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기에 아름다움을 생각하나?

그림을 감상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은 스스로한테 끝없이 ‘나는 누구인가’는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질문은 유사 이래 철학이 가장 잘 다루어 왔지요. 철학은 한마디로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입니다.

철학은 알고 보면 참 재미난 녀석인데, 어쩌다 그만 가장 사귀기 어렵고 까다로운 캐릭터가 되어버렸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돌보아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철학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번 볼까요. 다들 아시는 내용이지만 상기시켜 드립니다.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1. 이것은 무엇인가?   2. 나는 어떻게 이것을 아나?  3. 어찌 살아야 되나?  4. 아름다움이란 뭔가?  5. 좋은 설득-논증이란?

각각은 이렇게 대응합니다.

1. 존재론(형이상학)  2. 인식론  3. 가치론(윤리학)  4. 예술론(미학)  5. 논리학

논리학을 도구삼아 나머지 4가지를 고민하지요. 이 가운데 아름다움을 다루는 미학분야는 보통 따로 떼서 생각합니다. 워낙 독특해서 그렇습니다. 생각(이론)만으로는 해결이 잘되지 않는, 아무래도 실기가 필요한 분야라서 그렇겠지요? (인류 4대 성인들조차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시원한 언급이 없으십니다. 다른 분야와 달리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미학이 독특한 분야라는 설명은 이 정도로 하지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가지 생각들은 한마디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바꾸어 표현해, ‘나는 누구기에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나’로 나타내도 됩니다. 등산에 비유해도 좋겠네요. 다들 튼튼한 등산화나 장비(논리)를 갖추고 산에 오릅니다. 루트는 보통 4군데. 꼭대기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름의 봉우리.

제가 자꾸 ‘출발선, 출발선’하고 말씀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러니까 아득한 고대 때부터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 건 적어도 서구에서 르네상스라 부르는 시기 이후입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는 또 이와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고요.

사람들 생각이 시기에 따라 변화해온 것을 철학사 또는 사상사라고 부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도 덩달아 변화해왔겠지요? 너무 당연하지만, 생각이 바뀌면 기준도 바뀝니다.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지금부터 시대에 따라 미적(美的)기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흔히 학교서 하듯이 맨 위인 원시시대부터 할까요? 검증된 안전한 방식이긴 하나, 어쩐지 지루해서 주무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해서, 세상을 예수님 탄생이전과 이후로 나누듯이 일단 금을 하나 확실히 그어놓고 시작할까합니다. 먼 과거는 너무 아득하니 가까운 과거로 하지요. 사진기가 발명된 시점으로 하겠습니다. 사진은 1839년 세상에 처음 나왔습니다. ‘포토그라피(photography)’는 원래 ‘빛으로 그린 그림’이란 뜻입니다.

희미한 이 사진은 ‘최초의 사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26년 니옙스라는 프랑스사람이 찍었네요. 제목은 ‘로그라의 집에서 내다본 풍경.’

나머지 이야기는 또 다음시간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