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칭찬은 백 마디도 모자라지만, 남 비방은 반 마디도 남음이 있다.”
人或譽之, 百說徒虛 (인혹예지, 백설도허)
人或排之, 半言有餘 (인혹배지, 반언유여) - 劉禹錫.

“함께 환난을 겪을 수는 있지만, 함께 즐거움을 나누기란 참으로 어렵다.”
可與共患難 (가여공환난)
不可與共逸樂 (불가여공일락) - 蘇軾.

< 한자와 명언 >

稱 頌 (칭송) / 參 與 (참여)

전광진  (성균관대학 명예교수)稱 頌 (칭송)

*칭찬할 칭(禾-14, 4급)

*기릴 송(頁-13, 4급)

칭찬과 비방이 의미상 상반되는 점이 있다. 말하는 양(量)적인 면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먼저 칭찬과 비슷한 말인 ‘稱頌’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본 다음에 답을 찾아보자.

稱자는 본래 禾가 없는 형태로, 손으로 들어서 무게를 ‘가늠하다’는 뜻이었다. 후에 ‘사람 인’(亻)을 보탠 偁, ‘벼 화’(禾)를 보탠 稱자가 만들어져 경쟁을 벌이다가 후자가 승리했다. ‘칭찬하다’(praise) ‘일컫다’(call)등으로도 쓰인다.

頌자의 본래 뜻은 ‘얼굴 모양’(face shape)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니 ‘머리 혈’(頁)이 의미요소로 쓰였고 公(공변될 공)은 발음요소였다고 한다. 본뜻으로 쓰이는 예는 거의 없고, ‘기리다’(praise)는 뜻으로 애용된다.

稱頌은 ‘공덕을 칭찬(稱讚)하여 기림[頌]’ 또는 그런 말을 이른다. ‘그 고귀한 행동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가 좋은 예문이다. 영어로 옮기면 ‘The noble deed won him the admiration of the people.’이다.

중국 당나라 때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과거에 합격한 저명시인 유우석(772-842)이 쓴 ‘문대균부’(問大鈞賦)에 다음과 같은 명언이 있다. 맨 앞 문제에 대한 답이 될 것 같아서 아래에 옮겨보았다.

“남 칭찬은 백 마디도 모자라지만,

남 비방은 반 마디도 남음이 있다.”

人或譽之, 百說徒虛;

인혹예지, 백설도허

人或排之, 半言有餘.

인혹배지, 반언유여

- 劉禹錫.

-------------------------------------------------

 

參 與 (참여)

*헤아릴 참(厶-11, 5급)

*도울 여(臼-14, 4급)

슬픔은 함께하기 쉽다. 배가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기쁨을 진정으로 함께할 수 있는 과연 몇 이나 될까?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한번 손꼽아보는 것도 깊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먼저 ‘參與’란 한자어를 공부한 다음에!

參자는 원래 ‘삼수’(參宿)란 별자리(constellation)를 뜻하는 것이었으니, 사람(人)의 머리 위, 즉 하늘에 반짝이는 별(厶) 셋을 본뜬 것이었다. 후에 ‘셋’이란 숫자를 나타내기도 하였기에 彡(삼)이 보태졌다. ‘가담하다’(participate in)는 뜻일 경우에는 [참]으로 읽는다.

與자의 상단 가운데 부분에 있는 与(줄 여)와 舁(마주 들 여)가 조합된 것으로 그 두 요소 모두가 의미와 발음을 겸하는 극히 희귀한 예다. ‘동아리’(group)가 본뜻이라고 하며, ‘함께 하다’(together with) ‘주다’(give)는 뜻으로도 쓰인다.

參與는 ‘어떤 일을 잘 헤아려[參] 도움[與]’이 속뜻이다. ‘어떤 일에 끼어들어 관계함’을 이르기도 한다. 자신의 기쁨에 진심으로 참여할 사람은 아무래도 부모나 자식밖에 없지 않을까? 한 분더 꼽자면 스승! 그런 의미에서 ‘가정의 달 5월’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부친과 동생을 합친 삼부자가 모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이고, 그림과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소동파(1037-1101)가 남긴 명언을 곰곰이 곱씹어 보자.

“함께 환난을 겪을 수는 있지만,

함께 즐거움을 나누기란 참으로 어렵다.”

可與共患難,

가여공환난

不可與共逸樂.

불가여공일락

- 蘇軾.

● 전광진(성균관대 명예교수/속뜻사전 편저자).

[에듀인뉴스=인터넷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