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어느 수준에 있는가?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이 주권자로서 국가 운영을 위한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체제인데 과연 그런가?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을 정치적 측면(정치민주주의)과 생활적 측면(생활민주주의)으로 구분하여 생각해 보자.

정치민주주의는 과연 어떠한가? 한마디로 퇴행하고 있다. 19876월 민주항쟁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는 시기에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자유와 평등, 사회정의의 구현을 기대하였으며 정치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민주주의가 꽃 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36년이 지난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암울한 상황에 처해 있다. 정치는 진보와 보수로 이원화되고 진영논리로 불통과 적대의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선거로 정권을 잡은 집권당은 국가권력을 좌지우지하며 독자적인 행보를 가고 있다.

국민 또한 포플리즘(Populism) 정치로 인하여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 포플리즘 정치는 영국의 브랙시트(Brexit) 선거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선거과정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선동, 가짜뉴스, 분열, 비난의 정치 행태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제이슨 브레넌(Jason Brennan)은 그의 저서 <민주주의에 반대한다(Against Democracy)>에서 유권자들의 정치적 행위를 바탕으로 시민을 호빗(Hobbits), 훌리건(Hooligans), 벌컨(Vulcans)으로 분류했다. 호빗은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땅굴에 사는 난장이들이다. 호빗은 정치에 무관심하여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한 정보를 찾지 않는다. 그들은 먹고사는 일에만 신경을 쓴다. 훌리건은 경기장에서 폭언과 난동을 일삼는 부류이다. 홀리건은 정치적 관심이 높고 정치 활동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정치를 스포츠처럼 간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확증편향이나 집단편향과 같은 증상을 보이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만을 고수한다. 벌컨은 SF 영화 스타트렉(Star Trek)에 나오는 논리적이고 판단력이 높은 귀가 뾰족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념을 맹목적으로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개방적인 이상적인 시민 유형이다. 브레넌은 미국의 유권자들은 대부분 호빗과 훌리건이어서 그들의 정치적 무지와 비합리성이 정치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이병기 명예교수는 민주주의의 쇠퇴 원인을 2가지로 지적한다. 탈진실(脫眞實, post-truth)과 신부족주의(新部族主義)이다. 탈진실은 대중적 여론을 형성함에 있어 진실성이 결여된 거짓 내용이더라도 신념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객관적 사실(Fact)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말한다.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부족주의는 정치, 사회, 문화 등의 분야에서 공통의 관심사를 갖는 사람들이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에서 집단을 형성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며 집단의 정체성에 따라 행동하는 현상이다. 개인적으로 이득이 없어도 집단구성원의 이득을 위해 맹렬히 나서며 반대진영에 대해서는 비난과 위해를 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브레넌이나 이병기의 문제 제기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비평하고 성찰하는 연구에 시사점을 준다. 정치민주주의의 퇴행을 막는 것이 국민 모두의 복지와 행복을 위한 길이다. 확실한 방법은 국가 차원에서 유권자의 민주 역량을 높이는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호빗이나 훌리건 부류가 너무 많아서는 민주주의 진정한 가치와 정의를 구현할 수 없다.

 

그러면 생활민주주의는 어떠한가? 서울대 이돈희 명예교수는 생활민주주의는 정치에 관해서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상황에서 진행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적 사고, 검토, 토론, 협의, 결단 등은 어디에서나 진행되고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생활민주주의는 우리의 생활 상황에서 무소부재”(無所不在, ubiquity)의 상황적 작용이기도 하다. 가족생활, 교우관계, 직장생활, 스포츠활동, 군대의 작전상황, 종교단체의 행사 등 적어도 구성원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제시하는 의견과 발휘하는 능력을 존중해야 하는 상황에서라면 생활민주주의는 그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공동체성과 관계성 측면에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자. 아동학대범죄, 학교폭력, 성폭력, 사이버폭력, 교권 침해 등 폭력과 인권침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법과 제도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나,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실효성은 매우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18년 동안 OECD 국가에서 국민의 자살률은 가장 높고, 학생들의 주관적행복지수는 가장 낮은 부끄러운 나라가 되었다. 사회적 문제가 되고있는 소년범은 5년간 25% 이상 증가하였다.(2023.8.31. 법원통계월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정치제도적 측면이든, 생활문화적인 측면이든 급격히 쇠퇴하고 있는 위기적 상황이다. 2022년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167개 국가 중 24위로 작년 대비 8단계 하락하였다. 하락의 주요 원인은 5개의 세부 측정 항목 중에서 정치문화(Political Culture) 점수가 6.25로 아주 낮기 때문이다.

202110월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16년간의 총리직을 마감하면서 민주주의 성과가 너무 경솔하게 다루어지고, 언론의 자유와 같은 소중한 재산에 대한 공격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적의, 증오, 가짜정보가 부추겨지고 있으며 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사회적 유대는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는 우리나라의 심각한 상황을 지적한 것 같다.

우리 정부는 1997년 제7차 국가 교육과정에 민주시민교육을 공식적으로 범교과학습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학교는 입시위주의 한줄세우기 경쟁교육에 경도되어 민주시민성을 제대로 육성하는 교육을 하지 못하였다. 학교민주시민교육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교과목일 뿐이다.

폭력이나 인권침해 없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활민주주의가 일상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지금 학교의 학생들은 혐오표현(hate speech)을 표현의 자유로 인식하며, 남녀차별, 인종차별, 노인차별, 빈부차별 등의 차별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 혐오와 차별은 폭력이나 살인으로 진화된다.

교육만이 병든 사회를 건강사회로 바꿀 수 있다. 교육이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목적의 실현을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학생은 교복입은 시민이고 학교는 그들이 살고 있는 작은 시민사회이다. 하루속히 공교육기관인 초중고에서부터 민주·세계시민성과 인권의식을 함양하는 교육을 충실히 하여야 한다. 선생님들은 하루속히 지금의 주입식 교육방식을 토론수업 등 협력수업으로 전환하면서, 학생들의 고정관념, 통념 및 편견이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인식개선교육을 철저히 하여야 한다.

 

참고문헌

제이슨 브레넌 지음, 홍권희 옮김,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아라크네(2023)

이한구 6인 지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학지사(2022)

임종근 지음, 세계시민성과 인권이 정답이다. 세창문화사(2022)

 

 

[에듀인뉴스(EduinNews) = 인터넷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