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환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지난해 12월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5년에 실시된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PISA) 결과를 발표하였다.

OECD 회원국을 포함해 총 72개국의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읽기, 수학, 과학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2012년에 실시된 PISA 결과와 비교해서 전반적으로 순위가 하락하였으며 하위 수준의 학생 비율이 증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그리고 이번 PISA 결과에서 싱가포르가 읽기, 수학, 과학 세 영역의 학업성취도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였다는 점에 많은 이목이 집중되었다.

더욱이, 학습 흥미와 자아효능감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성취를 보였으나, 싱가포르는 이러한 정의적 영역에서도 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성취를 나타냈다.

PISA는 교과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보다는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식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싱가포르는 역량교육의 성공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 학생들이 다른 국가의 학생들에 비해서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지식정보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하여 1997년부터 꾸준하게 진행된 싱가포르 교육개혁에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초·중등학교, 교사양성기관, 연구기관 등과 협력하여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교의 문화와 제도를 바꾸고 학습환경을 개선하였다.

이러한 교육개혁의 중심에는 교과지식과 시험 위주의 교육을 역량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싱가포르 교육개혁과 21세기 역량   

1990년대에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지식정보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교육개혁이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에 5·31 교육개혁을 통해 열린 교육, 수요자 중심 교육, 교육의 자율성, 교육 정보화, 평생학습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마찬가지로, 1997년에 싱가포르에서는 ‘생각하는 학교, 학습하는 국가(Thinking Schools, Learning Nations)’라는 구호 아래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시민의식, 창의성, 학습에 대한 열정 등을 함양시키기 위한 교육개혁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교육개혁을 통해 학교의 자율성을 증대하고, 학습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사의 수업 부담을 줄이며, 수업과 평가방식을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싱가포르 정부는 2005년에 시험 위주의 교육을 탈피하고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더 적게 가르치고, 더 많이 배우자(Teach Less, Learn More)’라는 교육개혁을 실시하였다.

이 교육개혁은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학교가 도와야 한다는 취지에서 실시되었다.

교육개혁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교육과정의 10~20%를 감축함으로써 교사의 수업부담을 줄이고, 교사가 탐구학습과 같은 학생 중심의 수업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 학교에서 일정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하였다(Intan, 2011).

그리고 교육부는 성공적인 교육개혁을 위해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을 성찰하고 협력적으로 수업을 계획하도록 지원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두 번의 교육개혁의 연장선에서 싱가포르 교육부는 2010년에 21세기 역량 함양을 위한 교육목표를 제시하였다.

학교를 졸업하는 모든 학생들이 [그림 1]에 제시되어 있는 역량들을 함양할 수 있도록 싱가포르 학교와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노력하고 있다.

여러 가지 교육목표 중에서 가장 중핵이 되는 것은 학생들의 신념이나 행동을 결정하는 가치관이다. 이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싱가포르에서는 핵심가치로 존경, 책임감, 진실성, 배려, 회복 탄력성, 화합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림 1]의 두 번째 원은 사회 및 감성적 역량을 나타내는데, 학생들이 자신의 감성을 인지하고 조절하며,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량은 그 바깥에 위치한 21세기 역량을 함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21세기에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역량에는 (1) 시민리터러시, 글로벌 의식, 다문화 기술, (2)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3) 의사소통, 협력, 정보 기술이 포함된다.

이 역량들은 OECD, UNESCO, EU 등에서 제시한 21세기 역량들과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 마지막으로, 역량 중심의 교육을 통해서 기르고자 하는 인재상이 교육의 결과로 제시되어 있다.

싱가포르 교육이 추구하는 인재상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자신감이 있으며,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적극적으로 혁신과 변화에 기여하는 사려 깊은 시민이다.

이러한 인재상은 우리나라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인재상(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과도 유사하다.

역량 중심의 수업혁신 

21세기 역량을 계발하기 위해 학교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역량교육을 위해서는 수업, 교육과정, 평가, 학교문화, 대학입시제도 등이 체계적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이 중에서도 수업은 학생들의 학습경험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고 21세기 역량 함양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 아래에서는 역량교육을 위한 싱가포르의 수업혁신 사례를 살펴보겠다.   

첫째, 싱가포르에서는 학생들의 사회 및 감성적 역량을 계발하기 위한 교육이 확대되고 있다. 2010년에 초등교육 리뷰와 실행(Primary Education Review and Implementation)이라는 정책을 통해서 싱가포르 정부는 사회 및 감성적 역량 계발을 위한 수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예컨대, 학생들의 요구와 흥미에 기반을 두어 스포츠, 연극, 시각예술 등의 활동을 일주일에 적어도 2회씩 실시하는 능동적 학습 프로그램(Programme of Active Learning)을 초등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학생들이 다양한 예체능 교육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흥미를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싱가포르 정부는 예체능 교육을 위해 필요한 시설을 확충하고 교사의 전문성 계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둘째, 탐구학습, 문제중심학습, 생산적 실패(productive failure)와 같은 학습자 중심의 교육과 실제적인 학습과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교육이 증가하고 있다(Cho et al., 2015).

싱가포르 교육부는 2013년에 응용학습 프로그램 (Applied Learning Programme)과 삶을 위한 학습 프로그램(Learning for Life Programme)을 발표하였다.

응용학습 프로그램은 디자인, 공학, 경영, 보건, 방송, 예술 등의 영역에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실제적인 맥락에 적용하고, 학습 내용에 흥미를 가지고, 창의 융합적 사고를 하도록 지원한다.

그리고 삶을 위한 학습 프로그램에서는 학생들의 인성과 가치관을 계발하기 위해서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다양한 체험 학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두 프로그램 모두 실제적인 맥락에서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 이외에도 학교 안의 교육과 학교 밖의 경험을 긴밀하게 연결 시키기 위해 단절없는 학습(seamless learning)과 같은 수업혁신이 교육부, 초·중등학교, 대학연구소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Wong et al., 2010).   

마지막으로, 싱가포르 초·중등학교에서는 ICT 기반의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1997년부터 6년마다 ICT 교육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09년에서 2014년까지 시행된 제3차 기본계획에서는 ICT를 활용하여 자기주도학습과 협력학습 역량을 향상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2015년에 발표된 제4차 기본계획에서는 미래를 준비하는 책임있는 디지털 학습자를 비전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는 혁신적인 ICT 기반 교육의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 2007년부터 미래학교를 선정하여 집중적인 지원을 하였다.

미래학교로 선정된 8개 학교는 각 학교의 특색에 맞게 게임 기반 학습, 3D 가상 학습, 맞춤형 학습, 모바일 문제중심학습 등의 ICT 기반 수업모형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 인터넷 등의 첨단 테크놀로지가 급속히 발달하는 지능정보화 시대에 ICT를 활용한 수업은 디지털 리터러시와 같은 핵심역량을 계발하는 데 크게 기여 할 것이다. 

싱가포르 역량교육의 시사점

싱가포르는 1997년 이후 지속적인 교육개혁을 통해서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역량교육을 추진하였다.

성공적인 역량교육을 통해 싱가포르는 PISA와 같은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높은 성취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핵심역 량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싱가포르의 교육개혁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먼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교육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싱가포르에서는 교과지식과 시험 위주의 교육을 학습자 중심의 역량교육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20년 가까이 이루어졌다.

이 기간 동안 교육개혁의 세부적인 전략과 방법은 필요에 따라 변했지만 전체적인 개혁의 방향과 비전은 유지되었다. 그리고 성공적인 역량교육을 위해서는 교육정책, 실천, 연구가 긴밀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Tanet al., 2016).

싱가포르에서는 수업혁신을 만들고 확산시키기 위해서 교육부 공무원, 교사, 교육 연구자가 서로 밀접하게 상호 작용을 하고 있다.

예컨대, eduLab 프로그램에서는 초·중등학교의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ICT 기반 수업혁신을 제안하도록 하고 선정된 제안서에 대해서는 교육부가 재정적인 지원을 할 뿐만 아니라 NIE(National Institute of Education)의 연구자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업체를 학교와 연결시켜 준다.

혁신적인 수업을 개발할 때는 교사와 연구자가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혁신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교육부 중심으로 교사연수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앞에서 역량교육을 위한 수업혁신 사례를 소개하였는데, 수업이 실질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학교제도와 문화를 비롯한 교육 생태계의 체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수업은 교육 생태계의 다른 요소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수업만 혁신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싱가포르에서는 수업혁신과 함께 학생의 시험 부담을 줄이고, 교과 내용을 축소하고, 역량교육을 위한 학교 인프라를 구축하고, 교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 지능정보화 사회를 맞이하여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역량교육 사례를 참고하여 장기적인 안목에서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교육개혁안을 수립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