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를 애도하며]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은 사람
[YS를 애도하며]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은 사람
  • 윤종건
  • 승인 2015.11.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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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순간은 짧고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

고 김영삼 대통령이 퇴임식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대통령 시절 초기에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높은 90%를 넘는 지지율을 보였다. 그러나 퇴임 시에는 10%대의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인생은 극과 극을 오갔다.

26세의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출발하여 9선이라는 최다선 의원이기도 했고, 최연소 당 총재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년의 행적에 크게 실망하여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평가해왔다. 그 까닭은 IMF 관리라는 국가부도사태를 빚었고, 아들에 대한 집착으로 추태를 보였으며, 미운 털이 박힌 이회창을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시키기 위해 이인제를 내세운 일이나, 퇴임 후에는 일체의 정치적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선언과는 달리 이따금 정치인들에게 씨가 먹히지도 않을 훈수를 하고 독설을 내뱉는 등 미운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공과가 있기 마련이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공과를 살펴 공이 과보다 많으면 과는 묻어두고 공을 평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고 김영삼 대통령은 그의 장례식을 앞두고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서 재평가하게 되었다.

물론 때가 때인 만큼 죽은 사람을 혹평할 용기를 지닌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래서 언론도 하나같이 그의 공이 과보다 더 많음을 치켜세우고 있다. 그래서인지 원수 같을 사람들도 속내를 감추고 조문을 하는 걸 보고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고인을 욕해서 얻을 것은 없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도 그를 평가할 때 잘한 점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평생 동안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다는 점일 것이다. 국회의원직 제명, 23일간의 단식투쟁, 구속과 가택연금 등은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그의 명언과 더불어 만인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의 민주화 투쟁은 처절했다. 온갖 핍박을 감내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온 몸을 던졌다. 오죽했으면 박정희를 향해 ”(박정희는)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져도 비참하게 쓰러질 것이다.“라고 저주했을까.

그는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밖에 없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못 빌린다.”, “정치인에게 돈은 정거장 같은 것이어야 한다. 돈이 고이면 썩는다.”는 등의 명언을 남겼다.

그는 제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취임사에서 국정운영방향을 제시하면서 첫 번째 과제를 부정부패 척결이라고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것이 ‘하나회’라는 군부의 사조직을 해체한 것이며, 금융실명제와 차명계좌를 없앤 것이다.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해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고, 5.16을 쿠데타로 규정했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국가반란음모죄로 구속하였다. 그 밖에도 안가 철거, 칼국수 접대, 공직자 골프 금지 등으로 부정부패척결을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아들의 비리가 있었지만 자신은 청렴결백했다. 정치자금을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천명한 그의 언약을 실천한 것이다. 그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지금 남아있는 상도동 집도 부인 손명순 여사가 죽으면 사회에 환원하기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하여 정말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서 전두환과 노태우라는 호랑이 두 마리를 잡았다. 그의 호 ‘巨山’에 걸맞은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사진제공=김영삼민주센터)

그러나 그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가장 큰 것은 국가부도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가 애써 변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경제에는 좀 약한 면이 있었다고 한다. IMF 사태 불과 몇 달 전까지도 측근의 경제전문가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했다고 하니 그것도 전문가들을 너무 믿었던 탓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사태가 이렇게 된 책임은 오직 대통령인 저에게 있으므로 저는 어떠한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스스로 ‘人事는 萬事’라면서도 국무총리 6명 교체를 비롯하여 각료들의 평균 재임기간이 8개월에 불과할 정도로 자주 바꿨고, 경제부처 장관도 6번이나 바꿈으로써 국정의 지속성을 단절시켰고, 그것이 IMF 사태를 빚게 된 한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인사에 실패한 셈이다.

아들 현철의 비리연류는 그로 하여금 눈물을 머금고 부인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구속시켰고, 참담한 심정으로 목멘 소리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검찰총장에게 아들 현철을 빨리 구속시키라고 성화를 부렸다는 일화며, “아들 감옥 보내려고 대통령 하느냐?”는 부인의 항변과 그로 인한 가정불화로 한동안 집에도 못 들어갔다는 일화도 전한다.

친족의 비리는 참으로 뿌리 뽑기 어려운 것인가 보다. 그의 앞 대통령이나 그의 다음 대통령인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도 하나같이 측근 비리에 연루되어 오명을 남기고 있으니 말이다. 유일하게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가 친인척 비리는 부각되지 않았지만 그 대신 주변 인물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했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에게 빼앗기고 말았지만.

그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으나 그가 대통령 재임시절에는 유별나게 대형 참사가 많았다. 얼핏 떠오르는 것만 해도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등등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확실히 공이 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재평가되어야 함에도 나는 그동안 그의 작은 과오에 집착하여 그를 매도하고 미워했었다.

뒤늦게나마 大道無門(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道理)나 정도(正道)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으로, 누구나 그 길을 걸으면 숨기거나 잔재주를 부릴 필요(必要)가 없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다 돌아가신 고 김영삼 대통령에게 머리 숙여 사과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진심으로 민주화의 거목이며 나라의 큰 별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윤종건(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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