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일본과 밀약을 체결하고, 만주와 조선에서의 일본 지배를 인정하는 대가로 필리핀에서의 미국 지배를 인정받게 되었다.”

 

 

 

1900년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입후보한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와 매킨리(William Mckinley)의 선거 유세는 시어도어의 무훈(武勳)과 명망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시어도어는 아무런 실권이 없는 부통령직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1901914일 대통령 매킨리가 암살되자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권력을 승계하여 제26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취임 당시 42세로, 미국 역대 최연소 대통령이었다.

 

매킨리 대통령과 같은 고향 출신인 20대 청년이 시어도어가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매킨리를 암살했다며, 뉴욕시에서 취임 초기 정견 발표를 하던 그에게 권총으로 총격을 가하는 일이 벌어졌다.

 

시어도어의 목에 걸려 있던 십자가 목걸이와 두툼한 연설 뭉치, 두껍게 끼어 입은 옷 덕분에 총탄은 그의 피부에 박히는 정도에 그쳤다. 화가 난 시어도어는 자신은 결백하다며 피를 흘리면서도 연설을 끝까지 마치고 단상을 내려왔다. (이상 원문 출처: 나무위키)

 

26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19057월 측근 인사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를 보내 일본과 태프트-가쓰라 밀약(The Taft-Katsura Memorandum)을 체결하고, 만주와 조선에서의 일본 지배인정하는 대가로 필리핀에서의 미국 지배를 인정받게 되었다.

 

190511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일본군을 동원하여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자, 고종은 1882년에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근거하여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 조약에는 조선이 제3국으로부터 부당한 침략을 받을 경우 미국은 즉각 이에 개입하고, 조정을 행사함으로써 조선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조선에서 온 특사와의 만남을 회피하였다. 19057,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일본과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체결함으로써 1882년에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은 미국에 의해 비밀리에 일방적으로 파기된 것이었지만, 고종은 일본의 조선 지배인정하는 미/일 밀약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 내 반일 감정은 점차 거세졌고, 일본의 타이완과 조선에서의 영향력에 대한 미국 내 지식인들의 반발에 봉착했다. 1907년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캘리포니아주에서 벌어진 반일 시위를 무마하기 위해 다음해인 1908년 미국 입국 일본 노동자에 대한 여권 발급 거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미/일 신사협정을 체결했다.

 

미국 내 지식인들의 반일 감정에도 불구하고,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일본과 신사협정을 체결한 바로 그 해에 루트-다카히라 협정을 체결하여 일본에게 만주와 조선에서의 일본 지배다시 인정하는 대신, 미국의 필리핀에서의 지배를 다시 확인받게 되었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외교정책에 대하여 당시 미국 국민의 여론과 시어도어 루즈벨트 정부의 입장이 일치하지 않았음도 엿볼 수 있다. 그때의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도 미국이라는 국가나 미국의 국민이 아니라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정부(government)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상 원문 출처: 위키백과)

 

미국은 21대 아서(Chester Alan Arthur) 대통령이 조선과 조미수호조약을 체결하였지만, 26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일본과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체결하여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하면서 조미수호조약은 자동적으로 폐기되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밀약으로 일본에 한반도 지배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였고, 루트-다카히라 협정을 통해 다시 한번 재확인하여 줌으로써 일본의 조선 지배를 더욱 확고하게 했다. 36년 후 해방될 무렵에는 33대 투루만 대통령이 일본과의 생체실험 결과에 대한 거래를 지키고 전범국가 일본에 대한 연합국의 분할통치를 막아 주기 위해 선제적으로 한반도를 분단하였다. 34대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양국은 군사 동맹국이 되었으며, 35대 케네디 대통령은 한국 재건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에듀인뉴스(EduinNews) = 인터넷뉴스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