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겉핥기 교육은 이제 그만, ‘속뜻으로 문해력을 깨운다.”

전광진 교수, 15년의 집념으로 써 내려간 사전, 한 권의 철학이 되다.

인터뷰: 윤호상(편집인), 송채민(운영국장)

 

학생들이 단어는 알아도 뜻을 모릅니다. 뜻을 모르니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니 문해력이 떨어집니다. 그 뿌리는, 속뜻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자 교육 전문가이자 『속뜻풀이 국어사전』편저자인 전광진 교수는 인터뷰 내내 '말의 뿌리'를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속뜻'이란 단어의 어원과 구성에 담긴 근본 의미다. 30여 년 간 교육 현장과 학문 사이에서 갈고 닦은 통찰이 사전이라는 형태로 집약된 것이다.

 

등호(=)가 뭐예요?”

아이들의 질문에서 시작된 여정

전 교수의 교육 철학은 어느 날 자녀의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와서 등호가 뭐야?’ 하고 묻더라고요. 숫자가 같다는 건 알지만 왜 그걸 등호라고 부르는지는 모르는 거예요.”

그는 한자 ()’()’를 풀어주며 등호가 같음을 나타내는 부호임을 설명했고,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고 한다.

선생님들은 당연하다는 듯 등호부등호를 가르치지만, 아이들은 그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기호만 외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곧 교육 전반의 문해력 저하 문제로 이어졌다. 전 교수는 아이들이 단어의 겉모양만 알 뿐, 의미의 뿌리를 모른다. 수박 겉핥기식 교육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고 단언했다.

 

속뜻을 알면, 언어가 열리고 사고가 자란다

“‘분수가 왜 분수인지 아세요? 나눌 ()’자에 셈할 ()’자입니다. 수를 나누는 개념이지요. 그런데 아무도 그 속뜻을 가르쳐주지 않아요.”

전 교수는 일상 언어 속 수많은 개념들이 원래의 의미를 잃은 채 흘러 다니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한자 기반의 속뜻풀이 국어사전을 만들었다. 각 단어에 담긴 한자의 구성과 의미를 바탕으로, 직관적이고 쉬운 정의를 제시하는 사전이다.

이 작업은 단순한 국어사전 집필이 아니라, 개념 교육을 위한 런 바이 힌트(Learn by Hint)’ 교수법 개발로도 확장되었다.

힌트를 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뜻을 유추해냅니다. 이것이 진짜 학습이지요. 외우게 하면 곧 잊지만, 이해하게 하면 남습니다.”

 

영어 용어까지 속뜻으로 해석한다

전 교수의 사전은 국어에만 머물지 않는다.

“‘분사가 왜 분사인지 아십니까? 영어로는 participle, '나뉜 부분'이라는 뜻인데, 우리말의 '분사'도 나눌 분()자를 쓰잖아요. 동사에서 갈라져 나온 형태라는 개념이 정확히 들어 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 역시 이해하는 순간 아이들이 !’ 하고 깨달음을 느낀다며 감탄했다. 전 교수는 영어 교육자들을 위해 영어 문법 용어에 대한 한자 기반 풀이도 제공하고 있으며, ‘(To) 부정사’, ‘정관사’, ‘현재분사등의 개념도 한자의 뜻을 통해 새롭게 설명한다.

 

고품격 한국어, 세계인을 위한 한글 교육의 새로운 모델

전 교수는 최근 고품격 한국어라는 외국인을 위한 학습서도 출간했다.

초급 한국어 교재는 많은데, 한 단계만 올라가면 자료가 부족하더군요. 그래서 고사성어, 속담, 고급 어휘 등을 쉽고 깊이 있게 풀어 쓴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한국어 교재가 아니다. 한글의 아름다움과 철학적 깊이를 세계인에게 전파하는 콘텐츠다. 덴마크, 미국, 일본의 교육자들과도 협업하며, 해외 로타리클럽을 통한 딕셔너리 프로젝트와 같은 문해력 증진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 권의 사전이 걸어온 15, 그리고 앞으로의 꿈

속뜻풀이 국어사전은 전 교수가 15년 이상 홀로 집필하고 교정하며 만든 집념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사전은 집단 저작입니다. 그런데 이 사전은 혼자 만들었어요. 교수도 조교에게 맡기거나 출판사 편집자가 대필하는 게 대부분인데, 저는 직접 다 했습니다.”

출판사도 직접 설립했다. 이름하여 'L.B.H.출판사'Learn by Hint의 약자다. 현재 이 사전은 매년 2~3만 권이 판매되는 스테디셀러다. 특히 초등학교 3~4학년의 국어사전 찾기 수업과 연계되어 꾸준히 수요가 발생한다.

책이 이렇게 꾸준히 나가는 건 드문 일입니다. 초등 국어 교육의 기초가 되는 만큼, 종이 사전의 필요성은 여전히 큽니다.”

 

속뜻 경시대회로 문해력 향상의 새로운 물꼬를 트다.

전 교수는 앞으로 속뜻 경시대회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을 모으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경시대회는 단순히 실력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아는 아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한자급수처럼 속뜻풀이 3, 2, 1을 만들 수도 있고요.”

이를 통해 사전을 더 널리 보급하고, 학생들의 어휘력과 개념력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미 ‘HQ(Hint Quotient, 힌트지수)’라는 개념을 제안해 테스트도 개발했으며, 이를 어플리케이션과 연동해 확산시키는 구상도 진행 중이다.

 

아이의 문해력은 부모의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인터뷰 말미에서 전 교수는 강조했다.

아이들이 단어를 아는 만큼 생각하고, 생각하는 만큼 성장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열심히 하라고만 하고, 어떻게 열심히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아요. 단어 하나에도 뜨거운 마음이 담겨야 진짜 공부가 시작됩니다.”

그는 열심히의 뜻조차도 모르고 사용하는 교육 현실을 꼬집으며, “더울 열(), 마음 심(), 즉 뜨거운 마음으로 임하는 게 진짜 열심히라고 덧붙였다.

 

마무리하며: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속뜻풀이 국어사전은 단순한 참고서가 아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통해 사고의 뿌리를 단단히 심어주는 철학적 도구다.

한 단어의 속뜻을 아는 순간, 아이들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전광진 교수의 말처럼, 생각은 단어의 수만큼 확장된다.”

그렇기에, 오늘도 그는 조용히 새로운 단어 하나에 속뜻을 덧붙인다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에듀인뉴스(EduinNews) = 인터넷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