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섭 강원대학교 교수

신중섭 교수 ㅣ 강원대, 철학

지난 3일 국무총리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함으로써 ‘역사 전쟁’이 본격화했다. 현행 역사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판단한 현 정부가 역사 교육 ‘정상화’에 나선 것이다.

현행 역사교과서에 대한 입장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쪽과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검정 강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쪽, 많은 문제를 국정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쪽으로 갈린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를 옹호해 온 이들도 선뜻 국정(國定) 역사교과서 편에 서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와 동행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검정-국정’이라는 프레임에서 보면 다양성과 선택을 허용하는 검정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와 어울리지만, 국정은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역사를 정권의 전유물로 삼으려는 것이고, 역사 해석의 독점권을 행사하려는 구시대적 오만과 독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확산됨으로써 자칫 국정(國政)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역사교과서를 검정에서 국정으로 변경하는 것은 국민 투표나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 아니다. 교육부 장관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초·중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 구분 고시’에서 역사교과서를 검정에서 국정으로 옮기면 된다.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25959호) 제4조에 따르면 ‘국정도서는 교육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교과목의 교과용 도서’이다.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할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교육부 장관 소관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의 차이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다.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국정도서’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용 도서이고, ‘검정도서’는 교육부 장관의 검증을 받은 교과용 도서다. 국정이든 검정이든 국가가 철저히 개입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양자는 오십보백보다.

‘초·중등교육법’ 제29조(교과용 도서의 사용)는 ‘학교에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부 장관이 검정 또는 인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초·중등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교과서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초·중·고교 교육의 도구인 교과용 도서에 국가가 관여하는 것은 초·중·고교 교육이 갖는 특성과 그에 따른 국가의 책무 때문이다.

‘교육기본법’ 제2조에 명시되어 있듯이 초·중·고교 교육의 목적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이다.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과 달리 보통교육에 대한 국가 개입은 불가피하다. 국가가 대학 교재는 자유 선택에 맡기면서도 초·중등학교 교과서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정통성과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즉, 현행 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가 대부분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허물고 부정하면서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국정교과서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현행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시민이 아니라 인민공화국의 인민을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이 있음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영국병을 고쳐 다시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것을 자신의 정치적 사명으로 삼은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는 신념의 정치인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은 ‘나는 합의를 원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것이 나의 믿음이다. 나는 이것을 열광적으로 믿는다. 당신도 나와 같이 이것을 믿으면, 우리 함께 가자’고 했다.”

만일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이 이번 역사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대한민국을 이념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세움으로써 정치인으로서의 신념 윤리와 책임의 정치를 동시에 이뤄냈다는 후세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 기사는 문화일보 11월5일자에 실린 칼럼으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