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전통' 속에서 창의력을 키워나가는 영국 교육

이병곤 경기도교육연구원 전문연구원

영국 유학, 몇 살 때 보낼 것인가?

영국으로 자녀를 유학 보내려는 학부모가 가장 궁금해 하는 사실은 ‘언제’ 보내는 것이 가장 적기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내 아이의 유학 목적이 명확하게 무엇인가?”를 결정하거나 합의해야 한다.

그런 다음 영국의 학제가 어떻게 편성되었는가를 조사해 봐야 한다. <표 1>을 살펴보자.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실행되고 있는 학제이다. 초등학교를 만 4세부터 일찍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중고등학교 체제가 우리와 사뭇 다르기 때문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표에서 ‘중등학교’라 표시했는데, 이는 5년제 중고 통합학교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어지는 ‘대입 예비 칼리지’는 후기 중등교육의 역할을 담당하며 우리나라의 고교2~3학년 과정에 해당한다.

16세에 이른 전기 중등학교 졸업생 가운데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약 3분의 1 가량의 학생들만 이 칼리지에 진학하며, 다른 학생들은 계속교육 칼리지(Further Education College)에 진학하여 직업기술교육을 받는다. 다만 계속교육 칼리지로 진학한 학생이라도 나중에 대학 교육을 원할 경우 그쪽으로 진학할 수 있는 자격증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중등학생의 경우 자녀가 몇 살 때 영국으로 유학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을까? 일반적으로 중학교 2학년 전후가 가장 적합하다. 왜 그런지 들여다보자.

영국에서는 중등학교 11학년인 만 16세 때에 ‘중등졸업자격증명시험(GCSE)’을 치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졸업장’을 받아야 학교를 마친 것이지만 영국 중등학교나 대입 예비 칼리지에서는 그런 ‘졸업장’이 없다. 대신 각 과목별도 취득한 자격증이 학력을 입증한다. 예를 들어 ‘저는 영어A 자격증, 수학B+ 자격증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며, 실제로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과목별 등급을 적시하도록 되어 있다. 앞서 말한 대로 16세 때에 보는 GCSE 시험, 그리고 18세 때 보는 A레벨 시험(우리의 수능고사에 해당)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GCSE와 A레벨 시험은 모든 과목이 거의 모두 주관식으로 출제된다. GCSE는 학생들의 학업 능력에 따라 8과목~12과목 정도를 선택해서 보는데, 대입시험인 A레벨을 준비할 때는 거의 예외없이 GCSE에서 선택했던 과목들 가운데 자신이 진학하고자 하는 학과에서 필요한 과목 3~4가지를 선택한다. 그렇지 않으면 칼리지에서 교과를 가르치는 담당 교사가 입시를 지도하기 대단히 힘들뿐만 아니라 학생 자신도 무척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일반적으로 GCSE 준비를 시작하는 10학년 새학기에 유학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 학년도는 매년 9월에 시작된다.

유학하게 될 자녀가 현지의 생활 문화를 익히면서 언어 능력을 더 키워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중학교 1학년 봄 무렵에 유학을 떠나는 것이 더욱 더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유학 경비는 얼마나?

다음으로 학부모들이 궁금해 하는 점은 ‘유학 경비가 얼마나 드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웬만한 중산층 가정이 감당하기에는 큰 부담이 든다. 영국인이 공립 중등학교와 대입 예비 칼리지에 아이를 보낼 경우 학비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외국인은 자녀를 공립학교로 유학시킬 수가 없고, 오직 사립학교에만 입학이 가능하다(다만 부모나 부모 중 한 사람이 유학이나 사업, 파견 근무 등으로 인한 특수 목적 비자를 갖고 입국했을 경우 자녀들의 공립학교 입학이 허용된다).

영국인 학생들 가운데 학비를 내야하는 사립학교에 다니는 비율은 대략 7%정도인데, 영국 중층조차 학비 지출을 힘들어할 만큼 비싸다. 사립학교 안에서도 다양한 학비 격차를 나타내고 있어서 단정하기 힘들지만 2014년 현재 사립학교 연간 평균 학비는 2064만 원 정도로 나타났다. 영국 가정의 평균 연봉이약 4500만 원인 사실을 감안하면 자녀 1인의 사립학교 학비가 연간 평균 소득의 45%를 차지하는 셈이다(2014년 로이즈은행 조사자료). 세계적으로 유명한 귀족형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의 경우 다른부대비용을 제외한 ‘순수 학비만’ 5800만 원이 든다.

부모를 동반하지 않는 유학생의 경우 추가 비용이 더 든다. 기숙사비, 부모를 대신하여 학생들의 유학 생활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질 법적 대리인인 ‘가디언’ 비용, 방학 기간에 귀향할 때 필요한 항공비, 그리고 사립학교마다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는 방과 후 레슨이나 레저, 스포츠 참가비, 학교에서 진행하는 해외연수참가비 등이 그 사례이다. 이런 비용과 학비를 합산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연간 5000만 원~6000만 원이라는 ‘최소경비’가 필요하다(영국의 사립학교 입학과 관련된 정보는 영국사립학교협회 웹사이트에서 더 자세히 찾아볼 수 있다.(http://www.isc.co.uk)

대학 학부 시절부터 유학 생활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선 외국에서 A레벨을 준비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험은 우리나라 수능처럼 하루에 여러 과목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문제가 주관식으로 출제되고, 한 과목당 3~4일에 걸쳐 띄엄띄엄 시험을 본다.

만약 어느 학생이 대학입시로 세 과목을 선택했다면 5월 한 달 내내 며칠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시험 날짜에 맞추어 9일 이상 시험장에 가야한다. 또한 이 시험은 13학년 졸업생만 치르는 것이 아니다. 12학년 학생들도 AS레벨이라 하여 최종 대입 시험보다 약간 난이도가 낮은 시험을 꾸준히 치르면서 과목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게다가 학생들은 동일 과목을 2회 이상 응시해서 두 가지 시험 결과 가운데 나은 것을 자기 점수로 선택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영국의 A레벨은 벼락치기 준비나 족집게 과외로 단기간에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체계가 아니다. 그렇기에 영국 내 대입예비 칼리지 제도 밖에서 시험 준비하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1999년 이후부터 영국인들도 대학 등록금을 내는 것으로 고등교육 제도가 바뀌었다. 내국인의 연간 평균 학비는 1500만 원 정도이고, 외국 유학생들은 평균 1600만 원~2500만 원까지 다양하다. 특히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은 4100만 원을 웃돈다. 다만 스코틀랜드에 소재한 대학들은 아직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유럽 대륙의 제도를 견지하고 있어서 100만 원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 입학하는 경로는 학부 입학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자신의 학업 계획서, 입학 지원 동기, 재정 증명서, 학부 성적 증명서, 영어로 수학할 능력을 보여주는 시험 결과 증명서 등을 제출하여 지원하면 된다. 학비는 앞서 제시한 학부 수준과 같거나 약간 더 비싼 편이다.

영국 교육기관의 매력은?

그러면 이처럼 학교에 입학하기도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학비를 지불하면서까지 굳이 영국 유학을 해야 할 필요성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각 분야에 걸쳐 영국의 학문 수준이 아직도 높은 차원을 유지하고 있다는 장점을 들고 싶다. 물론 영국 내 대학생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대학 간 격차도 엄존하고, 어떤 지도교수와 만나서 공부했느냐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겠지만 학부, 대학원 과정 공히 창의성을 놓치지 않고, 성실하게 연구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학자들이 포진해 있다. 그러므로 학생이 희망하는 진로에 적합한 학문 분야와 해당 분야에서 학식 있는 교수를 잘 찾기만 한다면 미래를 설계하고 실현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대학에서 지도교수와 학생 사이에 1:1로 수업하는 ‘튜토리얼 방식’의 장점을 취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중세의 ‘도제식’ 수업 방법에 대해 영국 사회는 찬반양론이 아직도 뜨겁다. 그럼에도 나는 튜토리얼을 통한 학습을 높이 평가한다. 영국 대학의 지도교수는 학생보다 앞장서서 무엇인가를 가르치려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공부하고, 고민해온 만큼 글이나 말로 표현하도록 하며, 그것을 기준으로 배움의 단계를 조금씩 진전시켜 나간다. 논문을 지도할 때 뼈대부터 급히 세우려하지 않고, 학생들이 벽돌 한 장씩을 정성들여 찍어나가도록 유도한다. 튜토리얼을 해나가면서 학생과 지도교수는 같은 설계자의 입장에 서서 토론하며, 그 과정에서 설계도가 몇번씩이나 바뀌기도 한다. 나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터득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영국 사회가 가진 독특한 문화를 체화할 수 있다. 특히 사립학교는 영국의 중산층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다. 정직성과 신뢰가 중요한 가치이며, 타인을 돕고, 공동체의 가치를 함께 추구하려는 전통이 아직 살아남아 있다고 본다. 이른바 ‘신사도’가 지켜지는 현장에서 영국식 언어와 가치를 자연스레 내면화 하게 된다. 이런 문화는 대학에 진학해서도 연속성을 가진다(이 또한 지역, 대학의 편차에 따라 다양한 격차가 존재할 수 있다). 나는 유학 시절 낮에는 중산층 문화가 압도하는 대학원 내에서 생활했고, 밤에는 노동계층 문화가 흘러 넘치는 런던 동부 헤크니(Hackney) 지역에서 살아갔다. 양쪽의 계층 문화는 확연히 달랐지만 자기와 다른 ‘타자’를 관용으로 대하고, 색다름을 존중하며, 공정성을 유지하려는 근본정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학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

유학의 목적은 다양하다. 자녀의 외국어 실력이 현지인 수준으로 늘어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한국 사회에서 더 크게 용인 받고 있는 ‘외국 학위’를 취득함으로써 노동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고 싶은 욕망도 작용한다. 또는 국내 중고교의 ‘살벌하지만 무의미한 경쟁’ 속으로 자녀들을 밀어 넣지 않겠다는 의지 아래 해외로 고비용 구름다리를 놓아주려는 부모도 있을 수 있겠다.

어떤 경우든 유학은 자녀들의 ‘존재를 이전’하는 중대한 가족 프로젝트이다. 자녀가 외국에서 중등학교를 마치게 될 때 그들의 마인드는 ‘한국적인 맥락’에서 상당한 거리를 갖게 되며, 심한 경우 해당 유학 국가의 정서와 세계관을 더 강하게 가질 수도 있다. 어찌됐든 자녀가 선택한 유학 대상국과 모든 가족 구성원이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게 된다. 일년에 최소한 한 번 이상은 그 나라를 방문할 것이며, 그 나라에 대한 좋은 소식이든 좋지 않은 소식이든 해외 뉴스에 등장하면 유심히 경청하게 될 것이다.

성공적인 유학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고려도 면밀하게 따라야 하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녀의 장래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시간이라는 ‘기회비용’을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비록 자녀를 유학시킬 객관적 조건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유학을 통해서 자녀가 ‘어떤사람’이 되고 ‘어떤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지 온 가족이 모여 숙고해 보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다. 자녀의 유학이 계기가 되었지만 결국 다른 문화권에 대한 가족 전체의 경험과 이해가 늘어난다. 결국 자녀들의 유학을 통해 바깥에서 형성된 새로운 관점으로 자신과 가족들의 삶,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단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첫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