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교의 교육체제, 그 변화를 모색한다 ②

국가의 교육목표를 실현하려는 제도적 장치이자 교육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학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정치권을 중심으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학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학제가 무엇인지, 바람직한 학제개편은 어떤 방향에서 논의되어야 하는지 등에 관해 에듀인뉴스가 연속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학제개편 담론 형성에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편집자 주> 

곽삼근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학력 중시 사회에서 능력 중시 사회로의 전환

과학기술의 첨단화, 장수 고령화, 그리고 글로벌화 등 다양한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지만, 학교는 여전히 울타리를 고수하고 있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길어진 여가시간은 우리의 관심사와 필요한 지식, 그리고 삶의 패턴까지 바꾸기 시작했다.

은퇴자 혹은 노년기 성인들은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열망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제 교육은 기존의 생애준비교육에서 생애현장교육으로 변화해야 할 소명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성별, 인종, 지역을 초월한 평등성과 형평성 요구만이 아니라, 이제는 연령차별이라는 용어가 파급될 정도로 연령 장벽에 대한 적극적 저항이 만만치 않다.

교육권이라는 용어보다는 학습권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게 사용되고 있고, 복지와 인권의 관점에서 누구든지 자신에게 가능한 시기에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교육받을 것을 요구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배움이 가능’ 할 수 있는 평생교육의 이념적 공감대가 이러한 학습권 인식의 바탕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각급 교육기관은 폐쇄적인 울타리를 방하고 다양성을 담보하는 열린 교육체제로 변화되도록 요구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한민국의 교육은 기존의 경직된 학교교육제도의 틀에서 입학조건과 졸업장이라는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 장막을 치고 있다.

학교는 학력이 아닌 능력 중심사회를 만들어야 하지만, 아직도 학령기 교육의 졸업장 발행기관이라는 제도의 틀에 안주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전해주는 책도 선보이고 있다.

《학교를 배신하고 열정을 찾은 학력 파괴자들 (2015)》의 저자 정선주는 ‘학교 교육은 천재를 둔재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학력 파괴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학교의 성적표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이 요구되고 있음 을 강조한다.

문화산업시대에 직관력· 문제해결력·상상력·단순화 능력이 중요하며, 다양성·독창성·열정, 그리고 호기심과 넘치는 에너지가 필요한데도 수많은 열정적인 아이들은 행동장애 (ADHD)로 낙인찍히고 있음을 고발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학교비판서들은 학교개혁이 절실함을 웅변하고 있다. 오늘날 학교는 교육과정 운영 개선만이 아니라 조직구조 등 체제 개혁이 요구되고 있다.

학교가 틀을 만들어놓은 대로 학습자들이 조형되는 것이 현재의 ‘공장 모델’ 시스템이라면, 미래의 학교는 학습자들이 자신의 필요와 요구에 맞게 학습경로와 이력을 설계해 나갈 수 있는 ‘자영 농장 모델’의 학습 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것을 평생 학습체제 속의 개방형 학교라고 부를 수 있다.

학력을 중심으로 교육기관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능력을 함양하는 학습의 관점에서 기능하여야 한다.

학력 중시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적 폐해가 지적되고 있다. 학력 중시 사회에서 능력 중시 사회로의 전환이 바람직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은 능력인정체제 구축이 요청된다.

이를 위한 선결요건으로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정책적 조처가 필요하겠으나, 여기에서는 교육적 차원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

능력 중시 사회로 전환을 위한 교육적 처방

우선 개방형 평생교육체제가 자리 잡아야 하고 이를 작동시키기 위한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즉, 폐쇄적이고 규격화된 전통적 학교의 입학과 졸업 및 학위 취득 방식을 벗어나 다양한 경로의 학습 인증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전통적으로 학교가 강조해왔던 투입요소 위주의 교육중심에서 능력이라는 산출요소 중심으 로 각 교과영역별 핵심적 표준역량을 설정하고 이를 인증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특정 학령기 연령층에게만 단위학교에서 일정 기간 이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여러 경로를 통한 학습 경험의 크레딧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경계 넘나들기 개방형 학교 개념의 도입이 필요하다.

즉, 어떠한 교과에 대하여 역량표준을 설정한 이후 이를 만족시키는 다양한 대안 프로그램이나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그 이수 결과를 인정해주는 시스템 구축은 능력인정체제로 한 걸음 다가가는 길이다.

개방형 평생교육체제 구축은 국가 핵심역량표준을 구축하여 ‘생애교육과정’을 재규정하여야 하며, 현재의 시수제, 연령제를 ‘능력 인증제’로 전환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대안적 학력체제와 자격 능력 학력 호환체제’를 구축하여야 하므로, 현재와는 전혀 다른 교육기관 조직 및 운영시스템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 즉, 교육공급자 위주의 교육기관 운영이 아니라 교육수요자인 학습자 중심 교육체제 구축으로 변환된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공교육 문제는 사회적·정치적 논쟁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사회의 핵심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교육체제의 개혁과 아울러 교육에 대한 발상의 혁명을 요청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관료주의적이고 폐쇄적· 획일적인 공교육에 대한 반성과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있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 대안 교육이 고개를 들뿐, 주류체제에는 큰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성이 중요하고, 학교는 학생이 창의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 되어야 하므로 주류를 형성하는 학교 교육에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절대적 지식 제공의 위치를 점하던 각급 학교는 더 이상 독보적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지식의 비중이 높아가고 있는 시대이므로 네트워크형 상호인증을 받을 수 있는 학교 울타리 개방체제로의 이행이 불가피하다.

대안교육이나 다양한 학교의 출현은 전체 교육 수요에 비하여 작은 부분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 보다 유연한 개방형 학교체제 확산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필자가 2007년도에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 1년간 방문학자로 체류하면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의 개방적 운영 시스템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은 특정 교과목을 지역교육센터나 주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이수할 수 있고, 그 결과는 졸업학점으로 인정이 되고 있었다.

중·고등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칠 수 없는 구기 등 특수 종목을 지역사회교육센터에 수강하면 학교에서 이수한 것과 동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중국어를 비롯한 외국어도 수준별로 제공하는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이수한 결과는 고등학교 졸업학점으로 인정될 뿐만 아니라, 대학진학시 국제 무역전공에 지원한 학생의 경우 장점으로 인정되어 유명 대학에 합격한 사례도 보았다.

직장을 다니는 성인들이 스탠퍼드 대학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자 원하면, 평생교육원이 창구 역할을 하면서 일반 정규 대학원 클래스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근로자들이 스탠퍼드 대학의 강의를 접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다.흥미 있었던 점은 자신의 직업과 관계없이 수준 높은 인문학 공부를 원하는 경우, 대학원의 특정 학과에 소속하지 않고 다양한 학과목 즉, 영문학, 철학, 독문학, 심리학 등 학과 장벽을 넘어 석사 취득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하여 인문학 석사(Master of Liberal Arts) 학위를 수여한다는 점이다.

이는 온전히 학습자 중심 사고로부터 고안된 평생교육시스템인 셈이다. 입학자격은 엄격히, 그러나 졸업은 쉽게 하는 대한민국 교육체제는 더 이상 글로벌 지능 정보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연령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공부하고 능력에 따라 인정받는 학교개방형 제도 시행이 시급히 요청된다.

교육기관 간, 학과 간, 프로그램 간 학점이수 결과를 상호 인정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길은 융합형 인재양성에도 효과적이다. 평생학습체제 이념 구현을 위한 학제의 기본적 특성은 개방성, 복합성, 순환성이다.

학력이 아니라 무엇보다 ‘역량표준 기반 교육과정과 평가’가 요청되므로 현재처럼 특정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 학력 인증방식’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고등교육 단계에서는 향후 다양한 학위 인증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교육부는 제3차 평생교육진흥계획에서 대학 중심의 평생교육체제 실현이라는 목표를 세웠으나, 아직 교육기관이 그 정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탓인지, 아직도 고등교육체제의 개혁은 이상향으로만 간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인생 2모작 또는 3모작의 시대에 걸맞은 고등교육체제의 확립을 위해서 대학 구조 및 학사운영시스템 개혁이 불가피하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비형식 또는 무형식 학습 인증을 위한 ‘경험학습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

능력표준에 기초한 전 연령층 대상 ‘학습계좌제’도 학교와 연동적으로 활용 가능하도록 구안될 필요가 있다. 현재 일회성으로 일정 연령을 대상으로 규격화하여 실시되고 있는 초· 중·고등학교의 형태는 평생교육체제하에 새로운 미션을 갖도록 재구조화 되어야 한다.

후기 중등교육은 고등교육, 평생교육, 그리고 직업능력 개발의 연계를 강화하여야 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통합적으로 평생학습 인증을 통한 ‘복합학력 인증체제’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각급 학교 시설에서 성인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길이 열려 지역마다 학교부설 성인학급이나 성인 초· 중·고등학교가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성인기초교육을 순환교육 트랙으로 명시하고, 중등학교의 성격을 재규정하여 개인이 필요할 때 언제라도 원하는 교육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중퇴자가 학교의 마당으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가능하다.

기존의 일자리와 교육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로 인해 ‘시스템’으로서 평생교육에 접근할 필요가 있고, 지능정보 학습사회에 걸맞은 교육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창발적 학습 네트워크와 다양한 교육 경로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학교의 울타리를 개방하여 학교 교육이 평생교육체제로 편입될 수 있도록 경계 허물기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즉, 공부하다가 일할 수 있고, 일하다가 공부할 수 있으며, 그리고 일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유네스코 평생교육 초기 아젠다에서 폴랭그랑이 강력히 주장한 ‘기존의 파편화되고 분절화된 교육제도는 완전히 해체되고 재편되어야 한다’라는 학교 재편 작업이 현실적으로 요청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