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중심으로

<에듀인뉴스 정책토론 '교육평가제도와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에 참석한 (왼쪽부터)민경찬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남수 EBS 이사장, 백순근 서울대 교수의 모습. 사진=에듀인뉴스>

참석: 민경찬 연세대 특임명예교수,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 백순근 서울대 교수, 서남수 EBS 이사장
사회: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전 교육부 장관)

사회 사실상, 평가는 학교의 학생들만이 받는 것이 아니라, 학교도 받고 교사도 받고, 여러 형태의 기관도 받고 여러 가지 목적으로 실시되는 프로그램도 받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평가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가의 결과에 따라서 칭찬이나 보상을 받기도 하고 징벌이나 불이익을 입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하여 긴장하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학벌중심 사회, 서열중심 사회, 성과라는 개념 모두 평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평가가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작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도 평가 자료를 중심으로 정책을 구상하고 결과를 예측하려 합니다. 교육 수요자 쪽에서도 각종 기회에서 점수를 많이 받아 좋은 성적을 거두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사력을 다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가 에듀인뉴스 정책토론 '교육평가제도와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에 참석해 한국 평가제도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에듀인뉴스>

박도순 평가만능주의의 폐해라고 봅니다. 평가가 제대로만 된다고 하면 쓸모가 있지만 잘못된 평가를 하는게 문제입니다. 그 잘못된 이유는 한줄 세우기, 전문성이 없는 평가 등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사회 오늘 이 자리에서는 학습평가, 진학관련평가, 각종 임용 시험, 채용 및 선발고사, 그리고 5.31 교육개혁 방안 이후에 활발하게 진행된 기관평가, 대학평가 등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이처럼 평가가 여러 부분에서 영향을 미치다 보니 평가가 경쟁체제의 바로미터(barometer)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소위 경쟁력 있다는 것은 평가를 잘 받았다는 것이고, 경쟁력이 없다는 것은 평가를 잘 못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선 학교의 학습평가제도에서 문제가 되지만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객관식과 주관식 문제,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등이 해당합니다. 우선 학교에서 실시하는 학습평가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박도순 학교평가에 대한 기본 철학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학교가 평가를 통해 우열을 나눠 보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인지, 아니면 교육의 본질을 달성하고자 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는 도움을 준다는 개념보다는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도움을 주기 위해 예컨대 인성교육과 창의성교육을 외치면서 반대되는 교육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오히려 학교의 평가가 본질을 해치는 역할을 합니다. 본질을 해치지 않는 역할만이라도 제대로 한다면 저는 성공이라고 봅니다.

교육의 본질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경쟁입니다. 평가를 통해 학생들을 판단하는 자료로만 사용합니다. 즉, 평가라는 것을 판단하는 활동으로만 생각하기에 평가를 잘 받기 위해 경쟁이 격화되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고부담 평가입니다. 돈만 많이 들여 진행하는 평가입니다. 현재 학교에서 진행되는 평가는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평가의 70% 이상은 학교 교육을 지원해주는 평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순근 학교에서 학생들이 어느 정도 학습을 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평가)하는 것은 학교 교육의 본질적인 일 중에 하나입니다. ‘모니터링을 한다’라고 하는 것은 점검과 피드백을 통해 개선·발전을 위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의 결과는 일반인들의 시선에는 잘 안보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석차나 점수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외부 입장에서는 자기에게 통지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파악하게 됩니다. 이러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우리가 쓰고 있는 ‘석차’라는 용어입니다. 이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앉는 순서’입니다. 즉, 성적순이 아니라 앉는 순서라는 의미인데 이는 1등, 2등을 모니터링하고 피드백을 해서 본인에게 알려주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중들에게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앉는 자리를 지정해줌으로써 남들로 하여금 1등에 대한 선망의 대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외부인들의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을 보면 누가 출전했는지는 몰라도 누가 금메달을 땄는지를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외부인들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력이 교육이라는 것의 실질적인 의미와 가치보다 사회적으로 더 강하게 드러내는 결과를 중시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교육적으로 모니터링을 통한 지원이 훨씬 더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에게 잘 드러나는 결과 위주의 내용을 중시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모니터링하고 지원하고 개선하는 전문성에 대한 부분을 많은 사람들이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특히 학교의 아이들에게서 일어나는 객관식과 주관식,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수행평가 등의 내용을 교육전문가들끼리만 논의할 것이 아니라, 객관식과 주관식, 절대평가와 상대평가의 장점과 한계는 무엇인지 등을 학부모를 비롯한 일반인들로 하여금 평가방식의 성격과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계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박도순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활동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평가 철학과 평가의 필요성입니다. 또한 평가 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대한 부분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평가를 통한 지원이 주요 목적이라면 시험제도만으로는 방법이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객관식 문제를 주고 정답 찾게 해서는 지원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원 방법을 찾으려면 이 학생이 무엇을 못하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지문을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교사는 학생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찾은 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과만을 찾고 그것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꼭 시정돼야 합니다. 또한 평가 결과 활용에 대해서도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객관적이고 공정한 이 자료로 무엇을 할 것이다’라는 것이 먼저 정리가 돼야 합니다. 즉 우리가 왜 평가를 해야하는지가 명확해져야 합니다. 그것에 맞춰 평가 방법은 무엇을 택할 것인지 등을 정하고 진행을 해야 합니다.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할 것이냐에만 초점이 맞춰져서 나오는 결과는 뻔하다는 뜻입니다.

사회 학부모들의 가장 민감한 부분은 자기 자식 진학에 관련된 부분입니다. 때문에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학습평가의 결과나 입시에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서남수 EBS 이사장이 에듀인뉴스 정책토론 '교육평가제도와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에 참석해 평가제도에 대해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에듀인뉴스>

서남수 평가 문제를 교육 내부 관점으로만 바라봐서 이러한 문제가 생겼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경쟁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인 사회로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교육체제가 아무리 교육 본질의 가치에 충실한 평가를 하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 같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교육 내적인 차원에서 살펴봐선 원인이나 처방을 찾아내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적정한 수준의 경쟁은 바람직하고 필요합니다. 동기부여도 되고, 무엇을 잘못 했는지 잘했는지 확인해서 더 나은 전략을 찾아낼 수도 있고, 더 효율적인 학습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쟁이 도가 지나쳐 전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간단한 예로 전 세계적으로 유소년 축구가 유행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초기에는 운영이 잘 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사회에서는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어느 학교가 많이 이겼느냐’의 문제가 중요해졌습니다. 코치와 학교의 명예가 관계되다 보니 아이들이 즐거운 축구게임을 통해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패배시에는 좌절에서 딛고 일어서는 법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승리를 위해 잔재주를 가르쳐서라도 골을 많이 넣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풍토는 우리 사회의 경쟁 구도에 대한 민감성에서 연유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럽의 경우, 신분제가 고착화되어 있어서 교육을 통해 사회적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별로 높지 않았던 반면, 우리나라는 일제시대, 6.25전쟁, 초고속 경제 성장 등의 상황을 거치며 신분질서가 사라진 사회가 됐습니다.

결국 교육이 신분상승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회적 경쟁이 교육 경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사회에서도 명문대를 나온 사람, 명문대는 고등학교 성적이 좋은 학생을 뽑아 그들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재 선발 절차가 교육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이뤄지다보니까 사회적 경쟁이 치열한 교육경쟁으로 이어져서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단계에까지 오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전체의 지나친 경쟁 구도를 적절히 조절하지않고는 이 경쟁을 완화하는 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한 전망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적어도 엔간한 교육을 받은 학부모라면 이런 입시위주의 교육, 경쟁이 치열한 교육은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선적으로 좋은 대학에 자식을 보내놓고 보자는 의욕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학부모들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아무리 계도해도 소용이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회 전체의 경쟁을 어떻게 적절한 수준으로 조율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최근 학부모들 가운데 대안학교나 홈스쿨링 같은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심한 경쟁체제에서 학습시키는 것이 싫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교육 기관이 생겨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에 있기는 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교육체제는 다양한 평가를 통해 여러 가지 형태의 성취 결과를 나타내는데 이러한 동향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하는지 궁금합니다.

민경찬 성과의 개념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냐 따라 달라진다고 봅니다. 평가를 개인 차원으로 볼 게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느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영향은 사회적으로나 자녀들에게 상당한 문제가 된다는 것을 국민들이 공감하게 할 수 있도록 언론 등을 통해 알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병철 교수가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로 규정하며 “우리 사회는 규율사회, 성과사회에 이어 도핑사회까지 진행됐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좀 차분해지자. 사색적인 삶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목표와 가치를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없다는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갈등 문제 때문에 소모되는 비용은 GDP의 27% 수준이라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가치관은 평가의 흐름 속에서 형성됩니다. 때문에 궁극적으로 평가가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국민들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계도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평가는 너무 개인중심, 기능중심에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개인과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중심의 평가가 필요합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글로벌 인재 포럼에서 “가수 싸이와 저녁을 먹었는데 정말 똑똑하더라. 그 똑똑함은 공부를 잘하는 똑똑함이 아니고 자기 분야에서 남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똑똑하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교육이라는 것이 개인의 재능을 파악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인데 우린 통일된 잣대로 줄 세우는 것 밖에 한 게 없다는 문제 제기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본인도 대학총장 시절 다양한 학생들을 어떻게 뽑을 것이냐가 목표였다고 합니다.

박도순 저는 우리나라에서 평가가 안되는 이유를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수로 구별할 수 있는지 여부에 평가 문제의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이러한 방식을 공정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즉, 공정하다고 생각한 것이 공정하지 않은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서남수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한 이유도 충분히감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입시와 관련된 논란이 단적인 예입니다. 로스쿨을 졸업하면 사회적인 엘리트 신분이 보장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로스쿨의 선발 방식은 우리나라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교육부는 로스쿨 입시에 대해 구성원을 감안하면 충분히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타당성 있게 학생을 선발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해 로스쿨이 스스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맡겼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일반 대중들의 우려대로 법조계의 파워 엘리트들이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증거가 나타나니까 사회적으로는 “봐라, 이거 공정하게 안되지 않냐”고 비판하며 교육부가 개입해 공정하게 하라고 합니다.

교육부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맞추다 보니 로스쿨에서 좋은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사용하던 면접 등의 좋은 방법들의 비중을 줄이고 결국 법학적성검사(LEET) 성적에 더 의존하게 됐습니다. 즉 객관적인 자료를 더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기계적인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강화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공정성을 강화한 것이 학생을 선발하는데 있어 정말 타당한 것이냐에 대한 것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선발 체제가 교육 현장에 미치는 영향과 그 영향이 교육의 본질적인 가치를 훼손하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박도순 교육이건 다른 분야건 간에 모든 것을 평가를 통해서만 해소할 수는 없습니다. 평가를 통해 문제가 된 사안은 법과 규칙으로 처리를 해야 합니다. 불공정한 것은 일벌백계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안하고 제도를 바꿔 해결하려 하는 것은 적절한 대안이 아닙니다. 법과 규칙을 통해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회 우리 사회의 평가시스템에서 테스터(선발자)와 테스티(피선발자)를 분리해서 살펴보면 테스티가 테스터를 신뢰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객관화된 자료도 중요하지만 입학사정관 제도라든가 주관식 자료를 잘 활용하려는 계획을 사회 구성원들이 믿어줘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회에서 평가하는 측을 믿을까요? 또 평가하는 측은 스스로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까요?

<민경찬 연세대 특임명예교수가 에듀인뉴스 정책토론 '교육평가제도와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에 참석해 한국 평가제도가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에듀인뉴스>

민경찬 신뢰를 높이기 위한 사회운동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사회운동을 통해 평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평가 투자에 대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기재부에서 평가비를 너무 적게 씁니다. 저는 평가에 대한 시간과 재원의 투자가 선행되야 신뢰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우리나라에는 1년에 약 5만 개의 연구 과제가 있습니다. 감사원에서는 지난 3년 동안 약 500개 정도 연구에 대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연구과제 대비 문제 지적 비율은 1%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 1% 이하의 것을 찾아내겠다고 각종 규정과 규제를 만들어 연구자를 전부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1%도 안되는 부정 때문에 잘되고 있는 99% 이상이 진행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국민과 언론도 이러한 것을 이해해야합니다. 작은 것에 너무 매몰돼서 네거티브 여론을 만드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결국 긍정적인 관점으로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하는 사회 전체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박도순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면 안되나요? 예를 들면 교육부가 대학 교육에 관여를 안하는 대신 문제가 발생하면 대학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행한다고 해서 모든 대학이 부정을 저질러 없어질거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각종 문제점이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 때문에 자율권을 주기 어려워합니다.

평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평가를 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학교나 기관에서 스스로 제대로 평가를 하지 않거나 못할 것이라는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 대신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사실 정부가 나서서 평가를 해줘도 안되는 건 똑같습니다. 그렇기에 원활히 진행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만 문제 제기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서남수 박도순 교수님 말씀에 기본적으로 공감을 합니다만 공직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가가 나서서 무엇인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지나친 국가책임주의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국가가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사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합니다. 조선시대에도 국가에 가뭄과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군왕이 직접 하늘에 기우제를 지낸다든가 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궁극적으로 국가에 책임이 있고 국가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꾸 ‘교육부가 권한이 크다’, ‘학교현장을 장악해 좌지우지한다’ 등의 비난을 하는데 교육부가 그렇게 움직이는 이유가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교육부에 묻기 때문입니다.

교육에 관해 어떤 종류의 문제가 생기든지 ‘교육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사회적 비난이 거셉니다. 그래서 교육부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국회의 질타, 언론의 비난이 엄청 세게 나타납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이 어떤 사안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면 국가는 답변을 해야 합니다.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해야 하니 어떤 식으로든 객관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믿기 때문입니다. 모든 원인을 정부에서 찾고 책임을 묻고 해결하도록 요구하는 관행이 계속되면 국가주의는 해결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만약 교육 분야에 문제가 생겼다면 해당 대학이나 교수, 교사 등에게 1차적으로 책임을 묻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풍토가 중요합니다. 국가와 민간의 책임이균형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회 좋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관심을 좀 돌려 기관 평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백순근 서울대 교수가 에듀인뉴스 정책토론 '교육평가제도와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에 참석해 한국 평가제도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사진=에듀인뉴스>

백순근 저는 현재 진행되는 각종 평가체제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도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다양한 평가가 진행됨으로써 일반 국민들의 알 권리를 상당 부분 충족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기관이나 프로그램의 운영에 투명성이 확대됐으며 책무성도 상당히 증진되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대부분 기관이나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에만 신경을 썼지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는 소홀했습니다. 근데 이러한 다양한 평가는 계획을 세우는 일 뿐만 아니라 수행 자체에 대한 부분도 감시하고 있어 진전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10여 년 전에 비해 시도교육감의 지역 장악능력이 많이 증진했다고 보는데 시도교육청 평가가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평가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에는 교육감들이 일선 학교가 몇 개인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해도 교육감직을 수행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평가 시행 이후 일반인들도 기관이나 프로그램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알게 됐고, 해당 기관은 어떤 일을 진행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했습니다. 이로 인해 교육감들이 전반적으로 운영능력에 대한 증진없이는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운영 규정이나 규칙을 만들어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는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이나 규칙이 일부에서는 과하게 작용해 지나친 통제나 규제로 느껴 자율성을 훼손하기도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은 수정·보완하는 과정을 거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합니다. 결국 평가의 긍정적인 면은 궁극적으로 학벌 중심·서열 조장·수직적 사회를 수평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측면도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 대학도 ‘5.31 교육개혁’ 이후 기관 평가, 교수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가 실적 위주가 되는 등의 역기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후배 교수들을 보니까 평가에 시달려 고생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평가가 지나치니까 사회 곳곳에서 지쳐가는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백순근 지난해 대학구조개혁평가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했습니다. 평가를 통해 실제 대학 운영 시스템이 드러나 수많은 교육수요자들이 사기당했다고 느끼면 어떻게 하냐는 것입니다. 이를 두려워하는 학교도 많았습니다. 이렇듯 대부분의 학생은 대학의 실상을 모르고 다니고 있습니다.

연봉 2,000만 원도 안되는 전임교수가 상당히 많다는 것도 모릅니다. 대학 교육의 질에 신뢰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드러남으로써 개선될 수 있는 여지들도 많이 생긴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총장들은 대학의 실제 상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임용되고 선임되기 때문에 학교를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인 평가자료를 필요로 해왔습니다. 대학구조개혁평가 자료는 신임 총장들이 대학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 학교에 이러한 문제들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돼 전략을 수정하기로 하고 해결방안을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대학이 평가도 많이 받고 대학 교수에 대한 여러 가지 경쟁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대학이 참 재미 없어졌다, 교수하기 참 어렵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정말 좋아졌습니다. 바로 연구에 대한 교수들의 자율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입니다. 이전에는 많은 부분에서 윗사람의 눈치를 봐야 했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가 행한 연구의 실적을 요구하는 시스템으로 변했습니다.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공식적인 눈치를 보지 않게 만들었다는 차원에서 보면 개인 교수들의 연구에 대한 자율성은 훨씬 좋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을 보면서 평가를 통해 적어도 대학 사회가 사적인 모임 같은 곳에서 공적이고 합리적인 모임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남수 모든 사회 제도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기에 중용의 지점을 찾아가는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평가 문제를 생각할 때 마다 어려서 읽은 《어린왕자》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민 교수님도 연구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연구자의 스피릿이고 그것이 연구의 성과를 좌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평가를 할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을 토대로 평가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학생에 대한 평가도 실제로 학생들이 알고 있는 인지적인 능력은 평가하기 쉽지만, 교육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의 인성과 정의 등의 도덕적 측면은 정말 평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부분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찾아내려고 할 것인가에 대한 노력이 중요합니다. 학생들의 경우에 인성과 정의, 그리고 기관의 경우에 연구자의 연구 정신과 분위기 등에 대해서도 찾아내는 노력 말입니다.

모든 평가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만, 사실상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우리가 겸허히 받아들여서 평가제도를 만들고 운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평가의 한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와 풍토가 필요합니다.

민경찬 ‘다양성 맞춤형’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사람이 “인디비쥬얼(individual)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주면 좋겠다”라는 수상소감을 말한 바 있습니다.

근래에 서울대 자연대를 해외석학들이 11개월 동안 평가를 했습니다. 서울대 자연대 교수들은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자부하는 그룹인데 이들의 연구 성과를 분석한 해외 석학들은 2류, 3류 연구를 한다고 평했습니다. 가지치기 연구를 할 뿐, 새로운 연구가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결과는 단기적인 성과만 몰아붙여서 생긴 것입니다. 성과는 연구의 임팩트가 무엇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연구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따져보는 겁니다. 이러한 평가를 진행하기 위해 시간 투자와 집중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럴 때 평가가 가능합니다.

모든 것을 천편일률적으로 할 수는 없지만 지향점은 그렇게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향점을 가진 연구를 하나의 롤모델(Role model)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에듀인뉴스 정책토론 '교육평가제도와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를 진행하고 있는 이돈희 발행인(전 교육부 장관)의 모습. 사진=에듀인뉴스>

사회 관료주의가 성과 혹은 효과를 보려면 복잡한 것을 단순화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관료체제는 특정한 목표에 대해 추진력을 도모하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지나치면 결과를 규격화 해버리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연히 평가를 주로 하다 보니 객관성을 중시하게 됩니다. 객관성을 중시하니 계량화 되고 계량화 하니 규격화 되고, 점수화 됩니다. 점수화 되면 결국 결과가 중요하게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떤 가치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는 묻혀 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평가가 갖고 있는 양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남수 이러한 양면성이 자꾸 나타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누가 그렇게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 대학정책의 경우 교육부 입장에서 보면 “연구와 교육을 훌륭하게 잘 하는 대학에 재정 지원을 더 많이 해야 다른 대학들도 연구와 교육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갈 것이다”라는 개념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나 교육 활동 평가를 합니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평가 기간이 짧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양적인 기준, 정량적인 기준 중심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질적인 부분을 평가하는 지표도 들어가 있습니다. 대학이 그러한 부분을 증진시키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평가 결과에서 큰 차이를 주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로는 질적인 부분에 대한 평가가 대학 입장에서는 유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많은 교수들도 정량적으로 평가해야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평가에 관여되는 많은 사람들이 평가의 본질을 생각하는 것 보다는 평가시에 어떻게 하면 내가 좋은 평가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것이냐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평가 지표에 사업을 맞추게 되는 ‘평가를 위한 사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겁니다. 평가의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갖추느냐’입니다. 굉장한 전문성과 많은 인력, 그리고 재원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평가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평가 시스템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정부와 대학으로부터 독립된 대학평가 전문기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교육부에서 주로 평가를 합니다. 교육부가 올해 평가에서 미흡한 부분을 찾아내 내년 평가에 반영하려고 하면 반영이 안됩니다. 교육부의 담당자가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매년 대학에 수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지만 교육부에서 대학을 평가하다보니 매년 제자리 걸음입니다.

대학평가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해서 예산을 배분하느냐에 따라 수천 억, 수조 원의 성과 가치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몇백억 들어가는 예산을 아낀다고 그렇게 중요한 평가기구 하나 안 만들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독립된 평가 기구는 만들어져야 하며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사회 미국은 평가제도를 통해 대학 랭킹, 사립고등학교 랭킹, 학과별 랭킹 등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랭킹에 대해 미국 사회가 얼마나 신뢰하는지 등이 궁금합니다. 미국은 정부보다 민간기구에서 이러한 일을 주도적으로 진행하는데, 여기에는 문제점이 나타나지 않나요?

박도순 제가 보기에 미국과 우리나라는 세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선 시험문제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 교육평가원)에서는 시험문제 1문항을 만들기 위해 연구원이 2주간 씨름을 하더라도 매우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의 시험 문제라도 완성도를 중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미국과 같이 시험 문제를 만들면 해임됩니다. 한 문항을 2주 동안 잡고 있었다고 하면 무능한 사람으로 찍힙니다. 이것은 시험 문제를 보는 시각이 그만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는 돈 투자를 정말 안합니다. 이전보다는 나아지기는 했는데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문제를 만들 때 깜짝 놀랄 정도로 적게 줍니다. 왜 이렇게 적게 주냐고 물어보면 문제출제위원으로 위촉된 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하라는 식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활용 방법입니다.

평가시에 하나의 기준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면 미국도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미국은 A라는 기준을 여러 가지 준거 중에 하나로만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활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토플 하나로 입시의 당락이 결정되면 미국도 많은 논란이 야기되겠지요.

백도순 저 또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재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TS나 ACT(American College Test, 미국 대학 입학 학력고사) 같은 경우에는 대학들이 그것을 자체적으로 하는것 보다 모여서 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재원 역시 대학들이 내서 만들었습니다만 투자 대비 이익에 대한 강박 관념은 없습니다. 대학들은 이익이 나면 좋지만 이익이 생기지 않아도 어차피 대학이 써야할 재원을 쓴 것이기에 별 문제가 안되는 환경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재원 구조에서 생기는 문제를 오히려 평가 문제로 오해하는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R&D(Research and Development, 연구 개발) 예산이 19조 원이 들어가는데 이것은 세금입니다. 그렇다면 세금을 누가 쓰느냐? 기재부와 관료입니다.

돈을 쓰는 쪽에서 평가를 통해 재원을 나눠주니 평가와 관리의 편리성 때문에 전문가 집단이 거기에 종속되게 됩니다.재원의 문제는 이러한 구조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과연 평가의 문제인가’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학이 왜 정부예산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느냐? 대학이 자체적으로 재원을 가질수 있는 방법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반값등록금 정책으로 정부로부터 재원 조달을 추가로 받기 전까진 대학 운영을 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학교가 자체적으로 연구를 발주한다든가 하는 게 점차 어려워지게 된 것입니다.

이는 학교가 자체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들이 축소되는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미국 유명 대학들은 입학사정관제도, 서류평가 등의 경우 1차적인 비용을 학교가 등록금이나 원서접수비로 마련하고 그 안에서 합리적으로 분배해 사용하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재원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자체 재원이 부족해서 등록금이나 원서대금을 이용하기도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실정입니다. 모든 평가를 잘 받아서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는 시스템의 문제지 평가의 역기능이나 문제점으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미국에서 대부분 교육 기관의 운영주체가 민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민간 투자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대학의 대부분은 사립대학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립대학들은 재원 조달 등에서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율성을 충분히 갖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국가의 관리로부터 벗어나 있어서 우리가 생각하는 자율성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필요에 의해 진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회 제가 미국에 갔을 때만 하더라도 토플과 미시간 테스트(Michigan English Language Assessment Battery)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입학서류로 이 두 가지 점수를 같이 받는 학교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미시간 테스트는 거의 없어지고 토플만 남았습니다. 미시간 테스트가 경쟁력에서 뒤진 것이지요.

즉 테스트 하는 기구들도 경쟁해가면서 더 좋은 것을 개발해야 지속적인 고객이 생기고 이 과정을 통해 교육서비스의 질이 높아지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경쟁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기보다 민간 기구도 함께 진행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백순근 한국에서 거의 성공했던 케이스가 텝스(TEPS)와 한국어능력시험입니다. 서울대는 대학원 입학과 졸업시 텝스 성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능력시험은 서울대의 몇몇 교수님들이 만들었습니다. 이 후 민사고 입학 요강에서 한국어능력시험 성적을 요구하면서부터 이 시험을 전국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응시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교육 문제 때문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당시 사교육비 문제가 사회적 이슈화 되면서 교육부는 고등학교 입시에서 사설 민간기구의 성적을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후 한국어능력시험은 점점 그 명성을 잃어갔습니다. 텝스 역시 현재는 그나마 서울대와 취업시 민간 기관에서 활용하고 있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우리나라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 입시까지 현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있어서 관계자의 전문적인 판단보다 정무적인 판단이 먼저 작용해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박도순 이것과 비슷한 개념으로 따진다면 수능을 행정자치구역별로 따로 만들어 사용해도 상관없는게 됩니다. 근데 거꾸로 생각해야 합니다. 대학에서 수능을 왜 활용하느냐? 전국 시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입학 대상자들의 실력을 동일한 조건에서 전국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수능밖에 없기 때문에 활용하는 겁니다. 각 지역별로 다른 문제와 기준을 갖고 수능을 본다? 그러면 대학 역시 입학 기준에서 수능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서남수 제가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난제를 극복하려면 시스템을 확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평가 시스템을 어떻게 확 바꿀수 있느냐? 정부, 대기업, 언론기관, 명문대학 등의 리더들이 앞장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리더들이 자기 입장만 중시하면 이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변화 역시 리더그룹에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수능점수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대학입시의 가장 큰 피해자를 리더그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창 지적으로 성장할 시기의 아이들에게 창의력이나 인성을 키워줄 수 있는 다양한 교육활동은 못하고 수능시험에서 한 문제 덜 틀리고 더 틀리고 하는 것을 연습시킴으로써 양성된 인재가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시험점수 위주의 학생 선발, 또 그렇게 서열화된 명문대학 출신을 우선 채용하는 대기업, 여러 가지 객관적인 수치만을 중시하는 정부 등에서 이러한 관행이 지속되는 한 이 문제는 영영 해결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우리사회의 리더그룹들이 여러 가지 선발 구조를 바꾸기 위해 일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라는 관점에서 접근을 하는 것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민경찬 저는 공동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 기관, 대학, 정부 등이 서로 도와주고 협력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변화의 힘은 대학이 갖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사람이 계속 바뀝니다. 그런데 대학은 지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학이 발전하고 힘을 기르기 위해선 스스로 철학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철학이 있어야 정부나 국회에 정당하게 요구하는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개별 대학이 어렵다면 공동의 리더십을 구성하면 됩니다.

대학 간 공동의 리더십으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정신, 가치, 시대의 흐름,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대학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신뢰가 우선되어야 하며 이 신뢰를 쌓기 위해선 대학들이 스스로 변화해야 합니다.

평가의 콘셉트, 평가의 철학을 스스로 만들어내 공무원들이 주는 지표에 따라 연구를 하는 대학이 아닌 스스로 필요한 연구를 하는 시스템이 갖춰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대학들이 좀 더 도덕적으로 책임의식을 갖고 세상을 대해야 합니다.

사회 우리가 지금 문제 삼고 있는 것들은 옛날 같으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들입니다. 그 만큼 우리 교육이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5.31 교육개혁 이후 대학 평가뿐만 아니라 기관 평가를 하게 된 것이 여러 방면에서 실효를 거두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직은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역기능과 부작용이 나타날 수가 있으므로 이를 어떻게 잘 다스릴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