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기획-‘엄마’를 말하다] ③아파트공화국의 기획된 가족은 왜 '정시'를 원하나
[설 기획-‘엄마’를 말하다] ③아파트공화국의 기획된 가족은 왜 '정시'를 원하나
  • 송민호 기자
  • 승인 2020.01.26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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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엄마들의 경험 '가성비', '예측 가능성'
한국에서는 교육과 아파트 구매를 통해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책 아파트공화국.(사진=송민호 기자) 

[에듀인뉴스=송민호 기자] 프랑스 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쓴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이 있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연구한 이 책에는 재미난 내용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한국의 아파트 단지를 상공에서 조망해 보면 전투기지의 건물배치와 유사하다는 것, 한국의 경우 교육과 아파트 구매를 통해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 등이다. 

특히 좋은 학교에 가면 성공을 보장받고 아파트 가격이 올라 부자가 된다는 환상은 빈곤의 시대 노동을 끌어내기 위한 견인차로 안성맞춤이었다. 

주변 선후배들(중·고교생 학부모)만 봐도 요즘 ’이사‘가 이슈다. 보통 두 가지 이사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아파트 전세 가격상승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녀가 중학생이 되니 학군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경우다. 

두 번째 이사의 경우는 발레리 줄레조가 말한 공식대로 살아가는 가족일지도 모르겠다. 즉 아파트를 잡았으니 이제 교육을 잡을 차례다. 구체적으로 고교선택이란 문제를 접한 뒤, 대입 전형선택 순으로 교육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중산층이라 불리는 이들 '아파트공화국'의 엄마들은 어떤 생각으로 교육을 바라볼까?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가정을 해야 하는데, 부부 모두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재직 중인 사람으로, 그리고 교육특구에 산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이야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썰(?)을 풀기 위해 참고할 책은 바로 『기획된 가족』(조주은 지음, 서해문집)이다. 

이 책은 중산층 여성들이 자신들의 가족을 어떻게 기획하고 관리하는 지를 담은 사회학 서적이다. 

중산층 여성들이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접하게 되는 문화는 '테일러리즘'이다.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기획된 가족』(조주은 지음, 서해문집)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 산업현장의 생산성을 높일 목적으로 고안된 테일러리즘은 이제 산업현장과 사무실은 물론 가정을 포함한 일상생활 영역으로까지 외연을 넓히고 있다. 일종의 생존전략으로서 시간 관리는 노동세계의 가치, 즉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낭비하는 시간을 줄인다는 원칙에 기초한다.’

소위 ‘가성비’(가격대비 들어가는 비용)를 따지는 것이다. 

엄마들이 이런 공식을 처음으로 적용하는 곳은 학원이다. 이 학원을 보냈더니 3개월 만에 한 등급이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 왔다는 둥, 아니면 맞벌이를 하는데 아이의 정서까지 케어가 가능했다는 둥, 자신의 니즈에 부합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학원을 찾기 시작한다. 

한 때 분당에서 인기를 끌었던 학원이 있다. 일명 영치학원(영어치매학원)으로 영어학습을 힘들어 하는 학생들이 다니던 학원으로, 원장이 적절하게 욕도 하고 꾸중도 재미나게 해 인기가 많았다. 

흡사 욕쟁이 할머니 국밥(?)을 먹으로 온 학생들인 셈이다. 학창 시절 누가 나를 꾸중해 주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때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꾸중을 하는 것이 포인트인데, 이 학원이 그것을 해냈다. 그리고 이 곳을 졸업해 상위권 학원으로 이동한다.
 
십여년 전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됐을 때를 생각해 보자. 일반고에서는 난리가 났다. 어떻게 서류를 가지고 학생을 평가하냐고?! 

그런데 특목‧자사고 중 유학반이 있던 곳에서는 쾌재를 불렀다. 이미 해외 유학을 보내면서 서류준비를 해봤기 때문이다. 미국형 입학사정관제를 따온 터라 적중률은 더 좋았다. 

이런 사실을 암암리에 알게 된 엄마들은 특목‧자사고 중 유학반이 있는 학교를 선택해 보냈다. 정보력이 약한 엄마들은 (유학반이 없는) 특목‧자사고를 보냈다.

미리 경험한 엄마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은 어린 엄마들은 진정한 가성비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미 학원과 정보를 통해 알게 된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측가능성'이다. 

즉 내가 자녀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게 된다. 이런 것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결혼 초부터 겪었던 임신출산의 시테크 덕분이다. 

중견학자 조주은은 인터뷰 등을 통해 맞벌이 여성 대상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아래와 같이 상황을 묘사한다.

"채언주(가명)는 졸업 후 바로 현재 근무하는 대학에 강의전담 교수로 취직하게 된다. 강의전담 교수제는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비정규직이다. 그럼에도 채언주에게 현재 직장은 전임교수가 되기 전까지 경력도 쌓으면서 경제력도 확보할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육아휴직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 계약직이기에 출산 시기는 “강사 자리도 잘리지 않고” 몸조리하기에도 좋은 겨울방학으로 결정되고, 그 시기에 맞춘 시테크를 시도하게 된다. 임신·출산을 위한 시테크는 전문가 집단(산부인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다."

이와는 다른 시기를 선택해 임신·출산을 준비하는 직군도 있다. 

"정규직 여교사들은 방학기간을 피해 출산하기 위한 시테크를 시도하기도 한다. 산전후 휴가와 육아휴직제를 활용할 수 있는 정규직 여교사들은 근무시간으로 인정받는 방학이 끝날 무렵에 출산 시기를 맞춰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려는 시간 관리를 시도하는 것이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자녀 대입전형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바로 예측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형이어야 한다. 

고교선택에서 내신을 따기 쉬운 학교, 또는 그럭저럭 괜찮은 자사특목고를 선택한 엄마들 중 대부분은 현타(현실자각타임)에 빠진다. 자녀의 내신이 안 나오는 것이다! 이 정도 교육시키면 될 줄 알았는데 예상되는 결과가 안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고교 2학년 1학기에 영재고 학생이 전학을 와버린 경우이다. 전 과목에서 왕좌를 차지하던 우리 아이가 수학과 과학에서 왕좌를 내주면서 그 충격으로 성적이 낮아지고 있다.  

(사진=tvn 캡처)

두 번째는 어처구니없는 경우인데, 드라마 한 편은 찍어야 할 판이다. 이성친구와 눈이 맞은 것이다. 기숙형 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핸드폰 사용료가 올라가서 뭔 일인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연애였다. 

이성친구의 어머니 번호를 황급히 알아낸 엄마는 빨리 전화를 건다. 그리고 장시간 토론 끝에 휴일 커피숍에서 만나 운명의 단판을 짓는다.

대학 입학 후에는 교제를 인정해 주겠다고 남녀 학생들 눈앞에서 마음의 도장을 쾅쾅 찍어준다.

이제 공부만 시키면 되나 싶었는데, 갑자기 남편 회사에서 날아온 명예퇴직 시 혜택 안내장을 보게 된다.

이쯤 되면 학생부전형은 물 건너 간 것이다. 자녀가 고교를 졸업하고 취업 그리고 결혼 때까지 버틸 자금을 계산할 수밖에 없다. 

정답은 정시다! 갑자기 전형선택의 결론은 정시로 나게 된다. 왜냐하면 학원에서 경험했던 예측가능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인터넷 강의는 0원 마케팅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누구의 인터넷 강의 또는 오프라인 강의를 들으면 일정 기간 안에 특정 점수대 수능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마케팅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리게 된다.
 
왜? 이미 엄마들은 경험했다. 개인과외를 시켜보니, 예전 수능세대와 달리 반쪽짜리(사탐 또는 과탐만 선택해 수능시험을 치르거나 수시전형 입학자) 정시 합격자이거나 수능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대학에 간 대학생들이 많다. 이런 입시 세대 신참 선생님들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다. 

필자만 해도 인문계이면서, 수능초기 세대이자 본고사 세대이다 보니 사탐과 과탐을 모두 공부하고 미국 및 일본 대학 입시문제까지 풀어봤으니, 당연히 이들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나와 동년배들이 현재 고교 학부모다.

게다가 혁신학교, 스마트수업이 이런 엄마들 눈에는 불편하다. 현재 수능시험과 동떨어진 수업으로 인식되고, 언제나 우리 자녀가 ’첫‘ 수업 대상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중학교에서 시행하는 자유학년제와 자유학기제 역시 취지는 좋지만, 방과후 바리스타 과정을 선택한 아이를 보면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른다.

여기에 고교학점제가 실시된다는데 학교는 변한 것이 없다고 느껴지고, 최근 ’서울시교육청, 고고학점제 대비 교원 CDA 역량강화 연수 실시‘란 기사를 접하다보니 지방 학부모들은 한숨만 나온다. 

아들아, 딸아. 자, 이제 수능이다. 앞도 뒤도 보지 말고 수능이다. 그렇지 않으면 '발레리 줄레조'를 볼 면목이 없단다. 

 

송민호 기자  zeit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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