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불을 밝힌 서울톨게이트가 아지랑이라도 피어오른 것 마냥, 흐릿한 층을 만들어내는 불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고속도로에는 서울로 올라가는 차량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선 채 배기통에서는 희뿌연 연기를 퍼내며 종종걸음을 하고 있었다. 어스름해지는 저녁의 검붉은 햇살이 사그라들자, 늘어선 차량들의 뒤꽁무니에서 빨간 등불이 터져 나오고 고속도로에는 붉은색 혈관이 길고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피곤해 지친 ‘완’은 졸았다 깼다를 반복했다.
빠아앙...빠아앙....
우우웅........우우웅....
자동차 경적 소리에 눈을 뜨니 어느새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었다. 천리 길을 달려온 버스들이 지친 모습으로 여기저기 분주하게 정차할 만한 곳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버스 앞문에서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름 모를 그들이 저 먼 타향에서 올라와 터를 잡은 곳 서울, 각자가 잠을 청할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들이 창문 밖으로 보였다.
치~이이익,
자동문이 열리며 내는 에어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저마다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자신들의 옷가지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누구는 곧바로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고 또 누구는 버스 중앙 하단에 있는 짐칸 문을 열어 젖혀 짐을 꺼내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우우웅.. 울어대는 버스 소리의 울림과 사람들의 주고받는 대화, 여기저기서 통화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한데 뒤섞여 터미널 안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따라가는 어린아이들, 노부모와 함께 이동하는 젊은 사람들, 사람들의 손에는 저마다 각양각색의 짐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피곤해 보이기도 하지만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얼굴의 한 구석에는 편안함이 묻어나 보였다. ‘완’도 터미널 안으로 들어서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서울 생활 십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이야 홍대 근처로 이사 와 살고 있지만, 그 전 까지 ‘완’은 처음 서울에 올라 온 이후로 짧지 않은 시간을 고시원에서 보낸 경험이 있었다. 살 곳을 찾아 서울로 올라온 지방 출신들 중 상당 수 사람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서울에서 고시원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곳에는 직장인도 학생도, 그리고 서울에 살지만 홀로 집을 나와 생활하는 사람,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늦은 저녁 캔 뚜껑 따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다닥다닥 붙은 방의 얇은 벽면을 사이에 두고 서로 우굴거리면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말이 좋아 거주지로 불리는 곳이지 실은 감옥의 독방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 비좁은 곳의 공기는 항상 건조한 상태였고, 겨울이 되면 그 건조함은 ‘건조함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건조함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정의라도 내려주는 것처럼 건조함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벌써 9시네.”
‘완’은 홍대전철역에서 내려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밤바람이 제법 선선했다. 추석이 지나고 나니 더운 공기가 한 풀 꺾인 듯한 느낌이었다. 밤바람 시원한 서울 하늘 위로 희멀건 달이 둥그렇게 걸려있었다.
뚜르르, 뚜르르
새벽 늦게 잠이 든 완의 눈꺼풀이 무겁게 뜨였다. 종덕이였다.
“여보세요”
“형님 저에요”
“응, 집에 잘 다녀왔냐.”
“예. 형님도 잘 다녀오셨어요. 이제 일어나신 거예요? 목소리가 가라 앉아있는데요.”
“새벽까지 다른 것 정리 좀 하느라 잠을 늦게 잤네. 어디냐?”
“아~사무실이에요. 형님, 괜찮으시면 저녁에 상수 형님이랑 식사 어떠세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몇 시에 만날까?”
“6시30분 어떠세요.”
“음~ 괜찮은데, 그러면 광화문에서 보는 게 좋겠지?”
“예 그러시죠. 그럼 제가 상수 형님한테 연락해서 광화문에서 만나자고 약속 잡을게요.”
“알았다. 그럼 이따 보자”
책상 언저리에 걸려있는 시계가 오전 10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너무 많이 자버렸네.”
늦게 자는 잠은 많이 자도 피곤하다던데, 새벽4시에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완’은 자리를 털고 도서관에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홍대입구역 9번출구를 지나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거리는 연휴 직후 때문인지 한산한 느낌이었다. 중천을 향해 올라가던 중인 10시 40분짜리 가을 햇살은 적당하게 불어오는 바람결과 뒤섞여 따뜻하면서도 시원하게 피부에 와 닿았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이 없네. 다들 아직 집에서 쉬고 있나보군.”
4층 자료열람실에 들어서자 여섯 명이 세 명씩 마주보고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책상 곳곳에, 듬성듬성 앉아있는 사람들이 ‘완’의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책상에 자신의 가방을 내려놓았다. ‘완’은 홍대근처로 이사 온 직후부터 이곳 도서관에 자주 나오던 중이었다.
이곳은 마포평생학습관이라는 곳으로 지하에는 수영장과 헬스장, 1층에는 뻥 뚫린 로비, 2층부터 4층까지는 열람실, 5층은 대강당이었다. 건물 내부의 중간은 1층 로비부터 5층까지 삼각형에 가까운 원통형 구조로 수직으로 뚫려 있었다. 때문에 내부에서는 각 층마다 통로가 빙빙 돌아가는 식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윗층에서 아래층 건너편 모습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의 부류도 유치원생 어린아이부터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노년층까지 다양했으며,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과 목표의식을 갖고서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드는 곳이었다.
‘처~억’
종이컵이 떨어지자 커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완’은 1층 로비의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들고서 밖에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11시가 넘어가자 서서히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오늘은 안나오시려나.”
연휴 직후 때문인지 변선배가 좀 늦는 듯 했다. 변선배는 도서관 벤치에 앉아있는 ‘완’에게 말을 걸어와 그것을 인연으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4층 자료열람실에서 자기 앞에 앉아 ‘주역’책을 보고 있던 ‘완’을 유심히 바라봤었던 모양이었다. 그것을 인연으로 그들은 도서관에서 매일 만나다시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었던 것이다.
변선배는 ‘완’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던지 여러 질문들을 던지곤 했다. ‘완’ 역시 그의 태도에 대해 공손하게 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어 적당한 선에서 대답을 선별적으로 하면서 둘 사이가 서먹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그는 다부진 몸매에 약간의 부리부리한 느낌이 드는 눈망울과 부드럽지만 단단해 보이는 턱선, 야무지게 보이는 입술에 위의 머리숱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 옷은 소박하면서 단정한 느낌이었다. 매우 쾌활한 힘을 갖고 있는 모습에서 젊은 시절 꽤나 열정이 넘치는 삶을 살았을법한 모습이 ‘완’의 뇌리에 스치듯 지나갔다.
그가 옛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 할 때는 단단한 얼굴표정과 함께 힘이 들어간 입술, 주먹을 불끈 쥐고는 팔을 밖에서 가슴 안으로 착 감아 안는 모습들이 옛날에 한가락 했던 인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나이는 올해 70세로 만주 태생이라고 했다. 부친이 이북 출신인데 일제시대에 만주로 넘어가서 생활하다가 장가를 가려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경남 밀양까지 내려왔다고 했다. 이후 어머니를 데리고 다시 만주로 넘어갔고 이듬해 만주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어렸을 적에 부모가 다시 소싸움으로 유명한 청도로 내려와서 터전을 잡았고, 어린시절을 그곳에서 보냈으며, 부산으로 이사 해 생활하다가 다시 서울 종로로 옮겨서 이후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에게서는 유쾌하면서도 뚝심 있어보이는 고집, 타협적 기질, 절제미 등이 묘하게 조화되어 나오는 면이 있었다. ‘완’은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연륜과 경륜이란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연휴를 마치고 올라온 탓인지 도서관 공기가 새로운 느낌이었다. 나오는 사람들의 걸음도 훨씬 생기가 있어보였다. ‘완’은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앞날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에 잠겼다.
“어, 벌써 점심시간이네. 아침도 걸렀는데 밥부터 먹자.”
아침을 걸러 허기가 졌는지 ‘완’은 도서관 지하1층에 자리 잡은 식당에서 허겁지겁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들고 야외 벤치로 나왔다.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종덕이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형님 저예요. 점심 드셨어요?”
“응, 그래 도서관 나와서 방금 먹었다. 너는 어떻게 했는데?”
“예. 저 상수형님 만나서 북어집에서 같이 먹었어요. 상수형님 어제 술 많이 드셨나봐요.”
시청 뒤쪽에는 북어국을 맛있게 잘하기로 소문난 유명한 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려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완’도 그곳에서 여러차례 점심을 먹었는데 방문할 때마다 줄을 서야만 했던 곳이다.
종덕이와 상수는 둘 다 사무실이 시청 근처여서 점심을 자주 먹는 편이었고, 홍대에 사는 ‘완’도 종종 종로에 가서 함께 점심을 먹곤 했다. 상수는 셋 중 나이가 제일 많은 마흔 두 살의 총각이었다.
종덕은 상수와 함께 인사동에서 보기로 했다며, 초입에서 만나는 것이 어떠냐고 ‘완’에게 물었다.
“그래 그렇게 하는게 좋겠다. 초입에서 만나자.”
오후 한 시를 막 넘기고 있던 햇볕이 오전보다 따갑게 느꼈졌다.
“들어가서 책 좀 보다 시간 맞춰서 나가야겠군”
4층 자료열람실에 들어서니 언제들 왔는지 텅 비었던 자리가 어느새 제법 채워져 있었다.
도서관에 나온 이후로 항상 마주치던 낯익은 얼굴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출근하는 회사라도 되는 것처럼 어김없이 앉던 자리에 오늘도 자연스럽게 출근도장을 찍고 있는 중이었다.
도서관은 참 다양한 부류들이 집합해 있는 장소였다.
도서관에서 지내다보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취직공부를 준비하는 졸업생은 기본이고,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 실직을 했으면서도 집에서는 회사 나간다면서 정장차림으로 나온 이들이 갈 데가 없어 나오는 경우,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은 물론이고, 노숙자와 실직으로 인해 거의 폐인이 되어가는 사람, 고령의 노년층과 중장년 층들이 집에서 할 일이 없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도서관에 나와 신문을 뒤적이거나 커피를 마시다가, 때 되면 밥 먹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식의 생활을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울고 싶은 사람들처럼 보였고, 자신의 울분을 토해 낼 구실을 찾기 위해 누군가가 자신의 따귀를 때려 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완’은 자리에 앉더니 가져온 책을 꺼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읽어나갔을까?
퉁...퉁...퉁
‘완’의 앞에서 책상을 두드리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변선배였다.
([죽은도시의 반란] 2화. '다시 서울로2'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