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장관이 바뀐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특별기고] 장관이 바뀐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 지준호 기자
  • 승인 2018.10.11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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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에 묻혀있는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 '방향'
정부, 부지불식간 품고 있는 ‘적폐’부터 청산을
강태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강태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부 장관이 바뀌었다. 드문 일은 아니다. 교육부 장관의 평균 수명은 짐작컨대 다른 부처 장관에 비해 짧을 것이다. 교육부가 탈 많고 원성이 몰리는 부처인데다, 원성이 높아지면 ‘쇄신’을 표방하며 장관을 바꾸는 것으로 사태를 모면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 말이다. 장관이 ‘정치적으로’ 바뀌는 일이 흔한 터에, 새 장관에게 새삼스럽게 기대를 거는 것은 너무 순진한 일이리라. 그런데도 교육부장관이 바뀌는 것을 계기로 변화의 바람을 내비쳐보는 것은 우리 교육 현실이 지극히 답답하기 때문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문 정부는 이미 방향이 잘못되었다”

신임 장관은 후보 지명을 받고나서 “교육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다. 아마도 교육정책을 서두르기보다 바른 방향을 찾아 꾸준히 추진하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듣기에 무척 반가운 말이다. 그 소신을 지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것 없겠다. 그러나 그럴 수 있길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문재인정부의 교육정책은 이미 길을 잘못 들었다. 대선공약을 거쳐 국정과제의 반열에 오른 적잖은 정책대안들이 아예 방향을 잘못 잡았거나 잡았던 방향을 잃은 상태다.

이번 장관 교체의 이유가 됐던 ‘2022 대입제도 개편안’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안은 전임 장관이 “우리 교육의 정상화와 미래 가치를 실현하는 대입제도 방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하고 1년을 궁리해 결정해낸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안은 ‘수능이냐 학생부냐’ 아옹다옹하는 기존 이해(利害) 다툼을 확대 재생산했을 뿐이다.

그런 방안에 대해, 신임 장관은 “현장에 안착되도록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고 취임사에서 약속했다. 새로 들어선 장관이 달리 어쩔 도리가 있겠느냐고 말할 테지만, 그런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한다고 해서 이미 어긋나간 방향이 제대로 돌아올 리 만무하다.

거두절미하고, 학생들이 선다형 시험 문제 풀이 연습에 매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대입제도가 최선이라는 뜻인데, 신임 장관은 그런 정책 ‘방향’이 옳다고 여기고 계속 밀고 나아가겠다고 우기는 꼴이다.

"취임사, 장관의 줏대는 없었다"

상황을 짐작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교육부장관의 운신 폭은 이미 매우 좁혀져 있다. 그 제한된 폭 안에서 개인의 정치적 이력을 쌓는 데 그친다면, 장관이 새롭게 들어섰다고 해서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는가. 신임 장관이 진정 ‘방향’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이미 결정된 정책 방향마저도 틀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확보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내걸었던 공약이나 장관에게 내리는 지시에 대해서도, 재고할 것은 재고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취임사에는 그럴만한 줏대가 보이지 않는다. 잘못 읽은, 쓸 데 없는 걱정이길 바란다.

토플러의 제언은 상식일 뿐..."상식을 깨야 혁신이 온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소신을 신임 장관이 설사 관철시킬 수 있게 된다고 해도, 기대를 걸기에는 아직 저어하는 마음이 남는다. 장관이 의중에 두고 있는 ‘방향’이 미덥지 않기 때문이다. 취임사에서 장관은 ‘앨빈 토플러’를 언급했다. 2001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여 토플러가 내놓은 보고서를 읽었던 바, “대한민국의 교육패러다임 전환은 선언적 차원이 아닌 구체적인 로드맵에 바탕을 두고 바꿔야 한다는 사명감을 더욱 굳건히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언급된 보고서는 사실 토플러 개인이 작성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Toffler Associates’라고 상표등록된 조직의 이름으로 제출됐었고, 토플러는 그 보고서의 서문을 썼을 뿐이다. 엄격히 따지면, “토플러가 김대중 대통령께 제출한 보고서”라는 장관 취임사의 언급은 적절하지 않다.

토플러라는 이름이 지니는 권위는 위압적이기까지 하다. ‘미래학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던 그가 한국의 미래를 내다보며 교육정책에 대해 훈수를 두었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귀 기울여 듣고 따라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신임 장관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토플러의 훈수는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을까? 그의 제안을 따라 ‘교육패러다임의 전환’을 추구하는 것이 바른 방향일까?

토플러 측의 제안은 사실 상식적인 것이었다. 미래는 ‘제3의 물결 경제’(Third Wave Economy)로 흐를 터이므로, ‘공장형 학교’(Factory-style Schools)를 탈피해서 다양하고 개별화된(선택을 존중하는) 교육을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들은 제언했다. 인터넷 같은 수단을 적극 활용해서, ‘언제 어디서나’ 배울 수 있는 ‘평생모형’(Life-long Model)을 추구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학생들의 ‘혁신적인 역량’과 ‘독립적인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는 진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신임 장관은 이런 제언이 바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받아들였고, 취임사에서는 그 방향의 변화를 일컬어 ‘교육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부른 듯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임 장관의 해석과 의견에 동의하리라고 짐작한다. 그만큼 토플러 등의 제안은 뭇사람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상식적인’ 것이다. 오늘날 ‘제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여 학교교육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자는 ‘전문적인’ 조언들이 난무하고 있는 형국만 보더라도 수긍이 간다. ‘미래’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오늘의 교육을 혁신하자’는 식의 주장이 대중적인 설득력을 지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인류문명의 변화가 증언하는 바, ‘상식의 눈’으로는 혁신의 길을 볼 수 없다. 혁신은 상식을 깨고 버리는 데서 온다. 길어져야 할 마련이지만 형편상 줄여 말하자.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상식 밖’이었던 소크라테스의 사고나 가르침은 혁신적이고도 옳았었으며, 맹신의 상식에서 벗어나서야 볼 수 있었던 갈릴레이의 발견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완성하였다.

신임 장관이 진실로 ‘교육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한다면, 토플러 등과 같은 ‘상식적’ 조언에 감명 받지 않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나라의 교육부장관이라면, 토플러의 권위에 압도되지 말고, 그의 팀이 ‘미래’를 잘 그렸을지는 몰라도, 교육에 대해서는 상식 이상의 식견을 가지지 못했었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쓸모 갖추기 위해 '교육'해야 한다?..."비인간적인 철학"

학교교육을 미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은 지구 곳곳에서 지배적이다. 토플러 등도 그런 통념에 충실한 조언을 했다. 신임 장관은 그런 통념에 흔들림 없이 동조한다. 그녀는 취임사에서, 교육은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것이라고, 한 치의 의심 여지도 없다는 듯 거듭 이야기한다. 취임사를 듣는 사람들도 너무도 흔히 듣던 말이어서 의식 없이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그 말에는 경계해야 할 위험한 ‘철학’이 들어있다. 그런 말은 ‘교육이 사람의 쓸모(특히, 경제적 쓸모)를 높이기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입장에서나 할법한 것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쓸모가 더 큰 기계를 꾸준히 개발해 나아가야 하듯이, 사람도 그런 쓸모를 더 갖추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돈이나 기계처럼, 사람도 생산에 필요한 하나의 ‘자원’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인간관을 지녀야 그런 발언에 일관된다. 만약 교육부장관이 이런 인간관과 교육관을 지니고 있다면, 국민으로서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꼬치꼬치 풀어 생각해볼 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철학이다. 그러나 지난 몇 십 년에 걸쳐 우리는 그런 철학을 환영하고 지지해 왔다. 학계에서마저 ‘교육’과 ‘인적자원개발’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호환해 온 지 오래다. 2000년대에는 교육부가 아예 ‘교육인적자원부’ 간판을 달았었지 않았던가.

이런 정황에서, 신임 장관은 과연 자신이 취임사에 어떤 ‘교육철학’을 담았는지 명료하게 인지나 하고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교육을 인적자원 개발과 같은 뜻으로 취급하는 통속적인 인식은 벌써 극복했어야 했다. 그러나 문재인정부의 교육정책 담론은 아직도 그런 인식에 묻혀있다. ‘적폐’에 묻혀있다. 교육정책이 가야 할 ‘방향’은 문재인정부가 스스로 깨닫지도 못한 채 품고 있는 그 ‘적폐’를 청산하는 데 있다. 교육부장관은 자신과 자신이 몸담은 정부의 교육관을 새롭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여론편승 교육정책으론 패러다임 전환 꿈도 꿀 수 없어

이제까지 그래 왔듯이, 국민의 뜻을 받든다는 명분을 내걸고, ‘소통’을 강조하면서, 여론(상식)에만 편승해서 교육정책을 끌고 가려한다면, 신임 장관이 호언한 ‘교육패러다임 전환’(곧, ‘적폐청산’)은 꿈도 꿔볼 수 없다. 패러다임 전환은 쿤(Kuhn)의 말마따나 상식(Normal Science)을 초월할 때 가능한 것이잖은가.

교육정책의 바른 방향은 ‘사람을 경제적 효용을 지니게 키우는 것이 교육’이라고 굳혀온 끔찍한 상식을 깨는 데 있다. 교육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키우는 것이다. 여론에 밀려 설령 교육을 경제의 수단으로 삼을 도리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다시 생각해보자, 인간다운 품격을 갖추도록 키워진 사람이 경제적 효용을 발휘할 수는 있겠지만, 경제적 효용을 장착하도록 키워진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돈이면(경제면) 족하다’는 천박한 세태가 인간 본유의 교육 가치마저 휘젓는 사태를, 우리 교육정책은 계속 방관하다 못해 오히려 부추겨왔다. 정부들은 대대로 여론을 빙자하여 그런 교육정책의 부박(浮薄)한 진상을 호도해왔고, 거듭 학교교육을 훼손해왔다.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이제 교육부장관이 바뀐다고 달라질 게 있겠냐고 냉소하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데도, 여전하다.

지준호 기자  casaji97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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