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이슈·기획
[역사교육] 21세기 역사교육 존속의 가능성
월간교육 | 승인 2017.05.02 10:16

1. 21세기 한국 역사교육의 위기

2017년 현재, 우리는 정부 주도에 의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의 실패를 목도하고 있다. 필자는 이 실패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단지 하나의 교과서 정책 실패가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행해져 왔던 역사교육 전체의 실패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동안의 역사교과서 문제의 추이를 조금만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의 역사교과서 문제의 본질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역사교과 문제의 논의가 편협 되게 이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현실 및 학생의 실태와 얼마나 유리되어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역사교과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제7차 교육과정에 의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서부터 비롯된다. 2002년부터 고등학교에서 가르쳐진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1970년대 유신체제 하에서 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추진된 이래 첫 검정교과서였다.

사실, 한국근현대사 과목이 검정교과서 체제로 교육되게 된다는 것 이외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점이 있다. 근현대사 과목의 출발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현대사 교육이 학교에서 실제적으로 처음 행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국사교과서에 현대사 서술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현대사는 학교에서 가르쳐지지 않았다. 가장 마지막 단원이기 때문에, 수능이나 입시의 범위 밖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실제로 가르치기 어려웠다.

즉, 수능이나 입시가 끝나고 나면 한국현대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과를 통틀어 학교에서 교과서를 활용하여 교육하는 것이 사실상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근현대사 과목이 선택 과목이기는 하지만, 6∼8단위로 고등학교 교실에서 실제로 교육되었다. 이것으로 현대사 교육이 학교 교육에서 본격화되기에는 충분하였다. 그것도 검정체제로 개발된 교과서를 가지고 현대사 교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남과 북의 대결상태가 상존하고, 또 한국사회 내부의 이념적 및 정치적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현대사 교육은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기 쉬운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현대사를 학교에서 교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연구하는 것조차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 틈을 비집고 현대사를 연구하고 또 현대사 교육을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을 주장한 것은 좌파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였다.

하지만, 어떤 경위로 제7차 교육과정에 한국근현대사 과목이 신설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경위로 그 교과서를 검정체제로 발행하게 되었는지 밝혀진 것이 없다. 아니 현재까지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문제의 발단이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신설과 교과서 검정 발행의 경위에 대해 어느 누구도 연구는 물론이고 본격적인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2002년부터 제기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2007년에 교육과정을 전면 개정하여 종래까지 필수 과목이었고 또 국정체제로 교과서를 발행하던 ‘국사’를 ‘한국사’로 개명하고, 그 교과서에 대한 검정화 조치를 단행하였다.

그 결과 역사교과서 문제는 한국사 교과서 문제로 옮겨가게 되었다. 2008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실용 정부를 표방한 것처럼, 교과서 문제를 중요 과제로 상정하지는 않았다.

결국, 한국사 교과서 문제는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게 되었고, 논란 끝에 고등학교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환원하고, 그 교과서는 국정체제로 발행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한국사를 필수화하는 초강경 조치를 취하였다.1)

1)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육정책 3가지―고등학교 한국사의 필수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한국사 과목의 수능 필수과목화―중에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이외에 나머지 2개의 정책은 큰 반대 없이 수용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한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이해관계 측면에서득 이 되었던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적 논란이 되는 교과서 정책을 광범위한 국민적 논의를 거치지 않고 거의 독단적으로 결정하였다. 이점은 제7차 교육과정에서 한국근현대사 과목을 신설하고, 그 교과서를 검정체제로 발행하는 것을 결정하는 과정이나 노무현 정부에서 국사를 한국사로 개명하고 선택과목화하는 한편 검정체제로 교과서를 발행하는 것을 결정하는 과정을 조용하게 추진한 것과 유사하다.

다만, 후자에서는 진영 내부에서 조용하지만, 그런대로 논의과정을 거친 데 비하여, 전자에서는 진영 내부에서조차 논의를 거의 하지 않고 반대하는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다만, 중요한 국민적 관심사를 광범위한 국민적 논의 없이 정권적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조치하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 결과 한국의 역사교육은 교육현실 및 학생의 실태와는 유리하여 20여년 넘게 정치적 차원에서 그 정책이 결정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학교 현장의 역사교육은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것은 곧 한국 역사교육의 위기이다. 그것도 본질적 위기이다.

2.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반대의 본질

가. 정부의 국정화 추진 이유와 추진 과정

21세기의 문명화되고 민주화된 사회에서 새삼스러운 교과서 국정화 정책에 대해 쉽게 수긍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과서의 국정화는 일반적으로 스탈린 공산주의나 일본군국주의와 같은 전체주의적 정권 하에서 교육을 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할 때 추진되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해방 후 한국에서와같이 민간에서 양질의 교과서를 개발하거나 구매할 수 있는 역량이 성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교과서의 질과 가격을 통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추진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굳이 국정화를 추진하려하였을까?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이유는 2015년 11월 3일의 황교안국무총리의 담화에 잘 나타나 있는데, 다음의 세 가지다.

첫째는 오늘날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현실이 비상 상황이라는 것이다.

즉, 북한에 대해서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수립이라고 서술한 반면에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이라고 하여 마치 북한에 국가적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으며, 6.25전쟁에 대해서는 김일성의 전쟁 동기와 남침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쟁 책임이 남북 공동에게 있는 것처럼 이해하도록 서술되어 있고, 천안함 폭침 등 북한의 침략과 도발을 은폐·희석하여 남북관계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등 전체적으로 친북·반대한민국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검정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의 다수가 (정치)세력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편향성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정부의 합법적인 수정 명령도 무시하고 독선적 소신을 고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교과서와 참고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과서 검정의 범위 밖에 있는 교사용 지도서나 문제집을 통하여, 예를 들면 “6.25전쟁은 이데올로기의 대리전이자 민족 내부의 갈등이 얽혀 발발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와 같이 반대한민국적인 태도를 적극적으로 주입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선택과정에서 학교의 자유로운 교과서 선택권을 원천적으로 배제함으로써 검정교과서 제도를 실패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즉, 2013년 교과서 채택과정의 초기에 이미 20여 개 고등학교가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였으나 특정 집단이 나서 인신공격과 협박 등을 통하여 결국 강압적으로 그 선택을 철회시킴으로써 검정제도 자체를 무력화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이상과 같은 이유로 현행 검정제도로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보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특히 역사교과서의 자유로운 선택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검정 발행제도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국정화를 추진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와 상황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다수 국민들이 대체로 동의할 수는 있었지만 그 방향이 국정화인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되지 않았다.

보수정치권과 우파 사회진영에서는 국정화 찬성 논의가 꽤 활발하게 개진되었지만 의견이 나누어져 있었다. 게다가 구체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국정화’ 추진의 주체조차도 명확하지 않았다.

교육부 및 국사편찬위원회 등 담당 부서와 주무기관들은 교육과정이나 집필기준 연구 이외에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조차도 추진하지 않고 있었다.

특히, 교과서 업무의 라인에 있는 핵심 구성원들 사이에는 평소에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소신으로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공개적으로 국정화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다.

즉 ‘국정화’ 추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한에 밀려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국정화가 추진되었고, 그 모든 책임도 청와대와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감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 정치권 및 교육계의 국정화 반대 이유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는 정치권과 교육계 그리고 학계와 시민단체 등 여러 세력들에 의해 동시적으로 또 매우 긴밀하게 연계되는 가운데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그중에서도 2015년 11월 4일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발표한 대국민담화와 2016년 11월 7일에 조희연 서울특별시 교육감의 기자회견문을 토대로 반대 이유를 검토해보자.

문재인 대표의 '역사국정교과서 저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제하의 담화는 “친일은 친일이고, 독재는 독재입니다. 역사는 그 자체로 역사여야 합니다. 아픈 과거를 왜곡하고 미화하는 것으로 진정한 긍지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라는 선문답 같은 말로 시작된다.

정치인의 담화치고는 국민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문투이다. 그러나 분석해보면 골자는 단순하면서도 끔찍하다.

즉,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자체가 친일이고 독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친일이나 독재는 후대의 해석일 뿐 그 자체로서 결코 역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친일이나 독재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역사 자체인 것처럼 단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선적 논리에 근거하여 국정화를 부정하고 있다.

또한, 당시 발표되지도 않은 국정교과서를 가리켜 ‘거짓말 교과서’ 혹은 ‘부실 교과서’라고 미리 단정하였다. 그리고 “국정화 고시 강행은 획일적이며 전체주의적 발상”이며, “그 자체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고, 따라서 “국정교과서는 한마디로 원천무효”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조희연 교육감은 국정화 반대의 이유로서 국정화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가 비교육적이며, 획일적인 지식과 정답만을 찾게하기 때문에 공교육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즉, 국정제 자체를 문제 삼는다.

그런데 실제로 국정교과서는 정부가위임한 기관(국사편찬위원회)이 집필자를 선정하여 교과서 원고를 쓰고, 정부가 심의위원을 구성하여 교과서 내용을 심의하는 한편, 현장에서 교사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한지를 검토한 후 최종 제작한다.

반면에 검정교과서는 민간 출판사가 집필자를 선정하여 교과서 원고를 쓰고, 검정기관에 출원하여 검정에 합격하면 최종 제작한다.

검정교과서는 교과서 제작 과정이 비교적 간편한 반면에 다수의 민간 출판사가 경쟁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교과서가 만들어지므로 학생과 교사들이 그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한편 국정교과서는 심의위원의 심의와 현장 교사들의 검토를 거치는 등 상대적으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전국의 모든 학생들과 교사들이 이 한 권을 가지고 공부하고 가르치더라도 큰 무리가 없도록 한다는 특징이 있고, 결과적으로 교육내용이 표준화되고 오류나 부적정한 내용이 최대한 방지된다는 장점을 가진다.

하지만 국정이든 검정이든 실제로 현장에서 활용할 때에는 한 권의 교과서로 가르치고 배운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며, 그 교과서를 어떤 입장에서 편찬하고 또 활용하느냐에 따라 토론 중심으로 공부하고 가르칠 수도 있으며, 획일적인 지식과 정답 찾기 식으로 공부하고 가르칠 수도 있다.

또한, 조희연 교육감은 국정제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바로 세우는 것은, 역사에 대한 정의로운 평가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하며, 역사에 대한 ‘정의로운 평가’를 통해 미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국정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근현대사를 친일과 독재의 역사로서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것을 왜곡하고 미화하여 자랑스런 역사로 평가하게 되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바로 세울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국정화를 반대하여 우리의 근현대사를 친일과 독재의 역사로 평가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래는 현재의 대한민국과는 다른 사회를 세울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계와 교육계의 국정화에 대한 반대 논리는 공통적으로 우리나라의근현대사는 그 자체로서 친일과 독재의 역사로서 평가해야 하며, 그것을 국정화를 통해 왜곡하고 미화하려 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다. 국정화 추진 및 반대의 본질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국정화의 추진 이유도 그것에 반대하는 이유도 비교적 명확하고 또 단순하다. 국정화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검정교과서가 친북·반대한민국적이며, 현행의 검정제를 통해서는 개선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추진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국정화 반대는 한국근현대사는 친일과 독재의 역사인데, 그 역사를 국정화를 통해 미화·왜곡하려 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것이다. 그 어디에도 21세기 한국사회에 걸맞은 바람직한 역사교육의 방안에 대한 논의가 결락되어 있다.

그리고 서로 반대하는 친북·반대한민국적 역사 서술 내용과 친일과 독재에 대한 미화 및 왜곡 서술 내용에 대한 판단의 기준도 없다.

자신들의 주관적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평가하고 또 주장하고 있을 뿐이고, 그것을 국민과 함께 논의하여 대체적인 합의의 바탕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도 없어 보인다. 범국민적인 관심사인 교과서 및 교육문제에 대해 그야말로 정치적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화’의 추진을 둘러싼 ‘역사전쟁’의 승패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여하에 달려 있었다. 만약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순조롭게 성공시킬 수 있다면, 박근혜 정부로서는 ‘통진당 해산’과 ‘전교조의 비법화’에 더하여 편향적인 역사 이념세력들을 국민과 제1야당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지층의 결집을 꾀할 수 있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정화를 반대하는 세력들도 역사교과서 문제는 하나의 호재였다. 미래에 대한 생산적인 대안이 없는 반대세력에 있어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최고의 공격 대상이였다. ‘국정화’ 반대는 큰 노력 없이 반대만 하면 되는 어젠다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근현대사 연구 성과도 자신들이 절대적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전쟁에 임할 수 있었고, 검정교과서와 관련된 교사와 교수 그리고 출판사들의 경제적 이권과도 결부되어 있기때문에 그 동력도 매우 풍부하였다.

결과는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핵심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추진되었던 국정화 정책은 스스로 무너지게 되었다.

교육부는 하나의 검정 교과서 수준에서라도 국정체제로 만든 교과서를 사용해보고자 하였으나, 반대세력들은 과거 교학사 교과서 때와 마찬가지로 선전과 선동으로 완전히 제압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의 역사교육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국정화 추진이 좌절되고, 검정제로 환원된다고 하더라도 역사교과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역사교육 정책은 더욱 학교 현장과 유리되고 또 학생들의 실태와는 거리를 두게 되어 역사교육의 위기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되었다.

3. 21세기 글로벌 한국 사회에서 ‘역사교육’의 존속 가능성

학교 교육에 ‘역사’가 독립된 과목으로 도입된 것은 르네상스 이후 서유럽에서였다.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유럽의 각 지역에서 국민의식이 강조되는 가운데 역사에 대한 관심이 고양되고,드디어 학교의 교과목으로 도입되었다. 즉 국민의식의 고양이 학교 역사교육의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특히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독일에서는 국민의 국가에 대한 애착, 국가·사회에 대한 봉사, 국왕에 대한 충성 의식의 함양을 역사교육에서 기대하였다. 이러한 역사교육에서는 역사탐구의 결과로 만들어진 역사교육의 내용이 중요한 교육적 의의를 가진다.

따라서 역사교육의 내용은 하찮고 부정적인 태도를 초래하기보다는 위대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선정되었다.

근대의 국가주의적 역사교육은 크든 작든 근대 서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공통된 현상이었다.

그리하여 영국의 철학자 B. 러셀은 “어느 나라도 역사는 자국을 크게 보이게 교육한다. 아동은 자신의 나라가 언제나 바르고, 또 거의 언제나 승리를 점하며, 거의 모든 위인을 낳고, 또한 모든 점에 있어서 다른 나라보다 우수하다고 믿는다”며 근대 역사교육의 자국 중심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일본에서는 명치(明治) 초기에 만국사(세계사) 중심의 역사교육을 하고 있었는데, 독일인 그로드가 1883년에 “구미 제국에서 자국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외국의 역사를 가르치는학교는 결코 없다. 귀국에서도 마땅히 자국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제일(第一)고등학교에서 강연한 후에, 주 1시간의 국사 시간을 설치했다고 한다.

이처럼 자국사 중심의 애국심 함양의 역사교육은 서유럽에서 시작되어 일본을 통해 우리에게도 유입되었다.

그런데 역사교육에는 이상과 같은 국가주의적 역사교육뿐만 아니라 다른 입장도 그 이후에 생겨 논의되고 있다.

영국의 역사교육학자 W.H. 버스톤은 역사를 정치적인 목적이나 다른 어떤 실용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실용주의적 역사교육이 아니라, 역사탐구의 인간 형성적 기능으로서 역사적 사고력을 기르는 본질주의적 역사교육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일본에서도 일찍이 中川一男는 역사교육의 목적을 “첫째, 자기를 인식하는 것, 즉 자기를 철학이나 종교와는 다른 역사적 견지에서 실증적으로 개인과 사회와의 밀접불가분한 관계로서 인식하는 것이다.

둘째,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것, 즉 사회의 가장 발달한 형태인 국가의 정신, 그 구성, 국민 생활의 이해를 지향하는데, 특히 복잡한 현대사를 알기 위해 우선 역사각 시대의 문화와 생활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셋째, 사회의 발달 및 문화의 유전(流轉)을 아는 것, 즉 사회의 진보·발달이라는 개념에 의해 역사를 바라보는 것, 이상 3가지이다”라고 밝히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억, 추리, 판단, 반성이라는 지적 도야의 방법으로 역사에 대한 실감으로서 국가와 정의에 대한 의지를 기대하는 것이 역사교육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역사교육에서는 역사의 탐구결과로서 교육내용 자체보다는 학생들 스스로 역사를 탐구하는 활동 자체가 보다 중시된다.

필자는 이상에서 논의한 실용주의적 역사교육과 본질주의적 역사교육의 두 측면 모두가 현대의 역사교육에 필요하다고 본다. 현대 세계가 글로벌화되어 있고, 또 종래의 국민국가의 틀이 엷어진 것이 사실이지만2), 여전히 현대세계는 국민국가를 기본 단위로 여러 가지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2) 지금 세계 일각에서는 태평양의 공해상에 국가를 세워두고 국민을 모집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국적을 갖지 않는 가상공간의 화폐로서 비트코인(Bitcoin)이 창안되어 유통되기도 한다.

그리고 당분간은 이러한 체제가 지속될 전망이다. 따라서 자신이 소속한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각을 갖기 위한 역사교육도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때 유의해야 할 것은 자신이 소속한 국가 공동체를 무조건 미화하여 다른 공동체를 무시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되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소속한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인식과 태도를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최근 한국에서처럼 친북·반대한민국적인 내용에 의한 역사교육은 공동체를 정체성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고, 이는 나아가 역사교육의 혼란과 함께 사회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역사교육도 위기에 처하게 할 것이 때문에 경계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금후 더욱 진전되는 글로벌화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욱 더 강화되어야 할 역사교육은 본질주의적 역사교육이라고 사료된다.

역사를 탐구하는 활동을 통하여 사회적 존재로서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인간을 이해하고, 또 자신을 이해하는 체험을 축적하여 인간 이해와 자기 인식에 도달하고, 나아가 역사적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역사교육이야 말로 금후 21세기에 더욱 필요로 하는 역사교육이라고 본다.

이러한 역사교육을 위해서는 학교현실 및 학생들의 실태에 기초하여야 하고, 학생의 입장에서 역사에 접근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그리고 역사 탐구의 주체로서 학생의 입장을 굳건히 하고, 그의 성장과 발달을 돕는 역사교육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국가 공동체를 위한 역사교육을 둘러싸고 ‘역사전쟁’이 전개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는 형국이다. 근대화 시대에 확립했어야 할 기본적인 입장을 정립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걸고 싸우고 있는 듯한 현 상황은 국가적 비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본질주의적 역사교육의 길도 차단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역사교육의 위기이다. 한국의 역사교육계가 이러한 난국을 시급히 해결하지 못하면, 역사교육은 현장과 학교로부터 더욱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즉, 학교에서 역사교육의 존속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이 글은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가이 월간교육 4월호에 기고한 글을 재게시한 것입니다.

* 월간교육 2월호 구입하기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588101

* 월간교육 3월호 구입하기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750942

* 월간교육 4월호 구입하기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838004

*정기구독 신청 http://www.eduinnews.co.kr/bbs/list.html?table=bbs_14&idxno=46&page=1&total=1&sc_area=&sc_word=

월간교육  edum@eduinnews.co.kr

<저작권자 © 에듀인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월간교육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많이 본 정보
포토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247길14-8 (지번)행운동 1690-142  |  대표전화 : 02-877-3000   |  팩스 : 02-878-8819
등록번호 : 서울, 아03928  |  발행인 ·편집인 : 서정화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정화
Copyright © 2017 에듀인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