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말 서울에 머물고 있던 전체 팀원이 부산으로 내려왔다. 정오의 햇살이 머리 위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야~ 날씨 좋네.”

서면 한 복판에 들어서자 박현 팀장이 한 마디 툭 던졌다. 따스하게 느껴지는 남쪽 날씨에 박현 팀장의 기분이 약간 상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빨리 짐 풀고 우리도 밥 먹자구”

따뜻한 햇살, 오랜만에 나서는 지방 나들이에 모두가 기분이 동해 있었다.

햇살은 겨울과 봄의 중간 그 어느 쯤에서 쏟아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라 전체가 한 겨울이라 할 만한데도 부산은 봄이 마음을 급하게 서두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팀원들은 미리 예약한 서면역 주변에 위치한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각자 챙기고 온 짐들을 풀어 정리하느라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앞으로 선거가 끝날 때까지 머물러야 할 공간이었다.

“자, 자, 대충들 정리하고 얼른 점심 먹으러 갑시다.”

태한 이사가 팀원들을 다그쳤다.

“주변에 유명한 자장면 집이 있는데 그리로 가자구.”

짐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일행은 서면역 중심상가로 발길을 잡았다. 태한 이사가 앞장선 곳은 롯데호텔 주변에 위치한 자그마한 자장면 집이었다. 통유리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 한 컨에서 주방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도마에 밀반죽을 연신 패대기치면서 수타면을 만들고 있었고, 입구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뜨린 채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일행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자리를 잡은 일행들 모두가 자장면 곱배기와 만두를 주문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탓에 허기가 졌던 모양이었다.

부산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체로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는 모습들을 보면 서울에 비해 더없이 한가로워 보였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고 하는 부산에서 그것도 가장 번화가라고 하는 서면에서 아침 출근 시간의 광경이란 무슨 산책 나가는 사람들만 있는 것처럼 보일정도였다.

서울이라면 아침 7~9시간 때이면 사람들이 매우 빠른 몸놀림으로 각자의 길을 가는 모습들이 일상적인 풍경인데 반해 부산의 번화가인 서면 지하철역은 좀 과장하자면 거의 텅 빈 느낌이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더없이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완’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산에서 살고 계시는 외숙부께서 하셨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야, 서울 사람들은 뭐가 그리 바쁘노, 지하철 한 번 타는 데 무슨 달리기 선수들인지 알았다~. 지하철 탈라꼬 서로들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정신이 엄청 사납드라.”

‘완’도 서울과는 판이하게 비교되는 서면역 풍경을 보면서 그 말에 백번 공감하고 있었다. 전쟁터 같은 서울 분위기와는 달리 부산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정말 느긋해 보이는 모습에서는 평온한 분위기까지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부산의 일정은 이미 서울에서 기획한 데로 진행되어 갔다. 3월이 지나고 4월에 들어서자 사무실에는 외부 사람들의 출입이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무소 직원부터 후보지인들, 지인들이 데리고 오는 손님들을 비롯해 갖가지 이유로 찾아오는 사람들로 사무실이 북적댔다.

전략기획팀은 그들대로 내부와 외부를 오가면서 사무실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녔고, 어찌됐건 그런 상황 속에서 선거는 ‘승리’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전진해 나가고 있었다.

선거 국면은 무상급식 논쟁부터 시작해 보수후보네 진보후보네 하면서 한창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후보 난립에 따른 진영의 분열을 염려해 단일화 문제 등으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또 3월에 터진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선거 국면이 안보문제와 직결되면서 선거 국면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두가 민감해 하고 있었다.

외부에 다녀온 ‘완’이 기획실로 들어와 두리 번 거리고 있었다. 기획실에는 조직책들이 구해온 시민들의 연락처 리스트가 한 무더기 쌓여있었다. 일부 몇 사람은 그 많은 연락처 리스트를 홍보에 사용하기 위해 한 참 정리 중에 있었다.

그런데 쌓여있던 연락처 더미에서 유독 ‘완’의 눈에 띄는 표지 하나가 들어왔다. 삼지회?

겉장의 표지부터가 잘 정리된 것이 다른 명단들과는 달리 ‘완’의 눈길을 붙잡았다.

이게 뭐지. 명단을 잡아든 ‘완’은 첫 장을 넘겼다.

“이거 뭐야! 엔지그룹 부회장 김개똥. 이거 뭐지. 도대체 누가 이런 명단을 가져 온 거지.”

거기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의 사장, 부회장. 임원, 부산 지역의 기관장급의 이름과 주소, 휴대폰 번호, 집 연락처 등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대략 30여명 정도 되는 명단을 쭉 훑고 내려가던 중 ‘완’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한국정보원 부산 지부장 김철수.....”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의 부산지역 장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 부산지부장이라.....”

‘완’은 정보기관장이 지역 유지들의 모임 회원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졌다.

굳이 그들의 모임을 안경을 낀 시선으로 볼 필요야 없지만 한 나라의 최고 정보기관에서 그 나라의 제2의 도시라고 하는 곳의 지부장이 이런 모임에 끼어들어 활동한다는 것이 왠지 자연스런 모습으로 비춰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지위나 재력으로나 지도층급의 인사들이 모이는 곳에서 그들은 어떤 친분으로 어떤 정보들을 주고받을까? ‘완’은 문뜩 스쳐가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완’은 그 서류에 대해 사무실로 들어오지 않을 내용의 명단인 듯 한데, 조직책 중 누군가가 실수로 가져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선거가 치러지기 시작하면, 홍보전략 차원에서 대도시의 경우 수만 또는 수십만의 이름과 연락처를 조직책을 통해 확보하는데, 누군가가 대충 무의식중에 가져온 것으로 ‘완’은 판단했다. 일반사람들도 자신의 신상정보에 민감한 편인데, 그 모임의 회원들은 대한민국 사회라는 곳에서 소위 상류층이라 스스로 자부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완’은 호민에게 그 명단을 보여 주었다. 호민은 누가 이런 명단을 가져 왔을까?라며 짐짓 의외의 정보를 얻었다며 궁금해 했다.

‘완’은 호민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바로 옆에 있던 파쇄기에 명단을 넣어버렸다.

그 명단은 부산을 주물럭거리는 조용한 권력의 덩어리였다.

선거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을 무렵 서울사무실에 올라갔던 호민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4월 30일이었다. 충청도 선거를 기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형님 이제 시간이 얼마 안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잖아요.”

“후보가 주저주저하다가 마음을 굳혔나봐. 박이사 하고는 통화해서 협의 했으니까 얘기하고 내일 바로 올라와 나도 여기서 내일 아침에 바로 내려갈테니까.”

호민은 ‘완’에게 충청도 연기군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것도 당장 내일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박이사 오면 얘기하고 올라갈 준비할게요.”

호민과의 전화를 끊은 후 ‘완’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충청도라.... 이거 너무 촉박한데. 2주 동안 모든 준비를 끝내고 바로 바로 총력전에 들어가야 한다는 얘긴데.......”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였으며, 실질적으로 승리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대한민국의 경우 지방선거라 할지라도 중앙정치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후보가 전체적인 선거 구도를 압도할 만한 인물이던가, 아니면 정당색이 지역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을 수 있던가, 아니면 2004년 탄핵국면처럼 특정 상황이 뒷받침 해주지 않는다면 선거는 결과는 이미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이튿날 오전

‘완’은 짐을 싸들고 KTX에 몸을 싣고 충남 연기를 향해 출발했다.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넘어오는 5월의 햇살이 객실 안 가득히 봄기운을 담아 옮겼다. 열차가 출발하자 여승무원이 승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지나가고 객실을 왕복하는 커피 판매원이 ‘완’의 앞을 지나갔다. ‘완’은 판매원을 불러 세워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부드러운 커피 한 모금이 몸을 깨우는 듯했다.

차창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완’은 교육감선거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교육감선거는 교육정책에 대한 비전 보다는 안보와 관련한 이데올로기 측면의 논쟁이 선거에서 진영의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정책이고 뭐고, 진보와 보수를 확인하는 정치노선 경쟁에 의해 여타 다른 생각들이 자리할 공간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후보들 사이에서도 정책은 뒷전이고 보수진영 후보를 단일화하자는 둥 연대하자는 둥 진보진영은 또 그들대로 연대냐, 단일화냐 어쩌구 저쩌구 난리법석 이었다. 교육감선거에 나왔다는 후보들의 입에서는 정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진보후보와 보수후보라는 단어가 더 많이 회자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보니 보수니 하면서 교육선거가 정치 같은 선거가 돼버리는 모양새였고, 실제로도 후보들이 정치권 쪽에 줄을 대서 그 덕을 보려고 열심들이었다. ‘완’은 2008년 서울시000 선거를 치르면서도 후보들이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 지원을 부탁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교육이라는 것이 진보니 보수니 하는 정치 스펙트럼 틀 안에서 진행되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에 정치와 안보 논리가 끼어들어 선거를 기점으로 서로에게 날선 공격을 퍼붓고, 누구 없는 세상을 만들자느니, 뭘 만들자느니 라면서 극단적 소리를 내며, 어느 한 쪽은 대한민국 교육에서 제거되어야 한다는 과격성마저 보였다.

교육이 이데올로기 투쟁의 장이 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정책이라고 해서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닐 텐데, 거기다 진보와 보수라는 색깔을 찍어다 붙여서 나는 보수네, 너는 진보네 하면서 정치를 흉내 내려는 모습들이 솔직히 교육지도자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였다.

그들은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누구는 진보 교육을 시키고, 누구는 보수교육을 시켜서 미래의 싸움꾼을 육성 시킬 계획이라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완’은 000 선거를 정치와 안보 논리로 포장시켜 이념 전투를 하듯 선거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이런 선거를 정치 선거와 함께 치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의문에 놓였다.

(죽은도시의 반란 <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