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이 더 공정’ 주장, 공정함을 ‘형평성’으로 이해
‘수능이 더 공정’ 주장, 공정함을 ‘비례성’으로 이해

입시경쟁, 성적과 능력주의 아닌 격차 때문에 발생
지역별·계층별 쿼터제 도입, 수능의 논술화 등 제안

11일 청주교육대학교에서 열리는 학교와 수업연구 학술대회에서 IB와 관련한 발표를 앞두고 있는 이범 교육평론가를 서울 용산구 소재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지준호 기자
이범 교육평론가는 "학종이 공교육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럼에도 나는 정시 확대 주장을 옹호하려 한다”고 말했다. (사진=지성배 기자)

[에듀인뉴스=한치원 기자]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공교육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럼에도 나는 정시 확대 주장을 옹호하려 한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29일 국회의원회관 8간담회의실에서 김병욱·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공동 주최로 열린 ‘정시확대 왜 필요한가’ 정책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대중의 정시 확대론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주제로 발제한 이범 평론가는 “학종이 정시보다 교육적으로 올바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여론을 존중해 대입제도를 결정하고 또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정치인의 몫”이라며 “대통령은 그런 차원에서 일종의 정치적 결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가치와 교육적 가치 중 더 중요한 것을 판단한 것으로,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평론가는 ‘학종이 더 공정하다’고 주장한다면, 공정함을 ‘형평성’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종 입학자는 정시 입학자 대비 고소득층 비율이 낮고, 서울·수도권 출신 비율이 낮게 나온다”며 “학종의 구성요소를 ‘내신성적 + 세특 + 비교과’ 라고 할 때, 비교과는 기회가 불평등하고 세특(교사가 학생별·과목별로 적어주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교사별 편차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내신성적은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강력한 ‘균등 선발효과’가 발생한다”고 했다. 학종 입학자의 고소득층 및 서울·수도권 비율이 낮게 나오는 이유다. 

‘수능이 학종보다 공정하다’고 주장한다면, 공정함을 ‘비례성’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교과는 기회가 불평등해 OECD 국가 중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면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세특이나 내신성적은 상당한 교육적 의미가 있지만 비례성이 떨어진다. 비례성을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능처럼 학교 밖 기관에서 주관하는 외부 시험(external exam)을 치르는 것이다. 명칭은 나라에 따라 인증시험, 졸업시험, 대입시험 등으로 다양하나 모두 그 성적이 대학입학 여부를 가리는 데 활용된다.

그는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 중에는 비례성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비례성을 강조하면 필연적으로 서열화와 능력주의를 긍정하게 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서열화와 능력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설령 프랑스처럼 일정 성적만 되면 대학에 입학하는 특이한 제도를 도입한다 할지라도, 의대처럼 면허가 제한되어 있어 경쟁이 불가피한 분야는 진급 과정에서 탈락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처럼 대학 간 교육여건에 차이가 크고 학벌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대입에 대한 공정성 요구가 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이유로 의대 진학이나 공무원이 되려는 경쟁이 치열한 것은 결과에 따른 격차(생애소득·고용안정)의 차이를 꼽았다. 입시경쟁은 시험성적과 능력주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격차 때문에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또 이 평론가는 “학생 교육비 차이가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학 서열과 잘 들어 맞는다”고 말했다. 대학정보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서울대 4334만원 △연세대 3024만원 △한양대 2138만원 △중앙대 1504만원으로 차이를 보였다. 

대입경쟁이 치열한 것은 이러한 교육여건 격차가 크기 때문이며, 여기에 소속 대학 평판에 따른 후광효과, 동문 인맥으로 인한 네트워크 효과 등까지 덤으로 얻는다는 것. 

이 평론가는 “내가 의대를 가느냐 못 가느냐에 따라 생애소득과 안정성에 큰 격차가 발생하는데 당연히 납득할 수 있는 합격·불합격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며 “대입 결과의 격차가 큰 만큼 날카롭고 객관적인 변별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보완책도 내놨다. 정시 수능선발로 고소득층이나 서울·대도시 출신 대학 합격비율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 내신 성적에 따른 균등 선발효과나 지역별·계층별 쿼터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평론가는 “고교학점제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학종의 균등 선발효과를 유지할 수는 없다. 내신 절대평가 하에서 형평성을 확보하는 방안은 지역별·계층별 쿼터제다. 이것은 학종뿐만 아니라 정시에도 실시 가능하다”며 “가장 유력한 방법은 모집정원 중 일부를 지역별·계층별 쿼터제로 선발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쿼터를 50%로 정한다면, 지역별·계층별 쿼터에 따라 정원의 50%를 우선 선발한 뒤 나머지 50%를 선발하자는 것이다. 

수능을 15년에 걸쳐 논술형 시험으로 개선하자는 안도 내놨다. 

이 평론가는 “창의력으로 대표되는 비판적 사고능력이나 특정한 결론을 유도하는 이유를 묻는 논증능력을 5지선다 시험으로 알아보기는 불가능하다”며 “OECE(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다수가 입시를 논술형으로 치르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수능을 과목별 논술형 시험으로 전환하는 것은 출제와 채점 시스템 확보 등이 쉽지 않아 조심스럽고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첫 해에는 논술형 문항의 비중을 과목별 총점 대비 5% 내지 10%에서 시작하고, 그 비중을 매년 5%씩 높여 70%까지 높이도록 하자는 것. 이 과정에 15년 정도가 소요되고, 이후 사회적 합의에 따라 나머지 30%를 단번에 혹은 단계적으로 논술형으로 전환하도록 하자는 설명이다. 

일부가 주장해 온 국립대 통합이 아닌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메이저 국·공·사립대 공동입학제’을 제안했다.

그는 “대입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국립대 통합’ 혹은 ‘국립대 네트워크’를 제안해 왔지만 이 모델은 인구 절반 이상이 몰려있는 서울·수도권 지역에 거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수도권 고졸자 대비 이 지역 국공립대 정원이 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가 제안하는 서울·수도권 주요 사립대들을 끌어들이는 대학 공동입학제는, 고졸자의 30-40% 가량을 공동 선발하는 4년제 대학 공동입학제에 동의하는 대학에 정부 예산의 1%(5조원) 가량의 막대한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여기에 국립대는 물론이고 서울·수도권의 대부분 사립대와 일부 지방 사립대를 포함시켜 이 재정을 이용해 대학은 학부생 교육여건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상향평준화하고, 나머지는 연구비로 사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평론가는 "이렇게 되면 학부 교육여건이 이미 좋은 대학은 연구비 투입이 크게 늘어나 연구중심대학으로 진화하고, 학부 교육여건 개선에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대학은 상대적으로 교육중심대학으로 진화하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