자신만의 빠르기로 한 단계씩 오르는 환경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꾸준히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동력을 멈추지 않게 하는 일, 그것이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최선이다. 

 

정선영 교수는 학업 중단은 개인의 차원이라기보다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한다. 박사 과정에서 학업 중단 관련 상담 모델을 개발하며 예방 연구에 발을 들여놓았다. 학교에서 만난 소외된 아이들 개개인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 있는 학업중단을 고민하는 다양한 학생에 대한 사회적 현상을 밝히고 이해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의 다양성을 알리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업중단 예방 공로로 교육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학업중단 예방을 위한 학습활동을 통해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며 일맥상통하게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문제 인식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숭실대학교 교육학 박사이며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서울사이버대학교 대우교수다.  

 

[에듀인뉴스(EduinNews) = 인터넷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