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청소년기의 과업을 달성할 수 있도록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아이라도 챙기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실수와 잘못을 꾸짖기에 앞서 바른 것을 반복해서 가르치고, 그들이 깨달을 동안 따뜻하게 맞아 주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학생 이야기>

04. 학교는 견뎌 내야 하는 곳이다.

정선영 교수 (서울사이버대학 대우교수> 

멀리서 보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비슷해 보인다. 매일 아침 등교하고, 종례가 끝나면 빠르게 흩어진다. 흔한 일상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차원이 존재한다.

고등학교 진학 당시 주영이는 일반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특성화 고등학교에 가서 기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중학교의 출석률과 성적이 입학 기준에 미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일반계 고등학교에 오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자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답답해졌다. 고등학교는 졸업하고 싶은 마음에 대안 학교에 지원해서 11월까지 다녔으나 출석 미달로 더는 다닐 수 없었다. 대안 학교에서 퇴출 당하면서 다시 원래 적을 둔 고등학교로 등교하는 상황에 처하자 학교를 그만두는 것에 갈등했다.

신입생 규태도 마찬가지다. 교실에 앉아 있는 순간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려고 학원도 다녔으나 차라리 학교에서 또래하고 공부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그러나 막상 학교에 오면 같은 반에서 자기를 싫어하는 학생이 있다며 불편해했다. 담임 선생님께 반을 바꿔 달라고 호소했으나 개인 성향을 이유로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떤 방법으로도 학교에서 종일 지내는 것을 해결하지 못했다.

2학년인 범진이는 모둠에서 빠지라고 말해서 상처받고 힘들어했다. 자신에게 할당된 과제를 했는데 무슨 일인지 조원들이 만족해하지 않았다. 3학년을 앞둔 아이들이 내신성적에 영향을 받을까 걱정하며 모둠 활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노력해도 나아지는 것이 안 보이자 한숨이 늘었다. 급기야 ‘애들이 이상해서 자기와는 맞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을 투명 인간 취급하는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 나가기가 싫었다. 부모가 졸업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참아주길 바라며 학교를 보냈지만 교문 앞만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아이들은 갈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치고 학교에서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다 못해 책상 위로 쓰러진다. 단순 설문만으로도 가르치는 교사의 말을 알아듣기가 어렵다는 학생들이 한 학급에서 40%나 된다. 내신 성적은 낮아서 대학에 갈 수 있을지 불분명하고 삶의 목적도 없다고 말한다.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자신을 더 초라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다가도 다음날은 '학교에 잘 다녀야지'라고 생각하는 등 하루하루, 오전 오후의 마음이 달라지는 경험을 반복하는 학생들을 교실에서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 학교생활의 대부분을 멍하게 보내는 아이들은 졸업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은 게 사실이다. 목표 없는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 또한 크다.

학교는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 외에 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수업 시간이 고역인 학생은 공허함을 견디느라 건물을 배회하고, 친구들에게마저 이해도 존중도 받지 못하는 곳, 함께 밥 먹을 친구가 없어 점심도 굶는, 경쟁과 입시에 매몰되어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귀찮아하는 마음, 무기력한 아이로 병들어간다. 잘하라는 충고는 부담으로 돌아오고 공부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겁박을 받는다. 이는 내면에 똬리를 틀고 불안이라는 감정을 키운다. 그들에게 학교는 억지로 견뎌 내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학교를 들락거리는 학업중단 위기의 아이들, 그저 학교만 다니는 다수가 존재하지만, 졸업만큼은 해야 한다는 의식은 분명하다. 밖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을 그나마 학교에 잡아 두고 고민하는 이유도 우리 사회에서의 학력이 주는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에게 목적의식이 없다기보다 실패와 좌절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목적을 갖는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에 더 가깝다.

그러나 사람들은 힘들다는 표현을 일탈과 무기력으로 간주하고 단순히 문제아로 취급해 버린다. 대화보다 혼을 내며 바꾸려고 하거나 방관하고 외면하기에 바쁘다. 학교조차 그런 아이를 감싸 주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대부분 그런 아이들의 자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학교가 주영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학업중단 위기의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기 이전에 배움을 가질 수 있는 보루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개개인의 환경이 고려되지 않는 채 규칙과 기준에 따라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이 평등이라는 생각이 깔린 것이 아닌가 한다. 이들은 결국 사회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한 채, 한순간 잘못된 길로 접어든 상태로 어른이 되어 간다.

아이들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진심을 찾아내려면 진솔하게 대화할 시간과 관심이 필요하다.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하지만 마음을 읽지 못한 상태에서 문제아라고 단정 짓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문제아라는 낙인을 붙여 학교 밖으로 밀어내는 셈이다. 학교가 재미없고 답답하다는 이유로 그만두려는 아이들을 현재의 제도와 시스템에서는 구제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많은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만도 없는 일이다.

학업을 중단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수할까,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나 일탈이라기보다 시스템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문제아로 낙인찍어 학교 밖으로 몰아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청소년기의 과업을 달성할 수 있도록 옆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단 한 명이라도 챙기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아이들의 실수와 잘못을 꾸짖기에 앞서 바른 것을 반복해서 가르치고, 그들이 깨달을 동안 따뜻하게 맞아 주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오늘도 생기 없이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견뎌 내야 하는 곳이다. 하교 시간만 기다리다 오후 5시가 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북적였던 교실엔 한두 명 남짓한 학생들만 앉아 있다. 학교 운동장엔 공놀이하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텅 빈 학교는 이질감을 주는 공간으로 느껴질 정도다.

[에듀인뉴스(EduinNews) = 인터넷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