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축복인가 재앙인가] (10)민주주의의 절차론적 특성
[민주주의, 축복인가 재앙인가] (10)민주주의의 절차론적 특성
  •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21.04.1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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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절차론적 특징

역동적-자발적 삶의 공동체

민주주의의 개념을 의중에 떠올릴 때, 우리는 사회 혹은 조직의 구성원이 평등한 인격적 존엄성을 보장받고 자유로운 삶을 향유하는 제도적 특징을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폭넓은 자유를 누리고,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주어진 기회를 통하여 자아의 실현을 도모하며, 개방적으로 가치를 공유하면서 평화로운 공동체의 삶을 전망하게 한다. 이러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다른 유형의 사회에 비하여 인격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누리므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외발적(外發的) 통제나 구속이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고 여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적 조직이나 사회에서는 그 구성원이 외발적 통제나 구속이 전혀 없는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적어도 성숙한 구성원은 전통이나 문화로서 주어진 규범 혹은 가치에 의하여 심리적으로 타율적 통제를 받기도 하고, 참여하는 조직 혹은 공동체의 제도적 규칙의 강제적 지배를 받으며, 거기에 스스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개인들은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는 자발적(自發的) 통제를 가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각종의 문화적, 심리적, 제도적 통제가 외부로부터 주어지기도 하지만, 개인들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입법한 규칙에 의한 자율적 통제의 삶을 영위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일종의 “정태적 구조” 혹은 제도라기보다는 오히려 특정한 방식의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동태적 과정” 혹은 절차적 원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절차주의(proceduralism)이기도 하다. 이때의 과정은 단계적 진행을 의미하는 구체적 절차일 수도 있고, 집단적 사고의 결과로서 공유하는 명시적 혹은 묵시적 결론을 실현하는 과정의 원리일 수도 있다. 대체적으로 우리는 전자를 일컬어 “민주적 절차”라고 하고, 후자를 일컬어 “민주적 과정”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문맥에 따라서 두 개념 중에서 선택적으로 사용한다.)

민주주의와 민주적 절차는 의미상 같은 개념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본질적 핵심으로 말하면 그것은 민주적 절차를 뜻하는 것이고, 또한 민주적 절차를 요청하는 동기가 실현되는 과정 그 자체의 원리를 일컬어 민주주의라고 한다. 민주적 절차(혹은 과정)는 조직을 이루어 생활하는 주체인 구성원들이 스스로 행동과 생활을 통제하는 규칙을 제정하고, 상황에 따라서 이를 해석하고 내면화하면서 무엇인가 목적하는 바를 이행하는 질서를 의미한다. 그 절차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참여동기까지도 사회적-집단적 의사결정의 규칙을 통하여 검토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포함한다. 언제나 공적 비판과 검토에 자신을 노출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적 과정은 흔히 좁게 생각하여 자유롭고 공정한 투표나 선거에 참여하는 것 정도의 좁은 의미로 한정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넓혀 생각하면 그것은 광범한 영역의 사회적 삶에 관련되어 있다. 즉, 민주적 과정은 반드시 형식화된 논의의 장에서만 아니라, 사회적 삶을 함께 영위하는 공동체의 일상적인 생활의 장에서도 존중되고 실천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생활의 규범이기도 하다. 그 과정은 특징적으로 각 구성원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평등한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며, 공정성을 유지하고 규칙을 준수하며 구성원 상호 간의 자발적 배려와 관용의 규범을 실천할 것을 권장한다.

소박하게 말하면, 민주적 절차(혹은 과정)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행위에서 발생한 문제의 해결이나 과업의 이행을 위하여 지켜야 하는 “미시적 규칙”일 수도 있고, 어떤 제도의 운영이나 정책의 수행을 위하여 준수해야 하는 질서를 의미하는 “거시적 규칙”일 수 있으며, 크고 작은 사회적 조직이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미시적-거시적이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구분되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논리에 따른 개념이다.

이렇듯, 민주적 절차 혹은 과정의 개념적 진화의 과정을 보면, 정치적 조직의 원리에서 시작하여 일상적 생활 속에 널리 확장된 것이다. 민주주의는 애초에 국가적 단위 혹은 상당한 규모의 정치적(혹은 형식적) 조직의 생활에서 그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지만, 그 절차 혹은 과정에 요구되는 기본적인 도덕적 바탕은 생활의 규범적 체제를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민주적”이라는 말은 이제 그 외연과 내포에 있어서, 조직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개체적 존엄성과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확장한다. 그리고 그 말은 결국 인간의 본질과 존재에 대한 의식과 함께 평등, 자유, 복리, 성장, 소유, 안전 등의 기본적 규범에 이르기까지 가치론적 논의와 사고의 영계를 확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로버트 다알(Robert A. Dahl)의 다두정체(多頭政體)와 제도적 장치

Robert A. Dahl
Robert A. Dahl

민주주의는 제도적 형태의 체제에서부터 점차로 일상적 생활규범의 기반으로 진화한 것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로서 평생을 민주주의의 연구에 바친 로버트 다알 교수는 그의 저서 「민주주의와 그 비판」(Democracy and Its Critics, 1989)에서 이상적이고 완전한 민주정체와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적 민주정체를 구별하여 논의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다알의 이론은 절차론적 관점에서 민주주의의 양면적 특징인 제도적 정치체제와 일상적 생활양식을 연계하는 개념적 영역을 균형 있게 논의한 작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 후자의 비관념적이며 실제적인 민주정체를 설명하기 위하여, 그는 “다두정체”(polyarchy)라는 이름으로 이론을 전개하고, 민주정체의 국가로 존재하는 기본적인 전제와 조건을 제시하였다. 다두정체는 일인이 다스리는 군주정체, 소수가 다스리는 귀족정체나 과두정체와는 달리, 다수 즉 민중이 다스리는 정치체제라는 점에서 민주정체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다알의 다두정체의 개념은 하나의 이론적 체제에서 도출된 원리를 실제적 상황 속에 구현하고자 하는 방식의 민주주의를 구상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실적 여건을 토대로 하여 실천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규범적 원리를 논의한다는 점에서 특이한 이론이다. 정치제도로서 민주주의, 즉 그가 말하는 다두정체는 “정치적 질서”의 요건과 “민주적 질서”의 요건을 모두 포함한다.

먼저, “정치적 질서”의 요건이란,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정치적 조직이 성립하는 원리를 인지하고 동의하고 수용함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동의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적 공동체”라고 한 개념과 유사하게, 명시적 혹은 암묵적 동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집단적 결속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한 사회의 정치체제, 즉 국가 혹은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결속의지는 정부 혹은 국가를 구성하는 정치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민주적 질서”의 요건은 권리의 행사에 있어서 조직 내부로는 평등의식을 공유하고, 사회의 구성원은 누구도 특수한 이익을 취할 수 없으며, 모든 구성원의 요구는 평등한 법의 적용을 받아 정의롭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알이 말하는 다두정체는 전통적 개념의 민주정체, 즉 민중(dēmos)이 통치하는 정치체제 그 자체라기보다는, 구성원들(민중)이 국가 혹은 조직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특정한 과정, 즉 민주적 방식을 통하여 창출된 각종의 제도들을 보유한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다두정체에서 규정하는 시민(국민)의 자격은 소수의 예외적 대상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민들에게 부여된다. 그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정책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 있고, 공직자의 탄핵을 의결하는 절차에 참여하는 기회까지도 보장하는 것이다.

다알에 의하면, 다두정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일곱 가지 제도를 갖추어야 한다.

1. 공직자 선출 : 정부의 정책결정에 관한 통제는 선출된 공직자들에 의해서 합헌적으로 이루어진다.

2.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제도 : 때때로 실시되는 공직자의 선거는 비교적 특별한 강제성은 없지만 공정하게 시행된다.

3. 포괄적 참정권 : 모든 성인은 공직자의 선거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4. 공직 참여권 : 모든 성인은 각종의 공직에 지원하여 직분을 수행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5. 표현의 자유 : 시민(국민)은 정부의 제반 정책과 쟁점에 관하여, 공직자, 정부, 정권, 사회경제적 질서, 이데올로기의 비판을 포함한 광범한 정치적 사안에 관하여 극심한 징벌에 대한 부담 없이 토론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6. 대안적 정보 : 시민은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서로 다른 정보를 요청할 권리가 있다. 존재하는 여러 다른 경로는 엄격히 보존되어야 한다.

7. 결사의 자율성 : 위에 열거한 사항들을 포함한 각종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하여, 시민들은 독자적 정치집단, 이익집단 등 상대적으로 독립된 조직이나 기구를 구성할 권리를 가진다.

다알은, 이러한 제도들은 실질적인 권리이며 대규모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필요한 사항이지만, 완전한 민주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위의 일곱 가지 제도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한 제도들이 보장된 상태라고 하더라도 국가의 제도적 체제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완전한 민주주의의 체제가 아니다. 다알이 말하기를, 실제로 다두정체를 발전시켜 완전한 민주정체에 도달했다고 할 만한 국가는 없다고 보는 것이 옳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두정체는 현실적으로 모든 정치체제 가운데 가장 최선의 것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다두정체는 인간의 권리와 자유의 폭을 가장 넓게 마련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결점을 지니고 있지만 기본적인 정책 그 자체가 국민의 다수를 공격하거나 그들에게 해악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직접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으나 현실적 상황 속에서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다수가 국가의 통치에 참여한다면 그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하였다. 그런 수준에서 국민들은 그들이 신뢰하는 대표를 선출하고 국가의 통치에 참여한다. 이러한 체제는 다른 어떤 정치체제보다도 “인본적인” 것이다.

그러나 다알이 우려한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는 국민들이 공공적 문제나 쟁점에 의사표시를 하는 기회에 참여해야 하지만 제대로 응하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에 관한 이론적 범주에 관한 것이다. 국민의 수가 적을수록 공공 현안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높을 수는 있으므로 작은 규모의 국가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관여하는 사안들은 단지 좁은 영역에 한정되는 것이 보통이고, 그 생활영역 이외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알은, 가능하다면 국민참여의 규모를 충분히 폭넓게 조정하고 사안의 중요도도 충분히 높여주는 방안을 구상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기술적으로 용이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현장에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비관념적인 방안을 선호하는 다알은 결국 다수의 의사를 수용하는 것을 불가피한 방안으로 보고 있다.

다수결의 방법에 관하여

다수결이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을 다음의 네 가지 특징으로 설명하고 있다.(위의 책, PP. 138-144)

첫째, 다수결은 집단 결정에서 자체 결정권을 최대화한다. 말하자면, 조직 구성원의 최다수가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구성원의 전부가 직접 참여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선출한 대표단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므로, 가장 원초적이고 고전적 의미의 민주주의, 즉 민중의 통치체제에 충실한 규칙이기도 하다.

둘째, 필요한 합리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떤 방안을 수용할 때 적어도 다음의 네 가지 준거를 충족시킨다면, 그 방안은 합리적 요건을 갖추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결정력(decisive), 익명성(anonymity), 중립성(neutrality), 적극적 대응력(positively responsive) 등이다. 물론 다른 요건들도 언급될 수 있지만, 이러한 준거들은 의사결정의 실제적 과정이 지니는 합리성을 충족시킨다고 인정할 만한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의사결정의 정확성을 높인다. 일반적인 상대적 다수만이 아니라, 특히 과반수, 3분의 2, 만장일치 등의 초다수결정(supermajority)의 규칙을 적용하면 소수가 다수를 견제하는 방식이 된다.

넷째, 실용성(utility)의 최대화를 기한다. 소수가 아닌, 그리고 막연한 다수가 아닌, 최대 다수의 최대 가치를 지향하는 공리주의적 원리를 실현하는 방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알은 이러한 다수결의 방법은 실제상황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단순화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음을 시인하였으나, 우리가 실질적으로 민주적 절차에 의한 의사결정을 하는 방안으로서 장점을 들어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특히 그는 둘 이상의 선택적 방안이 경쟁적 관계에 있을 때, 어려움이 있음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나는, 다음 글에서 다수결의 원칙이 지닌 특징과 한계를 중심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좀 더 엄격히 분석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dhl9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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