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지만 속 시원한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과연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일까요? 에듀인뉴스에서는 그러한 고민에 동참하고자 제리안 작가의 <작가수업> 시리즈 칼럼을 준비했습니다. 작가를 꿈꾸는 여러분에게 명확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첫 문장을 쓰는 순간부터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첫 문장의 무게를 잘 알고 있는 노련한 작가일수록 그 공포는 상상을 초월한다. 뭣도 모르고 쓸 때는 마냥 즐겁기만 했던 것이 쓸수록 어렵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자책하지 마라, 당신에겐 죄가 없다. 글을 쓴다는 게 원래 밑도 끝도 없는 좌절과 직면하는 일이니까.

우리는 성공한 작가들의 천부적인 자질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그들의 공통점은 '좌절과 절망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좌절도 이겨내려고 몸부림치는 것보다 익숙해지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뜻일까?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좌절을 겪게 된다. 좌절이란 자신이 세운 계획이나 일 따위가 도중에 수포로 돌아감을 의미하는데 세상 일이 언제 내 뜻대로 된 적이 있었는가. 그때마다 고꾸라진다면 다시 일어설 힘을 잃게 될 게 뻔하다. 

내가 세운 계획대로 세상이 움직일 리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좌절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다. 이때 필요한 건, 무너진 계획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게 아닌 무너진 계획의 잔해를 힘차게 밀고 나아가는 자세이다. 해로를 개척하기 위해 결빙 지역의 얼음을 부수며 전진하는 쇄빙선처럼 말이다. 아이스 브레이커라 불리는 쇄빙선은 결빙수에서 활동하므로 얼음에 봉쇄되어도 이탈이 가능하고 선체가 손상되지 않도록 둥근 선형을 이루고 있으며 선체를 전후로 경사지게 할 수 있도록 강력한 펌프와 물탱크를 갖추고 있다.

작가의 역할도 그러한 것.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사력을 다해 한 세계를 부수 듯 작가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길을 깨고 또 만들며 나아가야 한다. 쇄빙선처럼 좌절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둥근 마음과 열정을 듬뿍 채운 펌프로 이 차가운 세상을 고독하게 항해하는 일, 그것이 작가의 일생이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는 <등대로>를 집필했을 당시 창작 능력이 최고조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하루에 2-3시간 밖에 글을 쓰지 않았다. 초고를 살펴보면 총 535자를 썼는데 그중 73자에 줄을 그어 삭제를 했다. 결국 그녀가 쓴 분량은 462자, 하루에 약 178자를 쓴 셈이다. 하루에 쓴 분량이 고작 178자라니, 에게?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할 테지만 그녀가 초고를 쓸 무렵 영국에서는 사상 초유의 파업이 한창이었다. 

기차도 버스도 택시도 운행을 멈추고 순경들이 운전하는 버스 몇 대만이 런던 시내를 오고 갔다. 그러나 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 파업에 동참한 이들이 이 버스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 큰 타격을 입게 되자 울프는 노동자들이 문명을 유지해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맥네이브 부인'이라는 청소부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초고를 쓴 이후 진전이 없었으나 오히려 느린 글쓰기 덕분에 총파업의 영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수 있었고 새로운 글쓰기의 돌파구가 열린 것이다.

빨리 쓰는 게 정답이 아니다.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며 가로막은 방해물을 부숴야 할지, 돌아가야 할지 관찰하고 판단하는 일이야말로 작가가 좌절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태도다. 빠름에 길들여진 우리는 좌절도 빨리, 절망도 포기도 참 빨리하고 만다. 서두로 돌아가 첫 문장을 쓰는 게 두려운가, 천천히 다시 생각해보라. 결말에 가장 가까운 문장이 무엇인지, 당신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강렬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말이다. 그럼에도 막힌다면 지금 당장 쇄빙선에 올라타라, 길을 깨고 당신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가슴속에 품은 꿈의 지도를 떠올리면서.

-제리안 작가-

*위 글은 제리안 작가가 위키트리에 연재한 칼럼으로 작가의 동의를 얻어 재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