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다시 돌아왔고 미국은 더이상 혼자가 아니다"고 말했다.(사진=MBC뉴스 캡처)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다시 돌아왔고 미국은 더이상 혼자가 아니다"고 말했다.(사진=MBC뉴스 캡처)

[에듀인뉴스] 해외 정치 이벤트 중 한국인들도 높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면 단연코 미국 대선이다. 닷새씩이나 당선인이 확정되지 않는 동안 한국인들 역시 미국인들만큼이나 그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미 대선이 우리에게도 이런 관심사가 되는 것은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한국에게는 안보 동맹을 맺은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이번 선거만큼 박빙으로 진행된 2000년 부시-고어의 대결을 떠올려 본다.

수백여 표 차로 당락이 결정되고 선거일 후 한 달 지나 미국 연방대법원까지 가서야 당선인이 확정된 것도 드라마였다. 하지만 진짜는 선거 이후였다.

새로운 대통령 부시는 미국 대선의 향배가 한국인들에게도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똑똑하게 알려줬다.

우선 2000년 6월 남북 정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만나면서 시작된 한반도의 훈풍이 꺾였다. 그해 10월 미국은 국무장관이 북한을, 북한의 2인자는 미국을 교차 방문했다. 이어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해 북한 핵·미사일 폐기와 북미 수교를 이끌어낼 계획이었다.

이 모든 준비는 11월 부시 당선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그가 속한 공화당은 클린턴의 민주당과 달리, 물리적 힘을 활용해 대외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는 클린턴의 구상에 반대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던 고어가 당선됐다면 트럼프-김정은 이전에 이미 북미 정상이 만나는 역사가 쓰였을 것이다.

이후 현재까지 20년 넘게 북핵·미사일로 골머리를 썩지 않고, 현 정부가 공들이는 ‘종전선언’은 애저녁에 됐을지도 모른다. 클린턴은 후일 “무리해서라도 북한을 갔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미 대통령 부시로 인해 한국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든 사건은 또 있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던 그는 2003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미국이 참전을 요청한 동맹국에는 한국도 포함돼 있었다. 임기 시작 보름도 안 된 노무현 대통령에겐 ‘고약하지만 수령을 거절하기 어려운 취임 축하선물’이었다.

그 직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9.11테러에 대한 보복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어서 유엔 안보리 역시 지원했다.

하지만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는 당시에도 불확실했고 후일 조작 날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보다는 석유와 지정학적 이점을 갖고 있는 오랜 반미 국가에 대한 침략적 성격의 전쟁이라는 지적이 더 많았다.

대한민국은 고민에 빠졌다. 국민들은 당시까지로서 가장 혁신적인 대통령을 선출한 상태였고 도덕성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침략전쟁의 피해자였기도 한 한국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게 헌법 5조에 적혀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미동맹을 대한민국이 거스르기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의 일원으로 표현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한 정부로서는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의 도움이 절실했다.

극심한 이념 갈등을 수반한 끝에 결국 이뤄진 파병은 한국 사회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부시 아닌 고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투표권이 없음에도 한국인이 미국 대선에 대해 유별난 관심을 가지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이든 시대의 한미 관계는 어떻게 될까. 바이든은 외국 정상과의 통화에서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고 했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하겠다 했는데 그가 재선되지 못함으로써 이뤄졌다는 농담이 떠돈다.

경외의 대상이었던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로 인해 천둥벌거숭이 같은 자로 여겨졌다. 미국이 위대하고 미국다울 수 있었던 민주주의와 인권, 개방 자유경제의 가치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 트럼프였다.

바이든의 선거구호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은 트럼프가 망가뜨린 미국의 긍정적인 가치를 회복하면서도, 그를 통해 트럼프가 제시하는 미국 상(像)보다 더 위대한 미국을 만들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여기서 바이든이 1987년 전두환에게 편지를 보내 독재 권위주의 정권 연장 조치를 우려했고 이를 통해 한국 민주화에 기여한 사실이 주목된다. 그는 북한 비핵화와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내보이기도 있다.

따라서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 시장경제라는 가치 중심의 한미 동맹 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명분 없는 전쟁이나 명분 없는 평화 모두 바이든은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정상 간의 만남이라는 이벤트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미국이 한국답고 미국다울 수 있는 가치에 좀 더 주목하길 바란다. 그게 있을 때 한반도 평화라는 장밋빛 청사진이 더 탄탄하게 완성될 것이다.

정국진 전 국회 비서관
정국진 전 국회 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