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윤미 인천 효성서초 보건교사

보건교사 법적 직무는 보건교육, 학생건강관리
현실은..."지원 행정 취약, 학교 시설 관리 강요"

[보건교육포럼-에듀인뉴스 공동기획] 1967년 학교보건법이 제정 이래 보건실과 보건교사는 학생들의 건강을 유지·증진하는 허브 역할을 담당, 보건교육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응급처치, 건강상담 등을 시행해 왔다. 최근 학생들의 건강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보건실의 기능과 역할도 크게 확대, 변화되고 있으나 학교보건 정책 결정자의 전문성 미흡, 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폐쇄성, 1교 1인 보건교사 배치 정책에 따른 열악한 인력 구조 등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보건교육포럼>과 함께 학교보건 전반의 구조·정책적 문제점을 짚어 보고 현장 중심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전교조 인천지부는 지난 2018년 11월 단체협약을 위한 정책협의회를 개최, 보건교사에게 떠맡긴 환경위생관리 등 시설 관리 업무의 개선을 요구했다.(사진=우윤미 교사)
전교조 인천지부는 지난 2018년 11월 단체협약을 위한 정책협의회에 참석, 보건교사에게 떠맡긴 환경위생관리 등 시설관리업무 배정의 개선을 요구했다.(사진=우윤미 교사)

보건교사가 '시설 업무'를?..."보건교육과 학생건강관리가 주 업무"

아이들의 시급한 요구와 달리 교육부와 다수 교육청에 보건교육 정책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간헐적으로나마 교육청과 교원단체 간 정책협의나 단체교섭을 통해 교육활동 및 교권 관련 의제를 다루고 협상을 하는 것으로 당면한 문제들에 일부 숨통을 트는 기회가 있는 정도이다. 학교환경위생 관리자 문제를 보면 이러한 문제점을 일부 엿볼 수 있다.

2005년, 교육부에서 교사에게 포괄적인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환경위생관리자 지정을 규정한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학교에서는 이를 두고 심각하게 업무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에 일찌감치 전남교육청에서는 “시설물 관련, 환경위생관리업무 등 직접 교육활동과 관련이 적은 행정업무를 교사가 담당하지 않도록 지도한다”라는 협상을 맺었다. 

강원도교육청도 “보건교사가 고유 업무인 보건교육 및 학생건강관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학교환경관리, 청소용역 계약 등의 업무를 부과하지 않도록 지도한다”라고 합의했다.

최근 인천시교육청에서도 “보건교사가 본연의 직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각급 학교의 환경위생관리 업무 중 시설과 관련된 업무를 부여하지 않도록 지도한다”라고 합의했다.

이런 합의들은 역으로 교사, 특히 보건교사가 학교에서 환경위생관리, 수질검사, 공기 질 측정 등의 시설업무를 강요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경기도교육청 이재정 교육감은 (사)보건교육포럼과의 간담회에서 “시설관리는 교사의 일이 아니다. 시설관리공단 등에서 전담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매우 늦었지만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오랫동안 보건교사의 직무와 역할에 대해서는 많은 잘못된 통념이 있었다. 마치 광범한 ‘보건’에 관련된 일을 보건교사 혼자 다 해야 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 교육자가 아니고 치료자로 보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통념은 수업을 덜 하니 편하겠다는 인식으로 이어지고, 이전에는 급식을, 그다음은 중식 지원을, 그다음에는 상담과 환경위생 등 보건교사에게 여러 일을 돌아가며 떠미는 데 기여했다.

다른 교사는 부장-기획-계원들이 같이하는 숱한 공문과 교육활동을 보건교사는 잡다한 잡무 속에 혼자 처리하며 정작 아이들의 건강을 돌보기는 어려웠다.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은 하는 일이 없다며 존재가치 자체를 의심하기도 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이들과 (사)보건교육포럼 등의 노력으로 2007년에 학교보건법이 개정되어 보건교사의 법적 직무가 처음으로 법률에 명시되었다.

학교장은 학생의 신체발달 및 체력증진, 질병의 치료와 예방, 음주·흡연과 약물 오용(誤用)·남용(濫用)의 예방, 성교육, 정신건강 증진 등을 위하여 보건교육을 실시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하며, 보건교사는 이중 체계적인 보건교육과 학생 건강관리 직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제9조, 제9조의 2, 제15조).

보건교사 업무로 둔갑질한 '학교환경위생관리자' 지정

그러나 보건교육과 건강관리에 대한 지원체계는 2007년 이후 현재까지 현장의 요구에 비해 매우 취약한 수준이다. 2011년 이재삼 경기도의회 교육위원장, 김대유 경기대학교 교수, (사)보건교육포럼 등의 노력으로 보건교육진흥조례가 제정되어, 현재 경기도교육청에서만 전담부서와 장학관 1명을 볼 수 있는 정도이고, 2013년 법률개정으로 일부 교육전문직의 교감, 교장 승진으로 일부에서 교육적 지원 확대를 도모하고 있는 정도다.

반면 2005년 공기 질 관리를 이유로 학교환경위생관리자 지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동안 학교 행정부서에서 관리해 오던 환기, 채광 및 조도, 실내온도 및 습도, 폐기물, 먹는 물, 상하수도 설치 및 관리, 화장실 관리 등의 기존 시설관리에 석면, 공기 질 관리를 추가한 시설업무를 보건교사에게 강제 지정하여 교사의 업무로 이관했다.

이는 학교보건법시행령 제23조의 보건교사 직무 중 '나'항 ‘학교 환경위생의 유지·관리 및 개선에 관한 사항’을 근거로 이루어졌다. 본래 이는 문교부 장학지침의 ‘환경위생 유지 관리에 관한 조언’이 둔갑질 된 것이다,

본래 이 조항은 의료인의 자격을 가진 보건교사가 감염병 예방이나 건강 위해 요소에 대비하여 교육 및 지도·조언하고 적절히 대처하도록 요청한 것이지, 시설관리자가 해야 할 공기 질 측정 의뢰, 시설, 설비 개선의 업무를 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교실 조명 점검 및 교체, 냉·난방기의 설치나 필터 관리, 화장실 위생 점검, 저수조 청소, 정수기 관리, 공기 질 관리를 위한 공기정화장치의 설치 및 필터 관리도 포함되었다.

이 시행령 제23조의 13개나 되는 보건교사 직무는 1990년에 제정되어 30여년이 지나도록 그대로인 것으로, 2007년 학교보건법 개정에 따라 당연히 교육부가 개정해야 했다. 학생가정 방문, 필요시 보건교육 등 사문화된 조항도 있다. 한마디로 개정 혹은 폐지가 시급하다.

(사)보건교육포럼은 지난 2017년 10월 3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보건교사가 보건교육, 건강관리뿐만 아니라 환경위생, 시설관리까지 하는 현실을 풍자한 가마우지 퍼포먼스를 개최했다.(사진=우윤미 교사)
(사)보건교육포럼은 지난 2017년 10월 3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보건교사가 보건교육, 건강관리뿐만 아니라 환경위생, 시설관리까지 하는 현실을 풍자한 가마우지 퍼포먼스를 개최했다.(사진=우윤미 교사)

환경위생관리 강요로 직장 내 괴롭힘까지..."교육현장이 맞나"

그럼에도 이 시행령을 근거로 보건교사에게 환경위생관리 업무를 강요하면서 현장에서 제기되는 민원은 가히 귀를 의심할 정도다. ▲보건교사가 업무 조정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보건실 전화선 차단 ▲자녀 병원 진료를 위한 조퇴 허락 않기 ▲부장들에게 보건교사 업무에 협조하지 말라는 주문▲보건교사가 올리는 문서에 관리자가 결재를 안 해주는 것 등의 교권침해 사례와 민원을 대하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학교조직은 교직의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상명하달의 행정조직으로 관료제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교육부와 교육청의 통제와 규제를 받고 상명하달식의 수직적 구도가 지금도 널리 작동되기 쉽다.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교육지원청에 타 교과의 실·국장과 교육행정직은 상당수이나 보건교사 출신의 장학사는 하급에 1~2명 정도로 소수에 불과하다. 그 결과 보건교육지원보다는 환경위생관리 등의 정책과 지원이 우선하고, 이러한 업무를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학교에 공문으로 내리면 가장 아래에서 보건교사가 공문을 받게 되는 구조다.

학교에서는 학교보건 담당부서에서 온 공문이니 보건교사가 받으라는 식이어서 보건교육 행정은 실종 수준에 가까우니 소홀해지기 쉽다.

교육부가 보건교육은 교육과정 고시도 교과서 고시도 챙기지 못하고, 10년 넘게 시행령을 방치하고 있는 사이, 보건교사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학교에 단 1명만이 존재하는 보건교사는 관리자의 지시에 순응하지 않을 경우 생기는 불이익과 스트레스 상황을 혼자서 감당하기는 매우 힘들다. 학교관리자와 행정실장 2인의 압력을 동시에 받는 일도 허다하다.

10년 방치한 시행령 개정..."전담부서 설치, 인력 배치 필요"

학교마다 환경위생과 관련된 물품 및 장비 대여, 전문업체와 계약 등을 교사에게 맡기는 것은 인적·물적 낭비이자 행정낭비임에 틀림없다. 어떻게든 이를 통합적인 학교시설관리로 전환해 행정·비용을 절감하고 효율화를 도모해야 한다.

이미 세종, 전북, 충남, 광주, 인천 등의 시·도에서는 공기 질 측정, 수질검사, 저수조 관리, 학교 방역 등의 업무들을 시·도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에서 업체와 일괄 계약하고 관리하는 중이다.

이렇게 하는 데 15년이나 걸렸다. 지금이라도 전국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지자체에 학교환경안전관리사제를 두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교육부와 교육지원청에 전담부서와 인력을 배치, 현장의 갈등만 부추기는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 아이들에게 절실한 보건교육과 건강관리를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상위법인 학교보건법에서 명시한 보건교육과 학생건강관리라는 법적 직무에 부합하도록 교육부 담당부서에서는 하위법인 시행령의 보건교사 직무를 조속히 개정하도록 해야 한다.

법적 직무를 소홀히 하면서 온갖 행정업무에 내몰리고, “학교는 모르니, 교육청에 물어보세요”, “교육청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고 학교장의 권한입니다” 등 핑퐁과 그 그늘에 숨은 채 “시키는 대로 하세요”, “선생님이 못 하겠다 하면 누구에게 시켜요”라며 서로 미루며 교사와 직원들이 학교를 지옥으로 만드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상식이 통하는 지원행정을 해야 한다.

2011년 경기도보건교육진흥조례에 이어 충남, 경북에 보건교육진흥조례가 만들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처럼 교육청의 고유권한이라며 단 1명의 보건장학사도 두지 않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속히 교육부와 교육청이 보건교사의 법적 직무인 보건교육과 건강관리를 잘하도록 지원함으로써 학생들의 건강교육권을 보장하는 행정을 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윤미 인천 효성서초 보건교사
우윤미 인천 효성서초 보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