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 남미의 땅끝 여행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 남미의 땅끝 여행
  • 박용광 기자
  • 승인 2017.01.18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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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여행·사진 작가

미의 땅끝, 푼타아레나스

칠레 뿌에르또 몬트 공항에서 남미의 땅끝, 푼타아레나스행 스카이에어라인에 몸을 실었다. 이번 이동은 남미의 남쪽 파타고니아 지역을 여행하기 위한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몸집이 작은 비행기는 개구리처럼 활주로를 박차고 올랐다. 이륙을 위한 도약도 짧았고, 쉽게 바람을 타는 듯했다.

약간의 진동이 느껴졌지만 다른 비행기의 이륙과 별 차이가 없었다. 경쾌한 출발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불과 몇 초밖에 가지 못했다.

큰 비행기 같으면 지면을 박차고 올라 한동안 고도를 올린 뒤 방향을 전환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비행기는 이륙 후 불과 4~5초 만에 왼쪽으로 급격하게 방향을 바꿨다. 활주로가 눈 아래로 스쳐 지나갔다.

파르르 눈두덩에 경련이 일어났고, 원활했던 혈액 순환이 역류하며 머리로 쏟아져 내렸다. 중력을 거스르고 원심력을 떨쳐 내는 비행은 마치 공군 전투기 같은 느낌을 줬다.

평생 가장 아찔한 이륙이었다. 기내식을 먹고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무사히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휴대폰 진동 모드처럼 요동치기 시작 했다.

앞뒤 좌우 가리지 않고 비행기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동체는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처럼 심한 오한에 떠는 듯했고, 승객들의 낯빛은 점점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질근 감았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레일의 진동을 느끼는 것처럼 동체의 진동이 고스란히 몸으로 전달됐다.

작은 의자에 앉아 안전 벨트 하나에 목숨을 의지하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장을 믿는 게 다였다. 창문 아래로 보이는 바다 위엔 큰 파도가 일렁였다.

비행기는 우악스러운 바람 앞에 솜털처럼 마젤란해협 상공을 날았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좌우로 급격하게 쏠리는 비행이 계속됐다.

이대로 착륙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활주로가 시야에 들어왔다. 비행기는 엉덩이를 뒤로 빼고 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마지막 고비였다.

승객 중엔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쿵~ 스으윽~우~웅~’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몸이 앞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엔진이 굉음을 토해냈다. 그 사이 승객들은 숨이 붙어 있는 것에 감사하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파나마운하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호황을 누렸던 곳, 남극의 관문, 신라면 가게가 있는 곳, 마젤란 동상의 발을 만지면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는 전설이 있는 곳, 또레스 델 빠이네 트레킹을 위해서 많은 여행자들이 스쳐 지나가는 땅, 펭귄을 볼 수 있는 곳, 아르헨티나 우수 아이아와 세상의 땅끝이란 타이틀을 놓고 다투고 있는 곳…

이렇듯 푼타아레나스를 말하는 수식어는 많다. 하지만 내게 이 도시는 살아서 두 발로 걷는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느끼게 해준 곳이었다.

<푼타아이레스 거리는 이국적 조경이 인상적이었다.>
<남미에선 어딜 가나 유럽에 온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푼타아레나스의 라면집과 마젤란 동상

무엇보다 푼타아레나스에선 라면집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다행히 버스회사 직원이 라면집 위치를 알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빛바랜 ‘辛라면’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여행 중 이런 순간이 오면 꼭 보물찾기 게임 속 주인공이 된 듯했다.

<아찔한 비행 뒤 처음 찾은 곳은 푼타아레나스에 있다는 라면집이었다.>

“안녕하세요. 라면 좀 먹으러 왔어요.” 헌걸차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와요.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지금 한국 사람 올 시기도 아닌데… 아주 단골손님처럼 들어오네.”
“하하, 인터넷에서 유명한 곳이던데요. 와! 여기 짬뽕라면도 있네요. 진짜 짬뽕은 없겠죠? 암튼 저는 짬뽕라면요!”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칠레 군인들이 흘깃흘깃 날 쳐다봤다. 라면이 끓기 시작했다.

“파 좀 넣어줄까”
“파요? 좋죠!”
“그치, 라면엔 파가 들어가야 해.”

라면집 주인아저씨와 난 마치 이 동네의 길고 긴 적막과 공허를 깨뜨리고 싶은 사람들처럼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잠시 뒤 노란 양은냄비 안에 소담스럽게 몸을 풀어헤친 라면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자극적인 매콤한 냄새가 순간 흥분을 더했다. 따끈한 국물이 식도를 간질이며 지나갔다. 나트륨 함량 따위는 신경쓸 게 아니었다. 막혔던 속이 그대로 녹아내리는 기분이 었다.

타는 듯한 작열감이 위장으로 퍼졌다. 잠시 뒤 설거지를 따로 할 필요도 없이 사발이 말끔하게 비워졌다. 라면 가게 벽은 이곳을 방문한 한국인의 이름 석자로 빼곡했다.

사람들의 필체에선 지구 반대편에서 라면집을 발견한 행복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자연은 빈 공간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했다.

여행자들도 칠레의 땅끝에서 하얀 벽면의 쓸쓸함을 견디지 못한 것 같았다. 나도 그들처럼 펜을 들고 빈 공간을 찾았다. 천장 구석 한쪽에 내이름 석자를 남겼다.

라면을 먹고선 푼타아레나스 중심부에 있는 마젤란 동상 앞에 섰다. 인류 최초의 세계 일주자 마젤란이 바다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손길로 반질반질해진 마젤란 동상의 발.>

그리고 또 한 명의 세계 일주자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목숨을 내건 그의 모험에 비할 건 아니었지만 묘한 동질감과 아련함이 전해졌다.

물론 동전의 양면처럼 그가 저지른 학살도 떠올랐지만…. 마젤란 동상의 구두 한쪽이 자체 발 광하는 것처럼 반짝였다. 이 발을 만진 사람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고 했다.

<푼타아레나스에 있는 마젤란 동상 발을 만지면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

발을 만진 그들 중 이곳을 다시 찾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내가 그랬듯 그들 역시 마지막이란 심정 아니었을까. 해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스산했고 해지고 깨진 채 어깨를 맞댄 집들은 시간의 무게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햇살이 골목 안을 설핏 비추고 있는 모습에선 과거의 영화가 떠올랐다. 두리번거리는 여행자의 긴 그림자가 골목 안을 채웠다. 그림자 끝엔 바다가 서걱거리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바람이 바다를 서성이다 뱀처럼 몸을 휘감으며 지나갔다. 눈 앞에 하얀 물거품이 높은 파도를 타고 떠밀려 내려오는 먹먹한 바다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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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광 기자  cool4241@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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