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편지] 수능 마친 고3에게 "너희들이 기억하고 기억하고 또 기억할 것들이 있단다"
[선생님의 편지] 수능 마친 고3에게 "너희들이 기억하고 기억하고 또 기억할 것들이 있단다"
  •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리포터
  • 승인 2020.12.03 17: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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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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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수능을 보고 온 제자들아. 고생이 많았다. 이제야 고3이 정말 끝나는 것 같고 2020년도 막을 내리는 것 같구나. 수능이 끝나고 시험장을 빠져나가는 너희의 발걸음은 후련함과 허무함이 담겼겠지.

너희는 이 시험이 너희의 인생을 결정할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겠지.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건 너희가 이 시험을 집중해서 잘 봤으면 하는 어른들의 주문 같은 것이었단다.

인생은 수능이나 대학의 이름으로 결정나지 않는다. 수능만을 기다렸던 너희가 시험이 끝나고 느꼈던 허무함은 사실, 인생은 그렇게 한 순간에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단다.

수능이 끝났어도, 스무 살이 되어도, 직장인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수능시험의 점수가 아니라, 네 자신이 초중고 12년 동안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사람으로 자랐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12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너희가 어떤 것을 보고, 듣고, 읽으며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느냐는 것이다.

이 시험이 너희의 인생을 가르거나 승자와 패자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마음에서 너희가 보고 기억했으면 하는 몇 가지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 이런 대역병의 시대에 고3으로 지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나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너희끼리는 저주받은 02년생이라는 얘기도 도는 모양이더라. 아니다, 얘들아. 절대 그렇지 않다. 너희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사회는 너희를 위해 애를 썼단다.

다른 시험들은 확진자나 자가격리자가 볼 수도 없는데도, 수능만큼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교육부는 일찍부터 고민을 했다.

초1부터 고2까지 온라인 수업을 하는 와중에도 너희만큼은 차이 없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어떻게든 등교 수업을 해냈다. 막판 코로나가 확산되는 중에도 “수능은 봐야 한다”라며 정부도 대책을 세우고 시민들도 협조하고자 애를 썼다.


수능이 2주가 늦춰지면서 더욱 추워진 날씨에 경찰관들은 새벽부터 핫팩을 붙이고 수능 시험장 앞에서 2시간 넘게 교통지도를 했다. 시험장 근처는 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통제되고 비행기마저 제한했다. 지하철과 시내버스는 증편되어 너희가 시험장에 늦지 않도록 도왔다. 직장인들은 출근 시간을 늦춰가며 너희의 시험장으로의 출정 길을 비워두었다. 그리고 너희의 부모님은 1년 내내 자식을 걱정하며 너희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애를 쓰셨다.


이 모든 노력들이 합쳐져서 너희가 수능을 마칠 수 있었다. 프랑스나 영국같은 나라들이 대학입학 시험을 취소하는 와중에도 우리나라는 수능을 보기 위해 애를 썼다.

나도 그게 옳은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봐야 했다면, 우리는 그걸 위한 최고의 노력을 하고자 했다.

그러니 기억했으면 한다. 너희가 이룬 모든 것은 혼자만의 노력은 아니었다. 너희가 볼 수 없었던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너희를 지원했다.

보지 못했다고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항상 책상에 앉아 고개 숙여 교과서를 보고 문제집을 풀었던 너희도, 이제는 고개를 들어 무엇이 너희를 도왔는지 둘러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작은 것들에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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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억하자. 수능을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했듯 너네도 수능이 끝났다고 해방감을 만끽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해방감에 젖어 매일 야외와 실내를 번갈아 돌아다니기에는 바깥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수능이 끝났다는 것은 너희가 학생 신분에서 성인으로 변해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이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도 방역 조치에 적극 협조하는 시민의 일원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또 기억해라. 너희는 수능이 고3에게 당연한 듯 여겨왔겠지만 수능은 19살들의 고작 60% 정도만 응시한다. 절반에 가까운 19살들은 수능을 보지 않았다.

온 세상이 ‘수능, 수능’ 거릴 때, 그와 상관없이 세상을 살고 있는 너의 또래들이 있다. 너희가 보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19살도 있음을 기억해라.

마지막으로 기억해라. 너희도 알겠지만 수능 시험은 모든 이의 행복을 빌어줄 수 없는 구조다. 모든 이가 만점을 맞으면 모두가 5등급이 되는 제도다. 누군가가 낮은 성적을 받아야 나의 성적이 비로소 높을 수 있다. 이런 제도 속에서 너네는 남을 이기는 데만 집중해 왔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은 이렇게 제로섬 게임이거나 한 줄 세우기로만 결정 나는 것이 아니다. 진짜 경쟁은 네 자신과 해야 한다.

어제보다 내일이 나은 삶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것을 읽고 더 많은 것을 경험했으면 한다. 누군가를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지 말고, 네 자신에게 열중하고 그 결과로 누군가를 이겨라.

꼰대 같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진짜 하고 싶었던 말들을 지금 이 순간까지 품어왔다고 생각했으면 한다.

교사는 현실을 정확히 가르치고 이상을 품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이상이 너희의 인생을 망칠까 두려워 현실을 과장해서 겁을 주고, 이상을 축소해서 불가능한 것처럼 말해왔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수고 많았다. 오늘의 결과가 너희에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리포터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리포터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리포터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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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3 19:08:00
선생님 팬입니다. 잘 새기겠습니다.