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지만 속 시원한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과연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일까요? 에듀인뉴스에서는 그러한 고민에 동참하고자 제리안 작가의 <작가수업> 시리즈 칼럼을 준비했습니다. 작가를 꿈꾸는 여러분에게 명확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소설을 쓰는 일은 마라톤과 같다고 흔히들 말한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완주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경기의 승패를 지배하는 건 바로 '라스트 스퍼트'란 사실을 말이다. 페이스를 떨어트리지 않고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승점에 가까워지면 온 힘을 다해 질주해야 한다.

그런데 소설에 이제 막 입문한 사람들은 대개 라스트 스퍼트의 개념과 반대되는 '스타트 대시 (start dash)'에만 열을 올리다 중간 지점부터는 아예 힘도 못 쓰고 중도 포기를 선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스타트 대시는 출발과 동시에 최고 스피드를 올려 달리는 것을 말한다.

주로 100미터 경기와 같은 단거리 육상에서 쓰는 방법이다. 10초 이내에 승부가 끝나버리는 100미터 경기에서 꼴찌가 선두를 따라잡아 역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출발부터 선두의 위치를 장악하기 위해 스타트 대시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 하지만 소설을 쓰는 일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처럼 기나긴 경주이므로 스타트 대시에서 힘을 빼는 건 무모한 행동이다.

마라토너들이 빨리 달릴 줄 몰라서 초반에 천천히 달리는 게 아니다. 라스트 스퍼트를 위해 체력을 비축해두는 것이다. 그래야만 결승점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단시간에 전력을 다하여 역주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소설을 쓸 때도 마찬가지로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며 꾸준히 써나가다가 초고를 끝내고 나면 그때부턴 체력전이라 할 수 있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쓴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손마디가 부어오르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다. 눈알은 나무로 만든 구슬처럼 뻑뻑하다. 어깨는 험상궂게 생긴 고릴라 두 마리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뻐근하다. 이쯤 되면 극심한 피로가 몰려와 소설이고 뭐고 다 귀찮아진다.

마라톤에 비유하면 마의 35km 구간에 들어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구간에서 가장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벽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벽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페이스를 떨어뜨리지만, 반대의 경우엔 페이스를 유지하고 계속 뛴다.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마라톤에는 3가지 벽이 존재한다. 체력의 벽, 근육의 벽 그리고 정신력의 벽이다. 그런데 이 벽들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

마라톤을 처음 시작했을 땐 5km만 뛰어도 체력이 고갈되지만, 10km를 뛰는 훈련을 했을 때는 5km를 뛰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20km를 뛰고 나면 다음에 10km를 뛰는 것쯤이야 문제없다. 그렇게 목표를 정하고 코스를 늘리다보면 마의 35km 구간도 충분히 자신의 페이스대로 뛸 수 있게 된다.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42.195km까지도 편안하게 통과할 수 있다고 하니 훈련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소설을 쓸 때도 마의 35km 구간에서 고꾸라지지 않으려면 체력의 벽, 근육의 벽, 정신력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그러한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오버페이스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 '스타트 대시'에 열을 올리지 말라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초반에 힘을 다 쓰고 나면 페이스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라는 회의가 밀려든다. 가장 심각한 상황은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 낙담하고 코스를 이탈하는 경우다.

실제로 전업작가들 중에서는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 글쓰기가 체력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가볍게 식사를 하고,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한다. 등산을 즐기는 작가들도 수두룩하다. 이들은 평소에 체력 관리를 철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페이스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량에 따른 랩타임을 설정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보통 장편소설 한 편을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 빠르게는 3개월 보통은 1년 사이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보다 훨씬 긴 자기와의 싸움이 아닐 수 없다.

원고의 최종 수정 작업을 할 때는 드디어 라스트 스퍼트가 시작된다. 그동안 비축해두었던 체력은 물론 작가의 역량이 최고조에 달하는 지점이다. 다른 의미에선 자신의 잠재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때 작가는 모든 것을 걸고 끝까지 써야만 탈고의 환희를 맛볼 수 있다. 그렇게 완성된 자신의 작품이 책으로 출간되었을 때의 기쁨은 오죽하겠는가.

누구나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지만 결승점을 통과하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는 마라톤처럼 작가의 세계도 먼저 데뷔했다고 출간이 앞당겨지는 건 아니다. 또 아이디어만 있다고 저절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묵묵히 끝장을 보지만, 어떤 이의 컴퓨터 파일에는 쓰다만 시놉시스만 가득하다. 아무리 소재가 좋더라도 그것은 미완성이며 습작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35km 지점을 누가 몇 시간대에 주파했는가엔 관심이 없다. 기억하는 건 오로지 결승점을 통과한 사람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단순히 1등을 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인간 승리'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200m 지점이다. 더 달릴 수 있을 때 멈추면 게임은 끝나버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제리안 작가-

*위 글은 제리안 작가가 위키트리에 연재한 칼럼으로 작가의 동의를 얻어 재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