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960년대 '6.3 항쟁'과 '안보투쟁'으로 본 한·일 관계의 쟁점
[기고] 1960년대 '6.3 항쟁'과 '안보투쟁'으로 본 한·일 관계의 쟁점
  • 한치원 기자
  • 승인 2019.08.1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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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학렬 한양대사대부고 역사교사

[에듀인뉴스] 올해는 유난히 학생들이 보고서 주제로 한일관계를 많이 선택하고 있다. 특히 3학년들은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주제에 대한 심화된 내용을 담으려 수능 공부하느라 바쁜 시간을 쪼개 질문도 하고 조언도 구하며 동분서주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청구권 협상과 일본 평화헌법이라… 전공이 뭐라고 했지?”
“정치외교학과요.”
“그래? 혹시 이 사진 봤어?” 

6·3 항쟁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학생들. 가운데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당시 피고인들은 학생이 데모에 나선 것은 "위정자의 잘못을 각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진술했다.(사진=국가기록원)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진 중 하나로서, 그것은 6.3항쟁으로 재판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이었다. 

“어머나. 아는 분 사진이네요.”
“하하, 그렇지. 그리고 이 사진은 어떨까?”

또 하나의 사진은 수많은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을 포위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앞에 사진은 한일국교 정상화 반대투쟁을 주도하다 재판을 받는 학생운동 지도부들의 사진이고, 또 하나는 1960년 미일안보조약 반대를 주장하며 일본 국회 의사당을 포위한 일본 시민들의 사진이야. 60년대 한국과 일본은 모두 거센 데모의 물결 속에 정치적으로 큰 긴장 상태에 빠졌단다.”

그리고 우리는 1960년대 한일 양국에서 일어난 거대한 시민의 항쟁에 대한 이야기로 빠져들었다.

안보투쟁(일본어: 安保闘争 안포토소)은 1960년 일본에서 미국 주도의 냉전에 가담하는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에 반대하여 일어난 시민주도의 대규모 평화 운동을 말한다.(출처=위키백과)

6.3항쟁...박정희 정권의 청구권 협상에 반대한 학생 중심 저항  
5.16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정권은 민심을 잡기 위해 경제성장이 절실했고, 그러려면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비용이 필요했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및 전쟁 동원에 대한 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은 쿠데타 초기부터 청구권 협상에 매달렸다.

그런데 청구권 협상은 이미 이승만 정부 시절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협상은 일본의 미온적 태도로 난항을 겪었다.

두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식민지배가 착취와 억압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본 경제에 부담이 가지 않을 수준에서만 배상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는데, 특히 일본이 제시한 배상금으로는 식민지배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금조차도 지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부처럼 정상적인 선거로 집권하지 못한 쿠데타 정권이기 때문에 국교 정상화가 절실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배상금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협상을 타결하려 했다. 그것이 바로 훗날 폭로된 1962년 김종필 오하라 메모였다. 

이 메모의 핵심은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과 배상금을 바꾸는 것이었다. 즉 오하라는 “독립 축하금 명목으로…” 상당한 수준의 배상금을 지불하겠다고 말했는데, 독립 축하금이란 일본의 식민지배가 착취와 억압이 아니라 한국의 근대화를 위한 것이었고, 마침내 그 목적이 달성되어 한국을 독립시켜 주면서 축하금을 준다는 의미인 것이다. 결국 식민지배가 조선인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이 알려지면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저항이 거세게 일어났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조차도 떨쳐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던 굴욕적 외교였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군대를 투입하는 폭력적 탄압으로(군대가 투입된 6월 3일을 계기로 6.3항쟁이라 한다) 모든 반대를 억누르고 마침내 1965년 한일 국교를 수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6.3 항쟁에 참가했던 시민들은 굴욕적 청구권 협상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후에도 꾸준히 청구권 협상의 부당함을 문제제기하고 그 시정을 요구했다. 또 국가가 청구권 협상을 완료했다 하더라도 개인의 청구권까지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 전쟁 동원 피해에 대한 개인 청구권은 독일을 대상으로 한 국제법상 판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동안 우리 전쟁 동원 피해자들도 꾸준히 개인 청구권을 요구해 왔고, 이는 1965년 청구권 협상의 부당함을 알고 있는 많은 한국 일본 시민들의 지지 속에 진행되어 왔다. 그 어려웠던 지난 과정이 마침내 결실을 맺자 일본이 이번에 경제보복을 단행한 것이다. 

안보투쟁...미일안보조약에 대한 일본 시민사회 저항운동
1957년 2월 일본은 기시 노부스케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가 바로 현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이다. 수상을 중심으로 한 기시 내각이 출범하였다. 기시 노부스케는 2차 대전을 주도한 도조 내각의 일원으로 A급 전범 용의자였다. 그가 추진한 것이 미일안보조약이고, 이에 대한 일본 시민 사회의 저항운동이 안보투쟁이다.

한국전쟁 이후 동아시아 냉전 체제가 강화되면서 미국은 동북아 안보를 위해 일본이 더 많은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했다. 한편 기시 수상은 일본의 유엔 가입을 계기로 일본이 미국과 대등한 관계에서 ‘정상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들의 합의점이 바로 미일 신안보조약이었다. 

2차 대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인들은 군비 증강 및 자위대 강화, 미일군사동맹 강화 등이 또다시 동아시아 군사 분쟁에 일본을 말려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야당과 시민단체가 신안보조약 국회 비준을 적극 저지하였으나 1960년 5월 19일 밤 11시 경찰이 야당 의원들을 국회에서 몰아낸 후 여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되고 말았다.

이에 일본 시민사회는 신안보조약에 반대하는 대대적 저항, 즉 안보투쟁에 나섰다. 2차에 걸쳐 연인원 1100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파업투쟁이 이뤄졌고, 국회 앞에서 33만명의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달 동안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하게 충돌했고, 6월 15일 국회 앞 시위에서는 대학생 22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유혈사태까지 발생했다. 

안보투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국민들의 저항에 대한 책임을 지고 기시 수상은 물러났다. 그리고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평화헌법(군대보유 및 전쟁 금지를 골자로 하는)을 지키기 위한 학생, 시민사회의 저항은 1960년대를 꾸준히 달구었다. 훗날 과격화되어 사라졌지만 전학련으로 대표되는 일본 학생운동은 일본 군사대국화와 민주주의 퇴조에 대한 일본 국민의 우려를 자양분으로 10년 동안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 시민사회는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역시 신안보조약에 이어 일본의 보수화, 군사화를 강화시킬 것이라 생각하고 반대투쟁을 벌였단다. 결국 청구권 협상 등은 일본에도 정치적으로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지. 이토록 지금 한일 갈등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일본 시민 사회의 역사와 목소리나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대해서도 좀 더 넓게 이해하면 좋은 거지. 그런데 곧 수능이니 일단 최근에 우리와 함께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을 규탄하는 일본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해하는 수준까지라도 하는 것이 좋겠네.”

아이를 돌려보내고 교사이자 한국 시민으로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한일 간의 해묵은 갈등은 식민지배 시기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한일관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의 역사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는 길 뿐이다. 8.15 74주년.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는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일본에서 아베를 규탄하는 일본 시민사회의 시위 소식을 들으며, 48년전 실패했던 한국과 일본의 역사청산과 평화를 위한 노력이 이번만큼은 성공하기를 기원해 본다.

표학렬 한양사대부고 역사교사. 에피소드 한국사 시리즈 등 10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고 3담임 9년차로 열심히 아이들과 입시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난 1월부터 KBS 1라디오 '생방송 일요일 아침' 에피소드 한국사 코너에 출연 중이다.

한치원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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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2019-08-15 16:27:50
정리가잘되었네요.좋은글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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