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전 교육부장관, 서울대 명예교수

공교육과 사교육의 충돌

한국이 1996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으로 가입하기 바로 직전에 그 기구의 교육위원회가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1995년에 공표되어 추진 중에 있던 교육개혁방안(흔히 ‘5·31 방안’이라고 칭함)을 비롯한 한국의 교육정책과 현안을 평가한 적이 있다.

이때 한 평가위원이 한국의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언론에 의견으로 제시한 바가 있다. 그는 한국의 학부모들이 과중한 사교육비를 부담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빈부의 격차로 인하여 교육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국 사회가 이 문제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였던 것 같다.

그 평가위원은 미국 출신의 직업기술교육의 전문가였다. 그의 의견은 의외로 대단히 단순하였다. 사교육비의 부담이 어려운 저소득층을 국가가 지원해 주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실상 그는 우리나라의 사교육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그 사교육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한 채 그런 말을 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사교육 그 자체는 별로 교육적이지도 않으면서,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둔 가정에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애물단지’라는 인식이 상당히 지배적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 평가위원의 생각으로는 사교육에 많은 비용을 들이고 있는 한국 사회는 교육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이러한 왕성한 교육열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자산이라도 되는 것으로 여긴 것 같기도 하다.

교육을 위하여 많은 돈을 쓰는 삶, 이보다 더 좋은 질의 삶을 생각하기가 어렵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교육에 돈을 아끼면서 사는 삶이 어떻게 좋은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돈을 어떤 교육활동을 위하여 어떻게 쓰는가이다.

우리가 문제 삼고 있고 부담으로 느끼는 사교육이란 학교의 점수를 잘 따서 대학에 진학하는 데 유리하도록 하려는 소위 ‘과외학습’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사교육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엄격히 따져 보면 과외학습도 교육적으로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학생들 중에는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학습 결손이 생겨 교실의 진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반드시 이수해야 하지만 특정한 교과에 적성이나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누구의 도움을 받아 별도의 학습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심이 있는 내용이나 관련된 분야의 보충적 학습의 필요가 있어도 획일적인 학교의 수업으로는 충족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정도의 과외학습 수요라면 학교가 조금의 관심만 기울여도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고, 더욱 발전적으로는 학교의 일상적 교육운영에서 충족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과외학습은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라, 좋은 점수를 따기, 혹은 남들보다 나은 학습을 경험하기 위한 소모적 경쟁을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과외학습을 중심으로 하는 사교육의 수요가 계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임에 따라서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고 그러한 시장구조에서 부추겨지는 수요가 증폭하여 해당 교육과정에 관련된 학습지도의 주도권이 학교에서 학원으로 옮겨가는 현상도 관찰되고 있다.

말하자면 학교는 제도적인 취학의 형식을 제공하지만 실질적인 학습활동은 사교육 기관이 주도하는 현상이 현실로서 나타나고 있다.

공교육의 학습 내용은 국가와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에 해당하지만, 사교육 기관에 의해서 개인이 추구하는 사적재(私的財, private goods)의 수요로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

사교육의 경영자는 사적재의 욕구를 충족시켜 과외 학습을 상품화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자로 인식되고, 이윤의 창출을 위하여 공교육의 학교와 교육성과의 경쟁 상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이러한 관계는 결코 바람직한 관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화합

국가나 공공단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공교육과 개인의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사교육의 성격적 차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첫째, 공교육은 국가나 사회의 필요에 의해 국민에게 제공되는 교육인 반면, 사교육은 개인적 필요에 의해 스스로 찾아가는 교육이다. 둘째, 공교육에 비하여 사교육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비교적 적게 받는다.

셋째, 공교육은 교육과정과 교육내용의 제약을 받지만 사교육은 비교적 자유스럽다. 넷째, 공교육의 공급자는 최소 자격기준을 충족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동질적이지만, 사교육의 공급자는 최소 자격기준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공급자간의 질적 편차가 매우 심하다.

다섯째, 공교육은 전인교육이 목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교과목을 일정한 기간에 걸쳐 다루지만, 사교육은 특기신장, 취미활동, 상급학교 입학 등 제한 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수의 교과목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사교육은 공교육에 비하여 교육 부담 비용이 크지만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며 공교육보다 개인의 선택권이 매우 높다.

이렇듯 분명히 공교육 기관인 학교가 모든 교육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공교육의 영역은 제도적 형식 속에 있는 것이므로 보편성은 있으나 개개인의 학습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경직된 획일성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특히 고도의 영재성을 발휘하는 능력을 개발하기가 어렵다. 세계적 수준이 아니라도 유능한 음악가, 무용가, 미술가, 문학가, 스포츠인, 발명가 등이 일반적인 교육과정의 운영으로 양성되기는 어렵다.

또한 별도의 지도를 요하는 특별한 기술의 소유자를 기르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서 평생교육적 수요가 급증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모든 학습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학교 제도도 근래에 와서 과감하게 획일성을 벗어나고 있다. 영재학교, 특수학교, 특수목적학교, 특성화학교, 마이스트학교, 대안학교 등 다양한 학교가 구안되었다.

그리고 ‘반복학습제도(reschooling system)’, 즉 학교의 기능을 정시에 입학하고 졸업하는 교육장으로 한정될 것이 아니라 수시로 필요에 의해서 학교를 다시 이용할 수도 있게 하는 제도를 말하는 이론가들도 있다.

그러나 공교육 기관인 정규의 학교가 수없이 다양한 학습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사교육은 공교육의 공공재적 영역에 부분적으로 참여할 필요는 있지만, 공교육의 기능에 장애가 되는 위치에 놓여 있는 것보다는 공교육이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본격적 기능을 찾는 것이 자체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마도 미래사회, 특히 지식기반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사회는 교육에 의해서 일구어 가는 사회이므로 교육 프로그램의 수요는 거의 무제한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학령기의 젊은이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의 학습장 이외에, 성인들의 취업을 위한 자격증, 직업의 전환을 시도하는 전문학습, 그리고 취미와 교양을 위한 성인교육활동 등이 전례 없이 왕성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판도에서 본다면, 미래의 교육서비스는 의료서비스와 유사한 체제로 재구축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의료서비스가 종합병원과 수없이 많은 단설병원 (클리닉)들로 편성되어 있듯이, 기본적이고 종합적인 학습 수요를 감당하는 정규의 학교 제도와 수없이 많은 별별 수요를 충족시키는 학습장(학원)인 사교육 기관으로 분업화되고 그러면서도 서로 연계된 체제에서 교육서비스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