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경북혁신교육연구소공감 이사

철옹성 같던 학교, 교사가 학부모 두려워하게 변해
앵그리 부모와 몸사리기 바쁜 교사 "교육은 어디에"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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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교단에 첫 발을 내디딘 지 언 30년이 지나고 있지만, 내 경험으로 예전의 학교는 도무지 변화와 거리 먼 곳이었다.

학교현장은 무풍지대였고, 설령 바람이 불어도 학교는 까딱없는 철옹성과도 같았다. 신성한 교육의 이름으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행위들이 용납 되었다. 허벅지에 시퍼런 멍이 들도록 아이들을 때려도 별 문제가 안 되었을 뿐 더러, 오히려 그렇게 해서 학생의 성적이 올라가기라도 하면 훌륭한 선생이라는 칭송이 돌아오기까지 했다.

그러던 학교가 한 10년 전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한 해 한 해 급격히 달라지는 느낌이다.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고 있지만 교사를 힘들게 하고 학교교육의 역기능을 초래하는 핵심인 교사-학부모 사이 역학관계의 전도에 있다고 나는 본다.

예전 학교에서 교사는 절대 권력자였다. 학생에게는 물론 학부모에게도 그러했다. 이를테면 교사를 접견하기 위해 학교를 방문할 일이 생길 때 학부모는 무엇을 들고 갈 것인지를 먼저 고민했다.

빈손으로 담임교사를 찾아가는 것은 학부모 입장에서 생각하기 어려웠고, 이런 불편 자체가 큰 스트레스였기에 학부모들은 학교 가는 것을 기피했다.

과감하게 학교를 드나드는 학부모가 있다면 ‘치맛바람’으로 표상되는 부적절한 성질의 경우일 뿐, 선량한 학부모가 제 발로 교사를 찾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자녀의 학교생활이 궁금해서 담임교사와 전화상담이라도 나누고 싶어도 학부모가 감히 수화기 너머로 교사를 호출할 마음 먹기는 쉽지 않았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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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학부모가 교사를 두려워하다"

그런데 불과 10년 사이에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역학 관계가 전도되었다. 학부모가 교사를 두려워하던 시대는 가고 거꾸로 교사가 학부모를 두려워하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 학부모는 정상적인 교육상담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댄다. 한 해에 이런 학부모를 두어 사람만 만나도 교사가 감내할 고통은 엄청나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은 이런 고통을 피하기 위해 개인 전화번호를 노출하지 않거나 별도의 번호를 개통하여 업무시간 종료 이후에는 아예 수신이 차단되도록 한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에서 교사들에게 업무용 폰을 지급하려 한다는 뉴스가 전해진 것은 이런 배경이다.

교사-학부모 사이의 갑을 관계가 역전됨에 따라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겪는 불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학교와 교사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학부모 민원이다. 민원의 발생은 교사의 실수로 말미암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학생끼리의 다툼으로 일어난다. 그 원인이 무엇이며 누구에게 잘못이 있든 민원이 발생하면 민원 제기자인 학부모는 위력적 위치에 서고 반대로 교사는 한없이 초라한 형세에 내몰린다.

최근 필자가 아는 어떤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 학부모가 자기 자녀가 급우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데 담임교사가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학교에 와서 패악을 부린 일이 있었다.

오직 자기 자녀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분노의 화신이 된 앵그리 부부는 교장-교감이 출타 중인 교무실에서 교무부장을 향해 “또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학교를 불 질러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교무실 문을 쾅 닫고 나갔다.

그분은 퇴임이 얼마 남지 않아 승진의 뜻은 전혀 없지만 모두가 역할을 기피해서 억지로 교무부장을 맡은 터였다. 이 온순한 여교사가 자식뻘 되는 젊은 학부모로부터 이 말을 듣고 몇 날 며칠을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후문은 현재 우리 교육현장에서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씁쓸한 리얼리티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무릇 바람직한 교육은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따라서 학부모가 교사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던 과거의 학교도 문제가 많았지만, 반대로 학부모가 두려워 교사가 몸을 사리는 현금의 학교는 학생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심각하다.

어떤 식이든 교육은 교사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법이거늘, 교사가 위축된 곳에선 학생의 성장 또한 움츠려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학부모의 행불행이 교사 손에 달렸다면, 지금은 교사의 행불행이 학부모 손에 달렸다. 한 해가 다르게 교육현장이 급변해가고 있는데 최근에는 ‘아동학대’라는 신종 개념이 우리 교사들의 마음을 옥죄어 온다.

모년 모일 교감선생님은 직원협의회에서 “말썽 피운 학생을 교실 뒤 벽에 서 있게 하거나 눈을 감게 하는 처분도 아동학대에 해당함”을 친절히 교사들에게 주지시켜주셨다.

창백한 교육원론은 사랑으로 학생을 가르치라고 하지만, 현실 속의 교실 상황은 혼란과 갈등으로 점철된다. 이런 현실에서 눈을 감게 하지도 교실 뒤편으로 보내지도 못하는 교실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사였던 교감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건만 관리자로서 자기 책임을 면하기 위해 공식 석상에서 무덤덤하게 그런 발언을 내뱉는 것이다.

그러면 교사는 교사대로 살아남기 위해 어찌해야 하는가?

학교가 아니라 전쟁터다. 오직 제 자식 밖에 모르는 앵그리 부모가 자녀에게 약간의 피해가 발생하면 교사를 잡아먹을 듯이 덤비고, 교사는 또 학부모에게 안 잡아먹히기 위해 몸 사리기 바쁜, 이런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교육은 불가능하다.

교사라는 사람이 무엇을 가르칠까, 아이들을 어떻게 얼마나 사랑할까, 자신의 교육애를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고민하며 하루를 맞이하는 곳에선 밝은 백년지대계를 기대할 수 없다.

이성우 경북혁신교육연구소공감 이사
이성우 경북혁신교육연구소공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