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 평가 제도를 평가한다 ③

최근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 ‘공부의 나라’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최우영, 스티븐 두트 감독)가 있다. 부제는 ‘Reach for the SKY’이다. 한국과 벨기에의 합작품으로 2014년 수능에 맞춰져 제작된 이 작품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한 변질된 교육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스타 입시강사, 고3 수험생, 재수생, 학부모 등 수능을 둘러싼 풍속도를 내부자, 외부자 관점에서 드러내고 있다. ‘국적은 바꿀 수 있지만 학력은 바꿀 수 없다’는 모토로 모두가 입시전쟁에 뛰어들고 있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의 제목은 ‘공부’를 다루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 교육열이 ‘시험’으로 수렴되어 교육을 압도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준다. ‘공부의 나라’가 아니라 ‘시험의 나라’인 것이다. 우리 교육을 지배하고 좌우하는 시험이란 시험 일반이라기보다는 표준화 시험1)과 특히 관련이 깊다.

1) 표준화 시험은 표준화된 방식으로 실시되고 채점되는 평가 형태를 말한다. 표준화되었다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고, 누구에게든 동일한 문제가 주어지며 동일한 시간 동안 해결해야 하고 동일한 기준으로 채점된다는 것을 포함한다. 즉 평가대상이 일관되며, 동일하고 객관적으로 채점된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표준화 시험은 교수-학습 관점에서 볼 때는 외부적 평가라는 특징이 있다. 즉 교수-학습이 실제로 이루어진 상황이나 맥락의 특수성과 무관하게 출제와 채점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윤미, 교육에서 평가정책의 역사와 미래 – 표준화 시험을 중심으로, 연구보고서,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2015, p.5.

수능과 같이, 표준화 시험이면서 시험결과가 중요한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는 고부담시험(high-stakes testing)들이 교육을 지배하게 되면, 교육의 자율성이 저해되고 개인들의 다양성이 제한된다.

이러한 ‘시험의 지배’에 장기간 영향을 받아온 한국교육은 시험에 대한 과도한 몰입과 맹목적인 경쟁, 자유롭고 창의로우며 비판적인 사고의 제한, 탐구의 과정보다는 수치화된 점수라는 결과에 대한 무조건적 승복 등, 이른바 왜곡된 교육문화를 재생산해왔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런 문화를 벗어나기 위해 몸살을 앓아 오기도 했다. 시험에 의한 지배 현상의 뿌리는 무엇이며,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이 현상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있는 일까?

이윤미 홍익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배경

한국만이 시험이 지배하는 사회는 아니다. 한 중국인 저자(K. Zeng)가 쓴 〈등용문(Dragon Gate: competitive examinations and their consequences)〉이라는 책의 제목이 선명하게 보여주듯이2) 경쟁적 시험문화는 동아시아 사회들에서 비교적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2) K. Zeng, Gragon Gate: competitive examinations and their consequences, London: Cassell, 1999.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은 우리와 유사하게 강한 시험중심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공통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유교적 교육이라는 공통 뿌리를 만나게 된다.

유교문화의 영향이라고 할 때는 인문적 학문을 중시하고, 교육받는 것을 가치롭게 여기며, 개인의 수양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도덕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교육 문화, 그리고 왕도정치를 실행할 현명하고 덕 있는 관료를 선발하기 위한 선발체 등을 떠올리게 된다.

중국에서 처음 시행되어 우리에게도 900년 이상 영향을 준 과거제는 한편으로는 국가가 우수관료를 선발하는 시험이면서 공부하려는 자들에게는 학문과 정치에 뜻을 펼칠 수 있는 경로였다. 이 제도는 국왕이 귀족을 견제하고 관료제를 통해 국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출신보다는 개인의 능력에 입각한 제도였다.

이론상으로 볼 때 관료로서의 도덕적 자격에 결함이 없는 평민(양인) 이상이면 누구든 응시할 수 있는 제도였고, 시험 능력에 의해서만 선발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과거제도는 18~19세기에 유럽에도 소개되기 시작하는데, 1870년대에 북경 동문관(Tungwen College)의 장으로 있던 마틴(Martin)은 중국 과거시험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소개한 바 있다. 이는 외국인의 시선에서 과거제도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어 흥미롭다.

첫째, 과거제도는 공개경쟁이기 때문에 국가에게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자칫하면 불만세력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 국가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순치된다. 둘째, 혈통에 의한 귀족세력을 견제하고 국가(국왕)의 권력을 강화할 수 있다.

낮은 사회적 배경을 가진 자들도 재능이 있으면 선발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관료들은 인민대중의 필요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셋째, 국가는 교육받은 층을 제도유지에 복무하도록 할 수 있다. 시험제도를 유지함으로써 지식인들은 혁명적 상황으로 제도가 붕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게 된다.3)

3) W. A. P. Martin (1870). Competitive examinations in China, The North American Review, 111(228), pp. 62-77.

과거제도가 지닌 객관성 및 공정성, 지식인층에 대한 인센티브, 국가권력과 사회공학적 효용성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각국에서 나타나는 시험을 둘러싼 경쟁이 다분히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과거제도의 영향을 지금의 교육제도에 직접 적용하여 논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 중 중국과 한국은 과거제도가 제도적으로 강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과거제도가 실시되지 않았음에 비추어볼 때 지금의 시험지배 현상을 과거제도와 연결해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과거시험을 지탱하던 원리인 공정성과 객관성, 능력에 의한 서열, 결과에 대한 복종 등은 과거의 형식 그대로라기보다는 새로운 외양을 통해 심층 문화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4)
4) 18세기 이후 과거제도가 서양 국가들의 능력주의적 관료등용제도에 영향을 주었던 것을 감안하면 근대 이후 도입된 능력주의는 과거제도
정신의 ‘역수입’으로 볼 수도 있다.

오늘날 ‘시험’에 의한 지배 현상의 근간에 있는 동력이 소위 명문학교 진학임을 놓고 볼 때 근대적 ‘학력주의’, 그리고 그 변형으로서의 ‘학벌주의’를 빼고 논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9세기 말 이래 도입된 학력주의와 식민지 시기부터 나타난 학벌주의의 영향은 해방 후 대중교육 확대과정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심지어 강화된 경향이 있다.

전통사회에서 과거제도를 시행하지 않았던 일본은 오히려 메이지유신 이후 우수 관료형성을 위한 교육체제를 구축하고 능력주의에 입각한 선발제도를 운용했다. 제국대학체제, 고등문관시험 등 우수 관료의 양성과 선발 체제는 시험에 의한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체제는 식민지인 조선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인들에게는 모국어를 일본어로 쓰는 일본인들과 경쟁하는 ‘식민지적’ 학력경쟁이었다는 데에 차이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1924년에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면서 국내 중등학교들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준비기관으로 정체성을 형성해갔고, 제국대학 입학자 수에 따라 서열화되기 시작했다. 패전전 일본에서는 소위 출신학교 ‘학교력(學校歷)’에 따라 입사 등에 공식적인 차등이 두어지고 승진이나 임금에 차이가 있었던 점을 통해 볼 때 학력, 혹은 학벌(학교력)의 영향력은 막강했다고 할 수 있다.

상급학교 진학 외에도 고등문관시험과 같은 ‘고시제도’는 사회적 기회 배분에 있어 ‘시험’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고시 또한 능력에 의한 선발을 원칙으로 하는 제도로, 학력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고시출신자들이 특정 학교 출신자들에 편중되는 경향(일본 내지 및 식민지 제국대학, 관공립 전문 등)이 나타나면서 학력, 학벌과 특권이 결합되는 양상을 보여준다.5)
5) 이윤미, 동아시아 교육발전모델의 역사적 구조탐색 – 일본 교육의 사례, 비교교육연구, 25(4), pp. 235-264.

해방 이후에도 학력주의와 학벌주의의 영향은 사라지기보다 강화된 경향이 있다. 식민지하 수직적으로 위계화되었던 고등교육체제가 존속하고, 소위 학벌에 의한 후원적 사회이동 현상이 존재하는 가운데 사회계층구조의 이완으로 학력을 둘러싼 소위 ‘교육전쟁’ 양상이 격화되어왔다.

해방 이후 학교급에 따른 취학률 증가가 순차적 양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소위 평준화 정책(1968년 중학교 무시험제, 1974년 고교평준화정책 등)이 도입되어, 중학교와 고등학교 단계에서 학교별 입학경쟁은 줄어들었다.

상급학교 진학에서 입시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취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적 시험체제가 완화되었다고 할 수 없다. 1980년대 이후 입학전형에서 내신이 부가되고, 입학전형을 다양화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졌지만 시험을 둘러싼 교육문화가 변화했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1990년대 이후에는 학교다양화, 학교선택제 등의 도입으로 경쟁 자체가 더 심화된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 근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교육 정책적 노력만으로는 시험지배양상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학력이나 학벌이 여전히 중요한 선별의 잣대가 되고 선발기준의 다양성이 부재하며, 학력이외의 대안적 사회이동 통로가 부재하다는 사실들은 교육정책을 통한 경쟁완화 노력들을 무기력하게 해온 것이 사실이다.

효과

선별의 기제로서 시험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점도 문제이지만, 어떤 시험인가 하는 점도 중요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고부담)표준화 시험이다. 표준화 시험은 그 효용성으로 인해 널리 활용되고 있지만 표준화 시험의 내용(표준화 정도)과 형식(문항 출제 방식, 대단위시험 여부, 채점의 객관성 등), 활용방식(고부담 여부) 등이 어떠한가에 따라 교육문화에 해악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것이다.

다중지능이론으로 잘 알려진 하워드 가드너(Gardner)는 평가의 방식에 있어 도제적 모델(apprenticeship model)과 형식적 시험 모델(formal testing model)을 구분했고, 후자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 바 있다.6)

6) H. Gardner, Assessment in context: the alternative to standardized testing, in B.R. Gifford et al. (eds.), Changing assessments. New York: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92.

가드너의 비판에서 두 가지 점이 특히 주목된다. 첫째, 시험을 통해서는 폭넓은 평가를 할수 없고 제한적인 것을 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험은 도제적 모델에 비해 학습자의 특성을 배움이 일어나는 맥락 안에서, 인격적, 주관적인 방식으로 파악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비판한다.

둘째, 이러한 형식적 시험이 강조된 배경에는 학교 교육에 대한 획일적 관점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학교 교육은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교육내용을 부과하고 개인적 특성과 무관하게 그것이 동일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가정하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질보다는 양적인 평가를 선호하며, 대단위 표준화를 하게 되고 비교를 중시하게 된다. 인간 지능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통해서는 이 중 일부 능력(논리수학적)만을 중시하게 되는 경향이 있으며, 형식적 시험을 통해 평가하기 어려운 교과영역(예술)은 학교교육에서 평가 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가드너는 개개인의 다양한 지능이 공정하게 다루어져야 하며(intelligence-fair), 학습자가 처한 맥락이 중시되는 개인중심 접근이 대안으로 모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형식적 시험은 교수-학습이 이루어지는 직접적 맥락과 거리가 있고, 변별을 위한 활용의 목적이 강할 뿐, 학습자 개인의 발달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국제적으로 볼 때, 1980~90년대에 들어서는 표준화 시험이 학교교육의 책무성 점검과 연결됨으로써 일부 시험들이 교수-학습지원보다는 학교에 대한 통제와 모니터링의 목적과 강하게 연계되는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는 평가관리문화의 국제적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양상이다. 우리도 학교 정보공시의 기초로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평가를 전수 실시하고 있으며, 대입 전형에서 수학능력시험이 지니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교수-학습활동 및 학교운영에서 평가의 비중이 강화되면서 표준화 시험에 기반을 둔 평가문화가 교육문화에 주는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것이다.

다중지능이론으로 잘 알려진 하워드 가드너(Gardner)는 평가의 방식에 있어 도제적 모델(apprenticeship model)과 형식적 시험 모델(formal testing model)을 구분했고, 후자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 바 있다.6)

6) H. Gardner, Assessment in context: the alternative to standardized testing, in B.R. Gifford et al. (eds.), Changing assessments. New York: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92.

가드너의 비판에서 두 가지 점이 특히 주목된다. 첫째, 시험을 통해서는 폭넓은 평가를 할 수 없고 제한적인 것을 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험은 도제적 모델에 비해 학습자의 특성을 배움이 일어나는 맥락 안에서, 인격적, 주관적인 방식으로 파악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비판한다.

둘째, 이러한 형식적 시험이 강조된 배경에는 학교 교육에 대한 획일적 관점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학교 교육은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교육내용을 부과하고 개인적 특성과 무관하게 그것이 동일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가정하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질보다는 양적인 평가를 선호하며, 대단위 표준화를 하게 되고 비교를 중시하게 된다. 인간 지능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통해서는 이 중 일부 능력(논리수학적)만을 중시하게 되는 경향이 있으며, 형식적 시험을 통해 평가하기 어려운 교과영역(예술)은 학교교육에서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가드너는 개개인의 다양한 지능이 공정하게 다루어져야 하며(intelligence-fair), 학습자가 처한 맥락이 중시되는 개인중심 접근이 대안으로 모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형식적 시험은 교수-학습이 이루어지는 직접적 맥락과 거리가 있고, 변별을 위한 활용의 목적이 강할 뿐, 학습자 개인의 발달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국제적으로 볼 때, 1980~90년대에 들어서는 표준화 시험이 학교교육의 책무성 점검과 연결됨으로써 일부 시험들이 교수-학습지원보다는 학교에 대한 통제와 모니터링의 목적과 강하게 연계되는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는 평가관리문화의 국제적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양상이다. 우리도 학교 정보공시의 기초로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평가를 전수 실시하고 있으며, 대입 전형에서 수학능력시험이 지니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교수-학습활동 및 학교운영에서 평가의 비중이 강화되면서 표준화 시험에 기반을 둔 평가문화가 교육문화에 주는 영향이 높다.

이러한 평가문화의 성격은 특히 두 관점에서 비판될 수 있다. 하나는, 학생에 대한 다양하고 충분한 정보보다는 빠르고 비교가능한 정보를 구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점수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여 제시함으로써 이해를 돕는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들이 학습자에 대한 치밀한 정보(thick language) 대신 빠른 정보(quick language)7)를 추구하게 되면, 혹은 점수라는 결과를 산출하는 시험에 교육이 의존하게 되다 보면, 충실하고 다양한 정보보다는 비교가능한 정보만을 중심으로 교육의 과정도 협소화된다.

7) C. Lundahl & F. Waldow, Standardisation and 'quick languages': the shape-shifting of standardised measurement of pupil achievement in Sweden and Germany, Comparative Education, 45(3), 2009, pp. 365-385.

또 다른 하나는, 시험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문제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타케우치 요는 일본에서 나타나는 맹목적인 수험준비 현상을 비판하면서 ‘수험사회’라는 용어를 쓴 바 있다. 상급학교진학의 경제적(직업지위), 문화적(위신) 효과가 효력이 없어진 조건에서도 일본의 청소년들이 시험준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양상을 꼬집은 것이다.

고교와 대학이 총서열화된 일본에서 한 등수 아래로라도 밀리지 않겠다는 경쟁이 등급 서열의 사소한 차이로 실제 직업지위나 위신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학생들을 수험준비에 묶어두고 있다는 것이다.8)

8) 竹內洋, 日本のメリトクラシー, 東京大學出版會, 1995.

서열체제에서의 비교와 경쟁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공부’가 실종되어 버린 이러한 현상은 일본에서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제

해방 이후 교육기회가 급격하게 개방 확대되고 학력이 지위 결정의 핵심적 요인이 되면서 상급학교 입시경쟁은 과열 양상을 띠게 되었다. 경쟁요인을 완화하는 조치들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기회배분을 둘러싼 경쟁은 실질적으로 줄어들지 않고 경쟁으로 인한 각종 사회적 비용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고 있다.

특히 과열경쟁속에서 시험점수가 능력을 재는 데 있어 객관적이고 공정한 것이라는 생각은 강화되어 왔다. 각종 경쟁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학교 간 위계가 존재하고 학벌의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줄 세우기가 아닌 여러 줄 세우기라는 표어가 등장하여 제도적으로 시행된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점수’가 ‘실력’이고 객관적이며 공정성의 기준이라는 인식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못하고 있다.

대입선발고사가 학교 교육과정을 지배하는 양상도 거의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입학사정관제도, 학생부전형강화, 성취평가제 도입 등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려는 시도들은 꾸준히 제시되어왔으나 이를 다시 ‘표준화’하려는 문화도 함께 작동하고 있다. 사회의 경쟁, 변별, 선발 압박에 학교가 자유롭지 못하고 끊임없이 맞추게 되는 조건들이 형성되고 있다.

제도적 외피는 바뀌었지만 시험의 형식만을 놓고 볼 때 전통사회로부터 현대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유사한 평가문화가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형식적 시험인가, 도제적 평가인가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사회는 후자의 관점이 역사적으로 득세하지 못했다.

조선 시대에도 유형원같은 실학자는 필기시험에 의해 현덕자를 가려내기 어렵다고 보았고 중국에서 과거제 이전에 활용되던 인재 천거방식의 도입을 주장했다. 학문의 초기부터 양성과정을 강화하고 단계적으로 상급학교로 천거해 올리는 제도의 전면실시를 기획한 바 있다.

유능하고 현명한 관리를 선발하는 것이 목적이면 그것에 합당한, 소위 ‘평가의 타당도’가 높은 선발방식을 취해야 하며, 양성과 선발이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늘날의 학교교육정상화 논의와 유사한 관점에 터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평가문화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서는 경쟁을 유발하고, 시험의 선별기능을 강화하는 노동시장 구조, 학벌 구조 등이 근원적으로 변화해야 하지만 교육에서의 제도적 변화가 이를 함께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첫째, 평가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맹신하는 관점이 문화적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가르치고 배우는 맥락이 중시되고 개개인의 다양한 능력이 존중되기 위한 다양성 기준에 대한 신념이 형성되고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개개인의 맥락을 중시하는 ‘주관적’ 평가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둘째, 대안적 평가문화가 적극 형성될 필요가 있다. 변별보다는 성장과 발달을 중심으로 하는 평가를 지향해야 한다. 시험의 과도한 지배를 보완하고 대체하기 위한 교수학습과정에 충실한 평가방법들(수행평가, 포트폴리오평가, 참평가 등)과 함께 교사들에 의한 교실평가의 자율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셋째, 교육과정을 협소화시키고 교육내용을 제한하는 평가를 지양해야 한다. 미국의 반표준화운동의 대표자인 알피 콘에 의하면 가장 나쁜 평가는 ‘상대평가로, 선다형에 의해, 제한된 시간에, 반복적으로, 1학년부터 실시되는 시험’이다.9)
9) Alfie Kohn, The case against standardized testing: raising scores, ruining the schools, Portsmouth, NH: Heinemann, 2000.

문제는 선다형 자체보다도 선다형 시험을 반복적으로 준비하면서 갖게 되는 사고 습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이 실생활에서 문제해결력을 가진 주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열린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시험준비를 위한 반복훈련에 익숙한 교육문화에서 이러한 능력은 키워지기 어려우며, 고등사고 훈련을 위한 각종 교육과정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넷째, 시험이 책무성 평가와 연계됨으로써 나타나는 각종 문제들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시험과 직접 연계된 교과들의 비중이 높아지다 보니 교육과정이 협소화되고 학생의 전인교육 기회가 줄어들며 교육기회 불평등을 통해 사회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시험의 결과를 학교 책무성과 연결할 경우 학습자 개인의 필요에 대응한 접근보다는 평균수치를 높이기 위한 접근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평가결과에 영향을 미친 다각적 요인들에 대한 엄밀하고 공정한 분석없이 학교 간 차이 등이 단순 비교되는 오류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주어진 점수의 객관성과 과학성에 대한 일종의 신화적 믿음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시험의 결과가 전체를 보여 줄 수 없는데도 전체를 본 것으로 간주된다면 그것은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 종합적 판단을 위해서는 ‘빠른 언어’를 넘어서는 접근이 필요하고, 빠른 언어가 아니라 복합적이고 맥락적으로 질적 특성을 드러내는 ‘치밀한 언어’의 사용에 익숙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변별의 언어’로부터 벗어나 ‘교육의 언어’를 ‘회복’(이제까지 없었다면 ‘개발’)해나가야 할 것이다. ‘시험의 나라’는 참된 의미의 ‘공부의 나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