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미술

‘자연과 교감하는 미술’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미술은 ‘아름다움을 다루는 기술’이지요. 직접 해보지 않고도 이런 기술을 습득하게 될까요? 질문이 약간 이상한가요. 바꾸어 보겠습니다. 축구를 직접 해보지 않고도 잘하게 될까요?

미술과 축구는 분명히 다르지만 비슷한 점도 많습니다. 자꾸 축구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건 무엇보다 축구가 어렵지 않아선 데요. 쉬운 비교대상을 활용하면 애초의 뜻을 이해가기가 훨씬 수월해 집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직접 해보지 않고도 축구 또는 미술을 잘하게 될까?”하는 질문에 대해 두 가지로 나누어 대답해보겠습니다.

1. 실제로 잘하는 건 불가능하다.

2.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이것은 이론과 실기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론과 실기, 이 둘을 동시에 습득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질문을 다시 이렇게 바꾸어 보겠습니다. 직접 하지 않고도 축구 또는 미술을 즐기게 될까? 자, 이번엔 뭔가 될 것 같네요. 답은 당연히 ‘예스’입니다. 다 아는 내용임에도 이 말씀을 다소 길게 드리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출발선을 잊지 말자.’

여기서 출발선이라 함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뜻합니다. 축구든 미술이든 이 ‘최초 의문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사람은 무얼 하든 자기가 누구이며 왜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 물음에 정답은 없겠지요. 하지만 답이 없다고 아예 묻지도 말아야 할까요? 저는 묻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물으면 묻는 만큼 자신과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니까요. 묻는 사람은 안 묻는 사람에 비해 속는 일도 드물고요. (아, 속는다는 표현은 이렇습니다. 다르게 보는 일만큼이나 ‘엉뚱하게 보지 않는 일’도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미술은 ‘보는 눈’이 관건입니다. 눈은 생각과 아주 가까이 바짝 붙어있지요. 직접 공을 차거나 손수 그림을 그리지는 못해도 축구와 미술을 즐기려면 우선, 거의 한몸처럼 딱 달라붙은 ‘눈과 생각’을 활짝 열어젖혀야 됩니다. 일단 대문이 열려있어야 뭐든 서로 오가게 될 테니까요.

자연과 교감하는 미술도 원리가 똑같습니다. 미술가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고요. 자연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 그 안에서 직접 작품을 제작하거나 설치합니다. 환경자체가 그냥 미술품이 되게끔 만들지요. 이런 작품을 보통 ‘대지미술’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이렇게 씁니다. Earth art, Land art, Environment art. 1960년대 후반 미국서 유행한 미술흐름입니다. 작품을 한번 보겠습니다. 자유롭게 공유되는 사진이라 상태가 썩 좋지는 않군요. 양해 바랍니다.

대지미술의 선구자인 로버트 스미슨의 작품 ‘나선형 방파제’(1970). ‘최초의 기념비적 대지미술 작품’으로 통합니다. 잠시 설명을 좀 드릴까요.

장소는 미국 유타주의 소금호수. 무려 6650톤이나 되는 돌을 물속에 쏟아 부어 전체길이 457.3m의 나선형 방파제를 만들었네요. 시간이 지날수록 방파제 표면에 어떤 변화가 생기겠지요? 실제로 이 나선형 방파제는 완성직후 수면상승으로 한동안 물에 잠겼다가 겉에 소금결정이 잔뜩 맺힌 채 다시 밖으로 드러났지요. 그 뒤 계속 소금결정이 쌓이고 미생물이 번식하며 방파제 때깔이 서서히 바뀌어 갑니다. 다른 사진을 한번 볼까요.

항공사진으로 보니 마치 강물 위에 새긴 거대한 음표 같군요.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그랬는지 알겠지요? 사람은 자연의 힘을 못 이긴다는 사실. 사람은 자연과 조화로운 공생관계라는 점.

너무 당연한 말인가요? 지금이야 원체 관련정보가 많아 그러려니 하지만 작품이 처음 나온 40여 년 전엔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이러한 미술을 한마디로 하면, “자연이 곧 캔버스다”는 선언쯤 되겠습니다. 늘 보던 풍광이었는데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가, 그 바뀐 모습이 다시 우리한테 자연과 환경이란 뜻을 되새기게 만듭니다. 왠지 멋져 보이지 않나요? 혹시 얼른 안 와 닿으면.....생각을 열고 ‘한번 다르게’ 바라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시간엔 ‘이런 것도 미술인가’하는 주제를 놓고 또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