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가지고 바라보기

뭉크는 남녀가 입 맞추는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연인의 입맞춤은 보통 ‘삶의 기쁨, 생명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상처와 불안, 외로움과 죽음 따위가 뭉크작품 전반에 깃든 일반적 정서라서 얼핏 보면 이율배반처럼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가 유난히 입 맞추는 장면에 관심이 많았다는 건 거꾸로 ‘삶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강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그림을 한번 보겠습니다.

판화로 표현된 ‘다양하게 입 맞추는 모습’입니다. (판화)기법과 재질은 다르지만 기본자세는 똑같습니다. 원래 모티브는 이렇습니다.

유화로 표현했습니다. 판화 속 커플들은 이 자세에서 옷만 입혔답니다. 그림이 사실적이지도 않고, 꼭 그리다만 것처럼 어딘가 어설프게 보이지요? 뜯어보면 아주 잘 그린 그림입니다. 남녀가 서로 상대한테 팔을 둘러 감싸 안은 모양과 약간 등을 구부려 내려다보는 남성의 자세는 생동감이 넘칩니다. 상대적으로 남성한테 기대어 매달리는 자세로 올려다보는 여성은 입 맞추는 동작의 핵심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설명을 좀 더 드릴까요. 이 자세의 아름다움은 바로 남성의 다리. 여성의 왼팔전체를 감싸 안은 남성의 오른팔과 약간 구부린 오른쪽다리를 특별히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허리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부위를 유난히 흰빛이 두드러지게 칠한 것이 보이시나요? 액센트(강조) 효과입니다. 포개져 맞닿은 커플의 얼굴과 상체 쪽은 무난하고 부드럽습니다만 이와 달리 남성의 하체부분에는 힘이 제법 들어가 있지요? 이 대조가 안정감과 더불어 에로틱한 생동감과 건강한 긴장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림을 아래위 반반씩 가리고 번갈아보면 분위기가 전혀 다른 점도 새로이 발견하실 겁니다. 부드러움과 강인함, 성(聖)과 속(俗)처럼 서로 상대적인 이미지가 느껴집니다. 두 사람 몸을 마치 한 몸처럼 보이도록 애쓴 흔적이 역력하네요. 워밍업은 이 정도로 하지요. 이번 시간 메인이벤트는 이 작품입니다.

제목은 ‘창가의 입맞춤’(The Kiss by the window, 유화, 73×92 cm, 1892년). 앞서 나온 입맞춤과 기본자세는 같은데 자세히 보면 여러모로 다릅니다. 남성은 크게 변화가 없습니다. 돌려 안은 왼팔과 앞쪽의 오른팔, 약간 고개를 숙이고 등을 구부린 자세는 거의 비슷합니다. 이에 비해 여성은 얼굴부위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두 사람 위치도 화면중앙이 아닌 오른쪽가장자리에 몰려있군요.

그림의 2/3는 창 너머 아래풍경. 커튼이 화면한가운데 드리워져있고, 시간은 어스름히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무렵이라 짐작됩니다. 두 사람은 지금 2, 3층 정도 되는 실내의 창가에서 한창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는 중인데 어딘가 쓸쓸한 분위기가 풍깁니다. 푸르스름하게 처리한 색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입니다. 아무런 근거와 맥락도 없이 이 커플은 왠지 서로 은밀한 관계일 거라는 생각이 불쑥 드네요.

남자의 헤어스타일과 얼굴선이 어딘가 젊은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 여성도 젊은 아가씨처럼은 안 보입니다. 몸매는 비교적 풍만한 편. 여자의 고개 뒤로 팔을 두른 남자왼손에서 이어지는 어깨선으로 미루어 보아 그렇습니다만, 어쩌면 그저 옷 때문에 그리 보이는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이 우수에 젖은 그림은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 걸까요? 각자 자유롭게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한때 저는 이 그림을 모티브로 소설을 한번 써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세상에 많은, 좋은 그림들이 다 그렇지만 그림은 보는 사람한테 문을 활짝 열어줍니다. 어떻게 보든 그건 전부 보는 사람 마음이겠지요. 부디 한껏 편견을 가지고 보시기 바랍니다. 이거야말로 그림(미술)이 선사하는 편안함이자 축복이니까요. 정답 따위는 애초에 없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이 정도로 하고 마치지요. 다음시간에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상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