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캡처)
(사진=연합뉴스 캡처)

북한군의 피격, 12년 전 금강산 관광객 피격이 닮은 점과 다른 점


[에듀인뉴스] 역사는 반복되는가. 대한민국 공무원이 북한 황해도 해변에서 북한군의 피격으로 인해 사망한 사건을 보며, 12년 전 여름 대한민국 관광객이 금강산 해변에서 북한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일이 떠오른다.

두 사건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도 닮았다. 12년 전 여름의 그 사건으로부터 시계를 1년만 더 돌려보자. 2007년 10월 노무현과 김정일 사이 이뤄진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은 남과 북을 들썩이게 했다.

합의문대로 남북이 이행하기만 한다면 개성공단을 너머 해주항을 거쳐 북한의 인천 격인 남포항까지 대한민국 자본으로 개발이 이루어질 것이었고, 금강산 너머 동해 해안을 따라서는 안변항까지 대한민국 경제권이 확장될 것이었다.

신의주까지의 철로와 평양까지의 고속도로를 공동으로 이용하기로 했고, 직항편으로 백두산을 관광하자는 내용이 남북 정상 사이에 통 크게 합의되었다.

이런 남북 경협은 군사적 보장 조치가 선행되어야지만 가능하다. 두 정상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함은 물론이요,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하겠다고도 했다.

다시 공무원 피격 사건을 눈앞에 둔 지금 시점으로부터 불과 시계를 2년 전으로 돌려보자.

남북 정상은 2018년 4월 판문점선언을 통해, 2007년에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남과 북은 ‘올해’(2018년)에 종전을 선언할 것이라고도 했다.

약 12년을 시차로 두고서 내용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남측 정상이 노무현에서 그 친구 문재인으로, 북측 정상이 김정일에서 그 아들 김정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장밋빛 미래에 대한 민족적·평화적 열광이 불과 1~2년 만에 식어 버리고, 북한 군인의 총격에 의한 대한민국 민간인의 허망한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 것도 닮았다.

닮은 것은 또 있다. 12년 전 그 때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이 이행되지 않아 당시 경색돼 있던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고자 '남북 당국 간 전면적 대화'를 촉구했다. 18대 국회가 개원하는 첫 자리에서의 연설이었으니 무게감은 남달랐다.

대통령으로서 향후 국정 운영의 향배를 밝히는 가운데 가장 중점을 둔 내용은 그 전까지 몇달간 완전히 끊긴 남북 대화를 복원하자는 통큰 야심찬 제안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몇 시간 전에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피격됐다는 보고를 받고도, 대통령은 연설 내용을 수정하지 않았다.

12년 후 지금으로 돌아와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이 이행되지 않으면서 남북 대화가 완전히 끊긴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그래도 2년 전 합의사항 중 하나였던 '종전 선언'을 재차 제안하는 연설을 가졌다. 그것도 무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유엔 총회 자리에서니 대통령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생각하는지는 말할 것이 없겠다.

청와대는 불과 몇 시간 전에 북한 황해도 해안에서 공무원이 피격됐다는 사실을 보고받았으나, 녹화된 연설은 그대로 공표되었다. 이것도 그때와 닮았다.

12년 전 이명박 대통령은 왜 연설 내용을 수정하지 않았을까? 민간인 피격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잘 풀어가보려던 의도가 더 컸기 때문이리라.

당시 청와대는 두 사건이 "미묘한 시점에 겹쳤을 뿐 별개의 사안"이며, “이미 결정된 큰 틀의 대북정책 방향을 짧은 시간 안에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12년 후 비슷한 상황에 놓인 문재인에게, 이명박 정부 당시 고위 외교관을 지냈던 이들마저도 다음과 같이 옹호한다.

“총격 사건을 국제적인 회의 연설과 직접 연결지을 순 없다”(김숙 전 유엔대사), “대통령의 유엔 연설과 총격 사건은 연결짓기엔 경중에 너무 차이가 난다”(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

문재인 정부도 12년 전 이명박 정부가 그랬듯이, 황해안에서의 총격에도 불구하고 종전 선언 제안이라는 큰 틀의 대북정책 방향을 바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12년 전 북한군의 피격, 어떤 결과를 낳았나


이제 살펴볼 것은 12년 전 그 일의 어떤 결과를 낳았느냐다.

이명박 대통령의 통큰 유화적 대북 제안은 민간인이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어느덧 묻히고 말았다.

알고서도 연설문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겨워했다. 그 전까지 10여년간 지속되어 온 금강산 관광이 즉각 중단되었고 지금까지 12년 넘는 시간동안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진상규명 여부를 놓고 남북관계는 얼어붙었다.

12년 지난 지금 이런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지금은 그때보다 여건이 더 좋지 않다.

금강산 사건은 우발적인 총격으로 설명된다. 초병과 관광객 사이에서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라 다른 어느 누구도 손쓸 수 없었다.

이번에는 (정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군이 민간인의 월북 의사를 확인하고서도 상부 명령에 따라 사살시켰다. 시신이 인도되었던 12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해상에서 시신이 불태워져 흔적도 남지 않았다.

우리 군은 우리 민간인이 북한군에게 발견되어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지는 몇 시간 동안 상황을 시시각각 확인하면서도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의 무기력함을 우리 국민들은 보았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성과를 주요 치적으로 선전한 문재인 정부에서, 심지어 남북 양측 군 사이에 핫라인조차 가동되지 못함을 보았다.

이제 대중은 ‘종전선언 연설’ 때문에 총격 사건의 보고가 제때 이루어지지 못했고 국민들 앞에 공식 발표도 늦추어졌다는 음모론에 솔깃한다.

특히 한국에서 대북 정책은 광범위한 국민적 공감대 없이 추진되기 어렵다는 것을 기억하자. 나름 진정성 가지고 애쓴 문재인 정부를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12년 전의 결과가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말하긴 어렵게 됐다.

이번 기회에 현 정부가 나이브한 대북 환상주의·이상주의에서 벗어나, 지금은 지독히도 우리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과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재설정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정국진 전 국회 비서관/ 전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
정국진 전 국회 비서관/ 전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